우리들의 삐뚤어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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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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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날개
작품등록일 :
2024.09.16 19:17
최근연재일 :
2024.09.19 18:25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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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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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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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일상의 끝

DUMMY

“···.”


“···.”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는 차 안.


그 안에 앉은 두 사람 사이로 눈도 깜박이기 어려울 정도의 어색함이 흘렀다.


‘어후, 이러다가 숨 막혀 죽겠네.’


이룡은 운전 중인 여자를 힐끗 쳐다보았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단발머리에 딱딱하고 사무적인 인상.


안경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눈매의 날카로움이 예사롭지 않았다.


함부로 말을 붙이기 두려운 모습이었지만, 그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너무 어색해 해선 안 돼.’


요새 주변이 하 수상한 것과 별개로 먹고살려면 일은 제대로 해야 하니까.


“저···, 민수연 대리님?”


“무슨 일이죠?”


한여름에 살얼음이 떨어질 것 같은 차가운 목소리.


‘일해야지. 일···.’


그는 벌써 꺾여 버릴 것만 같은 의지를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가서 어떤 일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그냥 가만히 계세요.”


“예?”


“어차피 평소에 하던 대로 할 거라서 도움은 필요 없어요.”


그녀의 말에 그는 벙찐 채로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나를 왜 부른 건데?’


하지만 그런 그의 시선에도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은 변하지 않았다.


“초짜가 끼면 불편해서 그러니, 그냥 근처 카페에 가서 앉아 계세요.”


어디 멀리 가시지는 말고.


“···예, 알겠습니다.”


이룡은 마치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심경으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답답하네.’


일에 대한 생각이 가시자, 다시금 갖은 잡생각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괴물, 부모님, 혈육, 영웅, 설화, 변장···.


‘혹시 이 사람도 누가 변장한 모습인가?’


선배처럼?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녀는 설 선배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 특유의 분위기와 말투가 완전히 달랐으니까.


무엇보다 설 선배는 눈앞의 여자와 달리, 자신을 불편하게 여기는 티를 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위축돼서 쭈그려 있는 편이었지.’


민수연 대리가 자신에게 하악질 해대는 고양이라면, 설 선배는 그저 옆에 지나갈 뿐인 코끼리랄까.


‘지금은 코끼리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되어가는 느낌이지만.’


···이젠 나도 모르겠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냥 얌전히 따라갔다가 퇴근이나 하면 되겠지.’


무리한 일을 시키는 것보단 아무 일도 안 시키는 게 나으니까.



* * *



진한 갈색의 액체 속을 유영하는 얼음덩어리들.


그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커피를 휘휘 젓고 있었다.


‘샷 추가는 하지 말 걸 그랬나?’


괜히 쓸데없이 써서 마시기가 꺼려졌다.


‘그냥 아이스티나 마실걸.’


어차피 외근을 마치면 퇴근인데, 괜히 커피를 주문한 듯했다.


“으그극.”


기괴한 소리와 함께 기지개를 켠 그는 시선을 돌려 그녀가 들어간 건물을 바라보았다.


‘오래 걸리려나?’


아침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출근길에는 사람들에 치여 정신이 없었고, 출근하고 나서는 예상치도 못했던 외근 통보에, 외근을 나가서는 까칠한 파트너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 사이사이에 오늘 치 업무를 마저 정리해야 했으니, 미처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어쩌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


저번 주에 겪었던 이물의 습격이 꿈인 것만 같았다.


‘이상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적기도 하고.’


분명 그 정도의 부상과 고통을 겪었다면 PTSD가 남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자신은 이상할 정도로 덤덤했다.


아무리 자신에게 둔한 면이 있다지만, 이건 상식을 벗어난 수준.


‘···역시 선배가 나한테 주입했던 그것에 뭔가가 들어있었나.’


갑자기 회복된 몸도, 멀쩡한 정신도 그게 아니면 설명이 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선배가 왜 날 보호했을까.’


오전에 과장이 했던 말에 따르면, 이는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었다.


그녀가 자신의 동선과 행적까지 관리했다고 했으니.


‘하지만 어째서?’


그 부분이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과장은 그게 자신에게 빽이 있어서라고 짐작한 듯했지만···.


‘나한테 빽이 있다고?’


자신에게 빽이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그런 소문까지 나돌아 다니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애초에 고아에게 그런 소문이 붙을 거라고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떤 미친놈이 고아에게 빽이 있다고 생각하겠어.’


어떤 미친놈이···.


‘아니, 생각하니 억울하네.’


순간 그의 관자놀이 위로 핏줄이 돋아난다.


‘그놈들은 왜 고아를 상대로 그런 뒷담화를 하는 거야? 내가 만만한 위치니까, 편하게 씹뜯맛즐하는 건가?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직장 내 괴롭힘?’


달그락


거칠게 휘저은 얼음들이 컵과 부딪치며 내는 맑은소리를 낸다.


‘···그나마 내가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원장님뿐이다.’


어려운 사정에서도 그에게 대학을 권유하고, 지원까지 해주셨던 고마우신 분.


이 회사에 오게 된 것도 원장님의 추천 덕분이었다.


물론 그분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자신에게 빽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분밖에는 없었다.


‘아무래도 조만간 원장님을 찾아뵈어야겠어.’


회사 생활한다고 한동안 발길이 뜸했으니, 한 번쯤 들릴 때가 되긴 했었다.


여러 생각 속에 그녀가 들어간 건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질 때까지.


자신이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가 된 것 같다고 느낄 때쯤, 그녀가 건물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곧바로 앉아 있던 자리를 정리하고,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사원 주제에 대리가 올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민 대리님, 수고하셨···.”


그렇게 그녀와 가까워진 순간, 얼마 전에 느꼈던 섬뜩한 한기가 그의 등골을 스쳐 갔다.


‘위험해!’


그는 곧바로 다리에 힘을 주고,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콰득


발밑으로 무언가가 부서지는 느낌과 함께 몸이 앞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이동했다.


그녀는 달려드는 그의 모습에 곧바로 그를 피하려 했지만, 타이트한 치마로 인해 자세를 잡지 못하고 휘청였다.


그는 휘청이는 그녀를 안고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당신···!”


예상치 못하게 그의 품에 안긴 그녀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밀어내려 했다.


“도대체 언제 각성을···!?”


“숙여요!”


그러나 그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누르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날카로운 이빨.


겹쳐서 난 두 개의 턱 위로 난잡하게 자리한 이빨들이 그들의 머리 위를 스쳐 갔다.


“···육지상어!”


그는 그녀의 경악성을 들으며, 그들의 앞에 나타난 괴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뾰족한 머리와 크게 발달된 턱

웬만한 중형차보다 큰 덩치

흉악한 걸 달고 있는 네 개의 팔


‘살벌하군.’


특히 놈의 신체 곳곳에 나 있는 이빨들은 갈고리의 형상을 하고 있어, 그것에 잘못 걸리면 단순히 피부가 찢기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자리에서 일어난 민 대리가 그에게 가방을 던졌다.


“당신은 빨리 도망가세요.”


“대리님께서는···?”


그는 그녀가 던지는 가방을 받아내며 물었다.


“누군가는 시간을 끌어야죠.”


그녀는 거슬리는 치마의 옆 부분을 길게 찢어버렸다.


뽀얗게 드러난 허벅지.


그는 가방을 끌어안은 채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녀도 설 선배처럼 날 경호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인가?’


하긴 설화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하루 종일 자신만 경호하고 다닐 순 없겠지.


다만 설 선배와 달리 변신하거나 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그녀는 지금 보이는 모습이 본체인 듯했다.


“놈은 눈이 어두우니까, 쓸데없이 소란만 피우지 않는다면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말한 그녀가 그들을 향해 이빨을 들이미는 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


하지만 그는 분명히 들었다.


“하씨, 무기도 차에 두고 내렸는데.”


그는 그 말을 듣자마자, 최대한 빨리 주차장을 향해 달렸다.


‘무기, 무기를 전해줘야 해.’


그녀가 얼마나 강한 영웅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맨손으로 이물을 찢어버리던 설화보단 약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애초에 총알조차 견뎌내는 이물의 가죽을 맨손으로 찢어 버리는 설화가 비정상적인 것이었다.


그가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영웅들은 대부분 무기를 들고 이물과 맞섰으니까.


주차장에 들어선 그는 곧바로 민수연 대리의 차를 찾기 시작했다.


“3157, 3157, 3157···.”


‘저기다!’


다행히도 그녀의 차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었다.


한걸음에 그녀의 차 앞까지 뛰어간 그는 문득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차 키가?’


그녀의 가방을 뒤져봐도 보이는 건 서류뿐, 지갑이나 열쇠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갈등하는 눈빛으로 차를 보던 그는 이내 팔꿈치를 들었다.


쨍그랑


‘···차 유리가 원래 이렇게 약했나?’


너무나 무력하게 부서지는 창문.


그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서둘러 차 문을 열고 차의 내부에 들어섰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내부를 둘러봐도, 무기처럼 생긴 것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차에 있다고 했는데?’


차에서 짐을 보관하는 공간이···.


“트렁크?”


그는 곧바로 차의 뒤편으로 향했지만, 그곳에도 새로운 난관이 있었다.


‘···트렁크를 어떻게 열지?’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그가 승용차의 트렁크를 여는 법을 알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한가하게 ‘트렁크를 여는 법’을 검색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그냥 힘을 주면 열리려나?’


그는 뒤편에 움푹 파인 곳을 잡고 힘을 주었다.


“흡!?”


콰드득!


그는 힘을 주기 무섭게 뜯겨져 나간 트렁크의 뚜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이건 정상이 아니야.’


일반적인 사람은 결코 이런 힘을 낼 수 없었다.


그가 아는 한 이런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각성자.’


인간으로서 인간을 초월한 힘을 선보이는 자들은 그들밖에 없었다.


‘그 남자가 말했던 게 이거였나?’


계획의 시작과 각성의 예고.


당시에는 정신이 깨어나는 걸 말하는 줄 알았으나, 그것이 다가 아닌 모양이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그는 곧바로 트렁크에 놓여있던 길쭉한 무언가를 꺼내 들고는 괴성이 들리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콰드득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웬만한 SUV보다 큰 괴물이 전봇대를 그대로 씹어 먹는 모습이 보였다.


‘···살벌하군.’


놈은 거세게 고개를 흔들며 전봇대를 박살 냈지만, 놈이 노리던 인간은 이미 자리를 피한 후였다.


“이쪽이다!”


그녀는 놈에게 돌을 던져대며, 놈의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러자 입안에 든 것들을 단번에 삼켜낸 놈이 그 뾰족한 머리를 앞세운 채로 다시 한번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마치 한 편의 투우를 보는 것 같은 아슬아슬한 광경.


그녀가 곡예를 펼치듯이 뛰어오르며 놈을 피해냄과 동시에 놈을 걷어차 머리를 땅에 박아버렸다.


그러나 그때 놈의 팔이 크게 뒤로 꺾이며 그녀를 향해 휘둘러졌다.


“읏!”


그녀는 급하게 팔을 들어 그것을 막아냈으나, 공중에 떠 있던 탓에 뒤로 크게 튕겨져 나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피를 흘리며 튕겨 나가는 그녀.


그는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그녀가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낚아챘다.


“꺄-악?”


뭔가 여성스러운 비명을 지른 그녀가 꼭 감았던 눈을 뜨며 그를 쳐다봤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요.”


그는 드러난 그녀의 연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분명 도망가라고···.”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구할 수 있었지 않습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를 내려주었다.


“왜 돌아온···?”


다시 땅을 디디며 그를 돌아본 그녀의 시선이 그가 들고 온 무언가에 고정되었다.


“이걸 전해주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등에 멨던 길쭉한 것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홀린 듯이 그에게 다가와 그것을 움켜쥐었다.


“···이제 이기실 수 있는 겁니까?”


검을 쥔 그녀가 씨익 웃으며 괴물을 향해 돌아섰다.


겨우 땅속에 박힌 머리를 빼낸 놈이 그녀를 바라보며 포효를 내질렀다.


“이제야 제대로 싸울 수 있겠네.”


그녀는 거추장스러운 구두와 너덜너덜해진 와이셔츠까지 벗어버리며 자세를 잡았다.


‘좀 자극적인데···.’


찢어진 채로 크게 말려 올라간 치마와 노골적으로 드러난 하얀 살결


상체는 안에 받쳐 입은 티 덕분에 노출이 덜했지만, 하체 부분은 차마 보기 남사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녀에게 물었다.


“···팔은 괜찮으신 겁니까?”


“영웅을 뭐로 보는 거예요?”


그의 걱정과 달리 그녀가 팔을 털어내자, 멀쩡해진 새하얀 팔이 모습을 드러냈다.


“긁힌 상처 정도야···.”


그녀는 이내 안경마저 벗어 버리더니, 그것을 그대로 박살 내버렸다.


“악수급 이물 토벌에 대한 지원 보류.”


그녀는 그대로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고,


“설한화 부대, 1급 낭도 민수연. 이물 토벌을 시작합니다.”


칼날 위로 붉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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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훈련 24.09.18 7 0 13쪽
9 훈련 24.09.18 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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