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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nifle
작품등록일 :
2016.03.19 09:17
최근연재일 :
2019.04.04 19:57
연재수 :
266 회
조회수 :
202,528
추천수 :
2,609
글자수 :
1,493,079

작성
16.06.04 09:39
조회
1,110
추천
18
글자
12쪽

25화-왕녀와 마법사. 그리고 망나니(1)

DUMMY

“괜찮아요.”


‘괜찮아.’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 그치만!”


스르륵.

뭔가를 말하려던 그녀는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얼굴이 너무나 평화로워 보여서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정도 돈은 충분히 있고, 그런 거로 사치라고 생각할 만큼 제 씀씀이가 작은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이리안은 왕족이잖아요? 그 정도가 이리안에게는 많이 검소한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어, 그, 그러니까.”


“후후.”


아인즈는 그녀의 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얼굴이 확 붉어지는 그녀의 얼굴에 나지막이 웃음을 흘리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에게는 사람마다 처해진 상황과 사정이 있기 마련이에요. 그 중에는 부자인 사람도 있겠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사나운 사람, 얌전한 사람, 튼튼한 사람, 약한 사람도 있겠죠.”


“······”


“하지만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에요. 그가 어떤 상황이건, 어떤 사정이 있건. 그의 마음이 부끄러움을 알고, 긍지를 알고, 사랑을 안다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겠죠. 이리안은 왕족이지만 크게 사치를 부리지도 않고 절제도 알고 있으니 그렇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의 말에 차분한 말소리에 이리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사실 아인즈의 말은 스스로를 위한 말이기도 했다. 연영을 잃고 그토록 괴로워했지만 불과 1년여, 게임 안에서 시간으로 13년여의 시간이 지났을 뿐. 하지만 벌써 하나뿐이었던 동생의 죽음에서 죄책감을 덜어낸 자신을 위한. 스스로의 위로였다.


“자, 그럼 가실까요?”


“네!”


마음의 걱정을 덜어낸 이리안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 * *


“헤에.”


초대를 받아 방문한 그의 집은 이리안으로서는 신세계였다.

왕궁과 크기는 비교할 수 없지만 가구나 방, 식기까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작용하고 있는 수준 높은 마법과 사계절의 모든 꽃이 피어있는 정원. 규모에서는 아니지만 그 질적으로는 왕궁 이상이었다.


“마스터,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집사인 게럴트와 메이드인 시리아와 바이올렛이었다. 신비로운 은발과 다이아몬드를 닮은 분홍빛 눈동자.

그리고 자신은 측정할 수도 없는 그 경지.


“와아. 오라버니. 엄청난 사람들을 고용인으로 두고 계시네요.”


“후후.”


그런 이리안의 반응에 아인즈는 작게 웃었다. 확실히 그녀에게 자신의 집은 놀라운 것 투성이였을 것이다.

천좌의 마법을 사역하는 그가 정성을 들여 치장한 그의 집은 그 자체로 이미 던전이라 할 만했다. 거기에 인간답지 않은 외모의 게럴트와 시리아, 바이올렛은 왕국 규모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미인들 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리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이도 있었다.


“체, 뭐야. 저건. 저런 꼬마는 도대체 어디서 또 데려오신거야?”


아직도 순순함을 간직한 바이올렛의 눈에 이리안은 그저 아인즈를 빼앗아간 기분 나쁜 여자애에 지나지 않았다.


“흥, 칫, 내가 쟤보다 훨씬 예쁘다?”


“그리고 너는 마스터의 딸이지.”


“야!”


바이올렛은 냉정한 시리아의 말에 소리를 빽 질렀지만 시리아는 변함없이 무표정하게 일침을 가했다.


“우리는 그저 마스터께서 필요에 의해 탄생시킨 생명들일 뿐이야.”


“그, 그건······! 그치만 마스터는 그런 사람 아니야!”


“그래. 확실히 마스터는 그런 분은 아니시지. 비록 필요에 의해 탄생시켰다고는 하나 마스터는 우리를 모두 진심으로 아끼신다.”


“그러니까.”


시리아의 말에 바이올렛이 들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려 하자 시리아는 바이올렛과 눈을 맞추며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분께 무턱대고 애정을 갈구하거나 요구해서는 안돼. 우리는 어디까지나 서번트(Servant). 주제넘게 마스터께 무언가를 요구할 그런 위치가 아니야.”


“그, 그치만······”


자신의 말에 바이올렛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듯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자 시리아는 내심 한숨을 내쉬면 바이올렛을 안아주었다.


“바이올렛. 너는 분명 순수해. 그건 마스터께서 네가 그런 존재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게 성장하지 않고 언제까지나 아이로 남아있기를 원했다는 뜻은 아니야.

마스터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준 의미를 잘 생각해봐. 분명 마스터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있어. 너도 그걸 안다면 좀더 마스터를 위해 움직일 수 있겠지.”


“응.”


“그래. 그럼.”


그 말을 끝으로 시리아가 사라지자 바이올렛은 한숨을 쉬었다. 가끔은 부럽기도 했다. 게럴트는 이미 지혜를 가지고 있었고, 시리아는 세계를 관통하는 이치를 보기에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언제나 제멋대로 어린 짓을 저지를 뿐. 마스터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하아. 아니, 이제부터라도 잘 하면 돼! 힘내자 바이올렛!”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을 하던 그녀는 다시 뒤를 돌아본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아, 시리아. 이 망할 기집애.”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이 잔뜩 남아 있었다..


* * *


“어때요, 게럴트?”


“글쎄······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저 아이가 마스터와 상당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걸세.”


“역시 그런가요······”


시리아와 게럴트. 그들은 식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누는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풍경이었지만 시리아는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분명 저 둘의 인연은 보통이 아니야. 이건 마치······ 그래. 전생의 인연 같은. 운명이나 숙명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진하고 질긴. 그리고 간절한 인연.’


“하아.”


“응? 왜 그러나?”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녀의 한숨에 게럴트는 의문을 표했지만 시리아는 그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마스터. 마스터는 아십니까? 저는 마스터께 지혜를 보는 눈을 얻었고, 그 덕에 솔직할 용기를 잃었습니다. 가끔. 아니, 자주 바이올렛이 부럽습니다. 저는 그렇게 감정에 충실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기도합니다. 마스터께 받은 이 생명으로 마스터를 위해 어떤 일이든 할 거라고. 그러니 마스터. 부디 굳건히 그 뜻을 세워 마음을 다치지 마십시오.’


* * *


12. 왕녀와 마법사. 그리고 망나니


아인즈와 이리안이 나들이를 갔다 오고 일주일. 아카데미 최대의 행사 중 하나인 봄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장장 일주일간 진행되는 축제의 기간에 아카데미는 활기가 넘쳐 흘렀다.

학생, 교수 할 것 없이 대부분 기대감이 가득한 얼굴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딱 한명. 아니, 두명이 그다지 좋지 못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한 거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나 참, 기가 막혀서.”


무엇인가에 단단히 화가 난 듯, 이리안은 잔뜩 치장한 드레스를 말아 쥐고 거칠게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난처한 표정을 지은 일리아나가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저, 저기 이리,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일리아나의 말에 빽 소리를 지르는 이리안의 표정에 일리아나는 더욱 난처한 표정을 했다. 하지만 이리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거칠게 걸음을 이어갔다.


“도대체 그럼 그때 왜 같이 나가서 옷을 산 거냐고. 이럴 거면 무슨 의미가 있어? 이건 순전히 날 놀리는 거라고. 거기에······”


중얼중얼.

워낙 빠르게 걷고 있는데다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는 중이라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거기에 담긴 그녀의 감정은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다.


‘무, 무서워······’


아주 예전. 자신이 놀림을 당한 적이 있을 때. 이리안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일어났던 일을 그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 응?’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리안에게 닿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리안이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쾅!

우렁차고 사납게 열리는 5m크기의 문과


“오라버니!”


마침내 터져나온 그녀의 분노어린 외침.


‘아, 이번 학기는 망했어. 나, 왜 따라온 거지?’


탁! 탁! 탁! 쾅!

일리아나가 속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을 때 이리안은 아인즈가 앉아 있는 책상을 내려치고는 아인즈를 노려보았다. 그것은 마치 아껴놓은 간식을 몰래 먹어 치운 사람이 눈 앞에 있을 때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아!”


아인즈에게서 이제야 알았다는 듯한 탄성이 터져 나오자 그녀는 더욱 불을 뿜고 말았다.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행한 배신을 징치할 권리가-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있었다.


“아? 아아? 그게 무슨 태도인가요? 분명히 약속하셨잖아요? 그런데 이게 뭔가요! 어째서 이 시간에! 이 곳에! 그런 옷으로 있으신 건가요?”


“아아······”


“그래요! 뭐에요! 뭐라고 말씀이라도 해 보시죠!”


절대 용서할 수는 없지만 친히 들어드리죠! 라고 말하며 팔짱을 끼고 있는 그에게 시선을 주던 아인즈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며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었다.


“아쉽네요······ 어둠의 숲 특산품인 ‘트라이스 나무’로 만든 품질 좋은 책상인데.”


“에?”


“간만에 마음에 드는 책상이었는데 이제는 더 못 쓰겠네요.”


그의 말대로 내려칠 때 분노로 마나가 일부 사용되었는지 책상은 온통 금 투성이가 되어서 더 이상은 사용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런 그의 태도에 이리안의 분노는 책상의 금만큼이나 늘어나고 말았다.


“뭐에요! 제가 물으러 왔는데! 답을 해 주셔야죠!”


연신 자신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던 그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올렸다.


“자, 착하죠?”


스륵스륵.


“에, 헤헤.”


“저, 저기······이리?

갑작스럽게 표정이 완전히 풀려버리는 그녀의 모습에 완전히 기가 질리고 만 일리아나가 조심스레 그녀를 부르자 이리안은 화들짝 놀라 눈을 홉떴다..


“핫!?”


“후후.”


“으, 으으으······!”


그런 자신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는 아인즈의 얼굴을 보자 그녀의 얼굴을 터질 듯 붉어지고 결국 빽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방금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목소리에서 부끄러움이 확연히 느껴진다는 점 이었다.


“뭐에요! 뭐! 저 놀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요?”


“후후.”


“이, 이이······!”


“미안해요. 하지만 이리는 반응이 즉각적이어서 놀리는 보람이 있는걸요.”


“뭐에요, 그게! 결국 절 놀리는 게 재밌다는 거잖아요!”


비록 다시 소리를 지르기는 했지만 자신의 사과에 확연히 누그러진 것을 느낀 아인즈는 자신을 찾아온 두 소녀를 바라보았다.

푸른 머리칼을 반쯤 틀어 올리고 옅은 푸른빛을 띠는 드레스를 입은 이리안과 컬이 살아있는 붉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분홍빛 드레스를 입은 일리아나.

한껏 치장해 아름다움을 뽐내는 둘을 보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으음? 두분 모두. 오늘 무슨 행사라도 있는 건가요?”


그의 맥빠지는 태도에 이리안은 자신이 바보가 된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자신은 뭐 하러 여기까지 쳐들어와 그렇게 역정을 내었던 것일까.


“아, 정말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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