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백(The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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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이에너
작품등록일 :
2016.04.01 23:48
최근연재일 :
2016.04.19 22:41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4,328
추천수 :
542
글자수 :
101,705

작성
16.04.07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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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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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 Chapter1-3 마을 (1) ]

재밌게 봐주세요 !!




DUMMY

마치 '심심한데 산책이나 가지 않으련.'하고 묻는 간드러지는 목소리였다. 남성미가 넘치는 외모와는 다르게, 남자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금방 나타나는 게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다."


협박이 섞인 말투에 분위기는 삽시간에 어두워져 갔다. 눈앞의 기사들은 길바닥에서 몽둥이나 하나씩 어깨에 늘어뜨리고 다니는 시정잡배가 아니었으므로.


“흥. 정말로 흰 옷만을 입고 다닌다더니, 사실이었군.”


엄밀히 말하면 사실은 아니지만, 정말로 대부분의 주민들은 나풀거리는 흰 옷, 어깨가 늘어질 정도의 하얀 옷만을 두르고 있었다. 물위를 거니는 흰색의 학처럼.


오후의 광장은 은백색과 흰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결계를 뚫고 올 수는 없었을 텐데...도대체 당신은?”


불쑥 물은 왠 중년 사내에게, 남자는 짧게 대꾸했다.


“지르베르놈의 친구는 아니지.”


남자는 사람들이 불안에 떠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 무기를 꼬나쥔 기사들을 보며 수군거렸다.


"큰일이 나려는 게야...큰일이."


“...어쩌자고 저런 것들을 끌어들인 거지? 여긴 들어올 수 없는 성역과 마찬가지일 텐데. 아르베인의 유산으로도 소용이 없었단 말인가? 분명 불길한 일이 벌어진 게야...인간이 들어올 수 있게 하다니...도대체 지르베르는 어디 있는거지?”


그 때였다. 그렇게 넋 나간 사람처럼 반갑지 않은 침입자를 보며 귀신이라도 나타난 듯 중얼거리던 사내의 어깨를 살며시 밀치며, 한 명의 사내가 앞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모두 선구자라도 되는 듯이 길을 비켜주었다. 몇몇 주민들의 작은 환호가 들렸다.


“그대가 족장인가?”


“그렇습니다. 율드비안이라 합니다. 지르베르님을 대신해...”


말은 거기서 끊겼다.


“길게 끌 필요가 없군.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겠다. 참으로 단순하지.”

“...무엇이지요?”


율드비안은 눈썹을 한껏 치켜올렸다.


“루베잘. 내놓으면 살고, 안 내놓으면 죽는다. 기회는 단 한 번이다.” 


남자는 단도직입적에, 딱딱 끊어지는 듯한 목소리였다. 전혀 숨김도 없는, 마치 빌려간 물건을 어서 내놓으라는 듯한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였다. 우열의 경쟁에서 패한 하등한 것을 바라볼 때의 눈은, 도통 숨겨지지 않았다.


남자의 그 말에 사람들은 모두 옆구리를 찔린 것처럼 흠칫 놀란 얼굴이 됐다가, 순식간에 적대적인 표정으로 변해갔다. 쉽게 말했지만, 이곳에 있는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무례한 말이로군요. 루베잘은 넘겨줄 수도, 넘겨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르베르를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당신들이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지르베르님의 협력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족장님은 어디 있습니까?"


남자는 코방귀를 꼈다.


“협력이라고? 지르베르는 협력하지 않았다. 우린 문을 부수고 들어왔지.”


“...그런 말도 안되는...”


문은 부서질 수 없다. 적어도 그것이 수 백년간 이어져 내려온 진리가 아니었던가? 


“거짓이로군요. 지르베르는 어디에 있습니까? 지르베르 또한 예에 어긋나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니 당신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족장과 상의한 후에...”


남자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오른손으로, 검지와 중지를 치켜들고 가리켰다. 그러자 기사들이 일제히 검이 검집에서 뽑혀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어 남자가 손가락으로 한 명을 가리키자, 창이었다.


투창술이었다. 기사가 지른 창 하나가 곧바로 주민 한 명의 목을 꿰뚫었다.


“저, 저런...!”


“올리비아!”


“길게 말 안하겠다. 루베잘을 내놓는게 좋을 거야. 이런 꼴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우린 족장에게도 허락을 받았다.”


“거짓말 마라! 지르베르님이 그런 일을 허락했을 리가 없어! 애초에 살육을 원하는 자를 이곳에 들여보냈을 리가 없다!”


남자는 말없이 투구를 고쳐썼다. 비릿한, 어찌보면 잔인할 정도의 냉소가 흘렀다.


"후후.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너무 부자연스러웠나. 적당히 속여가면서 하는 건 언제나 귀찮단 말이야...아아, 오해는 하지 말아. 물론 우리는 허락을 받았다. 다만..."


지레짐작했다. 또 주민 한 명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에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일방적인 허락이라고 문제삼진 않겠지? 문제삼는다고 해봐야 별 수 없을 테지만."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죽은 지르베르에게 눈을 고정시킨 채 노려보았다. 동공위로 눌러앉은 분노, 그의 눈가는 심하게 떨려갔다 .


그런 것치고는, 그나마도 침착한 태도였다. 율드비안은 짧은 웃음을 보였다가, 이내 웃음을 거두고 소리쳤다.


“돌아가라! 루베잘은 넘겨줄 수 없다! 폭력에 굴복할 정도로 하얀 날개는 나약하지 않다!”


남자가 말했다.


"완고한건 좋지만 한번 쯤 자신들의 입장을 생각하고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곧 소멸당할 종족의 일원들이 불쌍하지도 않나."


남자는 칼을 고쳐쥔 손, 그위의 팔 부분을 올려 율드비안을 겨눴다. 칼끝이 유난히 빛난다고 생각할 즈음, 무표정한 남자의 입만이 움직였다. 만년설의 얼음 같은 눈동자가 냉정함을 고이 간직한 채였다.


"하긴, 한 번쯤 그런 생각을 했더라면 벌써 곱게 바쳤겠지. 이만 죽으려무나. 쓸모없는 네놈들의 족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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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하늘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왤까. 분명 초원을 불태울 기세의 한낮의 햇빛이고, 구름이 있기는 해도 태양을 가릴 정도로 커다란 구름은 없었는데, 몇 시간 전만 해도.


달리던 아르다는 폐가 찢겨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도, 아직 성장이 덜 된 가슴을 부여잡고 그대로 달렸다. 지나쳤던 곳들, 기억에 남아있는 곳들, 매번 들락날락하던 익숙한 길이 나타났다.

“거의 다 왔어!”


“알고 있다!”


뒤에서는 하멜이 맹렬한 기세로 쫒아왔다. 그러나 쫒아오는 건 하멜 혼자가 아니었다.


컹컹!


타닷, 타닥, 타닥.


“어떠냐! 아르다!”


회색과 흑색이 어우러진 사냥개 세 마리가 그들의 뒤를 쫒아왔다. 개들은 모두 활기 넘치는 모습에, 한 눈에 건강하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눈이 총총했다.


아르다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웃었다.


“굉장하다...벌써?”


“그래, 이 정도라고! 아빠도 그랬어, 15세에 세 마리를 다룰 수 있는 건 우리 가문에선 가장 최연소라고!”


“신기하다...대단해.”


문을 볼 때와는 또 다른 감탄이었다. 그러나 아르다는 이내 생각을 지우려 고개를 뒤흔들었다. 문을 생각하자마자, 연상하고 싶지 않은 것이 떠오른 것이다. 지르베르. 푸른 로브를 입은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황망하고,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종족의 지배자, 또는 통찰하는 자, 그것도 아니면 ‘인도자’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인물이...부족을 이끌어가는 그가, 평온한 오후에 살해당하였으니. 그것도 인간에게.


힘이라고는 없는 고개가 떨구어지고...남은 것은 더 이상 세상에 머무르지 못할, 뜬 채로 남은 눈동자. 족장님의 시신을 수습할 새도 없었다.


그리고...


마을에 볼 일이 있다는 투였으니, 곱게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희망이 없는 건 아니라고, 아르다는 굳게 믿고 있었다.


투둑. 투둑.


흙바닥 군데군데가 젖고, 귓등에 물이 떨어졌다고 느낀 순간, 비가 내렸다. 흐릿한 공기를 뚫고 숲을 잠재우는 찬비였다. 초여름이 왔는데도 다시 늦봄으로 회귀하려는 것처럼.


“이상하네. 비 올 날씨가 아니었는데.”


“......”


뒤에서 불길한 말을 지껄이는 하멜의 말이 왠지 예언이라도 될 것 같다고 느껴지는 건 왠지.


그 때였다.


“아아! 저것 봐!”


“뭘?”


홱, 고갤 돌린 아르다를 대신해 하멜은 대답대신 손가락으로 비스듬히, 대각선 위쪽을 가리켰다. 빗속에서도 피어오르는 회백색의 연기가 보였다. 아직 강하지 않은 빗속에서 한 줄기씩, 점점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건 굴뚝처럼 뭉게뭉게한 모습으로 변했다.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아르다! 빨리 가자!”


아르다는 빗속에서 소리쳤다.


“제길...제길...!”


둘은 따로 말하지 않아도 전속력으로 서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어.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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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Chapter2-2 별 밤 아래에서 (1) ] +7 16.04.18 184 22 9쪽
17 [ Chapter2-1 세릴 (3) ] +3 16.04.18 170 21 13쪽
16 [ Chapter2-1 세릴 (2) ] +7 16.04.17 139 26 13쪽
15 [ Chapter2-1 세릴 (1) ] +7 16.04.16 180 28 11쪽
14 [ Chapter1-5 항거 (4) ] +3 16.04.15 199 26 13쪽
13 [ Chapter1-5 항거 (3) ] +6 16.04.14 208 31 12쪽
12 [ Chapter1-5 항거 (2) ] +2 16.04.14 207 32 16쪽
11 [ Chapter1-5 항거 (1) ] +4 16.04.13 220 30 7쪽
10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3) ] +2 16.04.12 221 31 9쪽
9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2) ] +4 16.04.11 202 30 10쪽
8 [ Chapter1-4 어둠의 심연 속으로 (1) ] +6 16.04.10 282 29 13쪽
7 [ Chapter1-3 마을 (3) ] +5 16.04.09 225 29 12쪽
6 [ Chapter1-3 마을 (2) ] +2 16.04.08 326 33 10쪽
» [ Chapter1-3 마을 (1) ] +3 16.04.07 209 31 9쪽
4 [ Chapter1-2 침입 (2) ] +4 16.04.06 225 32 14쪽
3 [ Chapter1-2 침입 (1) ] +5 16.04.02 224 29 14쪽
2 [ Chapter1-1 숲의 경계와 아치문 (2) ] +6 16.04.02 227 33 18쪽
1 [ Chapter1-1 숲의 경계와 아치문 (1)] +14 16.04.01 337 35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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