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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夜月香
작품등록일 :
2016.05.31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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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1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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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1 部 천궁전설(天宮傳說) : (1券) 序章 예언과 전설

DUMMY

영겁(永劫)의 세월!

도도한 강호에는 수많은 전설이 이어지고, 중원무림은 때마다 신화가 만들어졌다.


그 유구한 강호에,

저마다 영걸이라 자부하는 인물들이 나타나고 멸망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하고, 영원무림의 기협들은 스스로 천하제일이라 자신하며 독패무림(獨覇武林)을 하고자 협객행에 열중이었다. 그런 영걸기협들 사이에 은밀히 회자되는 강호의 전설,


ㅡ 붕조(鵬鳥)의 그림자가 하늘을 가릴 때 천궁을 찾아라. 그 곳에 들어 살아 나오는 자(者), 천하의 주인이 되리라! ㅡ


천궁(天宮)!

무극을 이룬 유일무이의 무공 무극천공(無極天功)이 숨겨져 있으며, 천궁의 지존(至尊)을 맞이하기 위해 선동선녀(仙童仙女)가 기다린다는 신비의 궁이다.

또한,

천하의 주인이라 했다.

나라를 다스릴 국주(國主)를 말하는가 아니면 강호무림의 지존을 말하는가? 그도 아니면 사직과 무림을 동시에 손아귀에 틀어쥐는 천하도모, 패권무림의 절대천인(絶對天人)을 말함인가?

나라와 무림, 그 어느 하나를 득(得)하려 해도 하늘을 가늠하는 초극의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이룰 수 없는 일이 분명하거늘, 고금의 영걸이사들은 자신의 야욕을 이루기 위해 천궁을 찾아 헤매기를 무량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고금을 통 털어 지금까지, 누구하나 천궁이 발견했다는 풍문은 전해오지를 않고 그저 세월의 전설로만 기억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경천동지할 예언,


ㅡ 항악(恒岳)에 붉은 달이 뜨는 날, 단혼광무비록(斷魂狂武秘錄)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중원은 피 빛으로 물들 것이다! ㅡ


무섭고도 처절한 무량무변(無量無邊)의 예언이었다.


* * * * * * * * * * * * * * * * * *


눈 들어 높은 강호의 가을하늘은 티 없이 맑다.

그런데 꿈인가?

잠든 소년의 미몽 속에 하남성 공현의 유비산 계곡이 길게 펼쳐졌다. 그리고 연이어, 화려함을 자랑하다 천지를 뒤덮은 흙먼지로 한순간에 폐허로 변한 장야궁터의 높은 하늘이 열렸다.

그 푸른 하늘에 순식간에 커다란 공동(空洞)이 생겨나고, 창공을 가로지르던 흰 구름이 회오리치며 무한히 열린 하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연이어 여인의 감미롭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귓속을 간지럽혔다.

헌데,

눈을 드니 세상이 온통 깜깜하고 저 깊숙한 곳, 오직 그 한곳만 불빛이 아른거린다. 그리고 몸은 저절로 둥실 떠올라, 환한 불빛이 비치는 그곳으로 점점 이동했다. 기이한 환영이었다.


“으으으···”


일곱 살 소년, 오늘도 꿈속을 헤매던 그의 이마엔 땀방울이 흘렀다. 잠들 때 마다 언제나 찾아드는 꿈속의 환영을 더듬다 선잠을 깬 소년은 아직 잠에 취해 손등으로 몽롱한 눈을 비볐다. 바로 그 순간,


“허허··· 운아. 땀이 흥건하구나.”


방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소년의 귀에 조부 상관후(上官侯)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님?”

“오냐, 할애비다. 또 꿈을 꾸었느냐?”

“예. 막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헌데 어인일로 소손의 방에···.”

“네 할미는 어디에 있느냐?”


느닷없이 할머니를 찾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할아버지의 후처인 의붓할머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와 사별하고 아버지까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후 의붓할머니의 보살핌으로 자라난 소년 상관유운(上官溜雲)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별당에 계시는 할머니를 어이해 여기서 찾습니까?”

“어허, 오늘은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너와 함께 있으라 당부했거늘, 아직도 별당에 머물고 있단 말이냐?”

“아마 별당에서의 볼 일이 끝나면 오시겠지요.”

“아니다, 됐다. 오히려 잘 되었구나. 이제부터 너는 이 할애비가 하는 말을 명심해야 하느니!”


무슨 긴한 일이 있었던가? 무겁게 말을 꺼내는 할아버지 상관후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했다.


“예. 할아버님. 소손, 귀담아 듣겠습니다.”

“우선 이걸 깊이 간직하도록 해라.”


불숙 내민 손에는 소학(小學)중 명륜(明倫)편 한권이 들려있었다. 그 책자를 받아든 소년 유운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할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소손에게 글 한자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로 서책을?”

“그래 가르쳐 주지 않았지. 허나 글이란···, 그저 눈으로 익히고 또 익히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그러니 앞으로도 그 책자를 절대로 남에게 보이지 말고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엄한 당부였다. 그 이유가 궁금해 고개를 갸웃 했으나 허튼 말은 하지 않는 할아버지의 성품을 익히 아는지라 다시 물을 수 없었다. 그런 유운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상관후가 길게 한숨을 내 쉬며 또다시 입을 열었다.


“운아, 지금부터 할애비가 하는 말은, 어쩌면 유언이 될지도 모른다.”

“예, 예에?”


유언이라 했다. 죽음에 이르러 남기는 말이 아닌가? 유운이 깜작 놀라 소리를 질렀다.


“어허, 조용히 하고 침착하게 말을 들어라. 이 할애비가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목숨을 걸고 결정한 두 가지의 일이 있었다. 그 한 가지는 지금 이 시각까지도 옳은 선택이라 여기나 나머지 하나가 너를 위태롭게 만든 것 같구나.”

“자세히···. 할아버님, 소손에게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신중한 어른이시다. 그런 어른이 유언이라 무겁게 표현하며 꺼낸 말이다. 유운은 일순 당황한 표정을 보이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당금 왕조의 녹을 먹는 이 할애비는 마지막 의(義)를 택하여 신왕조를 따르지 않았을 뿐, 도탄에 빠진 백성을 위해 새로운 왕조를 이루려한다는 그들의 명분이 옳다고 여겼기에 스스로 죽기를 각오 것이 그 한가지다. 그러나 다른 한가지의 선택은···.”

“소손, 귀를 열고 듣고 있습니다. 어서 일러주소서.”

“오냐. 말하마. 할애비에게는 목숨보다 아끼는 친구가 있었다. 어린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와는 함께 조정의 일을 하면서 충심(忠心)으로 맺어진 동지였다. 해서, 너의 친할미가 목숨을 버렸을 때, 그는 그의 어린 동생을 내게 보내며 이 할애비의 후처로 맞을 것을 권했다. 이 할애비와 인척을 이루고, 끝까지 이 왕조를 위해 목숨을 나누자고 하면서 말이다. 인척이 된다는 사실은 서로 한 집안이 되어 두 가문이 더욱 끈끈한 정으로 맺어진다는 게다. 할애비는 그의 권유를 고마워하며 선뜻 받아 들였다. 그런데···.”

“지금 별당에 계시는 할머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서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친구가 어린 동생을 내게 보내며 기어코 할애비의 후처로 만든 건 내심 다른 뜻이 있었다. 이 할애비에게서 무언가를 찾아내려 했던 게지. 그 뿐 아니라 동지라 여겼던 그 친구는 할애비와의 맹약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결국 배신을 하고야 말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할머니는 할아버님을 사모하여 시집을 온 게 아니라,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걸 기회로 그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할아버님을 이용했단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 할애비의 평생 단 한번 실수가 동지라 믿었던 친구의 어린 동생을 후처로 맞아들인 것이다.”

“그럼, 그 목적이란 게 무엇인지요?”

“그건 나중에 네 스스로 알아내도록 해라. 그리고 네게 준 그 서책은 누구에게 넘겨주어서도 안 된다. 오직 네 힘으로 글자를 익혀야만 한다.”


상관후는 유운에게 그렇게 내밀(內密)한 이야기를 전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내실로 돌아갔다. 그러나 유운은, 한시도 손에서 책자를 놓지 못하게 당부한 할아버지의 말에 담긴 의미를 그때는 추호도 깨닫지 못했다.


그 시각,

유운의 의붓할머니라는 그 여인은 굳은 표정으로 별당의 창문 곁에 서있었다. 아니, 창문 곁에 그냥서 있는 게 아니라 귀를 바짝 붙여 은밀히 무슨 소리를 귀담아 듣는 듯 심각한 모습이었다. 과연 그 창문 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릴 듯 말듯 흘러들었다.


“낙양마님, 오늘저녁입니다. 기회를 보아 몸을 피하셔야 목숨을 부지합니다.”


무언가 사연이 있는 전언 같았다. 그 말을 들은 유운의 의붓할머니는 오히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할머니라고는 하나 이제 겨우 사십 줄에 들어, 진정 사십이라는 나이조차도 가늠 못할 만큼 주름 하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과히 화용월태의 고운 맵시를 자랑하는 여인이었다. 그러나 성품은 냉정하기가 얼음 같아서 모두가 그녀를 추상냉월(秋霜冷月)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염려 말라고 전해라.”

“예, 마님.”


그 한마디 말을 끝으로 창문 밖의 기척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하늘조차 오늘을 예감하였는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이윽고 날이 저물자 별당에 머물던 유운의 의붓할머니 추상냉월은 장원의 내실로 천천히 걸음 했다.


“대인···”


은근한 목소리로 상관후를 부르며 들어서는 추상냉월, 속이 훤히 비치는 금의(錦衣)를 걸친 그녀의 눈 속에 얼핏 교활한 빛이 흘렀다.


“어어···, 부인. 이 밤에 어인 일이오?”

“대인이 힘겨워 하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보시게, 운아를 데리고 꼼짝 않고 있으라 했거늘···.”

“이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 소첩과 함께 나누지 않고 어찌 그리 서운한 말씀을···. 대체 어인 일이 있기에 소첩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생각에 잠겨 계십니까?”


입가에 웃음을 보이며 투정 부리듯 말을 내뱉었으나 추상냉월의 눈초리는 싸늘했다.


“별일 아니오. 그저 본가에 좀 중한 일이 닥칠 것 같아 마음을 다잡았을 뿐이오.”

“대인, 그 답답함을 소첩과 나누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 질 거예요.”


그리 말하며 추상냉월이 은근히 허리를 비틀었다. 그 순간 엷은 비단 옷자락사이로 살포시 드러나 보이는 치모(恥毛)가 색향을 풍겼다.


“어허, 부인. 이 무슨 경망한 짓이오! 밤이 늦었으니 어서 잠이나 청하시오.”


단호한 목소리다. 그러나 추상냉월은 그런 질책정도는 아랑곳도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오히려 얼굴에 볼우물까지 지으며 옥 굴리는 목소리로 교태를 부렸다.


“으응···, 대인. 대인의 심기가 불편하면 소첩이 어떻게 잠을 이루어요. 오늘만큼은 모든 걸 잊고 어서 이리로···”


모른 척 내실에 자리를 깔며 무릎을 살며시 벌렸다. 허벅지 안쪽 깊은 곳에 숨은 하문이 숨 쉬듯 꿈틀거렸다. 언뜻 보기에도 발갛게 익은 은밀한 계곡, 그곳에는 까만 덤불까지 부드럽게 나부끼며 상관후의 시선을 자극했다.


“대인, 어서 소첩을···”


어느 남정네라도 결코 참아내지 못할 만큼 귀속에 감미롭게 흘러드는 간드러지는 소리다. 이 급박한 순간에 상관후를 유혹하려는 여인, 그녀의 속내가 나변에 있었던가?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는 상관후를 곁눈으로 살피던 추상냉월의 입가에 뜻 모를 미소가 번졌다.


“아흥, 어서···”


투정 부리듯 몸을 비틀며 뱉는 코 먹은 소리다. 하지만 그녀는 무언가에 절박함에 쫓기는 듯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후실로 들어온 내자(內子),

이제 마흔이 겨우 넘어 아무리 음욕이 왕성한 후처라 하나 이런 순간에까지 육신을 들이민다. 상관후의 눈썹이 이마위로 치솟았다. 허나 그 노한 모습도 잠깐, 상관후는 여인의 분별없는 치태라 여기며 온화하게 입을 열었다.


“부인, 보기 민망하오. 어서 몸 간수를 하시오.”

“아이··· 대인. 대인께서 소첩을 안아 주신지 언제오이까? 이 몸도 가끔은 대인의 품속에서 정을 나누고 싶답니다.”


바닥에 누워 온갖 교태를 부리는 추상냉월의 다리사이가 점점 더 벌어져 이제는 그 깊은 속까지 눈앞에 훤히 드러났다. 그러나 추상냉월의 하체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색향도 상관후의 정심(正心)을 어찌하지 못했다.


“어허! 부인, 내, 모른 척 하려 했지만···. 모든 일을 짐작하고 있으면서도 어찌 물색없는 행동을 하려하오. 어서 식솔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하시오!”


위태로운 목숨을 보존하라는 상관후의 어조는 단호했다. 추상냉월의 얼굴에 순간 당황한 표정이 흘렀다.


‘이 노인네, 끝까지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모두 알고 있었단 말인가? 휴우···, 첩자가 되라는 오라버니의 밀명을 받고 이 가문에 시집을 와 결국 알아 낸 건 아무것도 없구나. 식솔? 그렇지, 그 아이!’


상관후는 어쩌면 오늘을 마지막으로 삼으려는 표정이 역력했다. 때문에 죽음을 각오한 그 마음을 색정으로 유혹을 해 단 하나의 실마리라도 찾아보려던 일도 허사가 되었다. 도리 없이 물러나야만 하는 그 순간에 소년의 존재를 언뜻 떠올렸다. 하지만 그도 아니었다. 아이라도 붙들어 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한달음에 달려가 유운이 잠들어 있던 문을 열었으나 이미 그런 상황을 짐작이라도 했는지 유운의 그림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 * * * * * * * * * * * * * * * * *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상관가(上官家) 주변에 검은 복면을 한 인영들이 하나하나 모여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는 흑의 복면인들, 기척도 없이 움직이는 가벼운 몸놀림을 보면 그들은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는 무공을 지닌 절정고수임이 분명했다. 그 흑의복면인들은 상관가의 높은 담을 잠시 올려다보더니 소리 없이 신형을 날려 담을 넘었다. 과히 절정의 경공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높은 담으로 둘러진 상관가의 대문은 굳게 닫혀 사람의 왕래가 차단되고, 저택의 내실에는 위풍이 당당한 무인이 상관후와 마주해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어찌 내실의 분위기가 심상찮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밀담이라기보다 무인이 노인에게 무언가를 강요를 하고 있다는 표현이 적합할 만큼 살기등등했다. 그 내실의 문 앞에는 잠시 전 담을 뛰어넘은 흑의무림인들이 형형한 눈빛을 드러내며 실내의 무인을 호위했다.


“대인,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려 궐기한 우리외다. 이 기회에 높은 덕망과 고매한 인품으로 백성의 존경을 받는 대인이 동참을 하면, 우리는 더욱 명분을 득(得)하리라 생각하오. 부디 이 사람과 뜻을 함께해 거사를 이룹시다.”


말은 정중했으나 무릎 앞에 장검을 꽂아두고 눈을 부릅뜬 모습이, 대답 한마디에 생과 사를 가름하는 순간이라는 상황을 암시했다. 그러나 상관후는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했다.


“이보시오, 장군. 그 말을 하시려 무림방파의 고수들을 대동하셨소? 어찌 장군의 거사에 강호무림까지 끌어들이려 하시오.”

“그··· 그건. 과연 예리한 지적이오. 허나 대인, 이사람 휘하의 장병들로는 역부족이외다. 해서 어쩔 수 없이 무림의 도움을 청했소.”


비웃는 말처럼 질책하는 상관후의 언급에 잠시 당황하던 무인이 사정을 설명하자 한동안 침묵하던 상관후의 얼굴에 굳은 결의가 떠올랐다.


“장군이 백성을 위하는 충정과 그 결행을 나쁘다 판단하지는 않소이다. 허나 무림의 도움을 받아 결행한다면 그들도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려 장군을 겁박할 게요. 난, 그 점이 염려스럽소. 또한 이 상관후가 그대의 결행에 동참을 할 수 없는 이유는 아직도 지금의 조정에서 녹을 받고 있는 신하라는 사실이오. 기왕 없어질 나라라고는 하나 마지막까지 왕조와 함께하는 신하 몇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소!”

“허허, 대인. 모르고 계셨소? 대인이 동지라 여기던 그들 모두 이 사람의 거사에 동참하기로 했소이다.”

“그랬던가? 역시 짐작한 대로구나. 허나 장군, 난 결심을 바꿀 생각이 없소이다.”


무인의 입에서 저절로 탄식이 흘러 나왔다.


“상관대인, 이 사람의 권유를 거절한다면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부득이 대인의 목숨을 거두어야하오. 다시 한번 결심을 번복할 수는 없겠소이까?”


그러나 상관후의 태도는 결연했다.


“이 몸, 스스로 옳은 길을 걸어 왔기에 하늘보기 부끄럽지 않다 자부하거늘 목숨 따위에 연연하지 않소이다. 어서 거두어 가시오.”

“한번만, 한번만 생각을 고쳐 이 사람의 뜻에 동참하지 않겠소?”

“이보시오. 아무리 그리한들 노부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소이다. 어서 목을 베시구려!”

“아깝구려. 진정 아깝소이다.”


순간, 번쩍 무인의 손에서 칼바람이 일고 상관후의 목에서는 피 빛을 뿌렸다.


“상관대인, 용서하시오. 이 사람이 대인을 벤 것은 증오해서가 아니라 다만 대의를 위해서 일 뿐이외다.”


그리고는 급히 내실을 벗어난 무인은 그곳을 지키던 흑의복면인들에게 명했다.


“본관은 휘하병사들을 이끌고 황궁으로 갈 것이오. 그대들은 상관가를 흔적도 남기지 말고 모두 불태운 후 즉시 따르시오. 그러나 남은 가솔들은 주거나 다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명심하시오!”


전(前) 왕조를 무너뜨리는 거사, 그 모든 움직임은 냉정하며 신속했다. 새벽하늘에는 상관가가 타오르는 시뻘건 불기둥만 처절했다.

그러나 함께한 흑의복면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상관가를 불 질렀을 뿐만 아니라 이미 장원 곳곳에 가솔들의 시체가 피비린내를 풍기며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그들은 혹시라도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까 염려한 나머지 한사람 남기지 않고 모두 도륙을 한 것이다.


“없다. 놈의 마누라와 손자 놈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다. 찾아야 하오. 반드시 찾아 없애 후환을 남겨 두어선 안 되오.”


죽어 널브러진 시신을 하나하나 들추어가며 살피던 흑의복면인들 중 하나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소년과 추상냉월의 행방은 묘연했다.


“에이, 더 찾을게 무어 있겠소. 저 불길 속에 타죽는 게지. 우리도 얼른 자리를 뜹시다.”


한사람 남기지 않고 목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으니 빠져나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마 불길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타죽은 것이라 그렇게 치부하고, 먼저 간 무인의 뒤를 서둘러 따랐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지고,

시뻘건 불길만 치솟는 그곳에 백발이 성성한 노옹(老翁)이 한줄기 연기처럼 날아들어 두리번거렸다.


“강호의 문파들이 앞으로 닥칠 처지는 생각 않고 과욕을 부리는 구나. 헌데 아이는 어딜 갔는가? 진정 이 아이가 강호와의 인연은 아니던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던 백발노옹은 그대로 신형을 날려, 뿌옇게 밝아오는 새벽하늘 저 멀리 사라졌다.

이렇듯,

왕조가 바뀌는 격동 속에서도 강호무림은 말없이 흘러, 어느덧 삼년의 세월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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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각양심계(各樣心計) 2 16.06.01 3,846 23 5쪽
138 第 29 章 각양심계(各樣心計) 1 16.06.01 4,206 22 8쪽
137 기묘염녀(奇妙艶女) 3 16.06.01 4,239 22 11쪽
136 기묘염녀(奇妙艶女) 2 16.06.01 4,005 19 12쪽
135 第 28 章 기묘염녀(奇妙艶女) 1 16.06.01 4,498 22 13쪽
134 암중모계(暗中謀計) 4 16.06.01 3,915 22 16쪽
133 암중모계(暗中謀計) 3 16.06.01 4,017 25 11쪽
132 암중모계(暗中謀計) 2 16.06.01 4,150 24 19쪽
131 第 27 章 암중모계(暗中謀計) 1 16.06.01 4,206 23 9쪽
130 요망유희(妖妄遊戱) 8 16.06.01 4,297 20 26쪽
129 요망유희(妖妄遊戱) 7 16.06.01 3,963 28 16쪽
128 요망유희(妖妄遊戱) 6 16.06.01 4,199 21 16쪽
127 요망유희(妖妄遊戱) 5 16.06.01 4,172 21 16쪽
126 요망유희(妖妄遊戱) 4 16.06.01 4,182 23 16쪽
125 요망유희(妖妄遊戱) 3 16.06.01 4,200 20 15쪽
124 요망유희(妖妄遊戱) 2 16.06.01 4,136 22 16쪽
123 第 26 章 요망유희(妖妄遊戱) 1 16.06.01 4,311 27 15쪽
122 의아형국(疑訝形局) 6 16.06.01 3,729 23 16쪽
121 의아형국(疑訝形局) 5 16.06.01 4,003 24 16쪽
120 의아형국(疑訝形局) 4 16.06.01 4,313 23 16쪽
119 의아형국(疑訝形局) 3 16.06.01 4,045 21 16쪽
118 의아형국(疑訝形局) 2 16.06.01 4,262 21 16쪽
117 第 25 章 의아형국(疑訝形局) 1 16.06.01 4,191 23 16쪽
116 육화명경심(肉火明鏡心) 6 16.06.01 4,137 26 16쪽
115 육화명경심(肉火明鏡心) 5 16.06.01 4,028 21 16쪽
114 육화명경심(肉火明鏡心) 4 16.06.01 4,256 21 15쪽
113 육화명경심(肉火明鏡心) 3 16.06.01 4,144 24 15쪽
112 육화명경심(肉火明鏡心) 2 16.06.01 4,598 27 15쪽
111 第 24 章 육화명경심(肉火明鏡心) 1 16.06.01 4,818 23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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