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청성괴사(靑城怪事) <10>
풍진운의 단호한 음성에 실내는 무거운 탄식소리로 가득 찼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연달아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
그들이 맞닥트리게 된 일차적인 문제는 이런 섬뜩한 일이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라는 예견을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범인이 누구인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작은 실마리조차 잡아내지 못한다는데 있었다.
"청성파를 노리는 불순한 세력이 있었던가?"
"현 상황에서 청성파와 원한을 맺은 세력은 없습니다."
"원기종의 제자들이 있지 않은가?"
한백상이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을 거론하자 풍진운은 잠시 생각해보는 모습을 보였다.
"아쉽게도 삼대제자들이 저지른 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건의 발단이 청성파가 아닌 아랫마을에서 시작되었고, 아까 염청석의 말처럼 대놓고 그런 짓을 저질러서 그들이 얻을 직접적인 이익이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허면 풍사질은 그들을 이번 사건에서 완전히 배제시키려는 것인가? 왠지 원기종의 제자들을 두둔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그들을 의심하는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하지만 혹시나 뭔가 다른 내막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여 다각도로 추론을 해보는 것뿐입니다."
"그래?"
한백상은 풍진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내면에 깊숙이 감춰져 있는 인간의 교활한 마음을 꿰뚫어 보겠다는 의도로 비쳐졌다.
풍진운은 명경지수와도 같은 표정을 유지하면서 약간의 동요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알쏭달쏭한 표정이 한백상의 안면에 떠올랐다가 금방 사라졌다.
풍진운을 도저히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위인으로 단정짓는 듯 하였다.
"그럼 이제 어쩌면 좋겠는가?"
"일단 야심한 시각에 제자들의 바깥출입을 엄격히 금하겠습니다. 허나 지금보다 경계를 강화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그러다 또 다시 참사가 일어나면 어쩌려고..."
펄쩍뛰는 소리에 풍진운은 조용하면서도 자신에 찬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역시 최선책은 예방이 아닌 종결입니다. 범인의 확실한 목적도 모른 채 소극적인 대처에만 급급 한다면 마지막에 가서 지쳐 쓰러지는 쪽은 우리들이 되겠지요."
"아예 범인을 잡아보겠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경계를 강화하지 않게 되면 범인은 이것이 청성파가 최상으로 펼칠 수 있는 경계라 여겨 약간의 방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곤 한번 더 범행을 저지를 시도를 하겠지요. 그럴 즈음 제가 직접 제자들을 이끌고 은밀하게 몸을 숨기고 있다가 현장에서 범인을 잡을 것입니다."
"아예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자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한백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장내를 한번 둘러보았다.
이미 원로들과 일대제자들이 풍진운의 의견에 깊은 신뢰를 보이는 눈치였다.
어차피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닌지라 한백상은 그의 계획을 한번 실행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럼 풍사질의 계책대로 해보도록 하지. 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풍사질은 무조건 범인을 잡는데 온 심혈을 기울이도록 하라!"
** **
한편 졸지에 범인으로 몰려버린 염청석과 그의 사제들은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하여 미칠 지경이었다.
모두 한자리에 모인 자리에서 그들은 일제히 염청석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원로들께서 정말 너무하십니다. 우리가 뭐 하러 그 놈들을 대놓고 죽인답니까?"
"하필 우연하게도 우리와 마찰이 있었던 놈들만 차례로 죽어버리다니..."
"대사형 이제 우리들은 어쩌면 좋습니까?"
그들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염청석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모든 정황이 우리들을 모함하기 좋게 딱 맞아떨어지고 있지 않은가...혹시 원로측에서 우리들을 몰아내고자 고육책을 쓴 게 아닐까?)
원로들이 자신들을 내치지 않고 삼대제자로라도 받아준 이유는 간단했다.
서로간의 충돌의 여파로 인해 중원에 이상한 소문이 생산되어 청성파 명성이 추락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헌데 만일 자신들이 누명을 쓰고 범인으로 몰린다면 정의를 부르짖는 무림세계에서 이보다 더 좋은 명분이 또 있을까?
이때 천승비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범인이 한번 더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목표가 우리들이라면 말입니다."
염청석은 흘깃 그에게 눈길을 돌렸다.
평소 과묵하고 주목받지 않는 언행만을 보인 덕분에 청성파에서 크게 이목을 끌고 있지 않았지만 염청석만큼은 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청성파에서 그만큼 심계가 깊은 인물은 찾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사내는 자신과 엇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천사제는 오늘밤이라 생각하는가?"
"오늘밤이 달도 작을 테니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그날 밤,
염청석은 사제들 중 특히 무공이 뛰어나고 날랜 자들을 몇 명 뽑아 아무도 모르게 잠복을 시작하였다.
어두운 달빛을 등지고 한 사람이 우거진 전각들 사이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그는 염청석이 사백조의 명이라 속여 불러낸 이대제자 중 한 명이었다.
이미 청성파에서 일어나는 섬뜩한 사건을 잘 알기에, 이대제자는 수시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사백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사백조께서 나타나지 않는 이상 그리 오래 기다리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천승비의 낮은 음성에 염청석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살광을 번뜩였다.
"미끼를 던졌으니 놈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반시진이 지루하게 흘러가면서 염청석 일행은 초조한 기색으로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전방에 서 있는 이대제자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나타나지 않자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지 얼른 처소로 되돌아갈 행동을 취하려 하고 있었다.
(젠장...저러다 돌아가 버리면 도로아미타불인데...)
몸을 숨긴 채 주시하고 있던 염청석 일행은 모두 같은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하였다.
순간 어둠 속에서 수 백 명의 검은 인영(人影)이 유령처럼 출몰하였다.
"왔다!!"
염청석과 그의 사제들이 검병을 꽉 잡으면서 벼락같이 들이칠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괴인들이 시야에 뚜렷하게 걸려들자마자 이런 호통소리가 귓가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네 이놈들 당장 나오지 못할까!!!"
잠복해있다 막 뛰쳐나가려던 염청석 일행은 그만 몸이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고야 말았다.
호통을 내지른 사람은 청성파 원로 수장 한백상이었고, 수백의 괴인들은 바로 원로들과 그들의 제자들이었던 것이다.
"대...대사형...이...이게..."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해낸 사제 하나가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염청석을 바라보았다.
(이런...우리가 역으로 당해버렸다.)
곤혹스러운 표정이 염청석의 안면에 가득 퍼지는 동안 한백상의 호통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어서 썩 나오라니까!! 정녕 죽음을 당해야 정신을 차리겠느냐!!"
이미 탄로가 난 마당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염청석은 어쩔 수없이 사제들과 함께 잠복하고 있던 지붕 위에서 내려왔다.
원로들의 제자들이 염청석과 그의 사제들을 겹겹이 포위하였다.
"역시 네 놈들이었구나! 또 다시 이런 범행을 저지르려 하다니!! 네 놈들은 절대로 살아서 이 곳을 나가지 못할 것이다!"
덫에 걸려도 된통 걸려든 셈이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자신들이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을 한 것이라 변명해도 쉽게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대사형...우리 이제 어쩝니까?"
"이대로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습니다..."
사제들이 벌벌 떨면서 두려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와중에 염청석이 들고 있던 검을 바닥으로 거칠게 내던졌다.
그리고는 비웃음이 서린 얼굴로 한백상에게 당당히 말했다.
"우리들이 사백을 죽이고자했다면 벌써 죽였지 원로들께서 당도하실 때까지 한가롭게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뭐...뭐라? 저 놈이 현장에서 발각되고도 저따위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다니!!"
이때 풍사운이 얼른 끼어 들더니 영문을 몰라 멍하니 서 있는 이대제자에게 물었다.
"너는 여기서 얼마나 기다렸느냐?"
"저...저는 반시진 이상 머물러 있었습니다만..."
"그 동안 무슨 위협을 당하거나 느낀 적은 없었느냐?"
"어...없습니다. 전 그저 사백조님의 명대로 여기나와 기다리고 있었던 것뿐입니다..."
그의 솔직한 증언에 한백상을 비롯한 원로들은 그만 머쓱해졌다.
"너희들이 범인을 잡겠다고 몸을 숨기고 기다린 것이냐?"
풍진운의 물음에 염청석은 도전적으로 대꾸를 하였다.
"저희들이 결백을 밝히려면 그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물론 마치 저희들을 기다렸다는 듯, 이 자리에 출현하신 원로님들의 의중(意中)이 궁금하긴 합니다만 말입니다."
염청석은 이렇게 말해주면서 자신들을 얽어매기 위해 술수를 부렸던 원로들을 은근히 비난하였다.
이에 한백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우리들이 네 놈들 때문에 비열한 책략을 썼다고 생각하는 게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설마 존경스런 청성파 웃어른께서 그런 치졸한 짓을 위해 친히 이 곳으로 납시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저 이 야심한 시각에 아주 우연히 이 곳으로 우르르 몰려오신 게지요."
"흥! 네 놈들이 범행을 저지르려다가 뭔가 낌새가 이상하자 몸을 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뼈있는 말들을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서로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풍진운은 속으로 생각하였다.
(오늘밤의 소동으로 인해 잠복이라는 대책이 범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을 테니 앞으로 더욱 신중해진 범인을 잡기란 매우 어려울 것 같군...)
"오늘 일은 모두 오해로 빚어진 상황인 듯 하니 이만 처소로 돌아가시지요."
한백상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기어오르는 염청석이 매우 괘씸하여 어떻게든 범인으로 몰고 싶었으나 거듭되는 풍진운의 권유에 그만 물러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 날의 소동은 양측의 증오와 불신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결백을 밝히려다 오히려 큰 사단만 만들게 된 염청석의 기분은 과히 좋지가 않았다.
"대사형...이대로 물러나야 합니까? 어떻게든 범인을 잡아야하지 않습니까?"
원로들이 모두 물러간 후, 그곳에 덩그러니 남게 된 염청석의 사제들은 여기서 포기를 하면 범인을 잡지 못해 꼼짝없이 누명을 씌게 될 것이라는 심정을 가감(加減)없이 표출해냈다.
"이만 물러나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들의 행적이 원로들에게 노출되어 있는 이상 더 이상의 잠복은 무의미해졌으니까요."
천승비의 조언을 염청석은 뿌리치지 않았다.
"천사제의 말이 옳다. 일단 오늘은 틀렸으니 모두 돌아가서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논의를 해보자구나."
사제들을 모두 돌려보낸 염청석은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복잡한 기분을 추스르고자 발이 가는 대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곳에 잠복하고 있는 것을 도대체 원로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역시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인가...)
한참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청성파 내를 산책하듯 거닐다 우연히 도착한 곳이 원로들이 기거한다는 청성각 부근이었다.
염청석은 코웃음을 한번 치면서 저쪽에 불을 밝히고 있는 청성각을 냉랭하게 노려보았다.
"두고보라지. 언젠가 저곳을 꼭 내가 차지하고야 말 테니!"
그 순간,
어두운 형체 하나가 청성각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얼른 몸을 숨긴 염청석은 안광에 힘을 주며 정체부터 파악하였다.
청성각에서 나온 인영은 몸을 바짝 숙인 채 주위를 힐끔힐끔 살피더니 잰걸음으로 급히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장삼백...저 놈이..."
청성각에서 간살부리듯 기어 나온 자는 분명 속가제자 장삼백이었다.
"그 동안 쥐새끼처럼 들락날락 거리면서 원로들에게 고자질을 한 놈이 바로 저 놈이었군!"
그제야 염청석은 원기종의 죽음을 원로들이 어찌 알고 청성파로 몰려왔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잠복한 장소가 어떻게 원로들에게 알려졌는지 똑똑히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저 놈이 청성파에서 쫓겨나지 않고 남아있게 된 것이로군..."
장삼백이 원로들과 모종의 거래를 맺고 자신들을 불철주야 감시하고 보고해주는 대가로 청성파에 남아있을 수 있게 된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삼대제자로 강등된 후부터 장삼백은 자신들 근처에서 늘 움직여 왔다는 게 불연 듯 떠오르고 있었다.
염청석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지금까지 원로들에게 당한 모든 모욕들이 장삼백의 밀고 탓임을 알게 된 이상 도저히 참고 넘길 수가 없게 되었다.
"내 저 놈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 **
한낮의 햇살이 대지(大地)를 제법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하루 수련을 마치고 처소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한 청성파 제자의 얼굴엔 만족스런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였던가.
원로들이 청성파를 장악하면서 꼼짝없이 쫓겨나갈 줄 알았는데 뜻밖에서도 당당히 이대제자의 반열에 올라설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정식 제자가 되었으니 이제는 탄탄대로였다.
처세만 잘 하면 일대제자에 올라 장문인까지 되어보는 일몽(一夢)을 꾸어보는 것도 과분한 일은 아니라 여겨졌다.
휘파람소리가 절로 났다.
"이대제자가 되더니 신수가 훤해졌구나."
뒤통수에서 들리는 빈정거림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대...대사형..."
원기종이 장문인으로 있을 때 이대제자를 이끌었던 한수광.
허나 지금의 서열은 삼대제자인 염청석보다도 훨씬 높았다.
"저...저를 부르셨습니까?"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한수광은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몸을 낮추었다.
오랜 세월동안 염청석을 대사형으로 모신 그였다.
괜히 서열이 좀 높다고 거들먹대다간 신상에 좋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원로들에게 거머리처럼 붙어 있으니 기분이 어떠하냐?"
고양이 앞의 쥐처럼 벌벌 떨면서 눈치만 보던 한수광은 미묘한 살기가 감지되자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어인 말씀이십니까? 저...저희들은 이대제자가 되고도 여전히 대사형을 흠모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명만 주시면 대사형을 위해 불나방처럼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래? 괜한 소리를 내뱉는 건 아니고?"
"저...정말입니다...미...믿어 주십시오..."
"그럼 어디 한번 시험을 해봐야겠군."
"네...네?"
한수광은 정말로 불구덩이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겠다는 소리인 줄 알고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이고...대사형...제발 저 좀 살려주십시오...제가 이대제자가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전 그저 명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이대제자로 편입된 것뿐입니다."
그의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한수광은 살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염청석은 잠시 그의 행동을 지켜보다가 다소 음침한 소리로 말했다.
"네가 나 대신 한 놈을 소리소문 없이 죽여줘야겠다."
"네?"
난데없는 살인청부에 한수광은 당황실색(唐慌失色)했다.
"누...누구를..."
"장삼백이라는 속가제자 놈이다. 너도 알고 있는 놈이지."
"자..장삼백...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나는 어제의 소동으로 인해 원로들의 의심을 사고 있으니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는 입장이구나. 더군다나 장삼백이 죽을 시기에 내 종적이 묘연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네가 나를 위해 대신 일을 처리해줘야겠다."
"그 놈만 죽이면 되는 것입니까?"
"그래. 그 놈만 죽이면 된다. 할 수 있겠지?"
죽일 상대가 자신에게 벅찬 고수일지도 몰라 속으로 떨고 있었는데 의외로 쉬운 놈이었다.
기실 장삼백은 속가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무학이 떨어지는 측에 속한다.
남들 무공을 연마할 때 그 놈만큼은 청성파 정식제자들을 졸래졸래 따라다니면서 온갖 잡시중을 들거나 비위를 살살 맞추는 일에만 전념하지 않았던가.
그런 놈 따위 죽이는 건 사실 일도 아니었다.
한수광은 위축되었던 마음가짐을 단번에 떨치고는 자신만만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런 버러지를 처리하는 게 뭐 대수겠습니까? 오늘 당장 아무도 모르게 해치울 터이니 대사형께서는 그저 좋은 소식만 기다리고 계십시오."
"오냐! 네 충정을 믿으마!"
염청석이 흡족한 표정으로 한수광의 어깨를 탁탁 쳐주었다.
그러자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있던 한수광이 염청석을 슬쩍 올려다보면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확실히 다른 부탁은 더 없으신 거죠...?"
** **
Comment '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