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혼환령검(鬼魂幻靈劍) II - 심천패왕(深川覇王) <17>
한편 동령문을 전방에 미끼삼아 던져놓고, 매복을 하고 있다가 졸지에 기습을 당한 사마제는 죽고 부상당한 무사들을 수습하느라 하루를 허비해야만 했다.
“빌어먹을! 전투는 시간싸움이거늘...”
그의 울분처럼 대막천궁에서 여기까지 달려오는 동안 도대체 제대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초반부터 꼬이더니 끝까지 꼬이고 있는 것이다.
적벽관을 치기는커녕 뒤치다꺼리에 힘이 빠진 사마제는 기진맥진해 버렸다.
그 와중에 동령문 문주 목현탁이 불려왔다.
“우리가 기습을 받는 동안 공격도 안하고 있었다고 들었소만?”
열통이 뻗친 사마제가 대뜸 날카롭게 노려보며 그를 옥죄었다.
평소 온화하기만 한 목현탁은 눈앞의 살벌한 기세에 소름이 끼쳤지만 이내 진정하고 입을 열었다.
“송구합니다. 선제공격을 하려고 했으나 후방에 계시는 사마대협께서 기습을 당하시기에 부리나케 되돌아와야만 했습니다.”
“흥. 당신네 문파의 사람들을 잃을까 염려되어 기습을 핑계로 몸을 보존한 건 아니오?”
“그... 그럴리가 있습니까. 사실은 중대한 정보를 하나 입수하게 되어 급히 알려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 이 사실을 들으시면 제가 돌아온 것에 대한 오해가 풀리실 것이옵니다.”
뜬금없는 소리에 사마제는 한쪽 눈을 도끼처럼 치켜세웠다.
“무슨 정보를 말하는 거요?”
이에 목현탁은 주위에 소리쳤다.
“그 놈을 당장 이곳으로 끌어다놓아라!”
몇 명의 무사들이 밧줄에 꽁꽁 묶여 부들부들 떨고 있는 한 사람을 바닥에 거칠게 내동댕이쳤다.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된 남자가 고통의 신음을 흘리면서 나뒹굴었다.
“뭐요 이놈은?”
“세작(細作)이옵니다.”
“세작? 적벽관 세작인 것이오?”
“아닙니다.”
당연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음으로 사마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라니?”
“이 놈은 조막조의 척후무사입니다.”
“조막조? 조막조가 누구요?”
그의 물음에 목현탁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조막조는 이 지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으로 몇 년 전 적월교에 투신한 말단 인사이옵니다. 근래에는 이 일대에 자주 나타나 팔황문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팔황문?”
“채석주대인이 문주로 있었던 곳이옵니다.”
“아! 채석주대인의 가문이로군. 근데 조막조의 세작은 왜 잡아온 것이오?”
같은 적월교 출신이기 때문에 사마제의 이 물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의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 자가 은밀하게 이곳을 염탐하려고 한 게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그거야 적월교에서 이 지역을 시찰하라는 명을 받은 게 아니겠소?”
이어진 대답에 목현탁은 조용히 서신 하나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렇다면 이 밀서를 보시겠습니까? 저 놈이 지니고 있었습니다.”
잠시 바라보던 사마제는 밀서를 받아 펴보았다. 읽어보니 그 내용이 가관이다.
“뭐라! 적벽관이 기습을 해서 혼란스럽게 만들 터이니 불화살이 오르면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대막천궁의 무사단을 급습하라고?”
사마제는 기가 다 찼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니까 조막조가 여기서 얼마 떨어진 곳에 무사들을 대기시키고 있다는 거요?”
“그렇습니다. 때마침 제가 이놈을 잡지 않았다면 아마도 더 큰 낭패를 보셨을 것입니다.”
그의 말에 사마제는 잠시 생각하는듯하더니 의문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그런데...문주는 어떻게 이 자를 잡은 것이오?”
“제가 궁륭성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성에서 몰래 빠져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잡은 것이옵니다.”
“선제공격을 하려는 상황에서 이놈을 잡을 수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사마대협의 부장무사들도 제가 잡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자 목현탁을 감시하던 무사 하나가 기습을 받고 있는 시기에 그가 잡은 것이 맞다고 증언을 해주었다.
그제야 의심하던 눈초리를 거둔 사마제는 끌려온 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잘 듣고 답해라. 바른 말을 하면 살려줄 것이다. 너는 조막조의 무사가 맞느냐?”
두려움에 몸을 떨던 그는 살려준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여졌다.
“맞습니다! 저는 조대인이 휘하이고 척후의 명을 받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그럼 구체적으로 무슨 명이었느냐?”
“궁륭성 근처에 머무르고 있는 대막천궁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라는 명이었습니다.”
이 말을 하자마자 그는 두려움에 눈치를 살폈다.
괜히 대막천궁을 언급했나하는 후회감이 든 것이다.
“그렇다면 적벽관과 네 놈들이 손을 잡은 게 사실이란 말이렷다?”
그 말에 잡혀온 자는 화들짝 놀라며 강력하게 부인하기 시작했다.
“그건 절대 아닙니다. 조대협은 적벽관을 치기위해 나오신 것입니다.”
“적벽관이 목표였다고?”
순간 옆에 있던 목현탁이 상황이 반전될까 두려워 얼른 선수를 쳤다.
“네 이 놈! 여기 밀서가 발견되었거늘 어디서 거짓을 아뢰는 것이냐!!”
“무슨 밀서를 말하시는 것이옵니까? 저는 아무런 밀서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네 이 놈! 네 놈이 네 주군인 조막조를 변호하는 것은 가상하나 지금 네 입으로 이곳의 동정을 살폈다고 실토했었다. 만일 대막천궁이 도착해 전투를 벌이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즉각 와서 도울 일이지 몰래 척후만 하고 관망을 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목현탁의 일갈에 잡혀온 자는 일시에 말문이 막혔다.
분위기에 약간의 적막이 돌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사마제가 돌연 입을 열었다.
“조막조는 왜 우리를 염탐한 것이냐?”
“그..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적벽관을 치려고 무사들을 끌고 왔다면서 왜 멀찍이 진을 치고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
“그것까지 미천한 소인이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확실히 적벽관과는 어떤 거래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음...그래...그럼 조막조가 이곳에 언제 당도했느냐?”
“닷새도 넘었습니다.”
“무사의 수는 얼마나 되느냐?”
“대략 천 여명정도 되옵니다.”
이에 목현탁이 실기할까 두려워 감언이설로 이렇게 덧붙였다.
“사마대협, 며칠이나 이곳에 머물렀다면 이미 사마대협께서 오신 것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적벽관에게 기습받을 때까지 아무런 보고도 않고 이렇게 몸을 숨기고 있었다면 분명 좋은 의도는 아닐 것입니다. 더군다나 여기 이렇게 밀서도 나왔습니다. 분명 적벽관과 손을 잡고 적월교를 배신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목현탁의 설명은 구구절절 옳았다.
일개 적월교 말단인사가 수많은 무사를 보유한데다가 여기로 이끌고 왔다는 점, 그리고 자신에게 즉각 보고도 하지 않은 점은 확실히 불순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결론점에 다다른 사마제는 곁에 있는 부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부장이 곧장 칼을 뽑아 발버둥치는 척후무사을 베어버렸다.
방금까지 살아있었던 사람이 한순간에 시체가 되어 뒹굴자 보고 있던 목현탁은 또 한번 식은땀이 흘렀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떨리는 음성을 자제하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때마침 제가 좋은 묘수가 하나 있는데 사마대협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기탄없이 말해보시구려.”
목현탁을 완전히 신임하게 된 사마제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밀서는 그대로 보내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매복을 하고 조막조를 기다렸다가 일거에 섬멸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적벽관이 쳐들어오면 어쩔 것이오?”
“적벽관의 신호가 울려야 조막조가 움직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신호를 우리가 올려서 조막조를 유인하면 됩니다. 또한 만일 여의치 않게 적벽관이 먼저 신호를 보낸다면 우리들이 조막조의 무사들인 것처럼 위장하여 적벽관을 친다면 일거양득이 되지 않겠나이까?”
그의 설명에 사마제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적의 계략을 역이용하겠다는 말이구려.”
“그러하옵니다. 사마대협을 모시고 벌인 전투에게 동령문이 공을 세우지 못했으니 이참에 제게 맡겨주시면 목숨을 걸고 계략을 성사시켜 보이겠나이다. 부디 기회를 주시옵소서.”
목현탁의 계책을 듣고 그를 완전히 신임하게 된 사마제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좋소이다! 문주가 책임지고 이를 성사시키시오. 그대의 지혜가 이처럼 뛰어나니 잘만 되면 적월교에서 섭섭지 않게 자리를 마련해줄 것이오.”
“보답을 바라고자 하는 일이겠습니까. 그저 적월교에 보탬이 된다면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옵니다.”
이렇게 겸손을 내보인 목현탁은 속으로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신반의했던 계책이 그대로 완벽하게 현실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적벽관은 적벽관이로다.”
**
척후무사들의 보고가 속속들이 도착했다.
적벽관의 기습으로 인해 대막천궁이 큰 타격을 입었다는 소식이었다.
이 부분에서 조막조와 한적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름 대막천궁 정예가 왔다고 들었는데 순식간에 저렇게 당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얼마나 타격을 입은 것이냐?”
“자세한 건 살필 수가 없었습니다. 가까이 접근조차 어렵게 진을 치고 있는지라....”
척후무사의 보고 후에 한적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안달을 했다.
“조대협.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오? 대막천궁이 궁륭성을 치고 적벽관을 다 없애야 우리일이 수월해지는 것이 아니었소?”
“음...”
“이렇게 되면 전투가 장기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데... 우리의 입장이 애매해집니다.”
굳이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대막천궁과 적벽관의 대치가 계속되면 확전이 생기고 그로 인해 새외가 발칵 뒤집어질 수도 있는 형국이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적벽관이다 보니 모든 이목이 궁륭성에 쏠릴 것이 자명했다.
이것은 조막조가 원하던 결말이 결코 아니었다.
대막천궁 무사들을 이끌고 온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보고받은 정보에 의하면 녹록하지 않은 인물일 공산이 컸다.
그런데도 적벽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새외에서 전설같이 떠도는 적벽관의 능력을 모르는 자가 있던가.
조막조는 그들의 대범함에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아직은 쉽게 움직여서는 안 되오.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는 적벽관이 어떤 식으로 공격을 해올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막조의 신중한 소리에 한적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냥 철수하는 건 어떻겠소?”
그것도 나은 결정일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되돌아간다면 들인 공에 비해 손해가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무사들은 갑작스런 침입자에 무기를 들고 누구냐를 외치며 그 자를 둥글게 포위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두 손을 위로 번쩍 들면서 외쳤다.
“난 사마대협의 부장이오!”
조막조는 그 소리에 기겁을 했다.
“사마대협이라면...혹시 태휘사진(太輝四辰)의 사마제대협을 말하는 거냐!”
“그렇습니다.”
‘제기랄’ 이란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하필이면 가장 교활한 인사가 대막천궁 무사대를 끌고 온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는 어떻게 알고 부장을 보냈단 말인가. 절대로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조막조는 혈색이 백색으로 변하면서 얼른 앞으로 달려 나왔다.
“사마대협께서 어떻게 여기를 아시고...”
“그쪽 척후무사 한명이 우리 측에 잡히었소.”
그 소리에 근처에 도착해있던 척후무사 하나가 나직이 아뢰었다.
“대막천궁 진지를 살피던 무사하나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조막조는 똥 씹은 얼굴로 사마제가 보낸 부장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무사들은 사실 적월교 무사들이 아니었다. 이 정도 규모의 무사대를 거느리고 있다면 의무적으로 적월교에 보고하고 병력은 대막천궁에 보내야했지만, 조막조는 따로 은밀하게 무사들을 키워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마제가 필시 이것을 물고 늘어질 것이라 짐작했다.
“그...그래...사마대협께서 내리신 하명이라도 있는 것이오?”
“사마대협께서는 조대협의 본심을 의심하시는 중입니다.”
“의..의심하다니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신단 말이오!”
그러자 부장은 그가 펄쩍뛰며 강력히 부인하는 모습을 보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
“대막천궁이 적벽관과 일전을 거듭하고 있는데도 돕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심이라 하셨습니다.”
새외를 배신하고 적월교를 향한 반역행동이라는 소리를 돌려 말하고 있었다.
조막조와 한적수는 눈앞이 노래졌다.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데 이런 소리가 또 들려왔다.
“사마대협은 지금 매복을 위해 무사들을 정비중이시고 곧 적벽관을 유인하여 치실 것이옵니다. 그런데 만약 조대협께서 합류하여 공격의 한축을 담당하지 않는다면, 적월교에 보고를 하여 참형이 내려지도록 조치를 취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새외에서 사마제의 평판은 사나왔다. 본성이 치밀하고 냉정하여 주위에 따르는 이들이 많이 없다고 한다. 이런 자에게 걸려들었으니 앞으로의 난관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화가 많이 나셨는가?”
눈치를 살피며 물어오자 부장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지금이라도 가서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가한다면 조대협의 충심을 알아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조막조는 이 대목에서 머리를 굴렸다.
사마제가 아는 것이라곤 무사를 모아 여기에 진을 치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서도 자신이 역심을 품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증거로 그가 보낸 부장 역시 계속해서 합류하여 싸움에 힘을 보태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지 않은가.
망설이며 시간을 끌수록 오히려 괜한 의심을 부채질할 게 뻔했다. 하여 최대한 빨리 가서 오해를 풀어놓는 게 현명한 일이라고 판단되었다.
어차피 공동의 적인 적벽관이 있으니 잘 마무리해서 추후에 궁륭성을 차지하면 될 일이다.
이런 결론에 다다르자 조막조는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다.
“사마대협께 전해주시오. 지금 당장 무사들을 정비해서 그쪽으로 가겠다고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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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문피아에 들어와서 한번 둘러보던 중에, 과거에는 무협소설들이 상위권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작가들과 독자들의 무대였던 연재한담도 너무 한산하고 말입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군요.
아무튼 짧은 글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만 물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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