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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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소옥
작품등록일 :
2012.08.29 12:33
최근연재일 :
2012.08.2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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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2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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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지로 132장 활인

DUMMY

구룡지로



132장 활인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안색의 팽소용을 안아든 이무흔이 급히 혈귀도에 관통당한 가슴팍의 요혈들을 눌러 지혈을 한 뒤, 명문혈을 통해 내기를 불어넣어 조심스레 혈맥과 장기의 손상여부를 세심히 타진하는데, 어느새 자신들의 부상은 아랑곳 않고 다가와 염려스런 눈길을 초조하게 보내는 강위룡과 팽호의 처참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알량한 동정심과 망설임에 기인한 것만 같아 이미 때늦은 후회와 자책으로 심기가 어지러워진 이무흔이 한모금의 호흡으로 필사적으로 냉정을 유지하려 애를 쓴다.


혈귀도 추응효의 독문병기인 혈귀도는 본래부터 도 자체가 사람의 피를 마신다는 흉명이 따를 정도로 신병이기로 마땅히 취급받아도 무방할 만큼 그 예기의 날카로움이 남다른 점이 있었다. 하물며 추응효같은 절대고수의 손에서 날아든 그것은 이미 살아있는 도기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네 치나 되는 혈귀도의 도신보다 훨씬 넓은 부위가 깨끗이 잘려버린 팽소용의 흉부에선 혈귀도가 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비록 이무흔이 화급히 지혈을 했지만 바닥에 고인 피의 양으로 보아선 이미 치사량에 근접해 있으며 기의 순환으로 팽소용의 내부의 상태를 조망한 뒤 깨달은 폐와 간의 손상마저도 비관적인지라 서둘러 생사금침을 꺼내드는 이무흔의 손길이 절로 떨리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용매! 제발 힘을 내!”


신음처럼 새어 나오는 이무흔의 혼잣말에 지켜보던 강위룡과 팽호의 안색이 흙빛으로 무겁게 가라앉는데, 평소의 이무흔답지 않게 떨리는 손으로 초조히 생사금침을 하나 둘 팽소용의 요혈에 꽂는데, 갑자기 천번지복의 괴성이 장내를 휩쓸고, 이무흔마저 어안이 벙벙해져 멈칫하는 그 짧은 순간, 조광의 목을 닭 모가지 비틀 듯이 분지른 박휘가 눈 깜빡할 새 날아들어 팽소용의 명문혈에 장심을 붙이며 이무흔에게 말한다.


“회주! 내게 맡겨주게나!”


얼핏 일견해도 박휘의 상태 또한 형편없이 위중해 보이나, 박휘의 눈빛만은 그 누구도 감히 관여할 수 없는 심유한 결의가 담겨 있는지라, 두말없이 생사금침을 회수한 이무흔이 가벼운 목례를 건네고는 여전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강위룡과 팽호를 이끌고 뒤로 물러나 비로소 그들의 상처를 돌보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이미 자신이 보기에도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는 팽소용의 상태를 호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유일한 인물이 생사경을 바라보는 박휘임에야, 멸문의 그날에도 찾지 않았던 천지신명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구원의 기도를 읊조리는 이무흔이었다.


때를 같이 해서 싸움이 정리된, 금혜란, 당가려, 투비, 궁일청, 남궁혜, 원정, 그리고 혁련운 등이 속속들이 날아들어 하나같이 침중하게 굳어진 안색으로 치료하고 치료받는 다섯의 구룡회의 인물들을 둥글게 에워싸 호법을 선다. 전신에 유혈이 낭자한 금혜란의 얼굴에는 이미 살뜰하니 막내 누이처럼 아꼈던 팽소용의 비참한 모습에 눈물이 강처럼 흘러내리고 있었고, 은애하는 연인이 외팔이가 된 불행을 애써 담담히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당가려 역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천마혼을 깨울 만큼 거세게 분노했던 혁련운은 말할 것도 없고, 언제나 답답하도록 감정의 표현에 무심했던 원정마저도 안타까운 수심과 함께 누구에게 인지도 모를 살기를 풀풀 피워낼 만큼 분노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채로운 것은 그동안 팽소용으로부터 불쌍할 만큼 수없이 구박과 핍박을 견뎌내야만 했던 궁일청이었는데, 겹겹이 쌓인 그 숱한 수모는 아예 다 잊은 듯이 이 소화자의 얼굴은 이미 온통 눈물 콧물로 범벅이었다.


한편, 수천이 어우러져 치열한 격전을 벌이던 전장의 무사들 역시 일련의 상황으로 일시에 얼어붙었던 여파로 각자 자신들의 진영으로 일제히 물러나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는다. 여전히 일촉즉발의 살기가 팽배하기는 하지만 그 누구도 마웅 조광을 일수에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 버린 박휘의 압도적인 신위를 거스르지 못하고 그저 사태의 추이를 묵묵히 주시할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수천의 모든 이들에게 떠오른 공통의 생각은 어쩌면 이 결전의 승패와 숱한 목숨의 생사여부는 저 죽어가는 가녀린 소녀의 회생의 유무에 달려있다는 예감이었다.


그떼, 그런 중인들의 초조함과는 달리 앞서 이무흔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기를 불어넣어 팽소용의 내부의 상처를 꼼꼼히 조망하고 있던 박휘의 심상은 아까와는 달리 무척이나 차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광에게 입은 상처 또한, 순간적인 망아의 상태에서 저절로 발휘된 호신과 호심의 방어력으로 심맥과 혈맥, 그리고 오장육부가 공히 보호되었던 탓에 그저 피륙의 상처와 사지의 골절에 그쳤을 뿐, 그것들 역시 무의식적으로 제각각 회복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곧 박휘의 심상 역시 이무흔의 그것처럼 여지없이 침중하게 흔들리고 말았으니, 오른 쪽 젖꼭지 상부에 위치한 장태혈에서 시작한 관통부위가 기문혈을 거쳐 늑골 아래쪽의 장문혈까지 넓고 길게 이어져 있는지라, 이미 거의 그 기능을 멈춘 폐와 함께 간 역시 칠할 이상이 예리하게 잘려 나간 상태에다가 잃어버린 피의 양마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의술에는 거의 문외한과 다름없는 박휘의 입장에서도 이건 그 자리에서 즉사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요행처럼 느껴질 만큼 치명적인 상처가 아닐 수 없었는데, 설령 화타나 편작이 다시 살아온다 하더라도 소생이 어렵다고 단언할 비관적이고 위중한 상태의 팽소용을 이무흔에게 맡기지 않고 대뜸 자신이 치료해 보기로 결심하게 된 것은 근자에 다른 구룡들의 무위를 손보아 주면서 얼핏 엿봄이 잦아진 생사경의 활인의 도에 대한 실마리 때문이었다.


의기상인이며 심즉살 등의 의념만으로도 물리적인 형상을 구체화하여 타격을 줄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그 의념만으로도 활인의 묘를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바로 생사경의 세계를 어렴풋이 엿보게 되는 전조이자 단초를 마련해 주었던바, 아직 어설픈 엿봄에 불과하기는 하나, 그 활인의 도로 팽소용의 생사를 잡아두고자 하는 박휘의 바람이 과연 뜻대로 이루어질지...


한편, 그렇게 서서히 박휘가 팽소용의 회생을 위한 일생일대의 도박에 정, 기, 신을 하나로 일체화하여 집중하고 있을 때, 뜻하지 않은 소강과 대치의 상황에 빠져든 두 진형의 두뇌인 제갈지와 을지휘의 사이에서도 뜻밖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작가의말

오랜만에 후기를 써 보네요. 어느덧 연재가 일 년을 넘기면서 독자분들이 남겨주신 댓글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것에서 탈피했다고 느낀 게 섣부른 오판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음, 그렇다고 다른 의견의 댓글에 반박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고요, 이참에 제가 바라보는 무협관에 대해서 말씀드렸으면 해서요.

잠시 회고를 해보면 바로 얼마전에야 비로소 '둥이의아빠'님께서 제겐 너무도 과분한 추천의 글을 연재한담에 올려주신 것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고전의 향기'까지 언급하시면서 제게 더 할 나위 없는 뿌듯한 만족감을 안겨 주셨지요.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제가 무협을 바라보는 시각은 현실과 비현실의 절묘한 조화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무협이라는 장르는 비현실적인 판타지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판타지와 구별되는 무협의 가장 큰 바로잣대는 독자분들이 일정 부분 공감하는 또는 요구하는 개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한 고대 중국의 시공간을 무대로 강호라는 가상의 틀을 쌓아 그곳에서 인간군상들의 면면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즐거움을 맛 보는 것이야말로 포기할 수 없는 무협독자들만의 유니크한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3D 영화에서처럼 암기가 날아다니고, 검과 도가 부딪치고 창을 휘두르며 화살을 날립니다. 중독 되었다가 되살아나기도 하고, 신의와 배신을 경험하며 애끓는 사랑의 절절함을 맛보기도 합니다. 이 모두가 현실에서는 상상이며 공상이며 허무이지만, 내가 읽는 무협의 공간에서는 울분이며, 통쾌이며, 공감하는 사실이 됩니다. 그렇기에 또한 이 환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어딘지 그럴싸한 개연성이 뒷바침되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사고를 갖게 되는 건지도요.

'드래곤 라자'를 필두로 폭발적인 판타지류의 등장 이후, 수많은 양산본들이(결코 판타지 소설 자체를 비하할 의도는 없습니다. 저 역시 폐인에 가까울 만큼의 애독자이니까요.) 범람한 여파인가요? 신무협에는 먼치킨류나 플롯이나 스토리텔링의 한계가 뚜렷한 작품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했습니다. 읽다가 허탈해지고 또 읽다가 허탈해지는 수많은 경험 끝에 이제는 가뭄에 콩 나듯이 출간되는 특정 작가분들의 작품만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아쉬움에 익숙해졌지요.

어쩌다가 나만의 무협을 독자분들과 공유하는, 힘겹지만 보람도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만, 여전히 아직도 용대운의 치밀한 구성에 설레고, 좌백의 생생한 캐릭터에 열광하고, 풍종호와 운중행의 재기에 탄복하고, 한상운의 기괴한 독특함에 매료되고, 임준욱의 평범속의 비범에 공감하고 장영훈의 연작들의 이어짐에 기대가 새로우며, 초우의 현란한 행보와 오채지의 주옥같은 인연들의 얽힘과 황규영의 익살과 단순함이 나를 웃게 합니다.

이제 겨우 글 쓰는 호흡을 익혀가는 초보 주제에 감히 웬 비평이냐고 느끼시겠지만, 어디까지나 평생을 무협매니아로 남을 애독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제 개인적인 생각임을 거듭 말씀드리고요,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전자의 허탈함과 후자의 흐뭇함의 차이는 결국 허무맹랑한 비현실성과 그래도 어느 정도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개연성과의 간극이 아닐까요?

그래서 변명같지만, 글을 쓰기 전에 사료를 찾아보고, 지리와 역사를 확인하며 맞춤법을 신경 쓰는 게 하나의 버릇으로 남았습니다.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거창한 목표이지만, 무협을 얘기하면서 또한, 인간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터무니없는 나 혼자만의 소설을 써 서는 독자분들의 공감을 얻기가 무망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필력의 모자람을 점점 더 통감하고 있으나, 힘겨움을 무릅쓰고 더 많은 노력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힘쓰겠습니다. 앞으로도 염치없지만 큰 인내심으로 지켜봐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긴 사족같은 얘기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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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구룡지로 133장 휴전 (1부 완결) +21 12.08.29 6,061 59 12쪽
» 구룡지로 132장 활인 +4 12.08.24 4,199 51 7쪽
131 구룡지로 131장 분노 +5 12.08.21 3,887 48 9쪽
130 구룡지로 130장 무위 +6 12.08.16 4,066 51 10쪽
129 구룡지로 129장 재견 +4 12.08.14 3,835 48 9쪽
128 구룡지로 128장 혈투 +8 12.08.10 3,901 52 12쪽
127 구룡지로 127장 전환 +6 12.08.07 4,057 51 11쪽
126 구룡지로 126장 마웅 +3 12.07.20 4,110 54 10쪽
125 구룡지로 125장 혼전 +6 12.07.18 3,924 51 9쪽
124 구룡지로 124장 봉공 +5 12.06.29 4,043 52 8쪽
123 구룡지로 123장 멸화 +6 12.06.21 4,089 58 8쪽
122 구룡지로 122장 선봉 +5 12.06.13 4,045 51 8쪽
121 구룡지로 121장 개전 +7 12.05.29 4,243 56 13쪽
120 구룡지로 120장 전야 +5 12.05.16 4,293 56 10쪽
119 구룡지로 119장 배첩 +6 12.05.02 4,255 56 8쪽
118 구룡지로 118장 연환 +3 12.04.30 4,309 58 9쪽
117 구룡지로 117장 비도 +5 12.04.23 4,412 55 10쪽
116 구룡지로 116장 무한 +4 12.04.16 4,453 55 9쪽
115 구룡지로 115장 형주 +5 12.04.13 4,744 58 10쪽
114 구룡지로 114장 석패 +4 12.04.08 4,626 54 11쪽
113 구룡지로 113장 금강 +5 12.04.05 4,732 58 9쪽
112 구룡지로 112장 홍엽 +5 12.03.30 4,805 58 11쪽
111 구룡지로 111장 구궁 +5 12.03.26 4,805 52 12쪽
110 구룡지로 110장 천왕 +3 12.03.22 4,896 56 9쪽
109 구룡지로 109장 정방 +3 12.03.20 4,851 59 12쪽
108 구룡지로 108장 친견 +4 12.03.15 4,872 57 10쪽
107 구룡지로 107장 비무 +3 12.03.12 4,894 58 7쪽
106 구룡지로 106장 소림 +5 12.03.11 4,949 62 10쪽
105 구룡지로 105장 산산 +6 12.03.08 4,957 61 10쪽
104 구룡지로 104장 편제 +5 12.03.01 5,387 5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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