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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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소옥
작품등록일 :
2012.08.29 12:33
최근연재일 :
2012.08.2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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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3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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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구룡지로 112장 홍엽

DUMMY

구룡지로



112장 홍엽



가녀린 체구의 소녀가 청아한 목소리로 내뱉은 홍엽문이라는 소리에 중인들이 너나할 것 없이 이채를 띄우는데, 이는 구룡회나 오파의 수뇌들도 마찬가지였다. 제문파의 대표라고만 했을 뿐, 출신을 따로 말하지 않았기도 하거니와, 그녀의 외양에서 풍기는 기세가 평범했기 때문이었는데, 정작 그 어린 소녀의 입에서 언급된 홍엽문의 무게는 실로 가벼울 수는 없었다. 수십여 년 동안 강호의 전설로 우뚝 선 칠대천왕 중의 도왕이 바로 홍엽문의 문주이며, 특이하게도 문파의 형태가 여지껏 일인전승으로 유지해 온 관례상 홍엽문을 입에 올리는 문도라 함은 이미 도왕으로부터 의발을 완전히 전수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다름 아닌 홍엽문의 당대문주가 바로 이 여린 모습의 소녀라는 말이므로, 지켜보는 중인들의 표정에 흥미진진한 기대와 호기심이 번져 가는데, 이에 호응하듯 팽호가 커다란 체구에 무색하게 표홀한 신법으로 비무대 위로 오른 뒤, 정중한 포권으로 예를 받으며 담담히 입을 연다.


“ 하북팽가의 가주이자 구룡회의 일원인 팽호라고 하오! 당대 홍엽문의 문주를 뵈어 영광이오! 아울러 최고최강의 도법인 홍엽도를 식견 할 수 있음 또한 그러하외다! 자! 도왕의 후예를 잎에 두고 괜한 허례는 않기로 하겠소! 도객의 말은 칼에 얹음이 가장 어울림이라! 그럼... ”


정중하면서도 패기에 찬 팽호의 호협한 말에 중인들은 물론 마주한 우소혜마저 감탄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다. 다시 한 번 포권례로 답을 한 우소혜가 과거 도왕 우군혁의 애도인 홍엽도의 검병을 서서히 잡아가자 장내는 또 다시 팽팽한 긴장감에 사로잡히는데, 대대로 하북팽가의 가주의 신물이었던 천뢰신도를 도갑에서 꺼낸 팽호가 역시 홍엽도의 타오르는 듯 하는 도신을 곧추 세운 우소혜를 향해 오호단문도의 기수식을 취한다.


우소혜 역시 홍엽도를 빼어 들고 기수식을 취하면서 내공을 끌어올리자 홍엽도의 도신을 타고 붉은빛의 내기가 화르르 타오르기 시작하다가 종내는 도극에 이르러 한 자 가까운 불꽃을 피워내는데, 양강도의 최고봉이라는 홍엽도의 위상에 걸맞는 화려하고 강맹한 그 모습에 지켜보는 중인들의 입에서 절로 감탄의 경호성이 터져 나온다. 내기만으로 화강을 한 자 가까이 솟아나게 한 우소혜의 정순한 내력에 흠칫 안색을 굳힌 팽호가 오호단문도의 평범한 초식들을 배제하고 바로 도강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뇌호창천을 구사하기 위해 건곤미허신공을 십성 가까이 끌어올리자 천뢰신도의 검극에도 불쑥 세 자 정도의 검강이 솟아오른다.


흘낏 그 모습을 넘겨보던 우소혜의 아미가 살풋 찌푸려지더니 입가에 냉소를 매달고는 화기에 이글거리는 홍엽도를 쳐낸다, 허공에 비산하다 명멸하는 불꽃조각들을 뒤로 하고 팽호에게 치달린 우소혜의 홍엽도가 팽호의 왼 쪽 옆구리를 노리고 횡으로 무겁게 파고들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뇌호창천의 초식으로 막아낸 뒤에 반격을 꾀하려던 팽호가 튕겨지기는커녕 세 자 가까운 도강에도 쉬이 밀리지 않고 버텨내는 우소혜의 화강의 위력에 새삼 감탄을 금치 못한다.


팽호가 우소혜의 뜻밖의 정순한 내력에 멈칫하는 그 짧은 순간, 오 초식뿐인 홍엽도법의 일초인 홍엽추일에 이어 땅을 박차고 뛰오른 우소혜가 자신의 발등을 연거푸 교대로 밟고 삼 장 가까이 솟아올라 이초인 홍엽낙화를 전개한다. 후끈거리는 열기를 피우며 어느새 두 자로 불어난 홍엽도의 화강이 넘실거리는 불꽃과 함께 삼 장 아래의 팽호에게로 무겁게 낙화하는데, 이미 허공에서부터 뿜어져 오는 막강한 압력으로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팽호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하반신에 내력을 돌려 충격의 해소를 꾀하며 다시 한 번 극성의 뇌호창천을 구사해 우소혜의 홍엽낙화에 맞선다.


이글거리는 화염이 팽호의 세 자 반가량의 우유빛 검강에 작렬하자 천지를 울리는 우레와 같은 굉음이 터져 나오고, 공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이들이 저마다 귀를 감싸며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럴수록 공방의 추이에 더더욱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위에서 내려치는 역도가 아무래도 좀 더 강맹해서일까? 굽혀졌던 무릎을 펴며 신형을 추스르는 팽호의 입가에 한 줄기 가는 핏줄기가 내비친다. 허나 대수롭지 않은 듯이 커다란 손으로 슬쩍 입가를 훔친 팽호가 홍엽낙화가 뇌호창천에 부딪친 여력으로 멋들어진 공중제비를 뽐내며 이 장 밖으로 내려앉는 우소혜의 모습을 잠시 직시하더니 서서히 지금껏 한 번도 선보이지 않았던 하북팽가의 절기 혼원벽력도를 준비한다.


팽가의 가주만이 익힐 수 있는 독문심법인 혼원벽력신공을 지난 한 달여간 부단히 연마해온 팽호가 그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팔 성 가까운 성취를 이루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박휘의 순수한 열정에 힘입은 바였다. 수차례의 대주천의 행공을 인도하여 팽호의 임독양맥을 뚫은 것은 물론이요, 전신에 흩어진 수많은 세맥까지 일일이 박휘의 무한한 공력으로 활성화한 결과, 이미 팽호가 일주천으로 단전에 받아들일 수 있는 내력의 양과 질은 이전과는 너무도 판이한 극상의 변화를 겪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비로소 하북팽가가 자랑하는 무적의 도, 혼원벽력도를 시연할 수 있게 된, 팽호가 같은 양강 계열의 홍엽도를 맞아 오호단문도의 뇌호창천의 도강으로도 예상치 못한 비세에 빠지자 드디어 과감히 백여 년 만에 다시 혼원벽력도를 구사하기로 마음먹기에 이른 것이었다. 방금 전 까지만도 우유빛 검신이던 팽호의 천뢰신도가 혼원벽력신공의 내력이 깃들기 시작하자 홍엽도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차츰 시뻘겋게 이글거리는 붉은 빛으로 물드는데, 그 타오름이 절정에 다다랐다고 느껴질 때쯤 드디어 팽호의 첫 번째 공세가 시작된다.


미허신보와 혼원보를 밟으며 어지러이 우소혜에게 다가서 거리를 좁힌 팽호가 그 장대한 체구가 무색하게 둥실 허공에 몸을 띄운 후, 마치 무한한 내력을 뽐내듯이 허공답보의 형태로 이 장 높이에 우뚝 선 채, 서서히 혼원벽력도의 전삼식의 일초인 혼원미리를 전개하자, 갑자기 주위의 공기들이 파동치며 과중한 압력을 견디지 못한 비무대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막강한 중압감과는 별개로 모호하기 그지없는 일련의 변초들이 수없이 명멸하며 우소혜에게로 짓쳐 들어가자 냉소적이던 우소혜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겁게 굳어진다. 얼핏 보아도 수십의 각기 다른 초식들의 변화가 일거에 그 대응의 선택을 머뭇거리게 하자 당돌하리만치 자신만만해 보이는 우소혜가 선택한 것은 단순한 몰아붙임이었다.


마침 세 번째의 홍엽도의 초식인 홍엽만장은 일종의 도막이라고 할 수 있는 도기의 촘촘함으로 전방위를 방어하는 수비식 이었던지라 안개속의 모호한 미로처럼 산개해 덮쳐 오는 혼원미리에 대한 대응으로는 일순 적절해 보이기도 했다. 허나 팽호가 혼원미리에 이은 이초식인 혼원개세를 연달아 전개하자 당장 도막 자체가 갖는 수발의 신속함의 어려움에 직면한 우소혜가 어쩔 수 없이 이미 혼원미리의 방어에 한 풀 꺾인 기세의 남은 홍엽만장으로 혼원개세를 응대하지만 초식은 막았으되, 그에 실린 역도만은 홍엽도를 거쳐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앞서의 기세당당함이 너무도 무색하리만치 낭창낭창하니 가냘픈 우소혜의 몸이 격랑에 휘말린 조각배마냥 휘청휘청 뒤로 밀려나더니 결국 울컥하니 한 모금의 토혈을 하고야 만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팽호가 더 이상의 공세를 피하며 담담하게 천뢰신도를 도갑에 갈무리하자 아직 패배를 인정하기엔 이르다는 생각의 우소혜가 빨끈하며 교성을 내지른다.


“ 팽가주! 이건 홍엽문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요? 요행히 한 수를 득했다고 비무의 승리를 선뜻 취하다니, 원래의 성정의 오만함인가요? 아니면 도왕의 절학마저 무시하는 미망인가요? 싸움은 이제 시작이거늘, 고작 삼초식 만의 홍엽도를 능히 눌렀다고 하기엔 그 논리의 빈약함이 심하지 않질 않나요? 어서 다시 도를 뽑으세요! ”


석류 같은 앙증맞은 붉은 입술에 나온 말치곤 비분강개하기 그지없는 우소혜의 항의에 담담하던 팽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으며 묵직한 저음의 목소리로 입을 연다.


“ 한 수를 득했음이 요행임은 익히 인정하겠소. 허나 승리를 취하고자 도를 거둔 것은 아니오! 그대의 홍엽도가 첫 삼초식이 전부가 아니듯 이 몸의 벽력도도 앞서의 두 초식이 전부는 아니라오! 본디 이 비무가 승패를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구룡회의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 그 구룡회의 실체를 친견하기 위한 자리이니만큼 이미 보여 진 것만으로도 친견의 의미는 차고도 넘칠 것이오! 감히 도왕의 절기를 무시할 의도도 없거니와 더 이상의 비무에 전력을 기울일 때 서로의 화기를 상하지 않게 할 정도의 능력은 이 몸에게는 있지 않음으로 손을 거둔 것이오! 그래도 의의가 있다 하시면 기꺼이 받아드릴 용의는 있으나, 결전을 앞둔 몸으로서 생사회전이 끝난 이후로 미룰 수밖에 없음을 양해하시오! ”


말을 마친 팽호가 우소혜의 반응은 아예 무시한 채 가벼이 포권례를 마치고는 비무대 아래로 신형을 날린다. 그 견정한 모습을 고운 입술을 하얗도록 꼭 깨물며 분기를 참지 못한 채 바라보던 우소혜가 종내 한마디를 던지며 그녀 역시 비무대를 내려선다.


“흥! 잘난 척 뻐기기는! 두고 봐, 요행히 살아남으면 오히려 명운을 달리했었음이 부럽도록 만들어줄 테니까! 누가 팽가가 아니랄까봐 곰같이 힘만 세고 무식해 빠져서는... ”


여인의 한은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던가? 지켜보던 중인들이 저마다 우소혜의 마지막 말에 절로 등골의 서늘함을 맛보는데, 평소의 오만방자하며 천방지축 같았던 괄괄한 성미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착 가라앉은 무거운 신색의 팽소용이 더는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이 비무대 위로 성큼 뛰어오르며 다음의 상대를 기다리는데, 이윽고 모습을 나타낸 이는 다름 아닌 소림의 사대금강의 수좌인 호법금강 원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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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구룡지로 133장 휴전 (1부 완결) +21 12.08.29 6,061 59 12쪽
132 구룡지로 132장 활인 +4 12.08.24 4,199 51 7쪽
131 구룡지로 131장 분노 +5 12.08.21 3,887 48 9쪽
130 구룡지로 130장 무위 +6 12.08.16 4,066 51 10쪽
129 구룡지로 129장 재견 +4 12.08.14 3,835 48 9쪽
128 구룡지로 128장 혈투 +8 12.08.10 3,901 52 12쪽
127 구룡지로 127장 전환 +6 12.08.07 4,057 51 11쪽
126 구룡지로 126장 마웅 +3 12.07.20 4,110 54 10쪽
125 구룡지로 125장 혼전 +6 12.07.18 3,924 51 9쪽
124 구룡지로 124장 봉공 +5 12.06.29 4,043 52 8쪽
123 구룡지로 123장 멸화 +6 12.06.21 4,089 58 8쪽
122 구룡지로 122장 선봉 +5 12.06.13 4,045 51 8쪽
121 구룡지로 121장 개전 +7 12.05.29 4,243 56 13쪽
120 구룡지로 120장 전야 +5 12.05.16 4,293 56 10쪽
119 구룡지로 119장 배첩 +6 12.05.02 4,255 56 8쪽
118 구룡지로 118장 연환 +3 12.04.30 4,309 58 9쪽
117 구룡지로 117장 비도 +5 12.04.23 4,412 55 10쪽
116 구룡지로 116장 무한 +4 12.04.16 4,453 55 9쪽
115 구룡지로 115장 형주 +5 12.04.13 4,744 58 10쪽
114 구룡지로 114장 석패 +4 12.04.08 4,626 54 11쪽
113 구룡지로 113장 금강 +5 12.04.05 4,732 58 9쪽
» 구룡지로 112장 홍엽 +5 12.03.30 4,806 58 11쪽
111 구룡지로 111장 구궁 +5 12.03.26 4,805 52 12쪽
110 구룡지로 110장 천왕 +3 12.03.22 4,896 56 9쪽
109 구룡지로 109장 정방 +3 12.03.20 4,851 59 12쪽
108 구룡지로 108장 친견 +4 12.03.15 4,872 57 10쪽
107 구룡지로 107장 비무 +3 12.03.12 4,894 58 7쪽
106 구룡지로 106장 소림 +5 12.03.11 4,949 62 10쪽
105 구룡지로 105장 산산 +6 12.03.08 4,958 61 10쪽
104 구룡지로 104장 편제 +5 12.03.01 5,387 5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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