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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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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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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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4.0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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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계 (5)

DUMMY

나는 검을 휘둘렀다. 소렌과의 약속을 위해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검을 수련했다. 그리고 나는 비룡검객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만류귀종이라는 말이 있듯, 비룡검객의 수준이라면 초식을 넘어 검의에 대한 화두를 풀 단초를 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비룡검객은 폰테일 가문에 쏟아 붓지 못한 열정을 내게 쏟아 붓는 것처럼 열과 성의를 다해 가르침을 내려 주었다. 오히려 내가 더 부담스러울 정도였지만 비룡검객은 한시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검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의 가르침을 반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새로운 삶을 살며 전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몸을 얻었지만 결국 나는 도군이다. 영혼 자체는 이 몸의 것이 아닌 천하제일 둔재인 도군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비룡검객은 사문의 절기까지 보여주며 내 성장을 응원했지만 천의결을 동원해 봐도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혼돈 안에 잠든 검의와 내 자신의 노력 뿐이다.


그렇게 벌써 몇 달째 검의를 궁리하고 또 궁리해서 마침내 나는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검의, 쾌(快)를 이끌어냈다. 그 단초가 된 것은 잠룡보였다. 극한의 쾌검을 위해서는 단순히 팔이나 상체의 근력만 단련해서는 안 된다. 보법이 뒤를 받쳐줄 때에야 진정 무엇보다도 빠른 검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스톰브링어의 속도에 비견될 검식인 잠룡출조(潛龍出爪)를 구현해냈다. 본래의 검식은 낙성검봉(落聖劍鋒)이라는 것이었지만 잠룡보를 바탕으로 한 만큼 형태가 달라졌고 이에 따라 감히 검식의 이름을 바꾸었다.

“언제 떠나신다고요?”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는 호흡을 정리하고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떠난다는 사실 자체는 비룡검객 본인에게 들어서 이미 알고 있기에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지만,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들어 나는 굳이 질문을 던졌다.

“떠난다기보다는 돌아가는 겁니다. 서역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얻었고 줄 수 있는 건 거의 다 주었으니까요. 아마 올해가 가기 전에 돌아갈 것 같군요.”

“그렇다면 혹시 성취가 있으셨나요?”

그야말로 한 사람의 무림인 같은 물음이라 나는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내가 누군가의 성취에 자괴감에 빠지는 대신 이런 질문을 던질 날이 있다니. 비룡검객은 미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명의 검객으로 이름을 날리는 그도 이렇게 성장하는데 나도 질 수 없지.

“그런데 도군 당신 덕분에 폰테일 양이 열심인 것 같던데 보셨습니까? 그녀는 정말 무서울 정도로 수련하고 있습니다.”

“뭐, 저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요.”

비룡검객의 우려에 나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내 설득에도 불구하고 소렌은 여전히 하이스쿨에 나오지 않았다. 이에 작정하고 소렌을 끌고 갈 생각을 갖고 저택에 찾아갔던 날, 나는 맹렬히 수련에 빠져든 그녀를 볼 수 있었다. 그 기세가 사뭇 처절해서, 나는 인사로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돌아오고야 말았다.

“그럼 다시 부탁드립니다.”

그 생각을 하니 도무지 쉴 마음이 들지 않는다. 비룡검객은 유려한 모양의 검식을 보여주었고 나는 천의결을 운용하며 그것을 주시했다. 천의결이 도움이 되는 경우는 없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건 수련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며칠이 지났다. 나는 여느 때처럼 교실에 들어가 눈을 감고 크레베스를 기다렸다. 본래는 교실은 이론을 가르치기 위한 시설이지만 A반은 모두 그들만의 무도(武道)를 가지고 있기에 사실 교실이란 건 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다른 반에는 있는데 A반에게 없다는 게 불만인지 굳이 하이스쿨은 A반 교실까지 만들어서 매일 아침 귀찮은 행사를 치르고 있다.

“여러분. 소식을 들은 분도 있고 듣지 못한 분도 있을 겁니다.”

크레베스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면서 우리를 주시한다. 당연히 나는 후자였다. 하지만 정말로 몇몇은 전자에 속했는지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크레베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 달은 매칭이 있는 달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매칭과는 달리, 최초로 엠펠로니아가 참석하게 됩니다. 즉, 이번 매칭은 대륙연합과 엠펠로니아의 대결구도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번에 실력을 겨룬 이들과 힘을 합친다는 건가? 크레베스가 매칭에 대한 몇 가지사항을 설명해주는 동안 교실이 약간 소란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침묵을 지키며 한 사내의 얼굴을 떠올렸다. 칼덴 볼마르그. 그도 우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엠펠로니아와의 대련에 나올 것이다. 혹시 맞붙을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러기는 쉽지 않겠군. 엠펠로니아에서 칼덴에 비견될만한 괴물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또한 이번 친선대련은 대륙 각지의 고위귀족이 참관하게 되며 엠펠로니아의 고위층 역시 참석할 것입니다. 즉, 여러분의 부모님께서 여러분의 활약을 보게 될 텐데 부디 로베른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대련이 되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해 주십시오.”

크레베스는 그 외에 몇 가지 평화협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제부터 개인 수련이 시작될 시간이다. 나는 홀로 수련장으로 향하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배운 바에 따르면 엠펠로니아는 흔히 몬스터라 불리는 것들이 태반인 곳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엠펠로니아에서는 마물. 그러니까 몬스터란 것들이 인간처럼 행동하고 있다. 인간으로 둔갑한 것도 아닌 주제에 몬스터의 특성을 여실히 드러내며 사람 행세를 하는 그것들을 배울 때 처음에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도저히 무림과 같은 세상이라고는 여길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건 미들스쿨을 다닐 때의 얘기고 지금은 그저 무덤덤할 뿐이다. 마물 주제에 검이나 창 같은 병장기를 쓰는데다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기를 이용하는 것들도 있다니 무림인들이 알면 기겁을 하겠군. 하기야 무림에도 인간 못지않은 지성을 가진 마물이 있으니까. 물론 그것들은 적어도 사람 행세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사람이든 아니든 강한 녀석이, 그것도 내 검을 받아낼 정도로 강한 녀석이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환영이다. 엠펠로니아가 얼마나 사악한 곳이든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다.

“저기, 도군 미안하지만 시간을 좀 내줄 수 있을까?”

낯선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그곳에는 예닐곱 명의 소년소녀가 있었다. 다들 눈을 빛내며 조심스럽게 내게 대련을 해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렇군. 저번 매칭 때처럼 연습대련을 해 달라는 말인가? 그런데 이런 일에는 빠지지 않는 에럴드는 어디 간 거지? 에럴드의 행방에 대해 약간의 궁금증이 일기는 했지만 금방 관심이 식어서 별다른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내게 대련을 부탁한 이들과 한번이라도 검을 더 휘두르기로 했다. 대련도 수련의 일환이다. 오랜만의 대련이니 약간 흥분되는 것 같다. 처음으로 나온 이는 흠집투성이 방패를 든 소년이었다.

“렝게프 남작가의 차남. 트리어노스 렝게프다.”

음, 전에 정통으로 차징이라는 걸 박살내 준 소년이다.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도 그렇고 방패술이라는 생소한 것에서 무엇을 더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잔뜩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끝내고 트리어노스는 숨을 들이키며 대번 방패를 치켜세우고는 내게 달려든다. 또 이런 식인가? 설마 그 때 그렇게 지고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조금 실망인걸. 나는 작은 한숨과 함께 검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그때였다.

“크아앗!!”

잔뜩 약이 오른 수소처럼 달려들던 그의 방패와 검이 격돌한다. 말 그대로 격돌이다. 전처럼 틈을 찾거나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제길, 근접한 순간 속도가 아예 달라졌다. 더불어 단단함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 나는 순식간에 수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방패와 검이 재차 맞닿는 순간, 트리어노스가 방패 뒤에서 검을 뽑아들고 방패를 비켜내는 동시에 검을 찔러 넣는다. 방패를 막던 검을 회수하여 재빨리 그 검을 쳐내고 나는 검명비산을 펼쳐내어 그를 멀리 쫓아버린다.

“후우, 역시 순순히 되지는 않는군.”

트리어노스가 씩 웃으며 여유를 부린다. 그 모습에 나는 온몸의 피가 싸늘히 식는 것 같았다. 이게 전력이 아니라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분명 내 아래였다. 내 아래인 것은 물론이고 에럴드도 넘어서지 못한 그저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적어도 내 예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다시 간다. 우아아앗!”

트리어노스는 한순간에 빠르게 움직이는 듯 하더니, 방향을 틀 때만 급격히 돌진하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러나 다시 빨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스톰브링어의 변화를 연상케 하는 예측불어한 움직임이어서 잠시 당황했지만 검영연파로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나는 최후의 수단을 내밀었다. 검영연파를 펼치는 와중에 잠룡보를 통해 빈틈을 파고들어 잠룡출조로 역습을 취한 것이다. 트리어노스의 움직임이 아무리 변칙적이어도 지극한 쾌검에는 도리가 없었다.

“크..... 졌다.”

트리어노스는 턱밑에 가져댄 내 검을 바라보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트리어노스에게 달려들며 그를 칭찬하는 이들을 보며 나는 혼란을 감추려 애썼다. 대체 언제 저렇게 강해진 거지? 천의검문의 검식이 아니었다면 수비만 하다 질 뻔 했잖아. 혹시 트리어노스는 그동안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천재였을까?

두 번째 상대를 물리치고 나서 나는 그런 생각이 철저한 착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나선 이는 이름도 잘 모르는 소녀였는데 나처럼 방패 하나 없이 한손 검을 들고 있었다. 그 소녀가 검명비산을 흘려낼 때 나는 속으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검명비산을 흘려낼지 확신이 들지 않는 판국에 이름도 모르는 소녀가 그걸 해냈다는 데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꺄아~! 아르네 너 최고다.”

“대체 언제 그렇게 강해진 거야?”

동갑내기 소녀가 뛸듯히 기뻐하는 한편 트리어노스가 툴툴대며 칭찬 아닌 칭찬을 던진다. 혹시 저기서 서로를 칭찬하는 이들 모두 비슷한 실력자들인가? 거듭되는 혼란 속에서 나는 검을 더욱 거세게 말아 쥐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세 번째로 나선 소년은 짧은 검 두 자루를 역수로 쥐고 있었다. 그것을 내게 겨누었을 때 나는 약간 마음을 가벼이 먹고야 말았다. 무기의 사정거리는 내가 월등했기에. 그러나 막상 검을 섞어보니 역시 만만치 않았다. 스톰브링어만은 못하지만 그 소년의 검은 충분히 위협적이었고 나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서 그를 이길 수 있었다.

대련이 끝났을 때 그들은 높으신 신분에도 불구하고 내게 예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망연자실 그 자리에 서서 건성으로 인사를 받아주고 검을 쥔 손을 들여다보았다. 손이 떨린다. 너무 무리했기 때문이다. 나는 저들을 상대로 무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 좋아.....”

정말로 좋지 않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오니 땀이 단박에 식어버리는 것 같았다. 입학할 때는 봄이었으니 지금은 한여름이다. 그리고 대련을 하다 보니 시간은 이미 한낮이었지만 나는 전혀 더위를 느낄 수 없었다. 환하게 타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는 이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물고 수련장으로 향했다. 천의결은 쓸데없이 탁월해서 나는 내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슬슬 주인공의 멘탈붕괴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빠른 전개 때문에 충분히 공감될지는 모르겠지만 빠른 마무리를 위해 속도를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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