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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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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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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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뜨랑제 (11)- 탈각 -5

DUMMY

5. 탈각 -5


“제가 판단한 현 상황분석은 여기까지 입니다.”

비연이 말을 마쳤다. 마치 작전계획을 프레젠테이션 하고 난 기분이다.


“고맙군… 사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산이 고개를 끄덕이며 새삼스런 눈으로 비연을 쳐다본다. 산은 이 이성(異性) 동료에게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대단한 눈썰미와 판단력을 가진 여자다.


“대단한데? 그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연구를 했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 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야 하니까요.”


빗소리가 여전히 시끄러운 가운데 으스름한 비트 안에서는 작전회의에 준하는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장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인지 두 사람은 정말 진지하다. 머리와 귀가 거의 닿을 듯이 맞대고 배터리 빠진 휴대전화의 창을 쳐다보며 토론 중이다. 그들은 아주 짧은 동화상을 반복하여 플레이 하면서 자신이 사냥해야 할 대상에 대한 세세한 관찰과 분석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신체 구조와 비례로 봤을 때, 알곤 이놈은 점프력이 대단할 것 같고, 주로 앞발의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냥감을 찍는 공격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지?”


“조류처럼 뒷다리 근육이 크고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앞발은 오로지 사냥을 위한 용도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때문에 위 아래로 찍는 공격뿐 만 아니라 다양한 각도로 휘두를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결정적인 공격은 이빨이기 때문에 앞발을 휘둘러 찢어발기는 방법보다는 앞발로 찍고 사냥감을 고정시킨 후 입으로 씹는 공격패턴이 될 것 같아요. .”


“아무래도 하체의 근육이 발달한 만큼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둔하겠지?”

“그럴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무게 중심이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웬만한 타격으로는 끄떡도 안 할 겁니다.”

“총알을 뒷다리에 한방 먹이면 기동력이 떨어질까?”

“시도는 해 봐야겠죠. 껍질가죽의 강도가 문제가 될 텐데, 일단 근육 하나라도 끊어 놓으면 점프력이나 기동력은 반드시 떨어질 테니…”


“그래… 어쨌든 총알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결국 총알 떨어지면 원시적인 무기로 물리적인 육박전을 해야 한다는 이야긴데… 아.. 씁…. 사람이라면 몰라도 저런 것들은 자신없는데…”


“진짜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와서 힘이 세졌지요? 저는 이 생존게임과 어떤 관련이 있을 같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우스운 가정이지만, 이 세계에서 우리 상식은 안 통하니까 그냥 편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게임을 진행하는 자라면 절대로 쉽게 끝나게 만들지는 않을 겁니다. 강대위님 온라인 게임 해 보셨나요?”


“응? 서울 사령부 근무할 때 BOQ에서 하나 해 봤지. 미국 게임인데 무척 재미있더군. 한참 푹 빠져서 그 게임만 했어. 시간 보내는 데에는 최고였지. 그렇지만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자대에 돌아와선 끊었지.”


“그런 정도로 해봤으면 이야기가 잘 통하겠네요.”


“그러면 우리가 그런 게임 속에 있다는 건가?” 산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비연을 쳐다본다. 그 역시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고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 것 같아요. 다만 플레이어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키우는 ‘무엇’일 가능성에 더 혐의가 갑니다. 우리가 선택한 게임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소환(召還)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탈출이 거의 불가능한 장소로 데려온 방식이나, 메시징하는 방법, 그리고 마치 어떤 미션을 주고 성장시키려는 의도처럼 보여지거든요? 그렇다면…”


“ 그렇다면 우리 능력이 생긴 것이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이겠군? 허- 이것참 김중위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대체 뭐지? 영화 속의 복제품 이라는 말인가? 본체는 원래 세계에 살고 있고? ”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이해 안 되는 것도 없는 세상이니 그럴 가능성도 있겠죠. 문제는 우리가 복제된 존재이든 아니든, 이곳 게임의 룰이 제 추측처럼 간다면, 우리의 능력이 점점 키워질 것 같다는 거죠. 앞으로 우리가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고, 앞으로 선택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물론 황당한 상상입니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내일 게임에서 살아남으면 좀더 확실해 질 겁니다. ”


“아냐… 지금 확인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산이 신중하게 말했다.

“예?’

“실은…”


산은 아까 낮에 시도했었던 힘과 고통에 대해 짤막하고 건조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 한계까지 힘을 쓰면 몸이 저절로 반응하면서 훨씬 큰 힘이 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지... 만약 나만 그렇다면 모르겠지만, 너까지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면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해. 한번 시도해 보도록 했으면 좋겠는데…”


산은 비연의 눈을 쳐다보며 제안했다. 비록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고 느끼고 있다. 보다 생존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해야 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우선 이 막대기를 부러뜨려봐.”


산이 제법 두꺼운 막대기를 던져주었다. 팔뚝 굵기만한 것으로 평소라면 힘으로 부러뜨리는 것은 어지간한 남자라도 어렵다.


비연이 양끝을 잡고 힘을 주었다.

“흣-“

힘을 주던 비연이 몸을 약간 떨었다.


“어떤 느낌이지? 혹시 온몸이 저릿한 기분이 들었나? ”

“예… 그런 것 같아요” 비연이 이를 악물고 이야기 한다.


‘투-툭-‘


“헤- 진짜 부러졌네…”

비연이 가운데부터 부서져 버린 막대기를 들고는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일단- 신체적인 변화는 역시 있었던 것 같다. 증상도 같고… 다시 힘을 더 쓸 수 있겠나? 이번에는 진짜 있는 힘을 다 쓴다고 생각해봐.”


산이 이번에는 길쭉한 돌을 찾아 건네주었다. 무릎 넓이 만한 길이에 높이가 한뼘이 넘는 ‘바위’다. 그리고 그 돌을 바닥에 고인 채 양쪽에서 누르게 했다.


“있는 힘을 다 해봐. 내 경험으로는 어느 순간 엄청난 고통이 찾아올 거야. 일단 그 상태까지 가 보자구.”


비연이 힘을 가했다. 힘을 줄수록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목과 이마에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올 정도로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크-윽-“


비연 역시 몸을 지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그 고통에 자신도 신음을 삼켰다.


“됐어- 그… ” 산이 안쓰러운 얼굴로 말을 건네려다 입을 다물었다.


비연은 여전히 필사적으로 견디고 있었다. 입을 얼마나 앙다물었는지 입술 옆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양쪽 팔뚝이 부들부들 떨리며 힘을 보내고 있다.


‘따-딱-퍽-‘

드디어 크나큰 돌이 가운데부터 갈라지며 양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우-욱-“

비연은 풀썩 쓰러져 발발 떨고 있다. 비트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엎드려 고통을 참고 있다.


“정말 길게 느껴지겠지만, 실제로는 길지 않더구나. 앞으로 2분 정도 더 갈거야…” 산이 씁쓸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이 소리도 비연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 * *


캄캄한 비트 속에서 잠을 청하며 침낭 속에 누웠지만, 두 사람 모두 잠이 오지 않았다. 혼자 생각할 기회를 가지다 보니, 지독하게 비현실적인 느낌이 새삼 뇌리를 뒤 흔들고 있다.


‘내 몸이지만 내가 모르는 몸이라… 대체 나는 누구지… 내 이름이 강산이라는 것 말고 나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내 정신도 달라진 것일까? 나는 여전히 강산인가?’


산은 이런 팔자 좋은 철학적 고찰... 을 하다가, 금방 내일 있을 사냥에 대한 대책으로 생각을 넘겼다. 이것 저것 전투방법도 고민하고, 상황 별 대처방법에 대한 현실적 고민이 더욱 유용하리라.


사실은 그것보다 갑자기 두고 온 소중한 사람들 생각이 떠 오르는 두려움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저 장기 훈련 나와서 늦게라도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중이니…


비연 역시 상념에 잠겨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두 번째 힘쓰는 단계에서 몸이 무척 아팠지만, 회복속도도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비연도 산과 같은 결론에 이르고 있었다.


‘걱정해봐야 무슨 소용이람… 내가 누구이던 간에, 나는 비연으로 생각하고 있고, 비연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 고귀한 존재감은 내가 어디에 있든, 어느 시간에 있든 무너질 수 없는 ‘하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 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하다. 중복이다. 살아있으니, 앞으로도 살아남아야 할 것… 그나저나 내일 시험을 잘 치러야 될 텐데….’


한참을 뒤척이던 비연이 내린 결론이다.


산은 비연이 누워있는 칸막이 너머로 힐끗 눈길을 돌렸다.


‘볼수록 괜찮은 녀석이야. 내가 장가만 안 갔어도 어찌 작업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지… 그래 김중위! 우리 끝까지 살아남아 함께 돌아가자고!’


비연 역시 산 쪽을 쳐다보고 있다.


‘생긴 것보다는 훨씬 섬세하고도 사려가 깊은 사람이야. 다행이지 뭐야… 조금 여유가 생기면 개인적으로도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


두 남녀는 칸막이를 사이로 이계의 암흑 속에서 이렇게 두 번째 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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