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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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작품등록일 :
2010.10.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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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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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뜨랑제 (17)- 탈출 -1

DUMMY

1. 탈출 -1



발신자 : 닐(Nil)

수신자 : 05-원, 김비연

성 적 : 알곤 1마리 사살

알핀 12 마리 사살

호크 1마리 생포

보 상 : 가죽, 이빨, 기름, 고기, 언어학습

보너스 : 넥타 1병, 소금 100 그램, 정비휴식 2일

다음 임무 : 48시간 후



“발신자 : 널 (Nul)

수신자 : 04-원, 강산

성 적: 알곤 3마리 사살

알핀 16마리 사살

보 상 : 가죽, 이빨, 기름, 고기

보너스 : 넥타 1병, 소금 200 그램, 설탕 200 그램, 정비휴식 2일

다음임무 : 48 시간 후



* * *


“일단 휴식하라는 이야기가 제일 반갑군. 소금도 준다니 고맙기도 하셔라.”

산이 벽에 등을 기댄 채 중얼거렸다.


“만약에…”


비연이 압박붕대로 둘둘 말은 손바닥을 주무르며 말을 건넨다. 아직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어 쓰리고도 아프다. 말을 하는 동안 그녀의 눈길은 차분하게 바닥을 향하고 있다.


“강대위님이 이런 게임을 진행하는 게이머라면 우리같이 소환된 존재에게 무엇을 원할까요?”

“글쎄… 아마도 강한 전투력이 아닐까?” 산이 간단하게 대꾸했다.

“나중에 본격적인 전투에 동원된다는 걸까요? 검투사와 같은?”

“아직까지는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큰 것 같은데? 이상하게 강해진 몸도 그렇고... 놈은 초장부터 아주 치명적인 놈들을 풀어 놓았어. 거의 목숨을 내놓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죽을 정도로… 게다가 보상과 징벌체계를 의도적으로 만든 것으로 보아, 어디론가 몰아간다는 것은 확실하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연이 고개를 들어 산을 쳐다보았다.


“어차피 선택해야겠지. 둘 중 하나 아니겠어? 이대로 어떤 놈의 의도대로 끌려가며 노예처럼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우리 자신의 판단으로 탈출하고 다음을 도모할 것이냐. 자네는 어떤 쪽이지?”


산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땅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이제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그것은 이 곳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정의(定義: Define)하는 것이다. 만약 정의가 안 되면? 정말 끔직한 운명 앞에서 몇 가지 선택 중 하나를 실행해야 할 것이다.


산은 ‘노예처럼 사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 는 말이 참으로 소설 같다고 느낀다. 지금 직접 당해보니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목숨을 걸고 탈출한다? 상대는 부처님 손바닥처럼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무슨 수단을 사용하는지 몰라도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막강한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 존재가 자신을 죽이려면 정말 파리 하나 잡는 것만큼 쉬울 것이다.

놈은 배터리 없는 휴대폰마저 원격으로 가동시키는 존재다. 그렇다면 다음 선택은? 대항하다가 장렬하게 죽는다? 왜? 무엇 때문에? 누구에게? 그냥 노예처럼 살다가 운 나쁘면 막장 인생으로 그냥 접힌다? 참 기분이 더럽고도 비참하다… 자살한다? 이건 뭐… 저 놈들이 그렇게 놔둘까?


산은 피식 웃어버렸다. ‘내 인생 어쩌다가 이렇게 꼬였나?’

그래도 산은 가슴이 답답하다고 느낀다. 비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 않나요? 중대장님이나 저나 군인이고, 군인이 있는 곳은 어디가 되었든 전쟁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이제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지키는 군인이 되었지만.”


비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던 산의 눈이 반짝하며 빛났다. 그의 눈길이 비연에게 돌아가며 멈췄다. 입가가 아래 위로 실룩이더니 크게 웃고 말았다.


“파하하- 이것 참… 정말 명쾌하군. 아주 통쾌해. 그래, 그거야! 죽어도 전사(戰死)라면 억울하지는 않겠군. 하루하루가 전투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지. 정말 마음에 드는 지침이다. 그러면, 오늘 내일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 “


“일단, 정비부터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비연은 잠깐 말을 멈추고 산을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산은 그녀의 눈동자가 자꾸 아래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산은 시선의 방향만을 비연에게 고정시킨 채 눈동자만을 아래로 내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비연은 얼굴을 붉힌 채 다리를 쪼그리고 있다. 아래 허벅지에서 뒤쪽 엉덩이 사이가 군복과 함께 상처가 길게 찢겨 나가 있었다. 거울 없이는 쳐다볼 수 없는 위치다. 그렇다고 벗기에도 적당한 상황이 아니라서 지혈 만을 해둔 채 놔두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여기 상처를 정리하고 약을 좀 발라주시겠습니까?’


부탁하는 비연의 눈 속에는 부끄러움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곧이어 자신의 허벅지를 사내에게 맡긴 채 옆으로 누웠다. 상처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대단히 선정적이다. 산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다가간다. 그렇지만 그 태도에는 머뭇거림이 없다.


“이것-“


비연이 소독약이 묻은 휴지와 함께 거즈를 함께 건넸다. 산은 일단 상처부터 살폈다. 거즈를 받아 들고 상처를 살폈다. 비연이 빨간 소독약과 연고를 건넸다. 대강 휴지를 뭉쳐 지혈하고 그 위에 반창고를 붙여 피가 말라있는 상태다. 그대로 떼면 아마도 살점이 같이 떨어지면서 다시 피가 터질 것이다. 그렇지만 2차 감염이 되기 전에 끝을 봐야 한다.

산은 고개를 갸웃한다. 뭔가 대단히 불편하다. 상처를 제대로 소독하고 치료하기에는 군복이 ‘매우’ 걸리적거리고 있다. 산은 비연의 자연스런 행동에서 뜻 모를 위화감을 느낀다.

‘여자라서 옷을 벗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이 친구가?’


산은 고개를 이리저리 꺾었다. 어색함이 어느정도 정리 된다. 일단은 찢어진 군복을 들쳐가며 허벅지 상처를 살폈다. 피를 닦을 때마다 연한 색의 여자 속옷 아래로 느껴지는 물렁한 엉덩이 쪽 살과 미끈하게 연결되는 하얀 허벅지가 눈에 들어온다. 상처에 닿을 때 마다 비연은 고통을 참느라 움찔거리고 있다. 그녀는 잔뜩 웅크린 채 손을 뒤로 젖혀 산의 허벅지를 잡고 있었다. 산은 잠깐 곤혹스럽다고 느꼈다. 그러나 거즈를 붙이며 산의 눈은 더욱 반짝이고 있다. 그리고 깊게 가라앉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허벅지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비트 속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그들의 숨소리만 들릴 뿐.

소독과 치료를 끝내고 비연이 건네 준 마지막 거즈까지 섬세하게 붙인 후 산은 비연에게 치료를 끝냈음을 알렸다. 그리고 비연의 엉덩이를 가볍게 툭 치고 일어났다. 그는 비트의 출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이미 땅거미가 깔리며 어둑해진 사위가 밤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산은 입구에서 담배를 꺼내 문 다음 불을 붙였다. 그의 눈길은 비연을 향해있다. 이미 일어나 앉아 있는 비연 역시 그를 쳐다보고 있다. 비연은 그의 눈가가 약간 번질거리고 있다고 느꼈다. 사내는 다시 돌아서 밖으로 나가고 있다.


“그래… 그래 어떻게든 살아남자고. 우리 둘은 끝까지 같이 가는 거야. 그리고….” 사내가 담배를 깊게 들이마신 후 천천히 내쉬며 뒷말을 붙였다.


“그대가 내곁에 있어서 고맙구나. 진심이다!”

그 한마디를 뒤로 남기며 사내는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는 장엄하게 태양이 떨어지고 있었다.


“저도요…”

사내는 나직한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느낀다. 사내의 물기 젖은 눈가에 주름이 살짝 잡혔다.



* * *


“일단은 일 처리가 확실해서 좋군.”


산이 중얼거렸다. 비연은 말없이 사내 옆에 서서 배달된 ‘물건’들을 응시하고 있다. 그들의 비트 앞에는 밤새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조악한 포대자루 몇 가지와 항아리, 자주색 액체가 들어있는 소주병 만한 유리병, 그리고 무두질되지 않은 가죽 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목숨 걸고 노동해서 벌은 것들이니 고맙게 쓰도록 하지요.”

비연이 가볍게 웃으며 그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산 역시 묵묵한 표정으로 비연을 도와 정리하고 있다.


산은 아침나절 동안 땔감을 모아 불을 피우고 있다. 비연은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비연이 당황한 듯 짤막한 소리를 질렀다. 진창길에 다리가 엉켜 미끄러진 모습이다.


“이런- 이 사람아! 조심해야지. 응? 아까운 소금을 죄다 흙탕물에 쏟았네?”

“이거… 이 대로는 못 먹겠는데요?”

비연이 미안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귀한 소금은 진흙탕과 섞여 이미 녹아 들어가고 있다.


“사람 참 덤벙대기는… 아! 거기 앉아서 뭐하나! 진흙째 긁어서라도 다시 모아야지. 다시 증류시켜라도 조금이라도 건져야 되지 않겠어? 젠장! 왜 하필 이런 실수를 하나! 한 두살 먹은 애새끼도 아니고.”


산은 화를 내며 황급하게 비트로 달려가 야전삽을 가져왔다. 땅바닥의 흙과 물을 대강 긁어 반합에 담은 후 비연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사고를 친 비연의 해결을 원하고 있었다. 원망스러운 감정을 가득 담아…


그러나 그들의 입가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의미심장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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