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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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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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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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뜨랑제 (28)- 주유 -3

DUMMY

3. 주유(周遊) -3


그들은 소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곧 숲이 끝나고 개활지가 나타났다. 개활지라기 보다는 대규모 벌목장에 가까운 지역이다. 곳곳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잘려있고, 밑동만 남은 나무들이 광활한 언덕에 걸쳐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그 밑에는 완만하게 경사진 지형을 따라 제법 깊은 여울이 흐르고 있다. 물은 왼쪽 산기슭 절벽을 돌아가며 굽이쳐 흐른다.


오른쪽에는 한길이 넘는 빽빽한 갈대와 들풀로 뒤덮인 장대한 들판이 그들 앞에 펼쳐지고 있다. 곳곳에 습지가 형성되어있었고, 뻑뻑할 정도로 짙은 감청색 물이 그 사이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물이 갇힌 곳에는 늪이 형성되어 있고, 작은 길은 그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 아마 나무를 벌목해서 이 물길로 나르는 모양인데요?”

“ 그럴지도… 지게나 수레로 나른다고는 생각할 수 없겠어.”

“ 이 정도면 대규모 인력이 동원되어 조직적인 벌목을 하고 있다고 봐야겠는데요.”

“호크가 이야기했던 귀족이라는 자들의 영지일 가능성이 높겠군. 어쨌든 상관없잖아? 이제 가 보자구. ”


산이 먼저 달렸다. 그 발걸음은 매우 가볍다.

비연이 그 뒤를 따른다. 그 걸음은 톡톡 튀어가듯 경쾌하다.


둘은 무거운 군장에 걸맞지 않게도 매우 경쾌하게 달리고 있다. 그냥 달린다기 보다는 툭툭 튀어 나간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평균 3미터 높이를 가볍게 도약한다. 한번 도약에 5~6미터 이상을 쭉쭉 뻗어가며 유쾌하게 날아간다는 느낌이다. 큰 바위는 밟고 넘는다. 키 높이를 넘어가는 풀은 훌쩍 건너뛰고, 굵은 나뭇가지는 슬쩍 즈려 밟고 활처럼 튕기며 거침없이 쑥쑥 나아간다.


그렇게 여울과 계곡길을 따라 신나게 달렸다.

그들이 달리기를 멈췄다. 시계를 본다. 약 20분을 달렸다.


“드디어….”

“집이 보이는 군요…”

“집 치고는 많이 크다.”


그들의 눈에는 아득히 먼 곳에 키 작은 숲으로 둘러싸인 대 저택이 보였다. 아마도 성(城)이라고 부르는 영역 안에 건설된 집일 것이다. 여울은 그 옆의 산과 성벽을 끼고 흐르고 있었다. 일부 지류는 성안으로 들어가며 식수원이 되고 있을 것이다.


“이건… 장엄한 요새 같은 게… 마치 로마네스크 양식을 보는 것 같군요. 벽은 석축으로 쌓았고, 창은 작고 좁게 설계한 것이 아주 전투적인 느낌이 나는데요.”

“일단 제일 높은 곳으로 가자. 개략적인 사전 정찰은 해 봐야겠지.”

“옙!”


산과 비연은 주변의 지형 중 가장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지금 성 안쪽을 관측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산 정상 근처의 바위 절벽 위에 서서 성과 도시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그들의 위치는 적어도 3Km이상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들이라면 그들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유별한 감각은 성 안쪽과 그 너머에 있는 작은 도시의 모양을 세밀하게 볼 수 있도록 확장되어 있었다.


“성은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되어 있군. 내성은 아마도 영주 정도되는 자가 머무는 곳일 것이고…”

“외성의 전체 형태는 정방형이라고 봐야겠네요. 좌우 축의 거리는 대강 7백에서 8백미터 정도 됩니다. 대문은 건너편에 두 개가 있고, 지금은 모두 열려 있군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것으로 보아 좌측에는 시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구획이 잘 되어있는데요. 작은 도시라고 해도 되겠어요. 군대도 있는 것 같고… 이쪽에서 반대편은 광대한 농경지인 것 같네요. ”


그들은 느긋하게 자리를 깔고 앉아서 상세한 동정을 살피고 있다. 그들의 직업적 특성으로 봐서 이 정보처리 계통의 작업은 오래 걸릴 것이다. 최소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의 정밀 관측과 정찰을 실시하게 될 것이며, 밤에는 야간 정찰과 침투까지 감행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결코 움직이지 않는다.


새카만 밤중이다.

그들이 움직이고 있다. 야간 침투작전이다. 전혀 불빛이 없는 암흑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다. 지금 그들의 차림은 대검 하나만 허리에 찬 단촐한 차림이다. 20미터 가량의 해자를 훌쩍 뛰어넘고, 곧이어 거친 석재로 된 성벽을 타고 툭툭 치고 올라가는 동작은 매우 자연스럽고도 빠르다. 이들에게 있어 벽 타기란 일년 동안 그 빌어먹을 산속 광장에서 신물 나도록 오르락내리락 했던 나무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었다.


두 사람은 첫날 성의 외성과 내성 사이의 공간을 중심으로 돌았다. 경비무사들로 보이는 자들이 서 있거나 순찰을 돌고 있었지만, 야간의 어둠 속에서 그들의 동작은 여유가 있었다. 워낙 빠르고도 은밀했기 때문에 어떤 무사들도 그들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침입자가 가져야 하는 조급함마저 없었다.


‘전등이 없으니 확실히 침투가 쉽군.’

‘이런 밀폐된 공간을 뚫고 야간에 침입하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으니, 경계도 형식적일 수 밖에 없지요. 그저 치안 유지만 하는 정도 일겁니다.’


첫날 그들은 약 세시간 정도 성안을 돌아다녔다. 일단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소는 모두 들렀다. 그리고 몇 가지 필요하거나 조사할 필요가 있는 물건들을 이것저것 챙겼다(?). 물론 주인에게 돌려줄 생각은 없었다.


사흘이 지났다.

그들은 여전히 서두르지 않는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이동하면서 바뀐 위치에서 끊임없이 동정을 살피고 있다. 매일 밤마다 성의 안팎과 영지로 들어오는 진입로까지 구석구석 뒤졌다. 그들에게 있어 이 도시의 복잡도는 매우 단순한 수준이다. 한국의 도시에 비하면 거의 읍면 사무소 소재지 수준이다. 건물의 전반적인 배치를 포함하여 지물과 지형의 숙지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 두 사람은 결코 자신들의 목표를 잊지 않는다. 만약 이들의 목표가 단순한 성의 파괴나 점령이라면 이 정도로 면밀하게 준비하지 않을 것이다. 전투측면에서의 강약점만 파악하면 그뿐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들의 목표는 다르다. 이곳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량은 대단히 많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과 접촉하기 전에 사전에 알아야만 하는 것들은 반드시 있다.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들이 저들 속에 당장 들어갔을 때의 그들의 충격과 반응을 전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단 사람과 만나고 섞이는 순간부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갈 것이다. 확실히 그것은 매우 눈에 띄는 일이다. 그 상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가장 좋은 것은, 저 사람들이 자신들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 상태로 자연스럽게 섞이는 것이다.


그들은 끈질기게 ‘판’을 읽고 있다. 그것은 이 생소한 공간의 논리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훗날 비연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정보수집의 기본은 반복되는 것과 반복되지 않는 것을 발라내는 것입니다. 곧 그 주기(周期:cycle)와 패턴(pattern)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주기’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반복되는 것이고, ‘패턴’이란 공간의 모양에서 반복되는 것입니다. 매사에는 반드시 주기와 패턴이 섞여있습니다. 큰 주기와 작은 주기, 작은 패턴과 큰 패턴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상황은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산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발견해야 했던 것은 ‘규칙’이다. 대체 어떤 규칙이 제정되어 있고, 그 규칙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규칙에 입각하여 사안을 판단한다. 그 상황은 무거운 것인가? 가벼운 것인 가? 급하게 해야 하는 것인가 완(緩)하게 가야 하는 것인가? 그 사안을 예측할 때 최선의 경우는 무엇이고 최악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또한 그 일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은 큰가 혹은 작은가?’


‘그것들은 나는 대개 10글자로 짚어가며 판단하곤 한다. 그 10 글자란 ‘대소완급상하좌우전후’다. 모든 상황은 이 열 개의 글자들 가운데에 있다. 이 판단방법은 매우 유익하고도 익숙하다. 나는 모든 사안에 대해 본능처럼 이 잣대를 떠올린다. 이 습관 때문에 나는 전혀 생소한 상황에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곳을 정찰한지 열흘째 되는 날이다. 이제 완연한 봄기운이 무르익고 있었다. 태양이 이미 중천으로 떠오르고 있는 점심 나절이다. 여전히 도시를 관측하던 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비연 역시 눈을 반짝이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것… 생각보다 상황이 괜찮아지는데?”

“그런 것 같군요. 오늘은 뭔가 시도할 수 있겠는데요.”

“별의 별 무리들이 다 모여드는 군.”

“어제 경비무사들이 이야기하던 그 ‘행사’ 때문이겠죠? 무슨 사냥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저 정도 다양성이라면 우리가 특이하다고는 여기지 않겠어. 이제 가자!”


그들은 군장을 챙겼다. 이미 복장은 군복에서 다른 옷으로 바꾸어 입었다. 그 동안 빌린 것들과 잡았던 동물의 내피를 조합하여 완전히 개조한 옷이다. 총신은 가죽으로 둘둘 말아 군장 어깨위로 올렸고, 군용 대검만을 대검집에 넣어 허리띠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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