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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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jna
작품등록일 :
2017.09.0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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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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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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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즘 앙상블(2)

DUMMY

앞으로 해야 할 일이 결정되었으니 세 사람은 각자 해야 할 일을 했다.

먼저 시바는 작은북을 건네받아 연습을 시작했고 레온은 지나가 악보를 현대식으로 해석할 때까지 시바에게 기본적인 가르침을 주면서 자신이 담당하게 된 플루트를 연습했다. 그리고 지나는 연습이 가장 필요한 시바의 것부터 해석했고 자신의 것은 마지막에 했다.

첫 번째 악보의 해석이 끝난 것은 약 3시간 반이 지난 후였다. 그것으로 시바의 연습은 박차를 가했고 두 번째 악보가 완성되기 전에는 그럴싸한 연주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유령들이 출입구를 지나 예배당 안쪽으로 들어왔다.


“레온! 유령들이!”


유령들의 동작은 벽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땅굴을 파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는 허공에 곡괭이질을 하는 것처럼 보였고 삽질하는 것도 보였다.


“지나, 시간이 없는 것 같으니 서둘러줘.”


“이미 서두르고 있어요.”


두 번째 악보의 해석은 4시간이 걸렸고 이제는 레온도 본격적으로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창시절에 악기를 다룬 경험이 있었던 만큼 습득도 빨랐는데 레온과 시바가 함께 연주하였더니 유령들이 고통에 신음하며 동작을 멈췄다.


“오!? 이거 효과가 있는 것 같네요?”


유령에게 통한다는 것이 입증되자 두 사람은 연주에 집중했다. 하지만 연주가 계속될수록 효과가 떨어지는 것인지 유령들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레온도 숨이 차서 지쳐버렸다.


“헉헉, 잠깐 숨 좀 돌리죠.”


“폐활량이 나쁜 걸 보면 단련이 부족하군. 힘들면 바꿔줄까?”


“지금 그거 은근슬쩍 간접키스하려는 속셈은 아니죠?”


“무, 무슨!? 날 뭐로 보고!!”

“농담이에요. 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뭐냐?”


“아까 유령을 깨운 게 우리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때 왜 그렇게 생각했죠?”


그 질문에 시바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지금 말해도 되는지, 말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지나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감이 좋은 편이라서 말이죠. 당신은 분명 무언가 숨기는 게 있고 그건 매우 중요한 단서일지도 몰라요. 끝까지 숨기겠다면 저야 어쩔 수 없지만 굳이 그러시겠다면 여기를 빠져나간 후에는 서로 갈 길을 가게 되겠죠.”


“······충고받았다. 거물을 건드렸으니, 눈에 띄지 말라고. 하지만 그게 지금 상황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누가 그런 소리를?”


“정체는 나도 확신이 없다. 지금 말해줄 수 있는 건 붉은 머리가 불꽃처럼 휘날리는 여자였다. 그녀가 마도골렘을 쓰러뜨리고는 내게 침묵을 요구했다.”


“그 여성이 사황일 가능성은요?”


“모르겠다. 사황 중에 여자는 네 사부뿐이다. 내가 말한 특징과 네가 아는 것이 일치한다면 가능성은 있겠지.”


“사부는 금발이었으니 아닌 것 같아요. 말해줘서 고마워요.”


“원하는 답은 얻었나?”


“그랬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요. 하지만 마도골렘을 쓰러뜨린 일이 거물을 건드린 것이라고 하면 그 거물은 슈레스타의 주인일지도 모르겠네요.”


상황이 더 복잡했음을 알게 된 레온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지나가 모든 악보를 해석한 것은 이미 아침이 찾아온 뒤였다. 해가 떴음에도 유령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다가왔으며 그들을 지켜주는 결계의 범위는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까지의 접근 속도를 보면 앞으로 한두 시간 정도밖에 시간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지나는 번역작업으로 피곤한 상태였지만 쉴 틈 없이 하프를 연습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음계만 파악한 후 바로 실전에 들어가야 했지만 의외로 세 사람의 합주는 나쁘지 않았다. 물론 빈번한 실수 덕분에 리듬, 멜로디, 하모니가 전부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이 곡이 얼마나 감미로운지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실력 있는 연주가가 연주했다면 분명 감동에 눈물을 멈추지 못했으리라.

연주가 계속될수록 그들의 실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음악에 빠져들수록 모든 정신이 악기에 집중되었고 어느새 눈을 감고 악보도 보지 않은 채 연주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그들의 연주는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세 사람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째서인지 자기들은 바닥에 쓰러진 상태였고 주변에 유령들은 모두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상당한 피로감과 허기를 느꼈다.

가장 먼저 눈을 뜬 것은 시바였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현재 상황을 살폈고 주변에 유령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레온과 지나를 깨웠다.


“시바? 으윽, 어떻게 된 거지?”


“유령들은 모두 사라졌다. 이 틈에 서둘러 나가자.”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오니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밝았다.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 보니 시간은 아직 오전이었다. 몸은 지치고 몸살기운을 느꼈으며 배가 고프고 졸리기까지 했지만 계속 머물렀다가는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므로 서둘러 엔드라를 빠져나갔다.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요. 우리 얼마나 오랫동안 연주한 걸까요?”


버스를 타러 이동하는 도중 지나가 꺼낸 말에 시바와 레온도 그녀의 손을 살폈는데 하프 현에 베인 것으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다.


“잠깐 치료할까?”


엔드라도 빠져나왔고 주변에 위험해 보이는 것은 없으니 잠시 휴식할 겸 큐브에서 구급상자를 꺼내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그리고 빵과 우유를 꺼내 시바에게 건네준 후 손이 불편한 지나에게는 직접 먹여주려 했다.


“부끄럽게 뭐에요? 스스로 할 수 있어요.”


“아, 미안. 사부는 종종 해주던 일이라 무심코.”


옛 추억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레온의 얼굴에 쓴웃음이 지나갔다. 그 표정을 본 지나는 세리아의 이야기를 물으려다가 시바가 먼저 말을 거는 바람에 말을 삼켰다.


“따뜻하군. 큐브에는 보온기능도 있었나?”


“부패방지용 시간동결이라고 해두죠. 실제 시간을 멈추는 건 아니고 큐브를 닫았을 때 내부에 모든 자연현상이 멈춘다고 해요.”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엄청난 기술인 것 같군.”


“고대 기술력은 세계제일이라고 하니까요. 이런 경이로운 기술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미지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지 않나요?”


“흠, 고대 문명을 좋아하나?”


“좋아하죠. 그래서 모험가보다는 고고학자이길 원하고요.”


쑥스러워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하는 레온의 모습에 시바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고 그런 자신의 상태에 당혹스러운 나머지 급히 화제를 돌렸다.


“어험, 너는 예배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나냐? 나는 셋이 연습하던 기억까지는 있는데 도중에 기억이 끊겨버려서···.”


“저도 연습하던 것까지 기억하는데 어느 순간 의식을 잃은 것 같아요. 아마도 악기의 힘이었겠죠.”


“이래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은 맘에 들지 않아. 검은 총기처럼 오작동을 일으키지도 않으니 얼마나 단순하고 좋아?”


“하여간 이 검술바보가.”


충분하지는 않은 휴식을 마치고 세 사람은 버스시간에 늦지 않도록 다시 출발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버스를 탈 수 있었는데 버스기사의 말에 의하면 레온일행은 엔드라에서 2박 3일을 보냈다고 한다. 몸이 피로해진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마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피곤한 몸을 회복시키고 싶었지만 정류장에는 모험가 조합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던 탓에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지나 에리슈 님, 브라흐마 시바 님, 레온 님. 조합장으로부터의 호출입니다.”


파견 나온 직원은 소환장을 보여주며 자기들을 따라올 것을 요구했다. 조합장이 지명해서 부를 정도면 보통 일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인데 위기에서 빠져나오고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소환요청까지 발생하니 레온은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조합장이 무슨 일로 저희를?”


“얼핏 듣기로는 여러분을 만나고 싶어 하는 손님이 있다고 합니다. 굉장히 높으신 분 같은데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조합에 소속된 지나와 시바는 소환에 거부할 명분이 없지만 레온은 조합 소속의 모험가가 아니므로 강제성이 없다. 하지만 앞으로도 던전에 계속 출입하려면 조합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서는 곤란하므로 거부하기가 어려웠다.


“좀 쉬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나?”


세 사람은 조합원의 안내에 따라 그들이 타고 온 차에 탑승했다. 이후 상당히 먼 거리를 이동했으므로 차에서 잠들 시간은 충분했다. 그래서 시바와 지나는 어느 정도 쉴 수 있었지만 경계심이 가득했던 레온은 거의 잠들지 못했다. 레온이 잠들 수 있었던 건 시바가 잠에서 깨어난 후였다. 시바는 레온이 왜 잠들지 않았는지 눈치채고는 그가 쉴 수 있게끔 대신 깨어있기로 했다.

레온일행은 공항을 거쳐 전세기를 타고 모험가 조합 본부가 있는 룬드브리네로 향했다. 이동 중에 극진한 대접도 받다 보니 대체 누구를 만나게 되는 건지 궁금함이 커졌는데 막상 모험가 조합 본부에 도착해보니 의외로 반가운 인물과 만날 수 있었다.

조합장의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곳에는 조합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과 금발벽안의 젊은 여성이었는데 레온은 그녀를 보자마자 입이 벌어지며 외쳤다.


“누나!?”


레온일행을 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세리아의 딸로 알려진 칸나. 레온은 카나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이야, 레오나. 대충 10년 만인가? 그동안···”


칸나가 반가움에 인사를 하는 도중 레온은 급히 칸나에게 달려들어 입을 막았다.


“쉿! 그 이름 금지라니까 왜 또 부르고 그래?”


화를 내는 레온을 보며 눈치껏 상황을 살핀 칸나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레온의 손을 치웠다.


“미안. 동료들이라고 들어서 이미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이었구나?”


지나와 시바는 어떨지 몰라도 조합장까지 그 이름을 들었으니, 레온은 불안함에 조합장의 눈치 살폈다. 그리고 조합장은 희미한 미소를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를 비켜 드릴 테니 마음껏 대화를 나누시지요.”


레온은 조합장이 애써 배려해 주는 것에 감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설명을 기다리는 지나와 시바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생각했다.


“자, 일단 앉아봐. 오늘 너희를 부른 이유를 설명할 테니.”


고민이 깊어진 레온은 무시한 채 칸나의 주도하에 대화가 진행되었다.


“얼마 전에 너희가 나온 신문기사를 봤어. 제법 활동하고 있는 것 같고 슬슬 때가 됐다고 생각해서 의뢰를 하나 하려고 불렀어.”


“지명의뢰입니까?”


“응. 너희는 앞으로 어느 고대 유물을 찾아줬으면 해.”


칸나는 허공에서 서류를 꺼내 보이며 유물의 정보를 공유했다. 거기에는 유물의 전승과 마지막 목격 정보가 정리되어 있었는데 레온은 이것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거 진짜야?”


“예전부터 찾던 물건이야. 그런데 보아하니 이걸 찾는 건 너에게 필요한 일이 될 것 같아서 말이지. 나는 이것 말고도 찾을 게 있으니까, 이건 너희에게 정식으로 의뢰할게.”


“보수는 무엇입니까?”


사바의 입에서 보수의 이야기가 나오자 레온의 매서운 시선이 시바에게 향했다. 하지만 모험가라면 응당 당연한 절차이므로 칸나는 웃으며 답했다.


“길드가 줄 수 있는 보상이라는 선에서 뭐든지 가능해. 너희가 이걸 찾는 데 들인 노력에 상응하는 대가로 부족함이 없게끔 말이야.”


“상당히 후한 제안이군요. 이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물건입니까?”


“역사적으로 중요한 물건이라고 해둘게. 하지만 이건 세상에 드러나서는 안 될 물건이야.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악용되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야 해. 최악의 경우 흔적도 남지 않게 파괴해야 할 거야.”


시바는 지나에게 시선으로 어떻게 할지를 물었다. 그리고 지나는 서류를 손에서 내려놓으며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레온씨의 사저 되시는 분이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조합의 원로 중 하나이자 세리아님의 딸인 칸나님이 맞습니까?”


“내가 그 칸나 맞아. 요즘은 카나라고 불리기도 해.”


“정령의 기원을 쓰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보수로 그걸 요구해도 괜찮나요?”


“어? 이거 말이야?”


허공에 책 한 권이 나타나더니 칸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중권인데 상권은 엄마가 갖고 있을 테고 하권은 아는 언니가 가지고 있어.”


“상권이라면 지금 저한테 있어요. 장기대여 중이거든요.”


“너 혹시 정령술을 배우려는 거야?”


“네.”


간결한 대답이 돌아오자 칸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녀의 마력, 속성, 잠재능력을 단지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알아내고는 정령의 기원을 건네주었다.


“이 책은 선금이라고 생각해 둬. 어차피 정령소환이 가능한 시점에서 나한테 필요 없는 물건이거든. 언젠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건네주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금이 그때인 것 같네. 정령술도 다음에 시간 내서 가르쳐 줄까?”


“그래도 괜찮은가요?”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될 텐데 안될 이유가 있나? 대신에 그 힘으로 레온을 지켜주면 돼. 엄마는 애를 험하게 키울 줄을 몰라서 우리 레온이 좀 연약하거든.”


“연약···? 네, 맡겨 주세요.”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 레온은 무시하고 지나와 시바가 의뢰를 수락함으로써 유물을 찾는 것은 그들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 유물은 시련의 탑으로 향하는 전송장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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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엑소시즘 앙상블(4) 24.08.22 3 0 14쪽
16 엑소시즘 앙상블(3) 24.08.22 3 0 14쪽
» 엑소시즘 앙상블(2) 24.08.22 3 0 14쪽
14 엑소시즘 앙상블(1) 24.08.22 3 0 16쪽
13 슈레스타 요새(3) 24.07.23 4 0 14쪽
12 슈레스타 요새(2) 24.07.23 6 0 14쪽
11 슈레스타 요새(1) 24.07.22 5 0 15쪽
10 검성 시바 18.05.22 14 0 14쪽
9 현자의 탑(3) 18.05.08 15 0 11쪽
8 현자의 탑(2) 18.05.08 12 0 15쪽
7 현자의 탑(1) 18.05.08 13 0 13쪽
6 집으로 18.04.22 14 0 11쪽
5 키메라 연구소(4) 18.04.22 17 0 13쪽
4 키메라 연구소(3) 18.04.22 17 0 12쪽
3 키메라 연구소(2) 18.04.22 17 0 11쪽
2 키메라 연구소(1) 18.04.22 29 0 12쪽
1 실종 +1 18.01.28 42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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