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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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0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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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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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13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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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전 - 제15화. 현실 직시

DUMMY

- 제15화. 현실 직시 -




그릇은 육체에 묶여있지 않다. 육체가 없어도 그릇은 존재 가능하다. 그러나 육체 개념을 뛰어넘어, 개중에는 그릇 없이 기운만으로 이루어진 개체도 있다. 또한 그 기운이 사고력이나 언어 능력 등을 지닌 경우도 있다.


- 기운에 관한 토막 상식.




“무사 양성소가 있을 때니까…… 10년도 더 된 일이야. 중앙 대륙 토옌에 나가있을 때였지.”

“출장이었어요?”

“에스온이 정전 상태가 되고 중앙 대륙 쪽에 무역선을 다잡으려는 거였지.”

흔히 동방대륙이라 불리는 곳도 엄연히 대륙의 이름이 존재했다. ‘에스온’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이 현재 몸담고 있는 한제국은 동방 대륙 에스온에서도 동쪽에 치우친 나라였기에 대륙 외부로 통하는 해상 무역에 있어서 같은 대륙의 다른 국가들보다 뒤지는 면이 있었다. 발타자르와 강만호는 전쟁 중지의 포상 휴가를 겸하여 중앙 대륙 ‘토옌’으로 그 ‘뒤지는 면’을 극복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바다 쪽은 거의 문외한이네요. 여기서 서방 대륙으로는 바로 가진 못하나요?”

“일반적으로 불가능해. 언젠가 서방 대륙에서 단신으로 작은 항로를 개척해내 여기로 들어온 사람이 있다고는 하는데, 그냥 헛소문 같아.”

강만호가 부가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그의 설명대로, 토옌은 그러한 항로적인 문제에 기반하여 중개무역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미리 조사해둔 상단들과 교섭을 모두 끝내고 관광을 돌고 있었지. 하루는 노숙을 했어.”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네요.”

“사소한 건 신경 꺼.”

“거기서 제스터 헥스를 만났지. 다음날 헤어져서 길이 갈라졌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간 방향에서 굉음이 났었다.”

아무래도 그때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그것은 도영에게 제스터 헥스에 대한 기억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애매하게 느끼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었고, 애초에 자세하게 설명해줘봤자 도영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제스터 헥스의 실력 뿐이었다.

발타자르와 강만호가 본 것은 엄청나게 넓은 지역이 황무지가 되어버린 상태에서, 그 위에 제스터 헥스가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에 흑검사는 이미 유유히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고, 제스터 헥스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 상태였다.

“물론 새까만 칼과 새까만 옷, 검은 머리카락 등등…… 우리가 본 건 뒷모습뿐이야. 하지만 부정할 수는 없겠지.”

“제스터 헥스가…… 거기서 어이없이 죽었다고요?”

“왜 거기에 제스터 헥스가 있었는지 같은 건 말해줄 필요가 없어. 중요한 건 합마 녀석을 기준으로 잡은 이유다.”

“그, 그렇죠.”

발타자르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손의 검지를 세워서 양 손가락 끝을 딱 마주쳤다.

“최고의 무사라 일컬어지는 사람끼리 칼을 맞댈 일은 거의 없지. 둘이 싸운 적은 없다. 하지만 세계에서 최고로 일컬어지는 사람의 수준은 기본적으로 합마를 평균으로 보는 게 맞아. 제스터 헥스도 합마 녀석도 전쟁 속에서 알려진 사람이니까. 그렇게 갈 줄은 몰랐지만 우리가 장례는 조용히 화장(火葬)으로 처리했다.”

“그런데…… 조사대에 말 안하는 게 좋다는 건 뭔가요?”

정치적 식견이 떨어지는 도영이 할 만한 질문이라 생각했는지, 강만호가 미리 그 대답을 준비해둔 것처럼 발타자르 대신 도영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제스터 헥스가 과거에 흑검사에게 당했다는 말이 알려지게 되면 발생하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였다.

흑검사 조사대라는 것은 이미 각국의 고급 무사들과 두뇌들이 모여서 세를 형성하고 흑검사의 뒤꽁무니를 쫓고 있었다. 그곳에 쓰는 인력은 그나마도 동방 대륙 에스온이 전쟁이 멈추었기 때문에 투입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흑검사의 수준이 세계 최고의 무사를 간단히 이길 수준이라면 이야기가 틀어지지.”

아직 여름. 그런데도 해가 낮게 떠서는 시장실 깊숙이 빛을 드리웠다. 강만호는 두 손으로 큰 원을 그려보이며 계속 말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인력, 더 강력한 인재를 배치해야 해. 하지만 지금 에스온은 정전 상태고, 중앙이든 서방이든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상황이야. 그런데 각국 최고의 인력을 국경이 아니라 흑검사 조사대에 배치한다는 건 무리지.”

“무리요? 흑검사를 빨리 잡기만 한다면…….”

“세계에서 꽁무니만 쫓은 게 벌써 20년이야. 게다가 주변국 눈치만 봐서 흑검사의 급을 알면서도 최고급 인력 배치는 미루겠지. 거기서 국가간 신뢰 문제가 발생해. 어쨌든 흑검사 조사대라는 건 국제적인 협력 기구니까, 하나 둘 요령을 피우기 시작하면 흑검사 조사대 자체가 흔들리게 되겠지.”

도영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흑검사를 그대로 두자는 말인가? 이미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을 잡는 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밖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현실이야. 조사대에 알릴지는 네가 정해.”

“믿어줄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말해준 것 정도로 정보가 명확하게 등록될 리는 없으니까.”

“…… 처음부터 전달하지 않게 할 생각이었군요.”

“하, 너는 합마가 흑검사 조사대에 갔으면 좋겠냐?”

발타자르의 그 말을 듣고는 도영이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눈을 한 번 움찔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토대인 합마는 이 나라의 황제 다음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고, 타국의 침입과 견제를 막는 수단이기도 했으며,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의 중립성을 통해 권력에서 한 발짝 물러나 그들을 지켜보는 눈으로서도 작용하고 있었다. 한제국의 자수성가의 상징이자 국민적 영웅, 실권을 가졌으되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사람.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국가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건 좀…… 아.”

“그렇지? 그게 현실이다.”

“직시해야 돼, 도영.”

발타자르와 강만호, 토대인 합마가 했던 말을 도영이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도영이 그런 자신을 알아채고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오늘 할 일…… 하러 갈게요.”

도영은 천천히, 적당히 인사만 하고 시장실에서 걸어나갔다. 그 모습을 강만호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고, 발타자르는 강만호의 시선이 신경이 쓰였는지 책상을 탁탁 두들겨서 그를 불렀다.

“왜 그래?”

“도영에게 말을 해야 하나 싶은 게 어제 도착했습니다. 아까 밥 먹을 때 하려던 이야기입니다.”

“도착? 공문? 정리해뒀나?”

“할 것도 없어서 거기 뒀습니다. 세 번째.”

발타자르가 강만호의 말을 듣고 자신의 앞에 쌓인 서류들 중 3번째를 꺼내어 읽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최악의 타이밍에 들어온 도영을 뒤흔드는 소식이었다.


살인 사건 현장.

“이제 완전히 끝나는 건가요?”

“네. 주변 분들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이번 사건은 흑검사의 동선을 추측하는 정보로 쓰는 정도, 그게 끝입니다. 보상을 받을 사람도 남아있지 않고요.”

흑검사 조사대는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곧장 떠날 모양이었다. 현장에 쳐져 있던 출입금지선을 철거하고 있었다. 현장 주변으로 모여든 주민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거 세상 흉흉해서…….”

“호사비 씨. 여긴 왜……?”

“뭐 이제 철수한다니까 달라진 거 있나 해서.”

호사비 다파마가 생선 피가 좀 묻은 앞치마를 입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도영과 마주쳤다.

“음, 그래 마주친 김에 이거, 오늘 생선 입고 전표랑 가격표.”

“네…….”

도영이 기운 없이 쪽지 두 개를 받았다. 호사비는 생선을 손질할 때 낀 장갑 때문에 눅눅한 자신의 손을 의식한 듯 도영의 어깨를 팔꿈치로 툭 쳤다.

“너무 감정이입하지 마. 어쩔 수 없는 거야.”

“네.”

“으음, 점심은? 아직?”

그러고 보니 조사다 뭐다해서 며칠 동안 제대로 끼니를 챙겨먹지를 못했다. 흑검사 조사대를 따르면서 간단히 처리한 정도였다. 조사대도 철수하는 마당에 언제까지고 식사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럼 내가 한 끼 사주지. 갈치구이라고 들어봤냐?”

“갈치요?”

“요즘 한창 제철이라 잘 들어오고 있으니까 구워주지. 이것도 그거 대가리 피야.”

앞치마에 묻은 피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호림 수산업의 천동시 독점 분점. 한동안 도영이 매일 그곳에 들르면서 꽤 친해진 상태이기도 했다. 호사비는 늘 보는 도영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에 며칠 사이 핼쑥해진 그 얼굴이 꽤나 크게 와닿은 모양이었다. 점포 한 쪽에 있는 테이블에 그를 앉혀두고는 직접 갈치를 세 마리 손질하여 화덕에 굽기 시작했다.

“흑검사에 꽤 크게 반응하는데?”

“네? 네…….”

화덕 옆에 있는 부채를 들고 부치며 갈치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도영은 테이블 의자에 앉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꽤 감정이 크게 들어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그렇게 보이나요?”

“그런 게 보이나요? 라고 해야 되겠지.”

도영에게는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때의 기억이 났는지 눈알이 허공을 향하며 굴러다녔다.

“지원해보는 건 어때? 이번에 황도 쪽에서 뭔가 있다고 하던데.”

“뭔가? 뭐가요? 어, 너무 많이 주시는 거 아니에요?”

다 구워진 갈치들을 토막 내어 도영 앞에 내밀었다. 호사비는 독점이 괜히 독점이냐며 너스레를 떨었고, 도영은 그것들을 천천히 씹어 먹으며 다시 물었다.

“뭔가가 뭔데요?”

“보직 변경하는 뭔가가 있다고 들었어. 자세한 건 공문으로 내려오지 않았을까?”

“그래요?”

아무래도 매일 황도, 항구들과 연락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소식이 빠른 듯했다. 보직 변경. 그것이라면 호위무사에서 흑검사 조사대로의 이동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뜨거운 생선 토막들을 순식간에 해치우고는 제값을 지불하고 시청으로 달려갔다.

“내가 한 턱 낸다니까…….”

뒤통수에 대고 호사비가 말했지만 도영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시장실에 도착한 그가 인사도 하지 않고 곧장 발타자르의 책상 앞으로 가서 말했다.

“시장님.”

“음, 마침 말할 게 있었는데, 뭔가?”

“아닙니다. 먼저 하세요.”

“그러지. 이번에 공문이 내려온 걸 보니, 황도 쪽에서 보직 변경을 신청할 수 있는 평가전이 열린다고 하는군.”

“!!”

“나한테 하려던 말과 일치하는 모양인데, 사실 단순 평가전에 부상(副賞)으로 보직 변경 신청권이 걸린 것뿐일세. 어떤가, 신청할 텐가?”

갑자기 뜬구름에서 손에 잡힐 듯 형체를 잡아나가는 ‘가능성’에, 도영이 곧장 대답을 하려다가 움찔하며 멈추었다.

“…….”

“어떡할 거지?”

“저는…….”

발타자르와 강만호가 그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그것은 평소 도영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었지만 정작 도영은 그것을 느낄 여유도 없는 듯했다.

일순간의 정적. 두 사람의 시선과 한 사람의 망설임. 시장실 전체가 회색빛이 된 것 같은 풍경 속에서, 도영이 한참을 입술만 떨다가 결국은 말했다.

“신청하겠습니다.”




작가의말

드디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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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평가전 - 제20화. 예선 2차전 개시 13.02.26 1,989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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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평가전 - 제18화. 각지의 무사들 +1 13.02.21 1,447 9 13쪽
18 평가전 - 제17화. 예선 개시 13.02.18 2,341 10 12쪽
17 평가전 - 제16화. 황도로 13.02.18 2,905 13 10쪽
» 평가전 - 제15화. 현실 직시 13.02.13 2,928 11 12쪽
15 평가전 - 제14화. 흑검사의 잔향 13.02.10 3,034 10 13쪽
14 촌구석 무사 - 제13화. 검은 그림자 +2 13.02.08 1,452 10 11쪽
13 촌구석 무사 - 제12화. 생선가게 아저씨 13.02.07 1,675 14 15쪽
12 촌구석 무사 - 제11화. 경험 +1 13.02.05 992 12 12쪽
11 촌구석 무사 - 제10화. 맛보기 +1 13.02.01 860 13 14쪽
10 촌구석 무사 - 제9화. 조사 13.01.25 931 10 13쪽
9 촌구석 무사 - 제8화. 괴물 13.01.23 1,027 10 14쪽
8 촌구석 무사 - 제7화. 회유와 고집 13.01.21 1,094 10 14쪽
7 촌구석 무사 - 제6화. 발자국과 레일 +1 13.01.19 1,136 13 15쪽
6 촌구석 무사 - 제5화. 귀환 13.01.16 1,150 14 9쪽
5 촌구석 무사 - 제4화. 토대인과 도영 +1 13.01.15 1,648 16 13쪽
4 촌구석 무사 - 제3화. 토대인 합마 +1 13.01.13 1,581 15 13쪽
3 촌구석 무사 - 제2화. 활쏘기 13.01.12 1,579 15 10쪽
2 촌구석 무사 - 제1화. 무사의 임무 13.01.12 1,958 16 13쪽
1 프롤로그 - 호위무사 +1 13.01.04 3,791 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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