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균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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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빛의균형자
작품등록일 :
2012.03.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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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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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04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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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쪽

외전 - 희망의 빛

DUMMY

“난 싫어.”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싫었다.

“싸우지 않겠어.”

검도, 가족도 잃었다. 지금 나에게 남은 건 하나, 신아 밖에 없다. 나에게 관여하지 마.

쏴아아아......

“캬아악... 신력의 냄새가 난다......”

수도에서 시작된 마족의 침략은 어느새 게론 전역으로 퍼져 있어서, 이제는 길을 걷다보면 산적들보다 마족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길뿐만이 아니라 거대 도시들도 차례차례 습격당하고 있으니 이대로 가면 언제 인간이 멸망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어’

수도에서 동쪽으로 갈수록 마족들의 숫자가 적어진다. 즉 게론 최동단 정도 되면... 마족이 없는 마을이 있겠지. 그런 곳에 신아를 맡기고, 신력을 감추고 숨으면 된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오빠......”

“괜찮아. 잠시만 숨어있어.”

나무 밑에 벌어진 틈으로 신아를 숨기고, 마족들을 상대하기 위해 신력을 발휘했다. 비록 에페리스는 없지만 저 정도 하급 마족들이야 맨몸으로도 처리할 수 있으니까.

‘죽여라!!’

누구의 목소리였지...? 기억이 안 나지만.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다.

“캬아악! 빛의 신관이다!”

“도망쳐!!”

퍼어억!

눈앞에 나타난 두 마리 마족 중, 앞에 있던 마족의 전신이 붉은 빛의 화살로 뒤덮였다. 두 마리를 모두 쓰러트리려 했는데 아무래도 너무 일찍 발사한 모양이었다.

“칫!”

날아가려는 마족의 뒷덜미를 손으로 잡고, 그대로 신력을 주입해서 터트려 버렸다. 최대한 신력을 감춘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신력을 듬뿍 쓰고 말았다.

치이이......

몸에 깃들어 있는 붉은 빛의 신력이 빗방울을 증발시킨다. 마족들을 상대한 영향일까? 아니면 내가 신력을 더 수련해서 그런 것일까? 신력은 붉은 빛으로 변해 있었고 더욱 강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그 반면 신력을 가라앉히는 것이 예전보다 훨씬 어렵다는 난점이 있었지만... 이 정도 힘이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치이이이이......

한참을 비를 맞으며 몸을 식히고 나서야 붉은 빛의 신력이 사라졌고, 나무 밑에서 잠들어버린 신아를 안아들고 다시 길을 떠났다.

“괜찮아. 곧 찾을 수 있을 거야......”

수도를 빼앗긴 황제는 모든 영지에 징집령을 내렸고, 그 결과 15세에서 50세까지의 남성들은 모조리 징집되어 100만의 군대가 되었다. 여신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마족의 총 숫자는 2천. 숫자로 따지자면 5백 대 1의 싸움이다. 하지만 난 장담할 수 있었다.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몰론 그 2천이 모두 세계의 거부를 무시하는 물건을 가진 것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백 단위 이하의 마족들만이 그 물건을 소유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세계의 거부를 받는다 하더라도, 마족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용족을 상대로 양떼 수만이 덤벼들어도 소용이 없는 것처럼, 평범한 군대로 마족들을 상대할 수 없다. 인간의 평범한 무기는 마족에게 닿기도 힘들며, 닿아도 상처를 입히지 못한다. 100만 중 하급 마족이라도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것은 3천 미만. 아니, 100만 전체가 하급 마족을 상대할 수 있어도 마황자는 절대로 상대할 수 없다.

“마황자 카시드......”

쓰러트릴 수 없다. 그런 괴물은, 쓰러트릴 수 없어! 기껏해야 자르카나 파리아 정도가 가능성이 있지만, 둘이 힘을 합치더라도 마황자를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에다가 마계공작들과 그 휘하의 고위 마족들까지 합한다면... 방법은 없다.

“엄마......”

꼬옥...

그래서 도망가는 거다. 나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이 아이를 지켜야하기 때문에. 친구들이건 무엇이건 다 버려야만 한다. 그들과 함께 하면 내 목숨, 아니 그것 따위는 상관없지만 이 아이를 지켜줄 수 없다. 나 때문에 부모를 잃고, 되살아난 아버지에게 목숨을 위협 당하는 이 가련한 아이를.

‘괜히 너무 착해서, 나 같은 것을 주워오는 바람에......’

바보 같은 아줌마. 아줌마도 알고 있었을 텐데. 나 때문에 신영이 죽었다는 것 정도는. 그럼 그 때 쫓아냈어야지, 왜 계속해서 날 받아 준거지? 왜? 밉지도 않은가? 난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남인데, 그런데도 신영을 죽게 만들었는데, 어째서......

저벅.

“......찾았다.”

그 고민의 답을 생각할 틈도 없이 난 도착할 수 있었다. 게론의 최동단, 이 동쪽으로는 그 누구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하는 그 영지에. 지도에조차 나와있지 않은 아노은 영지.

“마족의 기운도...... 없다.”

갑자기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신아가 잠들면 안고 움직이고, 깨어나면 같이 걸었다. 그리고 마족과 싸우고...... 그것이 며칠이었더라?

‘잠을... 며칠 간 안 잔 거지?’

철퍽.

이상하게 힘이 빠져서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응? 이런 날씨에 도대체 누가......”

“이봐! 사람이 쓰러졌다!”

찾았다. 안전한 곳......

“괜찮은가?”

잠에서 깨어나니 나무로 된 천장이 보였다. 다른 지역과는 조금 다른, 나이테가 거의 없는 나무로 만들어진 천장이.

“여기는......”

“자네, 이 근처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디서 왔는가?”

“게론의 수도에서...... 왔습니다. 같이 있던 여자아이는...?”

“다른 방에 있네. 약간 감기기운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정도야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 금방 낫겠지. 그보다 자네, 그 동안 무언가 먹기는 한 건가?”

먹었... 던가? 여행이 끝난 뒤에 돈도 없고 마족의 침략 때문에 식량사정도 여의치 않아져서 빵 값은 더욱 올랐다. 그래서......

꾸륵......

못 먹었군.

“하핫... 배고픈 모양이군. 잠시만 기다리게.”

잠시 기다리자 노인은 삶은 양배추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고, 허겁지겁 그것을 받아먹었다.

“이 마을은 사람이 부족하지. 어째서 수도에서 도망쳤는지 모르겠지만, 괜찮다면 이곳에 정착해도 되네. 가뜩이나 영주님이 병사를 모은다, 뭐다 해서 젊은이들이 모자라니까. 큰아들놈도 병사가 되어 영주님께 갔으니 말이네.”

“......고맙습니다.”

다행이다. 마을에서 이방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신아를 어떻게 맡겨야 할지 고민해야 했을 텐데.

“그럼 푹 쉬게. 배고프다면 먹을 것은 더 가져다 줄 터이니.”

다행이야, 다행이야. 다행이다......

쏴아아아......

“비 계속 내리네.”

“......응.”

내가 밉지도 않은 걸까...? 신아는 내 방에 찾아와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신아를 볼 때마다 괴로워하는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일까.

“있지, 이 집에는 세린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아장아장 걸어다닌다.”

“너도 그랬어.”

“귀엽더라고.”

좋은 집이다. 이런 곳이라면 신아를 맡겨도 되겠지. 분명히 잘 키워서 좋은 사람에게 보내 줄 거야. 나 같은 녀석의 옆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겠지. 나는... 아무리 신력을 감춰도 언젠가는 들킬지 모르니까, 되도록 멀리. 이 근처까지 올지도 모르는 마족들을 모두 모아서... 내 목숨과 함께......

“신아야.”

“응?”

“넌 내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꼭 지켜줄게.”

“응. 오빠라면 그래야지.”

그래. 목숨을 바쳐서라도......

쾅!

“이 안에 이방인 자식 있지! 빨리 나오라고 그래!!”

“무, 무슨 일인가 자네들?”

“지금 당장 나오라고 하라고!!”

‘......무슨 일이지?’

“지금 마을 사람들이 마족들에게 잡혀갔단 말이다! 저 자식을 내놓으라고!!”

벌써...? 따라왔단 말이야?

벌떡!

“오빠...?”

“걱정하지 마.”

“아니, 잠깐만!!”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며칠간 계속되던 따가운 빗줄기가 멈춰들었지만 아직까지 하늘은 칙칙한 검은 구름에 물들어 있었다.

“네 녀석이냐! 네놈 때문에 내 동생이 잡혀갔어!!”

“빨리 애 아빠를 데려와!!”

“잠깐 진정들 하시게!!”

“진정? 할아버지, 지금 이 자식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잡혀갔다니까요!! 게다가 작은 아드님도 잡힌 상태라고요!”

“!!”

일이 이렇게까지 되자 더 이상 노인도 나를 변호해 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할아버지.”

“......자네...”

“신아를 맡겨도 될까요...?”

“그 정도라면...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녀석들은 저에게 목적이 있을 테니까.”

그래, 잘 된 거다. 내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겠지.

‘있는 곳은...... 저쪽인가?’

예전에, 이 영지로 들어오기 직전. 마지막으로 마족과 싸웠던 곳. 그곳에 한 무리의 마족이 머무르고 있었다. 숫자가 상당하고 무엇보다 예전에 상대했던 백작급 마족과 비슷한 정도의 마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세계의 거부를 막는 물건에 육체까지 가지고 왔을테니 예전의 그 백작보다 훨씬 강력하겠지.

펄럭.

빛의 날개로 하늘로 날아오르며, 이제부터 신아가 살아갈 마을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꼭, 행복해야 돼’

마족들은 내가 도망가지 않을 것을 확신했는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도망가지도, 나를 추격하지도 않고.

탁.

길 위에 착지하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마족들이 일제히 인질의 목에 자신들의 손톱을 가져갔다.

“호오. 네가 그 유명한 빛의 신관인가.”

뱀의 눈을 가진 청년이 마족들 사이에서 걸어나왔다. 이 강한 마력의 주인, 최소 백작급의 마족일 것이다.

“반항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인질은 보내 줘.”

“응? 뭐라고?”

“나를 원하던 것 아니었나?”

“맞아. 너를 불러들이려고 잡아왔지. 그런데......”

그 청년의 입꼬리가 뱀처럼 찢어졌다.

“우리는 네가 죽을 경우 ‘돌려보내겠다’는 말은 하지 않은 것 같은데.”

“!!”

퍼억! 푸욱!!

일제히 마족들이 인질들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순식간에,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게다가 지상에서 힘을 보충하려면 하나라도 많이 죽여야 되거든. 그래서......”

낼름.

뱀의 혀가 밖으로 나와 낼름거릴 때.

퍼어엉!!

뒤에서, 즉 아노은 영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뭐 하는... 짓이야...”

“뭐긴 뭐야? 힘을 보충하는 거지. 이곳까지 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그나마 지난번에 네가 녀석들을 죽이는 바람에 네 위치를 알 수 있었지, 안 그랬으면 포기할 뻔했다고.”

그럼 지금 이것도... 내 탓이라는 거야?

피이잉!!

하늘로 날아올라 마을을 보았다. 그리고, 신아가 머무르고 있던 그 집이......

화르륵......

불타고... 있었다.

‘죽여라’

으득.

‘죽여라’

어느새 빛은 나에게 머무르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빛나는 붉은 빛이!!

‘모든 마족을 죽여라!!’

“끄아아아!!!”

“마음에 든다! 그 눈빛!!”

콰아아앙!!!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불안감에 집의 창문을 통해 몰래 빠져나온 신아는 힘겹게 길을 달리고 있었다. 오는 길에 몇몇 어른들이 잡으려 했지만 작은 몸의 장점을 이용해 이곳저곳 좁은 곳으로 빠져나와 겨우 영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던 신아였다. 그리고 그녀가 빠져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아, 아니야. 지금 중요한 건 오빠가 있는 곳에 가는 거지...!”

신아는 그 폭발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길을 따라 달렸다. 그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아무리 넘어지고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혀도 달렸다.

“하아... 하아......?”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신아는 이상하게 변형되어 있는 길에 걸음을 멈추었다. 사방에 피가 튀어있고 마치 불을 공기에 담아놓은 것처럼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공간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오빠는?”

퍼어억!!

후두둑!

그 대답은 숲에서 들려오는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대신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상대는 수십에 달하는 마족, 그렇다면......

“안 돼! 오빠!!”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지르며 신아는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사, 살려...... 끄아악!!”

화르륵......

녹아내리며 비명을 지르는 마족들을 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스물에 달하는 마족 전원이, 한 명의 신관에게 당하고 있었다.

“큭... 큭큭... 쿨럭! 멋지다! 멋진 힘이다!!”

사정없이 몸이 찢겨나가고 머리도 반 이상이 녹아버린 뱀은 아직도 살아남아 말을 하고 있었다. 그조차도 붉은 빛의 신력에는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오...... 빠?”

촤악!

마지막으로 남은 마족의 머리를 갈라버린 그가,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오싹.

그 눈은 평소와 같은 푸른색이 아니었다. 붉은 노을에 물든 것처럼, 짙은 붉은 눈동자가 신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치이이이......

몸을 감싸고 있는 붉은 빛에 근처 모든 사물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신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퍼엉!!

일순간 눈앞이 붉은 빛의 기둥으로 가득 차고, 신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러나 신아의 작은 몸이 빛의 기둥에 불타버리기 직전, 햇살과도 같은 금빛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파앙!

금발의 누군가가 손을 휘두르자 붉은 빛의 기둥은 옆으로 굴절되어 대지를 강타했다. 그 열기가 얼마나 굉장한지 빛의 기둥에 닿은 대지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후우...... 굉장한 분노의 빛인 걸.”

신아를 구한 여신, 슈발로이카는 자신의 손에 남은 화끈한 느낌에 혀를 찼다. 평소의 빛이 아닌, 한 가지 감정이 격하게 부풀어올랐을 때 발생하는 감정의 빛. 붉은 분노, 보라색 증오, 남색의 절망. 그 중 지금의 것은 가장 강력하다고 알려져 있는 붉은 분노의 빛이었다.

“멍청한 녀석,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아이를 지킨다고 하지 않았어?”

여신의 물음에 대답대신 날아든 것은 붉은 빛의 기둥이었다.

퍼어엉!!

이번에는 미처 굴절시키지 못했기에, 여신은 자신의 손을 앞으로 내밀어 막아내야만 했다.

“그만... 그만... 그만!! 정신차려!!”

가망이 없다. 그렇게 판단한 여신은 자신의 신관에게 보내던 신력의 권한을 ‘없애’버렸다.

파아앗-

그것과 동시에 붉은 빛의 신력도 사라지고, 신력이 사라져 원래의 검은 머리카락으로 돌아온 그녀의 신관은 그대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어떻게......”

퍼억!

대답 없이, 여신은 자신의 신관을 한 대 때렸다. 장난스러운 것이 아닌 정말 분노를 담아서.

콰앙! 주르르륵......

그 무시무시한 힘에 그는 피를 흩뿌리며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그러나 아파할 틈도 없이 여신은 그의 멱살을 붙잡고 강제로 일으켰다.

“잘 들어. 증오의 빛이나 분노의 빛은 강력해.”

“......”

“하지만! 그 빛은 언젠가 너를 잠식하고, 네 소중한 것을 부숴 버릴 거야!!”

털썩.

여신이 손을 놓자 그는 정신조차 차리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쓰러진 그에게, 신아가 안겨들었다.

와락.

“괜찮아? 다친 곳 없지?”

“......신아야...”

“그 아이. 네가 죽일 뻔했어.”

“......!!”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봐.”

탁. 타닥...

지금의 나는 마치 시체와도 같다.

“괜찮은 거지?”

결국 참지 못한 신아가 먼저 입을 열었지만 나는 여전히 먼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분노’

강한 분노는 강한 힘이 된다. 신력의 총량은 감정과 제어력의 곱이나 마찬가지로, 나의 제어력은 이미 여신이 최대한도로 올려 주었으니 그 이상은 강해질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더욱 강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그 힘은 증가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분노의 빛은 전투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하다. 어쩌면 여신의 절반에 가까운 제어력을 가지고 있는 내가, 감정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면 하기에 따라서 여신을 뛰어넘는 힘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제어가 안 된다. 분노의 빛도 내가 딱히 원해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이유 없는 절망이 쌓이고, 증오가 쌓여서 가장 분출하기 쉬운 분노가 되어 폭발했을 뿐.

“자격이 없는 걸까......”

오로스를 무시했던 것이 비참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도 신관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신력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나에겐 이미 분노와... 증오. 절망밖에 남지 않았어.”

전력으로 신력을 모아 주변에 띄워 보았지만 온통 검고, 붉고,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 하하......”

허탈해서. 한심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신아는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무언가를 찾은 듯 손을 포갰다.

“아니. 있어.”

“......?”

“여기. 작지만 노란색의 빛이 보여.”

신아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노란 빛. 다른 빛들과는 달리 정말 작아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여신에게 듣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 빛은......

“나에게도...... 아직 남아 있었구나.”

힘겨운 얼굴로 웃었다. 웃을 수 있었다. 작지만 찾아냈으니까.

“이 빛...... 따뜻해. 나도 어떤 빛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나의 희망, 신아. 널 위해서라도 난 포기하지 않겠어.

아직까지 나에게는......

희망의 빛이 남아 있으니까.



작가의말

2부에서 3부까지의 공백을 보여주는 외전입니다.

정확히는 참전한 이유를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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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3rd 01. 구원자(1) +2 11.11.05 502 15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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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 희망의 빛 +1 11.11.04 455 6 79쪽
119 외전 - 에페리스 +4 11.11.04 399 8 24쪽
118 2nd 13. 복수자(11) +2 11.11.03 427 6 31쪽
117 2nd 13. 복수자(10) +2 11.11.03 439 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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