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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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최근연재일 :
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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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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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처소로 돌아가 처분을 기다리고 있거라!

DUMMY

"영빈 김씨는 종할아비 김수항과 짜고 과인의 상소를 훔치는 패역한 죄를 범하여 폐출하는 것이니, 영빈 김씨를 구명하기 위해 나서는 자는 그 죄를 엄히 물을 것이다!"


김수항이 사사된지 한달여 만에 숙종은 영빈 김씨를 폐출한다는 비망기를 내린 후 대신들에게 천명한 것이다.


영빈 김씨는 궁을 떠나기 전에 인현왕후에게 하직인사를 올리려했지만, 숙종이 윤허하지 않아 중궁전(중전의 처소)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중전마마, 소첩 중전마마께 하해 같은 은혜를 입었사오나, 은혜를 갚지 못하고 떠나오니, 송구하기 짝이 없나이다. 부디 옥체 보중하시고 만수무강하소서!'


스물한 살의 꽃다운 나이에 쫓겨나는 영빈 김씨는 가문이 풍비박산이 나서 거처할 곳도 마땅치 않았으니 실로 처량한 신세가 아닐 수 없었다.


'영빈 김씨가 폐출되었다니!'


인현왕후는 자책감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소의, 내가 그대를 입궁시켜 큰 고통을 준 것 같아 참으로 미안하네. 난들 어찌 우리들의 처지가 이토록 처량하게 될 줄 알았겠나? 부디 나를 용서하게.'


저녁 무렵, 숙정이 옥정을 찾아와 간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희빈마마께서 이제 중전마마가 되실 날도 머지 않으셨습니다. 호호호......"


옥정의 처소가 있는 별궁 취선당에는 옥정을 따르는 궁인들만 있을 뿐이니 숙정이 마음 놓고 말한 것이다.


옥정은 궁녀들이 들을까봐 짐짓 화내는 척하며 나직한 목소리로 나무랐다.


"이 사람아, 자네는 입이 방정일세. 자네 말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자네는 물론 나 또한 난처해질 터, 입조심하게."


숙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옥정의 귀에 속삭였다.


"소첩에게 중전 민씨를 내쫓을 기발한 계책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사옵니까?"


옥정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그게 무엇인가?"


숙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일이 중전 민씨의 생일임을 이용하는 것이옵니다."


숙정이 떠난지 얼마 후 옥정이 대전(임금의 처소가 있는 궁전)을 찾아왔다.


"전하, 내일이 중전마마의 탄신일이오나, 대왕대비마마의 상중이니, 상중의 예로써 간략하게 치루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신첩에게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오라 저승에 계신 대왕대비마마의 넋을 위로해 드리고자 할 뿐이옵니다. 전하에게도 신첩에게도 대왕대비마마는 친조모와 같은 분이 아니옵니까."


옥정은 숙정의 계책대로 말한 것이다.


숙종은 그런 줄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숙종이 대전의 주내관을 불러 말했다.


"지금 내전으로 가서 내일 중전의 탄신일 행사는 상중의 예로써 간략히 치루라 이르거라."


상중에는 하례도 선물도 받지 않는 것이 상례라, 탄신일 행사를 치루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주내관이 살며시 옥정을 바라보는 순간, 옥정이 주내관에게 눈짓을 보냈다.


옥정이 대전을 찾아오기 전에 주내관을 불러 숙종이 명을 내리거든 자신과 상의하여 시행하라 일러 놓았던 것이다.


옥정이 처소로 돌아오자 주내관이 찾아왔다.


옥정이 주내관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이자, 주내관의 얼굴이 햐얗게 질렸다.


옥정이 숙정의 계책대로 인현왕후를 폐출시키기 위해 일을 꾸민 것이다.


다음날, 인현왕후의 탄신일을 맞아 중궁전은 아침부터 분주해졌다.


아침이 지나자 전국의 관청에서 보낸 단자가 중궁전에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고, 중궁전의 궁녀들은 중전의 탄신일에 쓰일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궁녀들은 처소에서 근신 중인 인현왕후를 위로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신경써 음식을 맛있게 조리하고 있었다.


이 무렵 옥정이 숙종을 찾아가 고했다.


"전하, 어제 전하께서 중전마마의 탄신일 행사를 간략히 치르라 명하셨음에도 중궁전은 온갖 요리를 하느라 야단이라 하니, 아무래도 주내관을 보내 중궁전의 상궁들을 단단히 타이르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하옵니다."


"뭐라? 내가 어제 주내관을 보내 중전의 탄신일 행사를 간략히 치르라 했거늘..."


격노한 숙종은 분노의 발걸음으로 중궁전을 향했다.


"중전마마께선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는가?"


"중전마마께선 아직 주무시고 계십니다."


"기다렸다가 중전마마께서 깨어나시면 하례를 올리자꾸나."


궁녀와 상궁을 비롯한 중궁전의 궁인들이 인현왕후에게 탄신일 하례를 올리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끼리 소곤거리고 있을 때였다.


복순이 조상궁에게 속삭여 물었다.


"상궁마마, 이미 아침 시간이 지났는데, 대전의 내관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니옵니까?"


중궁전 앞에는 중궁전 소속 궁인들과 상궁들만 있을 뿐, 대전의 내관들과 옥정의 궁인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효종, 현종, 숙종 삼대 임금에 걸쳐 상궁을 지낸 조상궁은 단순하게 생각했다.


"중전마마께서 근신 중이시니, 모두들 조심이 되서 그런 게 아니겠느냐?"


"하오나......"


복순은 왠지 불긴한 예감이 들었다.


'희빈이 농간을 부리는 게 아닐까? 희빈의 궁인들이 하례하러 오지 않는 건 이해가 가나, 대전의 내관들이 하례하러 오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복순은 옥정이 농간을 부리는 게 아닐까 걱정되었지만, 조상궁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바로 이때였다.


"주상 전하께서 납시고 계시다! 주상 전하께서 진노하신 것 같은데, 뭔가 잘못된 모양이군!"


궁인들이 숙종이 중궁전으로 오고 있는 걸 보고 자기들끼리 말한 것이다.


숙종이 성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걸 보자 궁인들은 이때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하례상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온 숙종은 하례상 위에 있는 단자를 발로 걷어 차버린 후 호통쳤다.


"대왕대비마마의 상중이라 상중의 예로써 간략히 치르라 명을 내렸거늘, 어찌 하례상을 차린단 말이냐?"


서릿발 같은 숙종의 꾸짖음에 내전의 궁인들이 모두 기겁하여 땅에 엎드려 용서빌었다.


"소인들은 듣지 못한 사실이니, 부디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전 최고상궁인 조상궁이 앞으로 나와 아뢰었다.


"전하, 소인들은 그런 하교를 받은 적이 없사옵고, 탄신일 하례 행사 준비는 소인의 독단으로 내린 결정이오니, 소인에게 죄를 물으소서.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나이다."


어제밤 주내관은 옥정의 지시에 따라 내전에 오지 않았는데, 하교를 전하지 않아 내전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것이 옥정의 의도였다.


조상궁의 설명을 듣자 숙종이 격노해 명을 내렸다.


"당장 주내관을 잡아들여 조상궁의 말이 사실인지 조사토록 하라!"


모든 것이 주내관이 숙종의 하교를 중궁전에 전달하지 않아 생긴 일이지만, 그 불똥은 조상궁에게 떨어졌다.


숙종이 조상궁을 꾸짖었다.


"설령 과인의 하교를 듣지 못하였다 해도 대왕대비마마의 상중이거늘, 삼대 대왕을 섬긴 네가 어찌 상중의 예도 모른단 말이냐? 조상궁도 하옥하라!"


예순을 넘긴 조상궁을 구하기 위해 내전의 상궁들이 앞다투어 죄를 청하였다.


"전하, 소인들에게도 책임이 있사오니, 죄를 물으소서."


"상궁들을 모두 하옥하라!"


이 시각까지 인현왕후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는데, 궁에서 쫓겨난 영빈 김씨 생각에 새벽녘에서야 겨우 잠든 탓이었다.


"밖이 소란하구나... 대체 무슨 일이지? 여봐라! 게 아무도 없으냐?"


중궁전의 궁인들이 조상궁을 구하려다 모두 끌려가고 있으니, 인현왕후가 불러도 오는 궁인들이 없었다.


"복순아! 복순아! 복순아!"


복순마저 조상궁을 구하려다 끌려가고 있으니 아무리 불러봐도 소용이 없었다.


인현왕후가 뭔가 큰일이 생긴 걸 깨닫고 중얼거렸다.


"이런! 오늘이 내 생일이었지! 궁인들이 내 생일 준비하다 전하의 노여움을 사 모두 붙잡혀 갔단 말인가..."


인현왕후는 한달여 째 근신령으로 중궁전에 유폐되다시피하여 오늘이 생일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이때서야 깨달은 것이다.


인현왕후가 황급히 예복을 갖추어 입고 나왔을 때는 중궁전의 모든 궁인들이 금위병사들에게 끌려간 후였다.


"중궁전의 궁인들은 모두 어디로 끌려갔는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중궁전의 궁인들은 대왕대비마마의 상중의 예를 지키지 않아 모두 하옥되었습니다."


인현왕후가 중궁전 앞에 보초를 선 금위병사들에게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인현왕후는 비장한 각오로 대전으로 향하며 다짐했다.


'모든 것이 옥정이 내 자리를 노려 생긴 일일 터, 더 이상 중전의 자리에 연연하지 말자.'


인현왕후가 대전으로 발걸음하여 간청했다.


"전하, 이 모든 것이 사전에 명을 내리지 못한 신첩의 잘못이오니, 부디 하옥된 궁인들을 방면해주옵시고, 신첩에게 모든 죄를 물으소서."


"내, 분명히 중궁전을 벗어나지 말라 명하였거늘, 어찌 명을 어기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냐? 어서 돌아가지 못할까?"


인현왕후는 숙종이 서슬 퍼런 얼굴로 중전인 자신에게 하댓말을 하자 순간적으로 발끈하고 말았다.


"신첩이 비록 죄를 지었다 하나, 아직은 중전의 자리에 있사온데 전하께서 신첩을 예로서 대하지 아니하시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모든 것이 신첩의 부덕한 소치로 생긴 일이오니, 청컨대, 신첩이 중전의 자리에 합당치 아니하다 여기시오면 폐출의 처분을 내려주시기 바라옵니다."


폐출이란 말에 숙종이 격노했다.


"폐출하라면 못할 줄 아느냐?"


인현왕후는 순간적으로 발끈한 것이 후회되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전하, 부디 신첩의 뜻을 곡해마소서. 신첩이 부덕하여 나라가 어지러운 이때 중전의 자리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감히 아뢴 것이옵니다."


인현왕후가 눈물을 뿌리며 해명했지만, 숙종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곧 처분을 내릴 터이니, 처소로 돌아가 처분을 기다리고 있거라."


인현왕후는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간청했다.


"전하, 신첩은 오늘이 신첩의 생일인 줄도 몰랐사옵고, 또한 궁인들이 신첩의 생일을 준비하는 줄도 모르고 늦잠을 자서 생긴 일이오니, 모든 죄는 신첩에게 물으시고, 부디, 궁인들은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한번 입궁하여 궁인이 되면 특별한 명이 내려지지 않는 한, 평생 시집갈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궁인들은 궁전에서 쫓겨나면 갈 곳도 없는 신세였다.


숙종 역시 이러한 궁인들의 처지를 아는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대로 궁인들의 죄를 묻지 않고 방면해주겠다."


인현왕후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시했다.


"신첩의 청을 들어주셔서 참으로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인현왕후는 대전을 떠나기 전에 숙종에게 큰절을 올렸다.


이미 폐출될 거라 예상하고 하직인사를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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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5화 복위 22.12.05 68 0 11쪽
54 54화 변고 22.12.05 58 0 11쪽
53 53화 이미 결심하였느니라 22.12.05 36 0 11쪽
52 52화 미남계 22.12.05 48 0 11쪽
51 51화 온희야, 부디 나를 용서하거라 22.12.05 41 0 10쪽
50 50화 복순을 데려오거라 22.12.05 39 0 10쪽
49 49화 김춘택의 계획 22.12.05 41 0 11쪽
48 48화 어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겠느냐? 22.12.05 35 0 11쪽
47 47화 중전 책봉식 22.12.05 33 1 11쪽
46 46화 중전마마를 부탁하오 22.12.04 42 0 11쪽
45 45화 민씨는 거기 섣거라! 22.12.04 40 1 11쪽
44 44화 너같은 대역무도한 자는 백번 죽어 마땅하다! 22.12.04 39 1 11쪽
43 43화 폐비 전교를 내리노라! 22.12.04 55 0 11쪽
» 42화 처소로 돌아가 처분을 기다리고 있거라! 22.12.04 67 0 11쪽
41 41화 옥정이 여우였다니! 22.12.04 42 1 11쪽
40 40화 소매 안에 뭔가를 감춘 것이 아니냐? 22.12.03 4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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