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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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최근연재일 :
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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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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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김춘택의 계획

DUMMY

이때 김춘택이 김체건에게 급히 손짓하며 말했다.


"중전마마께 들키면 안 되니, 어서 나무에서 뛰어내리세!"


이렇게 해서 김춘택과 김체건이 동시에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김춘택은 김체건을 인적이 없는 조용한 곳으로 데려간 후 말했다.


"실은, 내가 이미 중전마마를 복위시킬 방법을 생각해 놓았는데, 자네가 좀 도와주겠는가?"


김체건이 눈빛을 번뜩이며 대뜸 물었다.


"어떤 방법입니까?"


김춘택은 별안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장다리는 한철이나 미나리는 사철이다! 고결하고 아름다운 미나리꽃이 전국 방방곡곡에 다 피었다네!"


김춘택이 노래를 마치기도 전에 김체건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이 노래를 퍼뜨리면 중전마마의 복위에 큰 도움이 되겠군요!"


김춘택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바로 그걸세! 이 노래를 전국방방곡곡에 퍼뜨린다면 주상 전하께서도 들으실 게 아닌가! 그럼, 주상 전하께서도 깨닫는 바가 있겠지."


이 말을 하고서 덧붙였다.


"조만간에 때가 올 터, 그때 우리가 나서서 중전마마의 복위를 주도하세!"


김체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때가 오면 소생의 목숨을 걸고 춘택 공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김춘택은 김체건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고맙네."


조선 최고의 검객인 김체건은 제자들도 많았고, 따르는 자들도 많았다.


이러한 김체건이 목숨을 걸고 돕는다면 큰 힘이 될 것이었다.


김춘택으로서는 김체건이 눈물날 정도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느새 수 년이 흐른 임신년(1692년) 가을, 숙종은 민생을 살펴보기 위해 잠행을 나왔는데, 장안 어디를 가던지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장다리는 한철이나 미나리는 사철이다. 고결하고 아름다운 미나리꽃이 전국 방방곡곡에 다 피었다네.'


숙종은 장다리는 옥정을 말하고, 미나리는 폐출된 인현왕후를 말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숙종은 크게 탄식하였다.


'민씨가 폐출된지 수년이 지났건만, 백성들은 민씨를 잊지 못하여 민씨가 복위되기를 바라고 있구나!'


숙종은 날이 갈수록 인현왕후가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로 그리워졌지만, 인현왕후를 복위시키면 옥정은 희빈으로 강등시켜야 하니 생각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민씨의 빈자리가 느껴지니 마음이 참으로 공허하구나! 예전에 옥정이 궁에서 쫓겨나 빈자리가 느껴졌을 때도 이와같이 공허하지 않았거늘 어찌 이토록 공허한 것일까?'


숙종은 인현왕후에게 연민을 느껴 마음이 한없이 공허했던 것이다.


어느날, 숙종은 김만중이 쓴 소설 구운몽을 읽었다.


숙종은 주인공 성진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나도 언젠가는 아바마마와 어마마마처럼 세상을 떠날 것이니, 온갖 부귀영화도 한낱의 일장춘몽이 아닌가!'


숙종은 인현왕후 생각에 옥정의 처소에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궁인들로부터 이 사실을 들은 명안공주는 숙종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음을 깨닫고, 승하한 인경왕후의 조카로 자신을 친고모처럼 따르는 김춘택을 불렀다.


"춘택아, 내 듣자하니, 요사이 전하께서 옥정의 처소에 자주 들리지 아니하신다 하더구나. 이는 필시 옥정이 전하의 총애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이제 때가 왔으니, 네 종조부가 쓴 사씨남정기를 전하께 보여드리자꾸나. 허면 전하께서 과오를 깨달으시지 않겠느냐?"


"공주마마의 뜻을 따르겠나이다. 실은 그렇지 않아도 사씨남정기를 가져왔사옵니다."


김춘택이 품속에서 사씨남정기를 꺼내 내밀었다.


명안공주는 사씨남정기를 펼쳐 읽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과연 서포의 소설은 명불허전일세. 내가 전하께 이 책을 전해드릴 방도를 강구하겠네."


계유년(1693년) 4월 22일 깊은 밤, 숙종은 인현왕후 생각에 마음이 산란하여 잠이 오지 않아 궁궐을 배회하던 중 궁인들의 처소 쪽에서 새어나오는 한줄기 불빛을 보았다.


'대체 누가 여태까지 잠을 자지 않고 있는 것일까?'


숙종은 호기심에 불빛이 새어나오는 궁인의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숙종이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니 궁인 하나가 상에 음식을 성대하게 차려 놓고 촛불을 킨 채 무릎 꿇고 두손 모아 기도하고 있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상을 차려놓고 대체 무엇하고 있는 것인가?'


숙종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순간 백옥처럼 희고 고운 궁인의 얼굴이 숙종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숙종은 넋을 잃은 듯 궁인을 바라보다 말문을 열었다.


"이 야심한 밤중에 대체 무엇하고 있는 것이냐?"


궁인은 복순이었다.


이제 스물넷인 복순은 인현왕후가 폐출되었던 4년 전보다 훨씬 아름답게 성장하여 성숙미를 물씬 풍겼다.


복순이 침착하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전하, 소녀는 폐위되신 중전마마의 시녀로 마마께 하해 같은 은혜를 입었사온데, 내일이 마마의 탄신일이시라 수라상을 차린 것이옵니다. 소녀가 들은 바, 마마는 죄인임을 자처하시어 늘 거친 음식을 드시는데, 이를 애통히 여겨 마마께서 예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차려 놓고 만수무강하시기를 기도드리고 있었나이다."


복순은 말을 마치자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숙종은 그런 복순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폐비를 생각하는 너의 충정심이 참으로 갸륵하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기실 복순이 인현왕후의 탄신일 하루 전에 촛불을 켜고 상을 차린 것은 숙종에게 인현왕후의 무고함을 고하고 사씨남정기를 전해주기 위해 꾸민 일이었다.


"성은 최씨에 이름은 복순이라 하옵니다."


"복순이라......"


탁자 위에 놓여진 책 한 권이 숙종의 눈에 띄었다.


복순은 숙종의 눈길이 책에 머무르자 재빨리 책을 들어 두손으로 공손히 바친 후 촛불을 들어 책을 비추었다.


순간 책의 표지에 쓰인 '사씨남정기'와 '김만중' 두자가 촛불에 비쳤다.


숙종은 얼마 전 김만중의 구운몽을 감명깊이 읽은 터라 호기심이 생겨 한장한장 차례대로 넘겼다.


사씨남정기의 내용은 이러했다.


'유한림의 정실인 사씨는 덕이 높고 현숙하였으나 아들이 없어 대를 잇지 못하자 유한림에게 권유하여 아름다운 교씨를 첩실로 들였다. 하지만 교씨는 아들을 낳자 방자해져 오히려 정실인 사씨를 내쫓고 자신이 정실이 되기 위해 갖은 방법으로 사씨를 모함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자신의 자식을 죽여 사씨를 모함하였다. 유한림은 교씨가 자신이 낳은 아들을 죽였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여 사씨를 내쫓았다......'


교씨는 누가봐도 옥정이 틀림없었다.


교씨는 거문고에 능했고, 옥정도 거문고에 능했다.


교씨의 정부인 동청은 동평군인 듯했고, 가랑은 숙정인 듯했다.


동청이 측천무후의 고사를 예로 들며 교씨에게 딸을 죽여 사씨를 모함하라고 권하는 장면에 이르자 숙종은 섬뜩했다.


'설마 옥정이 중전을 모함한 것일까?'


옥정과 닮은 꼴인 교씨의 사악하고 잔인한 모습에 숙종은 문득 옥정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복순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전하, 중전마마께는 티끌 만큼의 죄도 없으시오나, 모함으로 죄를 받으시고 폐출되셨사오니 애통하기 그지 없사옵니다. 부디 무고하신 중전마마를 복위시켜 주시옵소서."


숙종은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만약 옥정이 모함한 것이 사실이라면 중전을 복위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허나 그것이 아니라면 실로 난감한 일이 아닌가!'


숙종은 언제부터인가 마음속으로 인현왕후를 중전이라 부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숙종이 길게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이는 쉬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지금은 네게 무어라 말할 수 없구나."


복순은 크게 낙담이 되어 연신 눈물을 흘렸다.


숙종은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복순의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 주었다.


복순은 황공하여 두 뺨이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었다.


붉게 물든 복순의 두 뺨이 몹시 고혹적이었다.


숙종은 손을 들어 복순의 뺨을 어루만졌다.


"참으로 곱구나."


"황공하옵니다."


백옥처럼 하얀 복순의 뺨이 붉게 물들자, 앵두빛나는 복순의 붉은 입술이 더욱 고혹적으로 보였다.


숙종은 부끄러워하는 복순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복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었다.


복순은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초를 바닥에 떨어뜨려 촛불이 꺼졌다.


순식간에 복순의 처소는 칠흑처럼 깜깜해졌다.


복순이 몹시 당황하며 손을 더듬어 바닥에 떨어진 초를 찾으려 하자, 숙종이 복순을 껴안으며 말했다.


"내버려 두고 과인의 뜻을 따르거라."


복순은 숙종의 명을 감히 거역하지 못해 눈을 감은 채 몸을 맡겼다.


숙종은 복순과 합궁한 이후 잠이 들었지만, 복순은 극심한 죄책감에 밤새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


'중전마마께서 이 일을 아신다면 얼마나 상심하실까? 내가 실로 큰 죄인이다. 중전마마, 부디 소녀의 불충을 용서하여 주소서!'


복순은 가슴이 아파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복순이 흐느끼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숙종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찌하여 우는 것이냐?"


"소녀, 전하의 승은을 입었사오나, 이는 중전마마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저버린 일이라, 중전마마를 뵐 면목이 없사옵니다."


숙종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복순을 바라보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궁인은 임금의 뜻을 따르는 것이 도리이니, 너는 잘못한 것이 없다. 울지 말거라."


숙종의 말에도 복순은 쉴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미 아침해가 뜨고 있었다. 날이 밝아오자 숙종이 복순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곧 날이 밝을 터이니 과인은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구나. 내 머지않아 다시 올 터이니, 그때 다시 보자꾸나."


복순의 도움을 받아 곤룡포를 입은 숙종은 처소를 나가려다 멈칫하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씨남정기를 가리켰다.


"이 책을 과인이 가져가도 되겠느냐? 사씨가 어찌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숙종이 촛불의 불빛을 보고 복순의 처소를 찾게 된 것도, 숙종이 사씨남정기를 읽게 된 것도, 이 모든 것이 김춘택의 계획으로, 척척 맞아들어가고 있었다.


복순이 사씨남정기를 주워 두손으로 공손히 바쳤다.


"소녀는 다 읽었사오니, 전하께 바치고자 하옵니다."


숙종은 미소를 머금으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복순의 손에 쥐어주었다.


"네가 과인에게 책을 선물하였으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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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63화 떡 안에 든 유골 22.12.15 78 0 9쪽
62 62화 자네는 죽는 것이 두렵단 말인가? 22.12.09 76 0 9쪽
61 61화 고육지책 22.12.08 109 1 11쪽
60 60화 천신의 진노는 소녀가 받겠나이다 22.12.07 100 1 9쪽
59 59화 유배지로 떠난 김춘택 22.12.06 82 0 9쪽
58 58화 김춘택을 제거할 방법이 있겠는가? 22.12.05 44 0 11쪽
57 57화 마마를 모살하라 22.12.05 42 0 11쪽
56 56화 폐비 민씨가 입궁했다고? 22.12.05 46 0 11쪽
55 55화 복위 22.12.05 68 0 11쪽
54 54화 변고 22.12.05 58 0 11쪽
53 53화 이미 결심하였느니라 22.12.05 36 0 11쪽
52 52화 미남계 22.12.05 48 0 11쪽
51 51화 온희야, 부디 나를 용서하거라 22.12.05 41 0 10쪽
50 50화 복순을 데려오거라 22.12.05 39 0 10쪽
» 49화 김춘택의 계획 22.12.05 40 0 11쪽
48 48화 어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겠느냐? 22.12.05 35 0 11쪽
47 47화 중전 책봉식 22.12.05 33 1 11쪽
46 46화 중전마마를 부탁하오 22.12.04 42 0 11쪽
45 45화 민씨는 거기 섣거라! 22.12.04 40 1 11쪽
44 44화 너같은 대역무도한 자는 백번 죽어 마땅하다! 22.12.04 39 1 11쪽
43 43화 폐비 전교를 내리노라! 22.12.04 55 0 11쪽
42 42화 처소로 돌아가 처분을 기다리고 있거라! 22.12.04 65 0 11쪽
41 41화 옥정이 여우였다니! 22.12.04 4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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