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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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최근연재일 :
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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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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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민씨는 거기 섣거라!

DUMMY

"뭐? 박어사님이 중전마마를 비호하는 상소를 올리셨다가 모진 고문을 당해 죽기 직전의 만신창이가 되셨다고?"


"아직은 살아계신다더냐?"


"아직은 살아계시지만, 모진 고문에 온몸이 망가져 얼마 못 사실 거래......"


"하늘도 무심하시지... 백성들의 희망인 박어사님이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가시게 생겼으니..."


중궁전은 아침부터 박태보의 소식이 전해져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한때 호남의 암행어사로 활약해 백성들이 박어사님이라 부르며 존경했던 그였기에 궁인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바로 이때였다.


스르륵.


인현왕후가 처소에서 나온 것이다.


처소 밖에서 소곤거리던 궁인들이 급히 입을 다물었지만, 인현왕후는 이미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박태보가 나를 비호하다 그리된 모양이구나......"


"중전마마......"


궁인들의 입에서 '중전마마'가 나오는 순간, 인현왕후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난, 이미 폐비된 몸이니, 나를 중전마마라 부르면 너희들까지 죄를 입을지 모르니 입 조심하거라."


인현왕후의 입에서 나온 말에 궁인들 모두 황공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오면..."


"그냥 마마라 부르면 될 것 같구나."


인현왕후는 궁인들마저 해를 입을까봐 말했다.


"아...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거늘,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전하의 노여움이 크시니 너희들은 항아리 뚜껑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있거라."


그러고는 박태보에 대한 연민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뭐라? 박태보가 폐비를 비호하다 모진 고문을 당해 죽기 직전의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옥정은 박태보가 고문 당한 이야기를 듣고 충격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박태보를 비롯한 나라의 인재들이 모진 고문을 당하고 하옥되었으니, 모든 것이 나의 욕심으로 말미암아 생긴 일이 아닌가!'


박태보는 옥정이 입궁하기 전부터 남중일색이요 학식이 깊고 지조있는 선비로 소문이 자자하여 조선팔도 여인들의 흠모 대상이었다.


약관에 장원 급제하여 지평, 교리, 정인 등 삼사의 요직을 두루 거치다 호남의 암행어사에 임명되어 수많은 부패 관료를 고발하고 조정의 잘못된 정책을 시정해 명성을 떨쳐온 박태보는 천하에 둘도 없는 인재였다.


이러한 박태보가 중전이 되고자 하는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옥정은 자책감에 눈물을 흘렸다.


"아니, 희빈마마, 우셨군요. 이 경사스러운 날에 어째서 우셨습니까?"


때마침 찾아온 숙정이 옥정 눈가의 눈물 자국을 보고 물은 것이다.


옥정은 눈물을 흘린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손을 내저었다.


"이 사람아, 내가 이 경사스러운 날에 왜 울겠가?"


그러고는 변명하기를.


"눈꼽이 끼여 눈을 좀 부볐더니..."


옥정은 숙정이 자신의 어수룩한 변명을 믿을 것 같지 않아 얼버무린 것이다.


바로 이때 숙정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로 뜻밖이었다.


"박태보를 그냥 두실 작정이시옵니까?"


옥정이 의아한 얼굴로 대뜸 물었다.


"박태보는 죽기 직전의 만신창이가 되었다던데, 나더러 뭘 어쩌라는 건가?"


숙정은 옥정이 자신의 말을 못알아 들을 리가 없을 것 같아 확인하듯 물었다.


"정녕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옵니까?"


"놔둬도 죽을 사람을 어쩌란 건가?"


옥정은 숙정의 뜻을 알면서도 되물은 것이다.


숙정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쳤다.


"지금 백성들이 박태보 칭찬하느라 야단이옵니다. 이를 그냥 두면, 박태보는 백성들 사이에서 만고의 충신으로 길이 남을 터인데, 그렇게 된다면, 민심이 어찌 되겠사옵니까?"


옥정은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곧 죽을 사람을 죽게 만드는 건 사람이 할 짓이 못되는 것 같네."


"게다가 박태보는 충신이 맞지 않은가?"


옥정의 말이 못마땅한 듯 숙정은 표독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충신이라 해도 죽을 짓을 했다면 죽어야 마땅하지 않겠사옵니까?"


"박태보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단 말인가?"


"박태보는 폐비를 비호한 것도 모자라, 감히 폐비를 모함한 자의 목을 베라 하였사온데, 폐비를 모함한 자가 누구를 일컫는 말이겠사옵니까?"


옥정은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폐비를 모함한 사람은 바로 옥정 자신이었으니.


"이런 자가 편안히 죽도록 내버려두실 작정이시옵니까?"


숙정이 계속 다그쳤지만, 옥정은 끝내 고개를 저었다.


"이미 끝난 일일세. 박태보는 곧 죽을 사람인데, 시시비비를 가린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숙정은 옥정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말했다.


"하오면, 폐비의 오라비들도 그냥 두실 생각이시옵니까?"


옥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폐비의 오라비들을 죽인들, 내게 무슨 덕이 되겠는가?"


복수심으로 불타는 숙정으로선 환장할 노릇이었다.


"폐비의 오라비들을 살려두면, 나중에 큰 화근이 될지 어찌 알겠사옵니까?"


박태보의 일로 인해 마음이 약해진 옥정은 이번에도 끝내 고개를 저었다.


"화근이 되면 그때 처리해도 늦지 않을 걸세."


숙정은 한숨을 푹 내쉬며 한마디 했다.


"희빈마마의 마음이 약해지신 것 같사옵니다."


옥정은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마음이 약해진 게 사실이네."


그러고는 덧붙였다.


"좀 더 지켜보세. 폐비의 오라비들과 서인들의 동태를 철저히 파악해, 화근이 된다 싶으면 그때 처리하도록 하세."


박태보가 인현왕후의 오라비 민진후와 민진원의 사주를 받아 상소를 올렸을 것이란 말로 숙종의 심기를 건드린 장본인이 바로 옥정이었다.


하지만, 박태보의 일로 마음이 약해진 옥정은 더 이상의 피를 원하지 않았다.


숙정은 더 말해봤자 옥정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희빈마마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전 이만 물러가 민심의 동향이나 살펴보도록 하겠사옵니다."


옥정은 좋은 생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 살펴보고, 자네가 살펴본 걸 내게도 말해주게."


숙정이 물러나자 옥정은 주먹을 불끈 쥔 채 다짐했다.


'반드시 폐비보다 백성들의 존경받는 국모가 되고야 말리라!'


"마마, 전하께서 전교를 내리시길, 민씨는 덕이 없고 투기를 일삼았으며, 선왕과 선후의 교지를 지어내 후궁을 모함하여 이에 폐출하여 폐서인으로 삼을 것이니, 민씨는 교지를 받는 즉시 궁을 떠나라 하였으니, 전교를 받드소서..."


5월 2일, 숙종의 명을 받은 감찰상궁이 인현왕후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전교를 전했다.


인현왕후는 태연하게 중전의 예복을 벗고, 관을 내리고, 비녀를 풀은 후 전교를 받았다.


감찰상궁이 떠나자 인현왕후는 자신을 섬기던 상궁들과 궁인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기 마련이니, 내가 떠난다 하여도 슬퍼하지 말거라. 이승에서 다시 만나지 못한다면 저승에서라도 만날 날이 있을 터이니,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거라."


인현왕후가 궁인들에게 하직인사를 받고 있을 때 복순도 눈물을 떨구며 하직인사를 했다.


"마마, 소녀, 궁을 떠날 수 없사오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인현왕후는 눈물을 흘리며 복순의 손을 잡았다.


소싯적부터 지금까지 고락을 함께 해왔던 복순은 인현왕후의 분신과도 같았다.


"내 마음이 너와 함께 있거늘, 우리가 헤어진다 하여 달라질 것이 뭬 있겠느냐. 내가 이제 마지막으로 명을 내리나니, 너는 여기서 전하를 잘 모시거라. 그간 나를 지극한 마음으로 모시던 너의 정성을 결코 잊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니, 내가 없어도 부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거라."


"중전마마......"


인현왕후가 입 조심하라는 듯 입에 손가락을 대며 복순의 말을 잘랐다.


"마마라 부르라 하지 않았느냐?"


"마마......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지금 이 상황에서 복순이 인현왕후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 뿐이었다.


인현왕후는 네 마음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도 건강하게 잘 살거라..."


"마마......"


복순이 말을 잇지 못하고 애통하게 눈물을 흘리는 걸 시작으로 인현왕후를 모시던 궁인들이 대성통곡하니 중궁전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복순은 눈물을 비오듯 쏟으며 통곡하는 와중에도 월매에게 눈짓을 보냈다.


너라도 따라가라는 뜻이었다.


중궁전을 나선 인현왕후가 사가에서 보낸 교자에 오르는 순간.


"마마!"


복순의 눈짓을 본 월매가 죽음을 무릎쓰고 따라가려는 것이다.


향춘, 금순, 춘화, 복희 역시 복순이 월매에게 눈짓하는 걸 보고 따라가려했다.


인현왕후가 허락할 수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너희들은 궁에 속한 몸인데, 어찌 하여 나를 따르려 하는 것이냐? 돌아가거라."


월매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저희들은 마마의 사가 하녀들었다가 입궁한 몸이라, 마마를 따라가도 전하께서 벌하지 않으실 것이니, 부디 마마를 따라가도록 윤허해 주소서."


"돌아가라 하지 않았느냐? 전하께서 진노하실 수 있으니, 내 말을 듣거라."


"마마, 부디 저 한 사람이라도 따라가도록 윤허해 주소서."


"내 명에 따르거라."


월매가 두 손을 모아 애원했지만, 인현왕후는 손사래를 치며 끝내 외면했다.


"어서 출발하자."


인현왕후를 태운 교자가 출발하려는 순간이었다.


"민씨는 거기 섣거라!"


인현왕후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옥정을 따르는 궁인들이었다.


옥정을 따르는 궁인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인현왕후가 탄 교자 앞을 가로막았다.


인현왕후는 어처구니가 없어 물었다.


"궁을 떠나라는 전하의 명을 받고 떠나려는데, 어째서 못가게 막는 것이냐?"


인현왕후의 물음에 옥정을 따르는 궁인들은 대답하지 않은 채 서로 눈짓을 주고 받았다.


이들의 목적은 둘이었다.


하나는 궁을 떠나는 인현왕후에게 수모를 주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현왕후가 떠나는 걸 지연시켜 숙종의 진노를 유발시키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희빈마마의 명을 받고, 민씨가 감춘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려 온 것이오."


옥정을 따르는 궁인들 중 하나가 그럴듯하게 꾸며낸 말이다.


그야말로 말 그대로 안하무인이었다.


격분한 월매가 호통쳤다.


"이것들아! 마마께서 비록 폐비되셨다 하나, 너희들의 무례함은 전하께서도 절대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때 인현왕후가 손을 들어 월매를 만류했다.


"월매야, 넌 가만히 있거라. 지금 중궁전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희빈이니, 희빈의 명에 따르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러고는 교자에서 내려와 자신의 옷을 뒤져보라는 듯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하께서 곧바로 궁을 떠나라 명하셔 지체할 수 없으니, 희빈의 명대로 어서 뒤져보거라."


궁인들 중 하나가 인현왕후의 몸을 뒤졌지만, 그 어떤 것도 나올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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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5화 복위 22.12.05 67 0 11쪽
54 54화 변고 22.12.05 58 0 11쪽
53 53화 이미 결심하였느니라 22.12.05 36 0 11쪽
52 52화 미남계 22.12.05 48 0 11쪽
51 51화 온희야, 부디 나를 용서하거라 22.12.05 41 0 10쪽
50 50화 복순을 데려오거라 22.12.05 39 0 10쪽
49 49화 김춘택의 계획 22.12.05 40 0 11쪽
48 48화 어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겠느냐? 22.12.05 35 0 11쪽
47 47화 중전 책봉식 22.12.05 33 1 11쪽
46 46화 중전마마를 부탁하오 22.12.04 42 0 11쪽
» 45화 민씨는 거기 섣거라! 22.12.04 40 1 11쪽
44 44화 너같은 대역무도한 자는 백번 죽어 마땅하다! 22.12.04 38 1 11쪽
43 43화 폐비 전교를 내리노라! 22.12.04 5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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