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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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최근연재일 :
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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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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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너같은 대역무도한 자는 백번 죽어 마땅하다!

DUMMY

'임금이 왕후를 두는 것은 종묘사직을 이어 만백성 위에 군림하여 만세를 대대로 계승하는 경사이거늘 국모이신 중전을 폐위하시는 일은 신하들과 백성들의 기대에 크게 어긋나는 바이옵니다.


서전에 이르기를, 부모님의 삼년상을 함께 지낸 아내는 버릴 수 없다 하였으며, 또한 부모가 사랑하신 것은 나도 사랑한다 하였는데, 전하께서는 중전마마와 대비마마의 삼년상을 지내셨고, 대비마마께서 중전마마를 지극히 사랑하신 것을 생각하신다면, 어찌 전하의 지극하신 효성으로 중전마마를 폐출하실 수 있겠나이까?


전하께서 참소하는 자의 말을 들으신 까닭에 무고하신 중전마마를 의심하시는 것이 아닐까 사료되오나, 중전마마께서 새하얀 옥처럼 티끌 하나 없음을 보시지 않으셨나이까?


전하께서 폐비 전교를 거두어 신하들과 백성들의 바람을 좇으시오면 종사와 백성들에게 큰 복이 될 것이오니, 엎드려 바라건대 폐비 전교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숙종은 상소를 보자 크게 격노해 승지를 불렀다.


"상소의 내용이 지극히 폐역스러워 오두인과 연명한 자들을 친히 국문할 것이니 모두 잡아들이라! 오두인을 당장 파직시키고, 그의 아들 오태주도 파직시키라!"


이때 오두인은 마당에 나와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하고 있었다.


'하늘이시여! 부디, 전하께서 마음을 돌이키셔서 폐비 전교를 거두도록 하여 주소서!'


오두인의 얼굴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하께서 박태보의 상소를 읽으시면 필시 노여워하실 터인데, 내 목숨은 아깝지 않으나 내 아들까지 화가 미치지 않을지...'


오두인은 박태보의 상소로 인해 자신의 아들마저 화를 입을까봐 두려웠다.


오두인은 알고 있었다.


숙종이 박태보의 상소를 읽으면 필시 격노할 것임을.


박태보를 말리지 않은 것은 그렇게 상소를 쓰지 않으면 숙종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희빈의 모함만 믿고 티 하나 없으신 중전마마를 폐비시킨 전하가 아니신가!'


마당에 나와 있던 명안공주는 잔뜩 불안해 하는 오두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아버님, 전하께서 이 며느리의 얼굴을 봐서라도 아버님께서 올리신 상소를 크게 문제삼지 않을 터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소서."


오두인은 이러한 명안공주의 예상이 너무도 어긋난 것임을 알았지만, 미소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아비는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으니, 심려치 마소서."


바로 이때 희재가 관병들을 이끌고 들이닥쳤다.


"폐역한 상소를 올려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힌 죄인 오두인은 오라를 받아라!"


희재의 말에 명안공주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 감히 내 시아버님을 오라로 묶겠다는 거냐? 장희재 네가 그러고도 살 수 있을 성 싶으냐!"


명안공주는 필사적으로 시아버지가 끌려가는 걸 막으려 했지만, 그런다고 해서 물러설 희재가 아니었다.


희재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소신이 전하의 어명을 받고 오두인을 체포하러 왔사온데, 공주마마께서 막으신다면 전하의 어명을 거역하게 되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소신, 공주마마께 결례를 범할 수 없사오니, 부디, 헤아려주시옵기를 청하옵니다."


명안공주는 망연자실해 털석 주저앉아 탄식했다.


"아! 전하께서 어찌 내 시아버님을 체포하실 수 있단 말인가!"


오두인이 오라에 묶여 끌려가며 당부했다.


"공주마마, 제 아들이 체포되지 않았으니, 이야말로 전하의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사오니, 부디 자중하소서. 부디......"


오두인이 애원하듯 말하자 명안공주는 깨달았다.


'자칫하면 낭군님까지 오라에 묶여 끌려가실 수 있겠구나!'


명안공주는 시아버지가 끌려가는 걸 보고도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때는 이미 어두운 밤이라 상소를 올린 80여 명이 한밤 중에 잡혀 들어왔다.


숙종은 친히 국문을 열어 세 사람을 엄히 문초했다.


"너희들은 대체 누구의 사주를 받고 폐역무도한 상소를 올렸느냐?"


일흔을 바라보는 오두인과 이세화가 곤장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버리자, 숙종은 상소를 쓴 박태보를 문초하기 시작했다.


"박태보, 너는 어찌하여 폐역스러운 상소를 쓴 것이냐?"


남중일색이라 불리울 정도로 빼어난 미남자인 박태보는 숙종의 대성일갈에도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하께서 참소에 현혹되시어 죄없는 국모를 페출하시려 하시니, 신하된 자로서 어찌 간하지 않겠나이까? 엎드려 바라건대, 참소하는 자의 목을 베고 폐비 전교를 거두어 주옵소서."


참소하는 자의 목을 베라는 말에 숙종이 격노했다.


"이런 고얀지고! 나는 참소를 듣는 어리석은 임금이고, 자기는 임금의 잘못을 간하는 충신이라 하니, 너같은 대역무도한 자는 백번 죽어 마땅하다!"


"전하, 임금은 아비와 같고 중전은 어미와 같은데, 소신의 목숨이 붙어있는 한 어찌 죄없이 폐출되시는 중전마마를 구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박태보의 말이 절절했지만 상소의 몇구절에 심기가 뒤틀린 숙종의 노여움은 커져만 갔다.


"여봐라! 저 자가 과인이 죄없는 사람을 폐출한다 모함하니, 곤장을 쳐라!"


옥리가 인정사정없이 곤장을 내리쳤지만, 박태보는 신음 한번 내지 않았다.


박태보가 정신을 잃자 숙종은 곤장을 멈추게 한 후 찬물을 끼얹어 깨웠다.


"네 죄를 자복하지 않겠느냐?"


"신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모르겠사옵니다."


"너는 과인이 무고한 사람을 폐출한다 하지 않았느냐? 감히 과인을 모함하고도 죄를 자복하지 않을 것이냐?"


"소신이 어찌 전하를 모함할 수 있겠나이까? 소신은 단지 중전마마의 무고함을 아뢰었을 따름이옵니다."


"폐비는 꿈을 빙자하여 선왕과 선후의 교지를 지어내어 과인을 기만하고 후궁을 모함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자가 태어난 후로 투기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으니, 실로 나라의 죄인이다. 헌데도 너는 감히 폐비를 비호하는 것이냐?"


"중전마마께서 꿈을 말씀하신 것은 실언에 불과하고, 궁중에서 투기란 작은 허물에 불과한 일이온데, 어지신 전하께서 어찌 너그러이 관용을 베풀지 아니하시나이까?"


"고얀지고! 죄인의 신분으로 어찌 감히 과인에게 훈계하는 게냐? 네가 죄지은 폐비를 비호하며 과인을 능멸하니, 백번 죽어 마땅하다. 네가 살 수 있을 성 싶으냐?"


"전하께서 소신을 죽이시려는 연유를 알지 못하겠사옵니다."


"네가 간악한 무리와 결탁하여 과인을 모함하기 때문이다. 폐비의 오라비 민진후 형제가 네게 상소를 올리라 사주한 것이 아니냐?"


"소신이 과거에 중전마마의 부친을 탄핵하여 민진후 형제와는 원수처럼 지냈사온데, 어찌 소신이 민진후 형제의 사주를 받았겠나이까?"


"허면 네게 폐역스러운 상소를 올리라 사주한 자가 누구란 말이냐?"


"상소는 소신이 여러 사람들과 의논하여 쓴 것이온데, 어찌 사주한 자가 있겠나이까?"


"폐역스러운 상소를 네가 쓴 것이라면, 어찌 죄를 자복하지 않는 것이냐?"


"소신은 단지 중전마마의 무고함을 아뢰었을 뿐이온데, 소신이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씀인지 모르겠사옵니다."


계속되는 문초와 고문에도 박태보가 끝내 죄를 인정하지 않자, 숙종은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참으로 독물이구나! 이런 독물은 곤장으로는 되지 않으니, 압슬형을 받아야 될 것이다! 여봐라! 압슬하는 형구를 가져오거라!"


옥리가 압슬 형구를 가져와 박태보에게 압슬형을 가했다.


압슬형을 받은 박태보는 무릎이 부서져 뼈마디가 드러났지만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


숙종은 이성을 잃어 앉았다 일어섰다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박태보에게 화형을 가할 것을 명했다.


새빨갛게 달궈진 인두가 박태보의 온몸을 지지며 참혹한 화형이 계속 되었으나 박태보는 끝내 자복하지 않았다.


숙종은 마침내 박태보의 기개에 탄복하여 고문을 중단시킨 후 승지에게 명했다.


"박태보를 달래어 죄를 자복받고 옥에 가두거라."


승지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박태보에게 연민을 느꼈지만 숙종의 명을 어길 수 없어 호통쳤다.


"어인 일로 전하의 진노를 사서 이 모양이 되었느냐? 어서 죄를 자복하지 못하겠느냐?"


박태보가 눈을 부릅뜨며 승지를 꾸짖었다.


"나라의 녹을 받는 자가 간사한 말로 임금에게 아첨하고, 죄없는 국모께서 폐출당하시는 것을 보고도 오히려 이를 막으려는 나를 꾸짖으니, 금수와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나는 죽어서도 충신이 되겠지만 너는 죽어 간신이 될 것이니, 그 화가 자손에게 미칠 것이다!"


승지는 박태보의 꾸짖음에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박태보는 끝내 죄를 자복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승지가 보고하자 숙종은 고개를 흔들며 탄식했다.


"하... 그만하면 되었다. 이제 문초를 모두 끝내거라."


밤새 국문을 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숙종이 자리에 누우려 할 때였다.


"전하!"


명안공주가 대전에 뛰어 들어온 것이다.


명안공주는 시아버지가 혹독하게 고문당한 소식을 듣고 급히 온 것이다.


명안공주는 무릎 꿇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간청했다.


"전하, 소녀의 시아버님께서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하오나, 부디 소녀의 낯을 보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두인은 대역무도한 죄를 지어 용서할 수 없다. 곧 의주로 유배를 보낼 것이니, 그리 알고 물러가거라."


'소녀의 시아버님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정신을 잃도록 곤장을 때리고 문초하셨사옵니까?'


명안공주는 이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남편까지 화를 입을까봐 이를 악물고 참고 있었다.


"소녀의 시아버님이 대체 무슨 죄를 지으셨길래, 야심한 시간에 국문하였으며 유배를 보내시는 것이옵니까?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오두인은 과인에게 폐역무도한 상소를 올리는 것을 주동하였거늘 어찌 용서하라 하는 것이냐? 참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나 너의 낯을 보아 형을 낮춘 것이니, 이만 물러가거라."


명안공주가 숙종을 원망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전하, 너무 하시옵니다! 어찌 전하의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소녀에게 이러실 수 있사옵니까? 변하셨사옵니다! 예전의 전하가 아니시옵니다!"


"어허, 감히 네가 항명하는 것이냐? 어서 물러가지 못할까?"


숙종이 눈을 부릅뜨고 호통치자 명안공주는 남편에게까지 화가 미칠까 두려워 눈물을 머금고 대전을 나섰다.


명안공주는 인현왕후가 궁에서 쫓겨나기 전에 알현하기 위해 내전으로 향했지만, 내금위 병사들이 앞을 가로 막았다.


"공주마마,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아무도 내전에 출입시키지 말라는 전하의 지엄하신 명이 계시어 들어가실 수 없나이다."


명안공주는 땅에 털썩 주저 앉은 채 애통하게 눈물을 흘렸다.


'중전마마, 부디 다시 뵙게 될 그날까지 옥체 보중하시고 만수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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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자네는 죽는 것이 두렵단 말인가? 22.12.09 76 0 9쪽
61 61화 고육지책 22.12.08 109 1 11쪽
60 60화 천신의 진노는 소녀가 받겠나이다 22.12.07 100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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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5화 복위 22.12.05 68 0 11쪽
54 54화 변고 22.12.05 58 0 11쪽
53 53화 이미 결심하였느니라 22.12.05 36 0 11쪽
52 52화 미남계 22.12.05 48 0 11쪽
51 51화 온희야, 부디 나를 용서하거라 22.12.05 41 0 10쪽
50 50화 복순을 데려오거라 22.12.05 39 0 10쪽
49 49화 김춘택의 계획 22.12.05 40 0 11쪽
48 48화 어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겠느냐? 22.12.05 35 0 11쪽
47 47화 중전 책봉식 22.12.05 33 1 11쪽
46 46화 중전마마를 부탁하오 22.12.04 42 0 11쪽
45 45화 민씨는 거기 섣거라! 22.12.04 40 1 11쪽
» 44화 너같은 대역무도한 자는 백번 죽어 마땅하다! 22.12.04 39 1 11쪽
43 43화 폐비 전교를 내리노라! 22.12.04 55 0 11쪽
42 42화 처소로 돌아가 처분을 기다리고 있거라! 22.12.04 65 0 11쪽
41 41화 옥정이 여우였다니! 22.12.04 4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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