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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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최근연재일 :
2023.0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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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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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천신의 진노는 소녀가 받겠나이다

DUMMY

"온희야, 어찌 나를 두고 먼저 떠난 것이냐? 어찌 나를 버리고 떠난 것이냐? 미안하구나! 오라비가 되어 어린 시절부터 몸이 허약했던 너를 잘 보살펴주기는 커녕, 네 시아버지를 해쳐 천추의 한으로 남게 만들어 이렇게 떠나보냈으니, 구천에 계신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무슨 낯으로 뵐 수 있겠느냐? 이 못난 오라비를 부디 용서하거라!"


호사다마라 했던가.


이듬해 을해년(1695년), 숙종의 누이동생 명안공주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허약했던 명안공주는 시아버지 오두인이 모진 고문으로 세상을 떠난 후 마음에 병을 얻어 몸이 쇠약해졌는데, 이때에 이르러 큰 병이 생겨 세상을 떠난 것이다.


숙종은 명안공주의 부음을 듣자 몹시 애통해하며 땅을 치며 대성통곡했다.


'공주, 부디, 저승에서 편히 쉬시길 바라겠소!'


친자매보다 정분이 두터웠던 명안공주였기에 인현왕후는 슬픔을 금할 수 없었지만, 누이를 잃어 비탄에 잠긴 숙종을 더욱 슬프게 만들까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소리없이 흐느꼈다.


"마마, 지금은 몸을 바짝 낮출 때이옵니다. 민씨에게 못 이기는 척하시고 문안가소서. 부디..."


숙정은 옥정이 인현왕후에게 문안가지 않는 일로 날벼락이 떨어질까봐 노심초사였다.


"세자의 어미인 나더러 민씨에게 문안가라니! 문안올려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민씨란 말일세!"


옥정은 숙정의 말이 지극히 옳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심사가 단단히 뒤틀린 탓에 숙정의 입에서 문안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이성을 잃고 펄쩍 뛰었다.


옥정이 이러하니 숙정으로선 날벼락이 떨어지지 않기를 비는 수 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희빈이 아직까지 단 한 차례도 중전께 문안올린 적이 없다니! 이런 고얀......"


숙종은 복순으로부터 옥정이 인현왕후에게 문안을 올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전해듣자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주상 전하께 좋지 않은 일을 전해드려 황공할 따름이옵니다."


복순은 어질기 짝이 없는 인현왕후가 이를 문제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지만, 숙종이 극도로 노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쾅!


분노한 숙종은 탁자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쳤다.


"사약을 내려도 시원찮거늘! 감히 세자의 위세를 믿고 이토록 방자하다니! 못된 것!"


"주상 전하! 그렇게 노하시면 옥체에 해로우니, 부디 고정하소서!"


복순이 진정시키려 했지만, 숙종은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극약 처방을 내렸다.


"오늘부터 세자에게 희빈에게는 문안올리지 말라 이르거라! 중전께 문안조차 올리지 않는 희빈은 세자에게 문안받을 자격조차 없으니 말이다!"


숙정이 우려하던 대로 옥정에게 최악의 일이 벌어진 셈이었다.


"뭐라! 내가 세자의 문안을 못 받을 거라고 하였느냐? 주상 전하께서 그와 같이 참담한 명을 내리셨단 말이더냐?"


옥정은 내관으로부터 숙종의 명을 전해듣자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흑흑... 모든 걸 잃고 세자보는 낙으로 버텨왔거늘...... 숙정의 말대로 문안가는건데......"


옥정은 목을 놓아 울며 중얼거렸지만, 이미 엎지른 물이었다.


보다 못한 숙정이 위로의 말을 건네며 말했다.


"희빈마마, 심려치 마소서. 소첩이 영풍군 부인을 통해서라도 민씨를 설득해보겠나이다."


숙정은 동평군의 어머니 신씨를 동원해 인현왕후를 움직여 숙종이 명을 거두게 만들 생각이었다.


인현왕후가 인자하기 짝이 없다는 점을 이용할 속셈이었던 것이다.


옥정은 눈물을 흘리며 숙정에게 하소연했다.


"내, 자네만 믿겠네. 부디 좋은 소식을 전해주게나. 세자마저 보지 못한다면 나는 죽은 목숨이네."


옥정의 말은 과장이 있을지는 모르나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옥정이 내전에서 쫓겨난지 수 년이 지나도록 숙종은 취선당에 발걸음조차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숙종은 세자도 인현왕후의 슬하에서 키우도록 조치했으니 옥정은 지아비도 아들도 잃은 셈이었다.


이러한 옥정에게 유일한 낙은 조석으로 세자 윤의 문안을 받는 일이었지만, 세자의 문안마저 금지당하고 말았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나더러 중전마마를 설득해달라고! 나를 죽게 만들셈인가! 주상 전하께서 아시면 그 화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냔 말일세!"


신씨는 인현왕후를 설득해 달라는 숙정의 말을 듣자 펄쩍 뛰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 동평군과 함께 인현왕후를 폐위시키는데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패가망신할 뻔한 것을 인현왕후의 간청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신씨였다.


이러한 신씨로서는 더 이상 인현왕후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희빈마마의 상심이 말할 수 없이 크신데 모른 체 하실 것입니까? 비록 희빈마마께서 지금은 간악한 자들의 농간으로 처량한 신세가 되셨으나, 세자의 친모가 아니십니까? 세자께서 즉위하시는 날엔 소녀가 나서서라도 신세를 톡톡히 갚겠사오니, 부디 희빈마마의 고충을 외면치 말아주소서."


옥정이 세자의 어미임을 내세운 숙정의 부탁을 거절하기도 어려운 신씨였다.


세자가 왕위에 오른 후의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때 아버지처럼 따랐던 조사석을 귀향보내 죽게 만들었던 옥정이 아닌가!


이러한 옥정의 원망을 사면 그 화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신씨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으나, 내 기회를 엿보아 중전마마께 간청드려볼 터이니, 자네가 희빈마마께 잘 말씀드려주게나."


숙정의 보고를 듣자 옥정은 분함을 참지 못하고 불만을 터뜨렸다.


"지금 당장 병이 나 죽게 생겼는데 기회를 엿보겠다고? 지금 당장 민씨를 설득하라고 가서 다시 전하게!"


숙정은 옥정의 손을 잡고 간청했다.


"마마, 부디 고정하소서. 이 모든 것이 마마를 위해서입니다. 공주마마께서 세상을 떠나신 일로 주상 전하께서 상심이 크신데, 자칫 일을 그르치면 그 화가 마마께 미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옥정은 이제야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구나. 이럴 때일수록 참아야지."


가까스로 이성을 찾은 옥정이었지만, 인현왕후를 원망하는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갔다.


'민씨가 하루 빨리 죽기를 천신께 기도하는 수 밖에!'


바로 이때 옥정의 뇌리를 전광석화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그거야! 용한 무당에게 방자하도록 하여 민씨를 죽게 만드는 거야!'


옥정이 대뜸 물었다.


"자네 의모는 잘 지내는가?"


숙정의 의모는 태자방으로 용하기로 유명한 무당이었다.


숙정은 옥정의 뜻을 눈치채자 알면서도 근심어린 얼굴로 물었다.


"제 의모님께서는 건강히 잘 지내십니다만, 특별히 하명하실 분부라도 있으신지요."


옥정은 숙정의 손을 덥썩 잡으며 말했다.


"내가 무얼 부탁하려는지, 자네가 잘 알걸세. 자네 의모이니, 자네의 간청을 외면하지 않을 터, 부디 내 부탁을 외면하지 말게나. 자네마저 나를 돕지 않는다면 누가 돕겠는가 말일세."


옥정은 숙정이 자신의 부탁을 거절할까봐 걱정이었다.


기실, 옥정과 숙정은 전혀 다른 처지였다.


남편이 제주도에 귀향가있는 숙정으로선 몸을 바짝 낮춰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공연히 문제를 일으키면 남편이 귀향지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


하지만, 옥정의 처지는 달랐다.


중전의 자리도, 숙종의 총애도, 세자의 문안도, 모든 것을 잃은 옥정으로선 인현왕후가 죽기를 바랄 뿐이었던 것이다.


"정녕 이 어미가 중전마마를 저주해주길 바라느냐?"


태자방은 수양딸의 간청을 거절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백성들의 존경받는 인현왕후를 저주하기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하옵니다. 부디, 소녀의 청을 들어주소서."


숙정이 재차 간청하자 태자방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녕 그것이 내 딸의 청이라면 이 어미의 목숨을 걸고라도 방자(다른 이가 재앙이나 불행이 닥치기를 기원하는 행위)할 수 밖에......"


숙정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목숨을 걸다니요....... 예전에 대비마마를 방자하실 땐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는데, 어찌 그런 불길한 말씀을......"


"대비마마께서는 지으신 죄가 많으셔서 방자하여도 천신의 진노를 사지 않았지만, 작금의 중전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니......"


태자방은 여기서 말을 멈추었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


숙정은 속으로 탄식했지만, 옥정의 명령이였기에 돌이킬 방도가 없었다.


숙정은 독한 마음을 먹고 입을 열었다.


"어머님, 천신의 진노는 소녀가 받겠나이다. 그러니, 부디......"


태자방은 그럴 수는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다. 방자로 인해 천신께서 진노하신다면 마땅히 방자한 사람이 받아야지.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이 어미가 방자하겠다고 희빈마마께 전해드리거라."


숙정은 의모인 태자방에게 죄송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엎드려 큰절을 했다.


"소녀, 어머님께 송구할 따름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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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자네는 죽는 것이 두렵단 말인가? 22.12.09 76 0 9쪽
61 61화 고육지책 22.12.08 109 1 11쪽
» 60화 천신의 진노는 소녀가 받겠나이다 22.12.07 100 1 9쪽
59 59화 유배지로 떠난 김춘택 22.12.06 82 0 9쪽
58 58화 김춘택을 제거할 방법이 있겠는가? 22.12.05 43 0 11쪽
57 57화 마마를 모살하라 22.12.05 42 0 11쪽
56 56화 폐비 민씨가 입궁했다고? 22.12.05 46 0 11쪽
55 55화 복위 22.12.05 67 0 11쪽
54 54화 변고 22.12.05 58 0 11쪽
53 53화 이미 결심하였느니라 22.12.05 36 0 11쪽
52 52화 미남계 22.12.05 48 0 11쪽
51 51화 온희야, 부디 나를 용서하거라 22.12.05 40 0 10쪽
50 50화 복순을 데려오거라 22.12.05 39 0 10쪽
49 49화 김춘택의 계획 22.12.05 40 0 11쪽
48 48화 어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겠느냐? 22.12.05 35 0 11쪽
47 47화 중전 책봉식 22.12.05 33 1 11쪽
46 46화 중전마마를 부탁하오 22.12.04 42 0 11쪽
45 45화 민씨는 거기 섣거라! 22.12.04 39 1 11쪽
44 44화 너같은 대역무도한 자는 백번 죽어 마땅하다! 22.12.04 38 1 11쪽
43 43화 폐비 전교를 내리노라! 22.12.04 55 0 11쪽
42 42화 처소로 돌아가 처분을 기다리고 있거라! 22.12.04 65 0 11쪽
41 41화 옥정이 여우였다니! 22.12.04 42 1 11쪽
40 40화 소매 안에 뭔가를 감춘 것이 아니냐? 22.12.03 4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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