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개정판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로맨스

조정우
작품등록일 :
2019.02.01 10:00
최근연재일 :
2023.01.07 13:00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6,889
추천수 :
37
글자수 :
322,225

작성
22.12.05 19:00
조회
67
추천
0
글자
11쪽

55화 복위

DUMMY

"죄인이 어찌 번거롭게 외부인을 접견하고 죄인의 몸으로 어찌 어찰을 받겠는가? 돌아가서 전하께 죄인의 몸으로 어찰을 받는 일은 황공하여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전해 주게."


사관이 여러차례 인현왕후에게 어찰을 받을 것을 간곡히 청했지만, 인현왕후는 방문을 굳게 닫은 채 침묵할 뿐이었다.


사관은 할 수 없이 돌아가 숙종에게 인현왕후의 말을 전했다.


숙종은 사관이 전하는 말을 듣자 크게 탄식하였다.


"과연 중전다운 기개로구나! 중전의 기개는 대나무처럼 곧아 예전에도 과인이 탄복하곤 하였거늘, 세월이 유수처럼 흘렀건만 중전의 기개는 변함이 없구나!"


숙종은 붓을 들어 새 어찰을 써내려갔다.


'처음에 참언하는 말에 혹하여 잘못 처분하였으나 이내 깨달아 참언한 자의 심사를 훤히 알고 중전의 무고함을 알게 되었소.


그리움과 답답한 마음이 세월이 갈수록 깊어져 때때로 꿈에서 만나면 중전이 나의 용포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니 깨어나도 하루종일 중전 생각으로 마음이 공허한데, 이러한 과인의 마음을 어찌 짐작이나 할수 있겠소?


잘못된 처분을 바로잡아 옛 인연을 이을 것을 자나깨나 잊지 아니하였으나, 나라의 처사가 용이하지 않아 결단하지 못하고 머뭇거린 지가 어언 여섯 해가 흘렀소.


다행히도 간신들이 진신들을 해치려한 흉역스러운 계략이 남김없이 드러나 간신들을 내쫓고 진신들을 다시 불러들였으니, 어찌 중전을 만날 기약이 없을 수 있겠소?


부디 과인을 용서하고 궁으로 돌아오시오.'


숙종은 과거를 회상하며 어찰을 쓰던 중에 우아하고 기개 있는 인현왕후의 모습이 떠오르자 만감이 교차하여 눈물을 흘렸다.


숙종은 어찰을 쓴 후 조상궁을 불렀다.


"중전의 답신을 받아오라. 중전의 답신을 받아오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말거라."


숙종의 명으로 인현왕후의 사가를 찾아간 조상궁은 인현왕후의 처소 방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소첩 조상궁, 이제야 중전마마께 문안드리옵니다. 중전마마의 폐출을 막지 못한 죄, 중하여 죽어 마땅하오나 중전마마의 복위하심을 보기까지는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어 부끄러움을 알면서도 살아있었던 것이오니, 부디 소첩의 불충을 용서하여 주소서."


인현왕후는 조상궁의 말에 크게 감격하여 마침내 굳게 닫혔던 방문을 열었다.


방문이 열리자, 조상궁은 인현왕후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인현왕후의 안색은 중병에 걸린 사람처럼 몹시 초췌하였고, 복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중전이었을 때의 당시의 건강했던 기색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상궁은 이러한 인현왕후의 모습을 보자 큰 충격을 받아 몹시 슬퍼하며 애통하게 울었다.


"중전마마를 보살펴 드리지 못한 불충을 용서하여 주소서."


인현왕후가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조상궁, 자네가 이렇게 건강히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기쁘기 그지 없거늘, 어찌 그리 말하는 것이냐? 화와 복은 하늘의 뜻이니 자책하지 말거라."


조상궁은 그제서야 인현왕후에게 어찰을 공손히 바쳤다.


인현왕후는 숙종이 거처하는 경덕궁 방향으로 네 번 절한 후 어찰을 펼쳤다.


담담한 표정으로 어찰을 읽어 내려갔지만 인현왕후의 눈빛에는 슬픈 기색이 역력하였다.


'부디 과인을 용서하고 궁으로 돌아오시오.'


인현왕후는 어찰의 마지막 문장을 읽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인현왕후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 말이 없자 조상궁이 엎드려 간청했다.


"전하께서 명하시길, 중전마마의 답신을 받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 하셨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답신을 내려주시옵소서."


인현왕후가 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너는 돌아가 전하께 '죄지은 몸으로 답신을 올리는 것은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아뢰거라."


인현왕후에게 하직인사를 올린 조상궁은 입궐하여 숙종에게 아뢰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중전마마께서는 답신을 내리시지 아니하시고 '죄지은 몸으로 답신을 올리는 것은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전하께 아뢰라고 말씀하셨나이다."


숙종이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중전은 강녕하신가?"


"중전마마께서는 안색이 몹시 초췌하실 뿐만 아니라 복색이 초라하시어 용안을 뵙기가 황공하기 그지 없었나이다."


조상궁이 울먹이며 하는 말에 숙종이 크게 탄식하였다.


"중전이 그리되신 것은 모두가 과인의 탓이로다! 할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기사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구나!"


숙종은 인현왕후가 그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파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숙종은 인현왕후에게 금침으로 만든 이부자리, 봉황을 수놓은 베개, 은으로 만든 은반상, 남색 비단으로 만든 의복을 보냈다.


조상궁이 숙종이 내린 하사품들을 안으로 들일 것을 권하자 인현왕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은이 망극하나, 어찌 죄인의 집에 궁궐의 기물을 둘 수 있겠느냐? 감히 명을 받지 못하겠으니, 모두 도로 가져가거라."


조상궁은 할 수 없이 숙종이 내린 하사품들을 가지고 궁으로 돌아갔다.


이때 인현왕후의 사가 밖에서 삿갓을 쓴 두 사내가 귓속말로 주고 받았다.


"중전마마를 설득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후궁마마께서 나서시면 중전마마를 설득하실 수 있을 걸세."


삿갓을 쓴 두 사내는 김춘택과 김체건이었다.


김춘택이 김체건의 귀에 속삭였다.


"난 공주마마를 뵙고 올 터이니, 자네는 여기 있게."


김춘택은 명안공주를 통해 복순을 인현왕후에게 보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중전마마께서 전하께서 하사하신 물건들을 모두 거절하셨사옵니다."


조상궁의 말을 들은 숙종은 크게 탄식하고는 다시 어찰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복순이 숙종을 찾아왔다.


"전하, 신첩을 보내소서. 신첩이 가지 아니하면 중전마마께서는 입궁하시지 아니하실 듯 싶사옵니다."


숙종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전하께 뭐라 설명드려야 할까?'


복순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다.


복순은 인현왕후가 자신과 임금의 총애를 다투고 싶지 않아 오지 않는 것이라 훤히 짐직하고 있었지만, 차마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복순이 숙고 끝에 입을 열었다.


"중전마마께서 전하의 진심을 잘 모르시는 듯하오니, 신첩이 중전마마를 뵙고 전하의 진심을 전해드리겠나이다."


"허나, 회임한 몸으로 괜찮겠는가?"


"가마를 타고 가면 괜찮을 것이니 심려치 마소서."


숙종이 주저하자, 복순이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신첩, 중전마마를 간절히 뵙고 싶사오니,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숙종이 한동안의 망설임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대로 하거라."


가마를 타고 인현왕후의 사가에 이른 복순은 인현왕후의 초췌한 얼굴을 보자 눈물을 쏟으며 큰절을 올렸다.


"소첩, 복순이 이제야 중전마마께 문안을 올리옵니다. 중전마마를 잘 모시지 못한 소첩의 불충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인현왕후가 눈물을 글썽이며 복순의 손을 잡았다.


"복순아, 네가 왔구나. 네가 중전 장씨에게 모진 고문을 당해 몸이 성치 않다고 들었거늘, 회임한 몸으로 어찌 여기까지 발걸음을 한 것이냐?"


"이제 몸이 회복되었사오니 심려치 마시옵소서."


"참으로 다행이구나! 허나 네가 전하의 용종을 배고 있으니, 앞으로 몸조리에 각별히 유의하거라."


복순이 숙종의 어찰을 인현왕후에게 건네주며 간청했다.


"중전마마, 전하께서 중전마마의 답신을 학수고대하시며 기다리고 계시오니, 부디 전하께 답신을 보내시옵소서."


인현왕후는 복순의 간청을 거절하지 못해 마침내 답신을 써내려갔다.


'신첩, 죄를 짓고 폐출된 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하께서 오히려 신첩에게 하해 같은 은혜를 내리시니 성은이 망극할 따름이나이다.


전하의 성은에 감격하여 눈물만 흘릴 뿐이오니, 무슨 말씀을 올릴 수 있겠나이까?


사가에 사는 것도 감당하기 어렵거니와 궁으로 옮기라는 명은 신첩이 감당할 수 없는 바이니 성은에 감축하와 아뢸 바를 모르겠나이다.'


인현왕후에게 답신을 받은 복순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숙종은 인현왕후의 답신을 읽자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중전, 속히 돌아오시오. 중전의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마음속에 밀려들어오는 공허함을 견딜 수가 없소. 중전, 그대를 진심으로 사랑하오. 내 남은 여생을 중전과 함께 보내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이오.'


어느새 4월 23일, 인현왕후의 탄신일이 되었다.


여섯 해 전 이날에 인현왕후가 대왕대비의 상중에 상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폐출시켰던 숙종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책감에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난 숙종은 궁인들에게 명을 내렸다.


"오늘은 중전의 탄신일이니, 중전께 공물을 진상하는 것을 예전과 다름없이 하라."


숙종의 명을 받은 궁인들은 인현왕후에게 진상할 공물을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를 본 숙종은 흡족하여 다시 붓을 들어 어찰을 써내려갔다.


'며칠 전 중전께서 보낸 답신에 마음이 기쁘고 위로되어 여러 차례 반복하여 읽으니 눈물이 끊이지 않았소.


중전의 복위는 이미 대신들과 상의가 끝난 일이니 근심하지 마시고 하루 속히 입궁하시기 바라오.


때마침 오늘이 중전의 탄신일이라 명을 내려 공물을 진상토록 하였는데, 이는 과인의 무궁한 회한을 마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니 과히 사양하지 마시기 바라며 지난 번 드린 하사품들도 받아 주기 바라오.


중전께 하고 싶은 말이 태산처럼 많으나, 어찌 모두 글로 표현할 수 있겠소?


조만간 황금 가마를 보내 중전을 모시고 오게 할 터이니 중전을 뵐 날을 고대하고 있겠소.


중전은 부디 과인에게 답신을 적어 주시기 바라오.'


숙종의 명에 조상궁은 어찰을 가지고 하사품과 공물을 수례에 가득히 실어 인현왕후의 사가를 다시 찾아갔다.


인현왕후는 숙종의 어찰을 읽자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죄인이 어찌 여염집에서 공물을 받겠느냐? 감당할 수 없으니 하사품과 함께 모두 도로 가져 가거라."


인현왕후는 공물은 고사하고 하사품도 받지 않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조상궁이 공물을 받아 달라고 간곡한 어조로 청했지만, 인현왕후는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 인현왕후의 복위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공물을 바치려고 인현왕후의 사가로 하나 둘씩 몰려오고 있었다.


병사들이 대문을 막아서자, 백성들이 울면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중전마마, 소인들의 작은 성의이오니, 부디 받아주시옵기를 청하옵니다."


백성들의 정성에 감격한 인현왕후는 눈물을 흘리며 병사들에게 명했다.


"들어오는 이를 막지 말거라."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장옥정 개정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9 69화 배신 23.01.07 118 0 9쪽
68 68화 대체 김체건이 어느새 따라왔단 말인가! 23.01.04 84 0 9쪽
67 67화 속히 대책을 세우소서! 22.12.30 108 1 9쪽
66 66화 오례를 이리로 부르게 22.12.26 85 0 9쪽
65 65화 유골이라 하였느냐! 22.12.21 97 0 9쪽
64 64화 기가 막힌 방도 22.12.18 91 0 9쪽
63 63화 떡 안에 든 유골 22.12.15 78 0 9쪽
62 62화 자네는 죽는 것이 두렵단 말인가? 22.12.09 76 0 9쪽
61 61화 고육지책 22.12.08 109 1 11쪽
60 60화 천신의 진노는 소녀가 받겠나이다 22.12.07 100 1 9쪽
59 59화 유배지로 떠난 김춘택 22.12.06 82 0 9쪽
58 58화 김춘택을 제거할 방법이 있겠는가? 22.12.05 43 0 11쪽
57 57화 마마를 모살하라 22.12.05 42 0 11쪽
56 56화 폐비 민씨가 입궁했다고? 22.12.05 46 0 11쪽
» 55화 복위 22.12.05 68 0 11쪽
54 54화 변고 22.12.05 58 0 11쪽
53 53화 이미 결심하였느니라 22.12.05 36 0 11쪽
52 52화 미남계 22.12.05 48 0 11쪽
51 51화 온희야, 부디 나를 용서하거라 22.12.05 41 0 10쪽
50 50화 복순을 데려오거라 22.12.05 39 0 10쪽
49 49화 김춘택의 계획 22.12.05 40 0 11쪽
48 48화 어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겠느냐? 22.12.05 35 0 11쪽
47 47화 중전 책봉식 22.12.05 33 1 11쪽
46 46화 중전마마를 부탁하오 22.12.04 42 0 11쪽
45 45화 민씨는 거기 섣거라! 22.12.04 40 1 11쪽
44 44화 너같은 대역무도한 자는 백번 죽어 마땅하다! 22.12.04 38 1 11쪽
43 43화 폐비 전교를 내리노라! 22.12.04 55 0 11쪽
42 42화 처소로 돌아가 처분을 기다리고 있거라! 22.12.04 65 0 11쪽
41 41화 옥정이 여우였다니! 22.12.04 42 1 11쪽
40 40화 소매 안에 뭔가를 감춘 것이 아니냐? 22.12.03 40 1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