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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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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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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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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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

DUMMY

18.

난 몸을 옆으로 날렸다.

나를 스치고 지나간 녀석이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쳤을 때, 그의 바로 뒤에서 트럭이 나타나 녀석의 얼굴을 반으로 만들더니 나의 세상 오른쪽으로 밀어버렸다.

쿵.

몸을 날리고 땅바닥에 쓰러진 나에게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충돌이 일어났다.

강도진은 죽었다.

나는 살고.

그렇다고 녀석을 구하려고 했으면, 녀석은 살았겠지만 나는 죽었을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내가 사는 게-

“꺄아아아악.”

옆을 보니 왼팔이 기이하기 뒤틀린 빨간 머리 여자가 자신의 팔을 붙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그 앞을 지나가는 고양이를 발견한다.

이번엔 숫자가 없구나.

녀석은 나를 흘깃 보고는 골목으로 사라졌고, 그사이 어제 버스 사고 현장에 서 있던 경찰 두 명이 뛰어와 나와 그녀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아프다고. 아프다고요!”

“진정하시고 지금 당장 일일구를 부르겠습니다.”

“아파. 아파!”

별로 소용없는 이야기만 하면서 버둥거리는 여자를 젊은 경찰이 진정시키고 있는 가운데, 사십 대로 보이는 경찰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 중저음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습니까.”

“네. 그보다 저 트럭이 제 친구를 쳤어요.”

내 말에 곧바로 트럭으로 뛰어간 그는 앞부분을 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다시 고개를 돌린 그는 운전석 안을 살펴보더니 다시 내게 뛰어왔다.

“혹시 운전자는 못 봤습니까?”

운전자?

그러고 보니 운전자가 누구였지?

내가 대답이 없자, 모른다는 걸 아셨는지, 아저씨는 곧바로 무전기를 손에 쥐고 입에 가져대 댄다.

“여기는 낙하산 일 호. 버스 사고 현장 바로 옆에 사고가 발생했다. 한 명은 사망, 한 명은 중 상, 나머지 한 명은 경상이며, 운전자는 도주 중으로 판단된다. 트럭 번호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고양이가 뛰어갔던 자리를 바라봤다.

그곳엔 뒤에서부터 스키드 마크를 그린 승용차가 멈춰 있었는데, 운전자 기준으로 차 왼쪽 앞부분이 충격에 함몰되어 있었고, 내 쪽으로 틀어져 있었다.

고양이로 인해 멈춘 건 저 차다.

그런데 왜 저차가 아니라 트럭이 이곳으로 온 거지?

그리고 통상 뒤에서 피하려다가 방향을 틀었으면 뒷부분이 부서져야 하지 않나?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사이 보고를 마쳤는지, 사십 대 경찰 아저씨가 내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만, 사건 목격자 진술이 필요해서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정중한 그의 말에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차로 가시죠.”

“네.”

나는 아저씨의 안내를 따라 움직였다.

*8*

*8*

거실에서 이미수가 깎아놓은 사과에 포크를 꽂은 양훈이 들어 올릴 생각은 안 하고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교통사고가 아니라 계획 살인이라고?”

“어. 정확히 강도진이 가는 경로 방향으로 차를 몰았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미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이거 우리에게 말해도 되는 거야? 잘못해서 소문나면 큰일 난 거 같은데.”

“이미 뉴스에 떴어.”

“벌써?”

양훈이 텔레비전을 틀어서 채널을 돌리는 가운데,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면서 말했다.

“낮, 사고 난 현장 근처, 바로 도착한 경찰과 기자, 도주한 운전자, 돈 많은 피해자 아버지, 공개수배 등 여러 원인이 한꺼번에 겹쳐졌지. 그래서 하루 만에 공개수배 전환에 뉴스까지 나온 거고.”

“너도 범인 얼굴 못 본 거야?”

양훈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에 정신이 팔려서 못 봤어.”

“고양이면 설마 어제 우릴 구해준 그 고양이?”

“응. 여차하면 거두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이번에 그 사고가 나면서 놓쳤어.”

“우웅. 아쉽다. 보고 싶었는데.”

“나도.”

이미수와 양훈의 말에 작게 미소지은 이수지가 나를 바라봤다.

“그래서 다시 경찰에서 오래?”

“아니, 난 목격자 진술만 하고 끝났어. 범인도 보지 못해서 혹시 재판이 열리더라도 내가 갈 일은 없을 거야.”

“어 뉴스다!”

양훈의 목소리에 다들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화면을 지켜보다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놈이 내게 덤벼드는 장면을 틀다니...

저것 때문에 경찰서에서 살짝 의심을 받았었다.

그리고.

“저거 너한테 주먹 휘두르려고 달려드는 거 아니냐?”

양훈의 물음에 나는 거짓말하지 않고 솔직하게 답했다.

“맞아. 예전에 악연이 있어서 내가 고양이만 바라보면서 무시하니까 바로 달려들더라고, 하필이면 고양이가 길가로 갑자기 뛰어가서 그거에 놀란 승용차가 멈추었고, 그것에 추돌한 트럭이 방향이 바뀌어서, 그걸 본 나는 피했고 내게 달려든 녀석이 죽은 거지.”

“우와. 타이밍 한 번 죽인다.”

“훈!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식으로 말하는 안 되지.”

미수의 타박에 양훈은 목을 움츠렸다.

“미안. 나도 모르게...”

“경찰이 너는 의심하지 않았어?”

나는 수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연히 의심했지. 그런데 영동에 있다가 어제 서울로 올라온 내가 어떻게 강도진이 최근 한 달 동안 그곳을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어. 그래서 곧바로 의심이 풀렸어.”

그 자식 부모는 의심을 풀지 않았지만.

뒷말은 애들이 걱정할까 삼킨 나는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아삭.아삭.

맛이 좋네.

이거 하나 더 먹어야-

“장례식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수지의 물음에 나를 비롯한 나머지 두 아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수호랑 악연이 있다는 말 들었잖아.”

“그래. 우리는 놀러왔는데, 굳이 그런 곳에 갈 필요가 없지 않아.”

“그래도 예전에는 같은 반이었다면서, 마음에 걸리지 않아?”

나는 남은 사과를 마저 입에 털어 넣고 대답했다.

아삭. 아삭.

“아니. 전혀 안 걸려. 나 때리려고 하지 않았어도 살 녀석이었어. 그냥 자기가 나쁜 짓 하다가 죽은 건데, 내가 반가워서 안기려고 했다고 뻥 쳐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그래도 혹시 오해라도 하면-”

“내 걱정은 그만하고, 우리가 즐겁게 노는 데 집중하자. 우리 이번 여행이 얼마나 중요한 지 너도 잘 알잖아. 난 놓치고 싶지 않은데. 너도 그렇지?”

“응...”

내 말에 눈망울이 흔들린 수지가 작게 대답했고, 양훈은 뉴스를 끄고 큰 소리로 외쳤다.

“기분도 꿀꿀한데 보드 게임하자!”

“좋아. 내 짐에 있는 거 가져올게.”

“나와 수지는 간식 좀 더 준비해야겠다.”

그렇게 우리는 예정대로 보드게임을 했고, 양훈의 꼴지를 축하하며 즐겁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8*

*8*

세 번째 날은 놀이동산, 네 번째 날은 경복궁과 박물관, 다섯 번째는 야구장 관람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우리는 남산을 올랐다.

무더위에 땀이 흘러 처음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맑은 하늘 아래 주변 전경을 보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정말 좋다.”

“맨날 이러고 놀았으면 좋겠다.”

“그러게...”

“난 반대.”

수지의 말에 두 아이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고, 나 또한 더우면서도 시원한 바람에 휘날리는 긴 머리를 한 손으로 잡고 있는 수지를 바라보았다.

“난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떳떳하게 우리끼리 모여서 놀았으면 좋겠어.”

“수지 말이 맞아. 솔직히 여기 오는 데 부모님 눈치 보이긴 하더라.”

“난 내 동생. 동생이 자기도 가고 싶다고 말해서,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맘에 걸렸지”

나도 내 힘으로 번 돈이 아닌, 의원이나 할아버지가 번 돈으로 호사를 누리고 있어서 껄끄럽긴 하다. 아직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주지 않는 미성년자라는 핑계가 먹히지만, 이제 일 년 육 개월 뒤엔 그 핑계거리도 사라진다.

대학교로 가면 그 기간이 다시 유예되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돈의 굴레에서 떳떳하지는 못하다.

강도진 녀석도 고등학교 이 학년이 되고 나서 행실은 여전히 불량했지만, 자기 아버지가 몸이 불편해서 대신 돌아다니며 건물을 점검하다가 차에 치여 죽었다.

그에 반해 나는 돈을 쓰기만 하고 집에 무언가 가져다준 적이 있는가 생각해 봤지만, 표창장도 숨긴 마당에 딱히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거나 도와드릴 만한 무언가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다.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낸 수지나 다른 아이들도 자기 갈 길을 정해 앞서가고 있는데, 나는 아직 체육선생의 길에 대한 확신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뒤처지는 느낌, 아니, 무언가 이들과 떨어져 나가 홀로 남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그러지 않도록 나도 죽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를 비롯해 모두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울 전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지켜보다가 우리는 마지막 여행을 끝마쳤다.

*8*

*8*

아이들을 서울역에서 배웅하고 나는 의원과 사모님을 마주했다.

달그락.

대화가 없이 서로 식사를 한 후, 사모님이 후식을 꺼내 왔을 때, 의원이 내게 말했다.

“체육선생 되려고 준비한다고 들었다.”

“예.”

“과외라도 필요하면 말해라.”

“예.”

“그리고 강도진 일은 걱정하지 마라. 장례식에서 강사장이 고인의 마지막 명예는 지켜줘서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예.”

“할아버지가 계속 전화를 안 받는구나.”

“제대로 사과는 하셨고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셨다.

“설마 바쁘다는 핑계로 이제까지 안 간 건 아니죠?”

“너도 정치계가 얼마나 치열한 곳인지 알잖니-”

“그래서 김명호의 할아버지의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저를 호적에서 삭제했고요. 자리를 유지하는 데 자식의 목숨 값과 미래가 들었으니 얼마 힘든 곳인지 저도 알아요.”

내 말에 의원님의 얼굴이 굳어졌고, 옆에서 아이에게 밥을 얻은 숟가락을 내밀던 사모님의 손이 멈칫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의원과 사모님에게 해준 게 있다.

돈.

돈으로 산 의원.

의원이 돼서 얻은 권력.

그리고 헛된 명예.

오로지 내가 열심히 일해 무언가를 해줘야 할 분은 할아버지와 친구들, 그리고 이신후 아저씨 정도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이도 그들은 내게 많은 돈을 바라지도 않는다.

기대고 의지하고, 가끔 솔직하게 털어놓을 상대가 되길 원할 뿐이다.

그건 지금도 가능하고 앞으로도 가능하다.

내가 올곧고 바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산다면 가능한 일이다.

드르륵.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원에게 상체를 숙였다.

“감사히 먹었습니다. 저는 표 시간 때문에 가보겠습니다.”

내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작은아버지가 다음에 올 땐 맛 난 거라도 사 올게 그때까지 음식 가리지 말고, 신기한 물건은 어머니에게 먼저 물어보고 만져.”

“네.”

“너마저 버린다면 다 같이 죽자는 거로 알 테니, 네 미래는 걱정하지 마라.”

내 중얼거림에 사모님의 포트를 집은 손이 부들거렸다.

이제는 좀 정신 차리고 이 녀석이라도 지키길 빕니다.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자리에서 벗어났다.

“저는 바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8*

*8*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


미친놈의 일기


나는 집에 가자마자 곯아떨어질 거 같아서, 미리 메모장을 폈다.

여행 때 있었던 일들을 쓰고 난 다음...


어르신들은 혈기왕성할 때라고 하고,

의원 나이대 어른들은 열심히 공부할 때라고 하고,

지금 고 2인 우리들은


잠시 글을 멈춘 나는 아이들의 했던 말들을 다시 떠올렸다.

어른스러웠던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과 동떨어질까 두려웠던 나.

마지막으로 아직도 핑계를 대며 할아버지에게 사과하지 않은 아버지.

그리고 그걸 핑계로 바로 자리에서 벗어난 나까지.


지금 고 2인 우리들은, 아니, 나는 의원처럼 영원히 어린놈이 될까 두려울 때인 거 같다.


미워하는 사람을 닮는다는 말이 지금은 너무 두렵다.

십 년 뒤, 어른이 된 나는 어떨까?

아버지처럼 의원이라는 꿈을 포기 못하고, 다른 이들을 잡아먹으며 애처럼 살까?

나는 창문 바깥 검은 하늘 위 희미하게 보이는 별 하나를 보며 마음속으로 빌었다.

아버지가 아닌 친구들처럼 변하게 해달라고...

세상이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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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ㄱ* +2 19.04.19 1,239 30 11쪽
30 *ㄱ* +2 19.04.18 1,213 24 14쪽
29 *ㄱ* +1 19.04.17 1,214 24 14쪽
28 *11* 19.04.16 1,206 26 14쪽
27 *11* +2 19.04.15 1,173 2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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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1* 19.04.13 1,210 2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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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8* 19.04.08 1,559 2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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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5* +4 19.04.03 2,215 3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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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4* +2 19.04.02 3,044 3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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