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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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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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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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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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DUMMY

7.

“곰 인형?”

“곰 인형이 앞으로 쓰러져 있잖아요. 덩치가 큰 녀석이라서 살짝 뒤로 기대어 놓은 걸 누가 치지 않은 이상 저럴 수 없죠.”

“일부러 나중에 뒤집어 놓은 것일 수도 있잖아.”

“아니죠. 곰 위에 있는 핏자국을 보면 누군가 살아있는 토끼를 이곳에서 찌른 다음 뽑는 과정에서 피가 튀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범인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쓰러진 곰을 세우지 않고 곧바로 토끼를 꺼내 목에 뾰족한 무언가로 찌른 다음 뽑아서 바닥에 놓은 다음 바깥으로 나갔다고 예상할 수 있어요. 단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어요.”

선생님과 내가 말하는 사이 합류한 두 사람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뭐가?”

“뭘?”

“이곳 누가 제일 먼저 발견했어요?”

내 물음에 선생님이 눈동자가 이미수를 향했고, 그와 동시에 이미수가 손을 작게 들었다.

“나.”

“어째서.”

“복도에서 나희미선생님과 기숙사 창고에 물품이 비는 것 때문에 얘기하고 있었거든. 그때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려서 곧바로 열쇠로 열었지. 너무 놀라서 비명도 지르지 못했지만, 토끼에게서 피가 흘러나오는 건 확실하게 봤어. 바로 창문으로 달려갔으면 어디로 갔는지 봤을 텐데. 아쉽다.”

이를 갈며 분해하는 이미수 옆에 있던 이수지가 고개를 갸웃한다.

“뭐가 이상한지 나는 모르겠어. 그냥 나가려다 문이 잘 안 열려서 부수고 나갔다고 생각하면 딱 들어맞지 않아?”

그녀의 물음에 대답한 건 내가 아닌 나희미선생님이셨다.

“아니, 수지 학생의 가정은 잘못됐어요. 엎어진 인형과 사체 위에 흩뿌려진 조각들을 보세요. 저렇게 조각이 위에 있으려면 범인은 나간 다음 바깥에서 유리창을 쳤다고 보는 게 맞아요. 확실히 외부에 사람이 있었다면 바로 들킬 위험을 무릅쓰고 소리는 낸 점이, 저도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역시 선생님이 제일 이해가 빠르시네. 말도 잘하시고.

“곰 인형도 정리할 시간도 없이 급하게 토끼를 찔러 바닥에 놓은 범인이 유리창을 부술만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요? 정말 미친놈이라서 내가 한 일을 바로 알아줬으면 해서 한 짓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으... 무서워.”

내 말에 이미수가 몸을 부르르 떨다가 한 곳을 바라보더니 떨림이 멎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에 숫자가 검게 변하기 시작한다.

왜? 뭘 봐서 그런 거지?

자연스럽게 나도 그녀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학교 바닥과 다르게 바닥 공사도 따로 해서 하얀 타일이 바닥에 깔려 있었는데, 그곳에는 유리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조각난 조각들을 바라보던 나도 한 곳에서 시선이 멈췄다.

투명한 유리 조각 중에서 옅은 갈색으로 된 반원형의 조각이 있었다. 창문 조각이 아님을 확실히 알 수 있었고, 형태를 보는 순간 안경알 조각임을 알 수 있었다.

갈색빛이 도는 안경?

순간 내 머릿속으로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사이 다른 두 사람도 나와 미수의 시선을 따라 한 곳을 바라봤고, 두 사람의 숫자도 미수와 똑같이 검게 변했다.

혹시 내 머리 위도 똑같이 검게 변했을까?

아니면 회색일까?

궁금증을 해결하기도 전에 미수와 선생님의 입이 벌어지는 걸 확인한 나는 황급히 두 손을 내밀어 두 사람의 입을 막았다.

“읍.”

“읍읍!”

갑자기 내가 입을 막아서인지 내 손을 뿌리칠 생각도 못하고 나를 노려보는 두 사람에게 나는 ‘조용’‘조용’을 반복해 입 모양을 만들었다.

내 입 모양을 보았는지 두 사람이 잠잠해졌고, 나는 손을 거두었다.

“우선 아이들은 다른 곳에다 놓고 경찰을 부르죠.”

“하지만.”

나는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이미수에게 말했다.

“섣부른 추측 때문에 수지가 어떻게 됐는지 잊지 않았지?”

내 말에 이미수는 입을 다물었고, 우리 반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를 리 없는 나희미 선생님도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여전히 검은색의 숫자를 보며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째서 검은색일까?

이미 도망친 상대가 왜 압박받는 걸까?

왜? 이유가 뭐지?

우리 대화를 듣는 건 우리 뒤에 멀뚱히 보고 있는 여자 아이들.

...만 있는 게 아니다.

“아.”

나는 내 뒤에 있는 분리용 판이 나무에다가 두께도 얇아서 대화 내용이 들린다는 걸 기억해냈다.

만약 내가 수지를 예를 든 걸 들었다면 녀석도 이미 자신 들켰다는 걸 알 것이다.

빌어먹을 날림 공사 같으니!

큰일 나기 전에 일단 녀석에게 가야하나.

아니면 경찰이 오기 전까지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숫자에서 검은 기운이 빠져나와 벽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시간이 없다는 걸 깨달은 난 윙크를 크게 한 다음 소리쳤다.

“이미수 아무리 네가 이수지를 미워한다지만 이럴 수 있어!”

내 말에 순간 멍한 표정을 지은 그녀에게 나는 윙크를 수차례 시도했다.

내 의도를 제일 먼저 눈치 챈 건 이미수가 아닌 나희미였다.

“실망이구나. 제일 먼저 발견하기 전에 자작극을 벌여 수지에게 죄를 덮어씌우려고 하다니.”

“저. 저는...”

이미수가 더듬는 사이, 이수지는 얼굴을 가리며 울음 섞인 말을 했다.

그런데.

“흑. 흑. 너. 무. 실. 망. 이. 야.”

너무 어색한 연기라 나를 비롯한 세 사람이 굳어졌다.

“이. 미. 수. 너.”

더 말했다가는 지금 회색으로 변하고 있는 숫자가 다시 검게 변할까 두려운 나는 그녀를 껴안았다.

“어멋.”

“진정해. 내가 있잖아. 내가 지켜줄게. 우선 선생님 바깥으로 나가죠.”

“그. 그래.”

“이미수 너도 따라와.”

“응...”

그렇게 우리 네 사람이 바깥으로 나온 다음 한 일은 남자 기숙사에 있는 양훈에게 문자를 보내는 거였다.

-양훈아. 도훈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도훈이 부르지 말고 위치만 확인하고 곧바로 말해줘-

-복도 끝에 의자 놓고 앉아 있는데 왜?-

역시... 듣고 있었어.

-담임은-

-내 침대에서 만화책 보고 계셔.-

“이 인간이 압수하지 않고 같이 보고 있어. 허우대만 멀쩡하지 하는 건 죄다 꽝이야 꽝.”

뒤에서 희미 선생님의 분노어린 음성에 내 손가락이 움찔했다.

인준 선생님 죄송해요.

마음속으로 사과한 다음 손가락을 다시 움직였다.

-선생님에게 말해서 도훈이 붙잡으라고 말해줘.-

-왜?-

-토끼 사건 범인이야. 시간 없으니까 당장 잡으라고 해. 사정 설명은 내가 지금 바로 가서 할 테니까. 빨리 서둘러!-

문자를 보내고서 나는 네 사람을 데리고 그곳으로 뛰어갔다.

끼이익.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자.

“놔! 놓으라고!”

“일단 진정해!”

복도 끝에서 거칠게 반항하는 김도훈과 유인준 선생님을 볼 수 있었다.

“어. 여자다.”

“금녀의 구역에 여자가 들어왔다.”

거의 헐벗은 학생들이 황급히 안으로 들어간 가운데, 양훈과 도훈 유인준, 그리고 나와 나를 따라온 일행만이 남았다.

양훈이 내게 다가왔다.

“정말 네가 보낸 문자가 맞아?”

“잠시만.”

다행히 도훈의 몸에 검은 기운이 없어.

우선 이 녀석이 범인인지 확인하자.

나는 벽이 없었다면 이수지 옆방인 삼백삼호 문을 열었다.

이질적인 냄새 속으로 들어온 나는 도훈이의 검은색 가방을 잡으려다가 옆에 있는 휴지를 뜯어 손을 감싼 다음 지퍼를 잡았다.

부우욱.

역시 피 묻은 칼이랑 옷이야.

나는 가방을 들고 나와 도훈 앞에 던졌다.

살짝 삐져나온 칼과 옷을 본 도훈이 반항을 멈춘다.

“왜 그런 거야.”

내 물음에 움찔했던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수지를 바라보았다.

“배신자. 나를 버리고 수호에게 들러붙은 쌍년!”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혹시 둘이 사귀던 사이였나? 그사이에 내가 낀 거고?

아니지 나는 아직 사귀지도 않았잖아!

당황한 내가 머릿속이 복잡해서 아무런 말도 못했는데, 그걸 대신 답한 건 의외로 이수지였다.

“왜 내가 배신자지? 난 네게 나쁘게 대한 적이 없었어.”

“내가 너를 구한 거지 박수호가 너를 구한 게 아니잖아. 내가 주장하지 않았으면 박수호가 널 도와줬을 거 같아? 아니 그냥 무시했을걸?”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 그때 김도훈의 주장이 없었더라면 그녀를 도와주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배신자인 이유는 되지 않아.”

내 말에 그는 무언가를 토해내듯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함을 지른다.

“네가 오기 전부터 도와준 건 항상 나였어! 얘기해주고 같이 걸어준 것도 나였다고! 그런데 네가 도와준 이후엔 나와 대화하지도 걷지도 않았지. 그건 배신이야!”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을 하지 않은 나 대신 이미수가 소리쳤다.

“네 멋대로 말 걸고, 따라 붙은 거 내가 봤거든! 네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배신이 말이 돼! 그리고 토끼를 죽인 건 엄연히 범죄야 우리 아빠에게-”

“닥쳐! 네 년이 제일 나빠! 항상 정의로운 척만 하지, 제대로 상황 파악할 줄도 몰라서 잘못 없는 아이들만 죄인으로 몰았잖아! 내가 중 삼 때 너랑 같은 반 친구라는 건 모르지?”

“같은 반이었다고?”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김도훈이 섬뜩한 미소를 지은 채 잘라버렸다.

“그때 너 이번처럼 지갑 훔친 아이 잡았잖아. 그때 정말로 그 희철이가 범인이라고 생각해?”

도훈의 질문에 이미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서... 설마...”

“녀석은 범인이 아니었어. 범인은 바로 나였지. 그때는 고마웠어. 덕분에 아주 감사했- 큭.”

유인준 선생님이 녀석의 멱살을 부여잡고 노려보았다.

“이 녀석이 지금 그게 자랑이냐!”

“크크크크.”

웃는 녀석에게 나는 주먹을 꽂아 주고 싶었지만, 뒤에서 들려온 양훈의 고함에 몸을 돌렸다.

“미수야! 정신 차려 미수야!”

정신을 잃은 이미수, 떨리는 손가락으로 휴대폰 버튼을 누르는 나희미 선생님, 울고 있는 이미수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들 머리 위에 있는 숫자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크하하하.”

지금 내 뒤에서 광기어린 웃음을 토해내는 김도훈은 살았다.

대신 내 친구들은...

그리고 나는 이 뒤에 이어질 슬픈 미래를 알고 있다.

이미수의 말과 다르게 동물을 죽인다고 큰 처벌을 받지 않고, 구치소에 들어가도 성인이 아니므로 금방 나온다는 것도 안다.

내 눈앞에 있는 이들은 저 쓰레기 같은 놈을 살리기 위해...

나 때문에 이들이 불안한 미래를 살지도 모른다.

“하하하하.”

뒤에 들려온 광기 어린 웃음소리로 인해 나 머릿속에 과거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를 보며 비웃는 김명호.

나를 때리며 비웃는 김명호.

나를 짓밟으며 비웃는 김명호.

김명호의 웃음소리도 저랬다는 걸 깨닫는 순간.

“으아아악.”

내 눈앞에 세상이 빠르게 회전했다.

그리고.

쾅.

날림공사를 증명하듯 내가 내지른 주먹이 벽을 반쯤 파고들었다.

그리고 내 주먹 바로 옆에 새하얗게 질린 놈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놈의 귓가에 내 얼굴을 가져다 댄 나는 속삭였다.

“꼭 다시 만나자. 친구.”

딸꾹.

딸꾹.

갑자기 딸꾹질하는 녀석을 보며 나는 더 환하게 웃었다.

진심을 담아서...


작가의말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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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ㄱ* +2 19.04.18 1,212 24 14쪽
29 *ㄱ* +1 19.04.17 1,214 24 14쪽
28 *11* 19.04.16 1,205 26 14쪽
27 *11* +2 19.04.15 1,173 26 17쪽
26 *11* 19.04.14 1,205 27 17쪽
25 *11* 19.04.13 1,209 25 18쪽
24 *11* 19.04.13 1,217 2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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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9* +4 19.04.11 1,415 2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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