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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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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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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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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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ㄱ*

DUMMY

30.

김도훈의 아버지, 김명성은 전에 조폭을 하지 않았을까에 대해 의심될 정도로 언행이 좋지 않았다.

경비 아저씨들에게 폭언하는 경우가 잦았고, 자식과 아내를 자주 때렸다. 그걸 김도훈이 그대로 이어받은 거였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김도훈의 어머니와 똑같은 작은 체구라는 점이다.

김명성은 체격이 크고 운동을 좋아해서, 김도훈은 그에게 계속 맞고 있었다.

그게 어쩌면 나와 다르게 그 지옥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또한 지옥의 악귀가 된 건 아닐까 동정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아버지에게 뺨을 맞는 김도훈의 애처로운 얼굴을 보며 또다시 동정심이 들었다.

나도 아버지에게 어릴 땐 자주 맞았지.

그럴 때마다 많이 화도 나고 우울했어.

하지만.


1


검은색 숫자로 변한 김도훈과 김명성 머리 위에 숫자를 보고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그래도 나와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칼을 꽂으려 들진 않아.

살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넌 뭐야?”

김명성의 물음에 나는 옆을 가리켰다.

“여기 사는 사람입니다만.”

“빨리 안 꺼져?”

꺼지라고?

나는 계단에 쪼그려 앉았던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뭐. 뭐야. 지금 나 노려본 거야!”

살짝 쫄아 있는 그에게 지금이라도 내 눈 아래를 뒤덮은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노출증 환자도 아니고, 얼굴 보여줘서 다른 내 친구들에게 위험한 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더 문제 일으키긴 싫으니까. 자기 집이나 들어가시죠.”

내가 옆으로 비켜서며 말하자.

그도 더는 강하게 나가지 않고, 바로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회색 숫자인 키 작은 어머니가 난처한 억지 미소를 지으며 지나갔다.

마지막은 김도훈이었는데, 나를 보지 않고 뺨에 손을 가져다 대고선 아버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이... 수지 찌를 때랑 같은데.

어제 일을 생각하지 못했다면 나는 무조건 김도훈이 아버지를 죽일 거라고 자신했을 거다.

하지만, 어제는 역으로 김도훈이 지옥으로 떨어질 뻔했다.

그런데도 저런 눈빛으로 상대를 죽일 생각을 하다니.

한번 나락으로 떨어져 악귀로 변한 인간은 절대로 본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

쿵.

세 사람이 들어갔다.

그리고 문에 귀를 댄 내게 거의 매일 듣다시피한 비명이 들려온다.

“악!”

“이 개새끼야!”

“여보! 일단 진정하시고-”

“닥쳐! 이 썅년아! 네 년이 감싸서 우리 집안이 이 꼴 된 거 아냐!”

“꺄악. 잘못했어요.”

“둘 다 오늘 죽었다고 생각해!”

신고해야 하나?

김도훈 어머니라도 착했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도 주변 상권에서 모두 두려워할 정도로 갑질의 여왕이었다.

내가 김도훈을 쫓아 쇼핑몰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종업원에게 뜨거운 커피를 그대로 던지더니, 돈을 주고 무마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정도로 심하지 않지만, 고성과 고함으로 자기가 꼭 원하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여자였는데, 직원들이 참는 이유는 한번 살 때마다 하루 동안 한 달 매출을 올려주기 때문이었다.

결국 부모와 자식 모두 쓰레기들이라는 점이 심상치 않은 비명에도 신고할 맘이 안 드는 이유였다.

그래도...

“하자.”

사람이 죽는 걸 아는데도 놔두는 건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으니까.

대신...

나는 휴대폰을 꺼내고 김도훈 집 문에 가져다 대었다.

“우선 녹음부터 하고.”

삼 분 정도 비명을 녹음한 뒤에서야, 나는 일일이를 눌러 경찰에 신고했다.

*ㄱ*

*ㄱ*

“으아악~!”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배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는 김도훈이 응급카트에 태워져 나오는 것을 계단 위에서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역으로 당했구나.

녀석이 당한 모습에 기분이 좋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기분이 좋진 않았다.


나도 체구가 이 녀석처럼 작았다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나도 김도훈처럼 되지 않았을까?


오히려 잡생각만 많아졌다.

“아들아~ 아들아~”

그 뒤를 멍과 피투성이가 된 김도훈 어머니가 따라 붙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나오는 김도훈 아버지는 자신의 심하게 떨리고 있는 피 묻은 오른손을 바라보다가 왼손으로 붙잡았다.

그리고 그에게 두 경찰이 따라 붙었다.

“폭행 및 살인-”

“내가 알아서 따라가! 안내 나 해!”

오히려 두 경찰을 뒤로 한 채 그가 성큼성큼 앞서다가 닫힌 엘리베이터에 주춤했다.

악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악귀도 자식을 죽이려고 한 걸 반성하고 후회할까?

난 정말 궁금했다.

그러나 내가 그의 머릿속을 알 수 없다.

잠시 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세 명이 사라졌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미리 끓여놓은 커피포트의 물을 잔에 따랐다.

향긋한 커피향을 맡으며 베란다로 걸어간 나는 창문을 열었다.

“김명성씨 자식을 죽이려고 한 이유가 뭡니까?”

“김도훈씨가 아이들에게 칼을 뻗은 것처럼 명성씨에게 칼을 던진 겁니까?

엄청 높은 이곳까지 들리다니, 기자 분들이 목소리가 참 커.

기자들에 파묻힌 김명성과 두 경찰을 바라보다가 그 틈바구니에 낀 한 명의 여자를 발견한다.

아는 아줌마다.

이름이 뭐였더라... 우. 우...

”나라일보 우은비 기자입니다! 예전 대전 칼부림 사건 때~“

아 맞다. 우은비 기자님.

나랑 대화할 때와 다르게 목소리가 드라마 속 장군처럼 우렁차네.

하긴, 그러지 않으면 이 아우성 속에서 상대에게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겠지.

어.어! 저러다 다치진 않았구나.

나는 가녀린 체구로 이리저리 떠밀리고, 다른 사람들을 밀치며 용케 앞선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아줌마를 바라보다가 다시 김도훈을 태운 구급차를 바라보았다.

웨에엥.

멀어지는 구급차.

손을 그쪽에다 흔들며 나는 중얼거렸다.

”잘 가고, 다시 돌아왔을 땐, 너도 칼에 찔려봤으니, 정신 좀 차렸길 바란다.“

*ㄱ*

*ㄱ*

“됐죠?”

내가 녹음한 파일을 크게 틀어, 안에 들어간 비명을 들려주고 나서야 경찰 아저씨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저 분이 이 주변 최고가는 부자인 건 알고 있고, 힘없는 경찰이 뭘 할 수 있겠냐는 생각에 넘어가는 겁니다.”

내 말에 아저씨와 뒤에 있는 젊은 남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린 학생이 아버지가 쥐고 있던 칼에 찔려 구급차에 실려 갔는데도, 신고한 사람에게 진짜 비명을 들었는지 조사하는 당신들을 기자나 국민들이 보면 저랑 다른 생각을 할까요? 아니면 같은 생각을 할까요?”

내 물음에 젊은 남성이 입을 열었다.

“번거롭게 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 경찰은 절차대로 할 뿐 남의 명령에-”

“김순경 그만해.”

“하지만 저 어린-”

“그만.”

아저씨는 내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흠...”

나는 그들을 지나쳐 방에서 나와 냉장고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할아버지가 보내온 홍삼 음료를 뒤따라 나온 경찰들에게 넘겼다.

“이걸 왜.”

“저도 화가 나서 성을 좀 냈는데, 좀 죄송해서요. 먹고 힘내세요. 저나 아저씨나 힘없는 건 마찬가지고, 저도 그동안 들었는데, 무서워서 신고도 못하다가 이번엔 정말 심상치 않아서 한 거거든요. 아저씨나 저나 무서운 건 마찬가지니까. 이런 거라도 먹고 힘내야죠. 어서요.”

내 말에 작게 쓴 미소 지은 아저씨가 음료수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뒤에 아저씨의 그 맘 변치 않았으면 좋겠지만... 나중에 변해도 좋으니까. 건강하시고요.”

내 말에 젊은 아저씨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나는 베란다로 이동했다.

출구로 나온 두 사람이 내가 준 음료를 들고 차에 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중얼거렸다.

“버리지 않았군.”

경찰이 정말 좋은 선택일까?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걸까?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지금까지는 그것밖에는 없어 보여.

나는 베란다 창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걸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이불장 안에 있는 큰 가방들을 꺼내는 거였다.

김도훈을 감시하는 목적도 애초에 한 번 미친놈이 또 미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이곳으로 왔는데, 예상보다 더 큰 월척이 걸려서, 최소한 일 년은 다시 안에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에 대전 학생 칼부림 사건에 연관된 자식들의 부모 중 힘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언론의 시선을 이곳에다 쏠리게 할 거고, 그렇다는 건 두 부자는 당분간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라는 뜻이 된다.

“결국 내가 여기 있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지.”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는 것까지 보고 싶었지만, 혹시 몰라서 미리 대피하는 게 좋아 보였다.

사건 자체를 무마하려면 신고자 입부터 막는 게 좋으니까.

특히 비명이 담긴 이 녹음파일이 있는 한 결코 못 없앤다.

“잠깐.”

녹음파일이라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파일을 검색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경비원 폭언.avi

경비원 위협.avi

엘 쇼핑몰 갑질.avi

식당 갑질.avi

김도훈 담배.avi

김도훈 야동.avi


그 뒤에도 수십 개의 파일을 보다가 나는 책상 구석에 있는 명함을 발견했다.


-나라일보. 우은비.-


“장군님에게 부탁 해볼까?”

*ㄱ*

*ㄱ*

내 부탁에 아줌마의 조건은 단 하나였다.

[이름.]

[굳이 들어야겠어요?]

[응.]

[김도훈.]

[야!]

[과 같은 반이었던, 박수호.]

[네 옆에 있는 짐은 뭐야?]

[이사 가려고요.]

[어디로?]

[알면 저를 지켜줄 자신은 있고요?]

[후... 가끔 대전에 올 때 연락해]

[물론 이번에 어떻게 터뜨리는지 보고요.]

[내가 잘려서 인터넷기자가 되더라도 올릴 테니까. 내 명함이나 버리지 마.]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고, 나는 원래라면 영동으로 가려고 했지만, 이신후 아저씨의 연락으로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다.


정말 미친놈의 일기.


이번에 새롭게 장만한 일기장, 나는 첫 줄에 뭘 적을까 고민하다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정말 미친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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