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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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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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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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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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

DUMMY

6.

*4*

*4*

삼 주 만에 일기를 쓴 건, 오늘 기숙사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다.

후... 솔직히 쓰기 싫다.

하지만 그래도 써야겠지.

생명을 살리는 일이 좋은 결말만 가져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사건이니까.

사건의 시작은 보충 수업 후, 인준 선생님과 내기에서 이겨 냉면을 얻어...

*4*

*4*

탁.

“시원~하다.”

오늘은 나와 ‘막고 차기’ 내기에서 진 선생님이 냉면을 시켜줬는데, 그 냉면 국물을 먹고 그릇을 내려놓으며 내뱉은 양훈의 말에 이미수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할아버지도 아니고 그게 뭐니?”

“뭐긴 뭐야. 국물이 시원하잖아. 너는 안 시원해?”

일순 말문이 막혔는지 살짝 멍하니 있던 그녀의 눈이 가늘어진다.

“내가 지금 그 말뜻으로 한 거야. 좀 더 젊은 사람답게-”

“식당에서 떠들지 말라고 했지.”

나와 내기에서 한 점도 내지 못한 충격적인 사실과 스물다섯 명의 제자에게 냉면을 사주며 탈탈 털린 지갑 사정에, 어두운 기운이 얼굴에 깊게 드리운 유인준 선생님의 살짝 싸늘한 목소리를 들은 두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땐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기에, 나는 눈치를 보며 얼음이 녹아서 그런지 약간 맹한 맛의 냉면 국물을 수저로 말없이 떠먹고 있었다.

이때.

“풉.”

옆에서 들려온 작은 소리는 적막한 식당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그곳엔 사건 이후로 살을 빼기 시작해서, 방학이 기간 동안 뚱뚱이 아니라 통통하다는 생각이 드는 몸매를 만들고 돌아온 이수지가 있었다.

“죄. 죄송해요.”

소심한 성격은 여전해서 사색이 된 이수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하자. 담임이 황급히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아니야. 사과 안 해도 돼. 나는 괜찮아. 괜찮으니까 울지 말고. 미소야 휴지.”

“네. 자. 받아.”

“고마워.”

“후...”

진정이 된 이수지의 모습에 나와 유인준 선생님의 입에서 동시에 한숨이 흘러나왔고, 눈이 마주친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제야 살짝 무거웠던 식당 분위기가 풀렸고, 다시 왁자지껄 아이들이 있는 식당다운 분위기로 변했다.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냉면그릇을 회수하면서 하나둘 아이들이 식당에서 떠나가고, 그릇 당번이 된 나와 이수지 둘이 남아 식탁을 닦기 시작했다.

“고마워.”

“응? 뭐가?”

“저번에 도둑으로 몰렸을 때... 도와줬잖아.”

참 빨리도 말한다...

소심 오브 소심. 내가 따 당했을 때보다도 더 소심한 그녀의 모습이 살짝 답답했다.

혹시 나도 저랬을까?

아니지 저러면 어때. 나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 오히려 내가 바본 거지.

“혹시 화났어?”

이수지의 물음에 그제야 그녀의 물음이 생각난 나는 황급히 대답했다.

“아니야. 내가 어떨 때는 멍할 때가 있어서 그래. 미안.”

“자주 그런다는 거 아니까 괜찮아.”

자주? 이거 나를 멕이는 건- 아니지 긍정적 마인드. 긍정적 마인드. 그냥 이수지 말투가 저런 거뿐이야. 애가 착해서 그러니까-

“풉. 또 멍 때린다.”

“이번엔 아니야.”

“에이. 그랬으면서.”

그녀의 말에 더 대꾸했다가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수건을 뒤집고 곱게 접으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방학 땐 어떻게 지냈어.”

“방학? 지금도 방학 아니야?”

“방학은 무슨. 보충 수업을 정규 수업이랑 똑같이 하는 게 방학이냐.”

“어차피 넌 꾸벅꾸벅 졸잖아. 수업 끝나면 놀고.”

“음...”

이수지... 너 나 싫어하니?

라는 물음이 혓바닥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삼킨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이 아니라 집에서 뭘 했는지 궁금해서.”

“아. 집... 집에서는 음... 노래를 불렀지.”

“노래?”

“아프고 쓸쓸한 이 세상~ 그댈 사랑했었던...”

작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유명한 발라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청아하고 깊은 목소리에 나의 정신은 순간 멍해졌다.

남자가 아닌 여자가 불러도 좋구나.

이어폰이 아닌 눈앞에서 육성으로 듣는 지금이 훨씬 듣기 좋았다.

이수지는 노래방 법칙인 일 절만 부르고 입을 다물었다.

“우와. 너 진짜 노래 잘한다.”

“저. 정말?”

“응. 가수해도 넌 분명히 성공할 거야. 내가 장담해.”

“고마워.”

내 말에 그녀는 환하게 웃었는데, 이전에는 살에 살짝 늘어졌던 볼이 줄어들면서 보조개가 보였고, 문득 그녀가 귀엽다는 생각을 떠올린 나는 왠지 모르게 그녀 눈동자를 보기 힘들어졌다.

“사실 대전에서 길거리 노래 대회 나가서 곰인형까지 받았거든”

“진짜?”

내 물음에 그녀가 허리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최근 유명 여배우가 나와 핫한 최신 휴대폰이었는데, 그 안에 기숙사 내부로 보이는 방 안에, 정면에 보이는 창문 아래 선반이 있고, 그 선반 앞에 곰인형이 있었다.

선반 위로 머리가 절반 정도 튀어나올 정도로 덩치가 큰 녀석을 본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정말 크다. 내 예전 체격 만한데.”

“응. 내 몸이랑 크기가 같은데다가 폭신폭신해서 너무 좋아. 안고 자면 잠이 솔솔 온다니까. 혹시 잠 못 자면 언제든지 말해. 빌려 줄게.”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안고 있는 걸 왜 나에게...

같은 인형을 안고 자는 나와 수지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멍해졌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린 나였다.

“흠흠. 다음에도 시간 되면 노래 들려줘.”

“알았어. 더 좋은 노래 있으면 연습도 할게.”

이수지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듣는 순간 이상하게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찬 냉면 먹었다고 감기 기운이 도진 건가...

“크음. 빨리 치우고 올라가자.”

“응.”

덜그럭 덜그럭.

“이거.”

“오케이.”

“수호야 너 설거지 잘한다...”

부러움이 섞인 목소리를 들은 나는 속이 씁쓸했다.

국회의원에 환장한 사람 따라다니면 이리되지...

라고 하고 싶었지만, 살짝 억누른 나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봉사활동 가서 접시만 닦아서 그래.”

“나는 유리나 도기는 놓쳐서 깨 먹는데. 부럽다.”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하다 보면 속도는 붙어. 자 봐봐.”

서로 대화하며 설거지까지 해결한 우리는 식당 문을 잠그는 와중에 기숙사 건물 쪽에서 한 사람이 뛰어왔다.

탁탁탁

콘크리트 바닥을 밟고 뛰어오는 사람은 이미수였는데, 그녀 머리 위에 숫자가 있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는데, 갑자기 이수지의 머리 위에도 숫자가 나타났다.

반사적으로 나는 식당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 머리 위에도 나타났다.


1


세 명 다 회색.

한 생명이 걸린 일에 관련 되었다는 사실에 속이 덜컥하는 사이, 이미수가 우리 앞에 도착한 뒤 거친 숨이 뒤섞인 말을 했다.

“토끼 사체가 발견됐어.”

토끼?

토끼라니 그거는

“축사 폐쇄 된지 오래잖아. 그런데 토끼 사체가 왜 나와.”

“나도 몰라. 그런데 문제가 우리가 머무는 3층 방 중 한 곳에서 나왔어.”

“어딘데.”

“그게... 삼백십삼호.”

삼백사.

삼이 붙었으니 삼 층이고, 십이 붙으면 여자고, 삼이면...

나는 고개를 퍼뜩 들어 이미수를 바라보았다.

“수지가 있는 방이잖아.”

“응. 그런데... 그 방은 수지가 혼자 쓰고 있어서.”

“혼자라니 너도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내 물음에 이미수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소꿉친구가 일번 방에 있어서... 당분간은 그곳에서 자려고 했거든.”

이거 또 이수지가 범인으로 몰리는 거 아니야.

하지만 숫자가 떴는데 범인으로 몰리나?

내가 고민하는 사이, 이미수가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나희미 선생님이 데리고 오라고 했어.”

“가자.”

생각 외로 이수지의 표정과 목소리는 담담했다.

좋지 않은 일에 우리는 입을 다물었고, 침묵 속을 걸어 기숙사로 이동했다.

기숙사는 예전에 남자들만 쓰다가 인구 부족으로 여자고등학교와 합쳐진 이후 남녀 기숙사로 변해서 중앙 복도를 두꺼운 판으로 막아 반반으로 나눠 쓰고 있었다.

남자들이 들어가는 입구를 지나쳐, 반대편 여자들이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하자, 이미수는 나를 보며 말했다.

“수호는 들어가 봐. 내일 보자.”

이미수가 문을 열고 들어가고, 그 뒤를 말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이수지가 들어가고 있었다.

살 때문에 가녀리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듬직한 어깨를 보유하고 있지만, 연약해 보였고, 전에 그녀의 어깨를 짓누르던 검은 기운을 떠올랐다.

그래서 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짓을 했다.

탁.

반쯤 닫히고 있는 문의 손잡이를 잡은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수호야! 여긴 금남 지역인 거 알잖아.”

이미소의 말에 난 문을 닫으며 말했다.

“사체가 발견된 마당에 벗고 있는 여자애는 없을 거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저번처럼 억울한 피해자는 만들지 말아야 하잖아.”

내 말에 두 여자아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예전 일을 떠올리게 해서 살짝 미안한 맘이 들었지만, 나는 애써 무시하고 두 사람을 지나쳐 계단을 올라갔다.

“같이 가.”

이미수가 내 뒤를 따라붙었고, 중간 지점을 지나 반대로 몸을 돌린 나는 아직 아래층에 서 있는 이수지를 내려다보았다.

“이수지.”

내 부름에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수지의 눈동자에 맺힌 물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믿고 따라와.”

내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수지의 눈동자가 반짝인다고 느낀 순간,

“응!”

무언가 내 마음? 아니 머리를 간지럽게 만드는 미소를 지으며 수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해. 안 가고.”

“가자.”

이미수의 재촉에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삼 층까지 곧바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저녁 수업도 있어서 그런지 교복을 입고 있는 여자아이들과 나를 보고 눈이 동그래진 나희미 선생님이 있었다.


1


저분 머리 위에도 회색 숫자가 있어.

나희미 선생님은 서른여섯의 노처녀이신데, 히스테리가 터지는 순간 교장 선생님도 도망갈 정도로 매서운 면모를 가지고 있지만, 평소에는 그 누구보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막힘없이 풀어내는 뛰어난 수학 담당 선생님이시다.

단발에 붉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지만, 안경에 가려진 얼굴이 배우 수준이라서, 주변 선생은 물론이고 학생들은 선생님이 안경만 벗으면 바로 결혼하는 날이라는 농담을 자주했다.

몸매도 좋으신데, 특히 가슴이...

“남학생인 네가 여길 왜 와.”

이럴 때가 아니지.

내게 빵 배달을 시키던 일진과 다를 바 없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에 설득보다는 다른 주제로 말을 돌리는 게 나아 보였다.

나는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경찰은 신고하셨죠?”

“아직이다.”

“왜요?”

“그야 여성 기숙사에서 벌어진 일이 바깥으로 퍼지면 자칫 아이에게 문제가-. 박수호! 너 지금 거기서 뭐 해. 당장 나가지 못-”

선생님을 스치고 지나간 나는 복도 끝에 있는 이수지의 방안을 보았다.

방 안에서 제일 먼저 보인 건, 나를 향해 쓰러진 큰 곰 인형이었다. 곰 인형의 뒷부분에 토끼 사체에서 튄 것으로 보이는 핏방울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유리 조각들이 반짝이는 바람에 신경 쓰게 되었는데, 나팔이 나를 향해 부는 형태로 인형과 토끼 사체를 뒤덮고 있었다.

제일 중요한 토끼 사체는 문 열자마자 곧바로 보이는 중앙에 놓여 있었고, 목이 비틀린 전과 다르게 목 부분에 피가 흘러나온 상황이었다.

창문 중앙 부분이 깨져서 사라진 것을 보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거 예상한 것과 다른데?

“흠...”

확실한 건 범인은...

“박수호! 너 지금 선생님 말 무시하는 거니!”

안을 보고 있는 나에게 도끼눈을 뜨고 다가온 선생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여자 학생이 아니라 외부인이 한 거 같아요. 미수야.”

“응?”

“아버지에게 연락해. 여기 토끼 사체 하나 더 발견됐다고.”

“잠깐!”

내 앞으로 몸을 들이민 나희미 선생님이 사나운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외부인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 네가 형사야?”

“아닌데요.”

“그런데 어떻게 알아. 논리적으로 접근해서-”

“안을 보셨잖아요.”

“봤지.”

“그런데 왜 몰라요. 나는 보자마자 알겠던데.”

“그러니까 증거를-”

나는 오른 손 검지로 안을 가리켰다.

“바로 저거 때문입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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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ㄱ* +2 19.04.18 1,212 24 14쪽
29 *ㄱ* +1 19.04.17 1,214 2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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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1* +2 19.04.15 1,173 2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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