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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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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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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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9.04.1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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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25
글자
11쪽

*10*

DUMMY

22.

*10*

*10*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게 바로 사람의 삶이라지만, 요즘처럼 안 된 적은 없었다.

*10*

*10*

친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내 활동 반경도 늘어났다.

기숙사 내에서 다른 친구 방에 놀러 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학교 근처에서 정육점을 하는 선애와 일 킬로 떨어져 있는 만인이 아버지가 하는 토종닭집. 그리고 선애와 절친 사이이자, 내게 자주 말 걸어줬던, 자기 얼굴 반을 가리는 큰 안경을 쓰고 다니는, 민지이라는 애가 사는 산 아래 포도밭까지, 학교를 중심으로만 움직였던 내가, 영동군 외곽까지 이동하게 되었다.

사실 요리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맹연습에 돌입한 미수나, 이제는 한 주가 아닌 한 달에 한 번 내려오는 수지, 그리고 도 대회에서 준우승하고 전국 대회로 나가게 된 나, 이 셋이 서로 자신의 갈 길을 위해서 노력하면서 자연스럽게 끊긴 점도 활동 반경이 늘어나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언제나 그렇듯이 숫자다.

십일월에 들어서면서 초록색이 사라지고, 갈색과 붉은색이 주변에 보이는 가운데, 나는 한 아이의 머리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사라졌어.”

일주일 전에 무주에서 여대생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왔고, 그걸 핑계로 머리에 숫자가 떠서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민지와 함께 포도밭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이미 내가 여자친구가 있다는 소문이 퍼진 상황이라 우리 두 사람이 같이 걸어가는 걸 오해하는 이도 없었고, 무엇보다 한 사람 덕분에 그런 오해가 생길 틈이 없었다.

“쩝쩝. 역시 강원도 횡성 감자가 최고야.”

입가에 감자 조각을 묻힌 채 맛있게 먹고 있는 이만인은 요즘 들어 내 옆에서 같이 다니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이만인의 머리 위에 숫자가 뜨면서, 내가 같이 다니기 위해 대화를 많이 시도했더니 어느 순간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우리 두 사람이 잘 붙어 다녀서, 미수나 수지도 만인과 친분을 쌓은 상황이었다.

내가 생각하느라 말이 없자, 이만인의 말을 받아준 건, 배려심이 깊은 민지였다.

“횡성은 한우가 최고 아니야?”

“아니. 비싸고 멀어서 먹지도 못할 횡성 한우보단 내 입에 들어오는 이 감자가 최고다.”

뭔가... 멋진 말 같은데.

이 녀석은 가끔 내 머리를 띵하게 만든다니까.

“물론, 미국산이라도 소고기가 더 맛나지만.”

그럼 그렇지...

“호호. 만인이는 항상 유쾌해서 좋아.”

“헤헤. 내가 한 유쾌하지.”

휘이잉.

“으으. 춥다.”

“나 목도리 가방에 있는데 그거라도 줄까?”

“아니야. 그거 네가 써야지.”

“괜찮아. 자. 받아.”

민지가 내민 붉은 목도리를 받으려던 만인이 감자가 묻은 자신의 오른손을 보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게 내 손이...”

“내가 감아주마.”

나는 민지에 손에 있는 목도리를 빼앗아 녀석의 목에 칭칭 감았다.

“고마. 으엑. 켁. 켁.”

“감자 연쇄 살인범은 죽어라.”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호호호.”

우리들이 장난치며 웃고 떠드는 사이에, 이 킬로 떨어진 포도밭 옆 길가에 있는 민지네 집에 도착했다.

민지네 집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는 아담한 붉은 벽돌집으로, 민지 아버지가 풍으로 쓰러져 한쪽 다리를 절기 전에 만드신 집이다.

보면 볼수록 잘 만드셨단 말이야.

거기다 저렇게 바깥에 나올 정도로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신 분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지만.

“아빠. 추운데 왜 밖에 계세요.”

“우리 딸이 올 시간인데, 나와 있어야지.”

그의 깊은 주름으로 만들어진 미소에서 푸근함이 느껴졌다.

민지 아버지가 우리에게도 푸근한 미소를 보내셨다.

“매번 미안해.”

“아닙니다. 저희도 운동 삼아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저는 이 핑계 대고 우리 엄마에게 맛있는 감자를 받아- 켁.켁.”

“그만해라.”

난 녀석의 목을 졸라 입을 막은 다음. 곧바로 목도리를 펴서 민지에게 건넸다.

“고맙게 잘 썼다.”

“추운데 바래다 주는 내가 더 고맙지.”

말을 흐리는 민지를 보며, 나는 손을 흔들었다.

“그럼 간다. 안녕.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계세요.”

“잘가.”

“조심해서 가라. 차 조심하고.”

“네.”

그렇게 민지를 배웅하고 나서 몸을 돌린 나는, 민지네 집 옆에 주차된 트럭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내 머리 위를 봤다.

역시 숫자가 사라졌어.

“왜? 차 안에 누가 있어?”

“아니, 불빛이 보여서 봤는데 착각 이었나봐.”

“아마 방범? 아니 경고? 아 뭐였지. 아무튼 그거 켜져 있어서 깜박이는 걸 거야.”

휘이잉.

“으... 춥다. 빨리 가... 버렸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녀석은 잰 걸음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뭐해! 빨리 우리 집으로 가서 따뜻한 옥수수 먹자.”

평소엔 굼뜬 녀석이, 이럴 땐 빨라.

“알았어.”

나는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부우웅.

응?

하얀색 트럭이네.

“어?”

번호를 보니 식료품 아저씨 차다. 회색이 밤이 되면 하얀색으로 보이네.

식료품 하니까, 이제 요리 실습이 끝났을 내 친구가 떠올랐다.

미수는 잘 돌아갔나.

학교에서 오 분 거리고, 시장을 중간에 거쳐서 가는 곳이라서 크게 걱정이 되진 않지만, 혹시 모르니까.

나는 휴대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사 번.

-수호야 왜?-

“집이야?”

-아니, 수아 선생님이랑 대전에 나와서 재료 고르고 있어. 그런데 왜? 혹시 수지가 이번 주에 내려와?-

“그냥 네 걱정이 되어서, 내가 다른 애 바래다주느라고 신경 못 쓰고 있잖아.”

-에이... 난 괜찮아. 거의 매일 선생님이랑 같이 돌아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다. 요번 주 경연이라고 했지.”

-응~ 토요일 낮 열 시. 서울.-

그때 연습 시합이 잡혀 있는데...

젠장.

“나는 가기 힘들겠다. 미안.”

-이미 네 일정 힘들다는 거 수아 선생님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 내일 경연에서 할 음식 해줄 테니까. 미식가님께서 평가 좀 부탁해요.-

“어. 얼마든지 할게.”

-그럼 내일 봐.-

“그래 내일 보자. 안녕.”

전화를 마친 내 귓가로 만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해~ 빨리 와! 아저씨가 우리 차 태워 주신다고 기다리잖아.”

그 말에 나는 고개를 퍼뜩 들었다.

어라. 차가 멈춰 있잖아.

“뭐하냐고~”

“알았어!”

나는 바로 회색 탑차를 향해 뛰어갔다.

*10*

*10*

최악이다.

정말 최악이다.


시작은 삼 주 전 금요일이었다.

요리경연대비 시식을 해달라는 요청에 미수가 있는 조리실로 들어가다가 만화에서나 보던 바나나 밟기를 내가 해버렸다.

그 바람에 발목이 살짝 삐끗했고, 상태가 걱정된 나는 내일 대회를 생각해서 나는 미수가 바라다 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

자세한 사정을 말하면 미수가 자기 때문에 다쳤다는 생각을 할까 저어해서 거부했는데, 헤어지기 직전 미수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인 토요일에는 있었던 연습 시합에서, 당연히 발목이 살짝 아파서 제대로 하지 못했고, 유인준 선생님에게 자기 몸 관리 하나 제대로 관리 못한다고 혼났다.

거기에 수지에게서 전화가 와서, 다른 아이들과 친해지는 건 좋지만 미수 좀 챙겨달라는 타박을 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틀 뒤, 월요일이 되어 발목도 어느 정도 회복 되어서 안도한 가운데, 세 명의 아이들의 머리 위에 숫자가 뜬 것이다.

민지, 미수, 선애.

모두 여자이고, 통학하는 아이들이라서 나는 선택 문제로 골머리를 않았다.

하루 종일 고민을 하던 내가 수아 선생님과 인준 선생님에게 부탁하려고 했다가, 아이들 머리 위에 숫자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허탈해했다.

그리고 이번엔 수아 선생님 머리 위에 숫자가 떠서 그것 때문에, 무리하게 같이 있으려다가, 도끼눈으로 나를 지켜보는 미수를 발견한다.

당연히 오해하고 있었고, 숫자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나는 공격만 받다가 미수가 있는 조리실에서 쫓겨나듯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화요일이 되니까, 그리 친하지 않은 아이들의 머리 위에 숫자가 떠서, 난감한 상황도 있었다.

모두 숫자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무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회색 숫자가 검게 변하는 순간, 생명을 품은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에, 이전까지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어째서 머리 위에 숫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인지.

왜 회색 상태였다가 사라지기만 하는 건지.

결과가 없이 숫자가 나왔다 지워지는 이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될지.


전혀 모르겠다.

이젠 나도 한계야.

나도 대회가 코앞이라고...

왜 나에게 이러는 거야...

딱 하루만.

아니 대회가 있는 이틀 뒤까지 만이라도.


나는 머릿속에 욕망의 목소리를 이기지 못 했다.

대회가 있는 목요일까지 나는 대회 준비에만 열중했고,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동메달을 받았다.

발목 상태만 괜찮았다면 우승까지 가능했을 텐데...

유인준 선생님은 부상이 있는 와중에 이정도 한 거면 잘했다고 칭찬해 줬지만, 문제는 발목을 조리실에서 다쳤다는 걸 알아버린 미수였다.

내게 미안하다면서 사과하고는 영동으로 바로 내려가 버리는 바람에, 간만에 수지와의 만남도 흐지부지되어버렸고, 임수아 선생님은, 굳이 이곳에서 그 얘기를 하냐며 유인준 선생님과 크게 다투었다.

그 불똥은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러니까. 네가 처신을 똑바로 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잖아. 다른 아이들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네가 피해보지 않는 선에서 도와줘야, 둘 다 윈윈인 거지. 봐라. 네가 무리해서 이 사람 저 사람 봐주다가 다 망해버렸잖아.]

결국, 상을 탔지만, 난 그들에게 축하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과 멀어지는 결과만 얻은 채, 가만히 지켜보던 이신후 아저씨의 어색한 축하만 받고 내려왔다.


아 몰라!

난 다 몰라!

알아서 해!


그때부터 난 숫자가 있는 아이들을 무시했다.

더는 그들의 뒤를 무리해서 따라가지 않았고, 오로지 내 연습과 공부에만 매진했다.

그러자 귀신같이 일이 잘 풀렸다.

대전에서 있었던 작은 태권도 대회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함과 동시에, 모의고사에서도 많이 향상된 점수표를 받아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될만한 일이 벌어진 건 아니었다.

아이들 머리 위에 숫자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건 똑같았지만, 누가 죽거나 크게 다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이대로 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뒤엎는 최악의 사건이 나를 덮쳐왔다.

“선애가 실종됐다.”

어제 마지막으로 보았던 선애의 머리 위에는...

회색빛의 숫자 일이 있었다.


작가의말

숫자가 나빴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헐리우드리
    작성일
    19.05.09 01:30
    No. 1

    9,10 이런 숫자들은 무슨 의미인가요?? 그냥 에피소드 번호인가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3 저그좋아
    작성일
    19.05.09 17:05
    No. 2

    위에 제목만으로는 구분 못하는 독자 분들도 있어서, 연결된 번호로 붙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부마다 다른 번호나 문자를 붙여서 각 사건마다 순서를 매기고 있습니다.

    혼동을 주었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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