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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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10.10 18:50
최근연재일 :
2013.10.2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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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1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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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엄마 빨리 좀 준비 해. 시간 늦겠어.”

“그러게 내가 괜찮다는데 왜 그래가지고.”

“에이. 공짜잖아. 공짜로 건강검진 해준다는데 그걸 왜 안 해.”

“내 몸 내가 알아. 뭐 하러 귀찮게 이런 걸 해.”


명순의 말에 수연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살짝 언성을 높인다.


“병원에 온 사람들 중에 그 말하다 온 사람들이 태반이거든? 그러니 잔소리 말고 빨리 나와. 그러다 아파서 자식 고생시키지 말고.”

“알았어. 말은 또 뭘 그렇게 하냐.”

“자식 불효자 만들 거 아니면 내 말 좀 들어. 무슨 고집이 그렇게 세?”


명순의 손을 잡고 수연은 자신이 다니는 병원으로 갔다.


“그러고 보니 우리 딸 일하는 곳은 처음이네.”

“그러게.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부끄러운데?”


명순이 수연의 손을 슬며시 잡으며 말했다.


“일하는 건 힘들지 않아?”

“안 힘든 일이 어디 있어.”

“아무래도 아픈 사람들 상대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분위기라는 것도 있고.”


수연은 명순이 무슨 걱정을 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주변 환경에 무척이나 민감해했던 자신이다. 즐거운 분위기에선 즐거워했고, 슬픈 분위기에선 괜히 슬퍼졌었다. 그래서인지 수연은 낯선 곳에 갔을 땐 무척이나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변했다. 갑작스럽게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을 잃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병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그런지 내부의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아있다. 슬픔과 비애감, 고통 등이 뭉쳐있는 곳. 그렇기에 그녀의 마음이 힘들 것임은 분명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병원이야. 일하기 좋아.”


애써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수연의 모습에 명순은 마음이 짠했다.


“요즘 누구 만나는 사람은 없어?”

“없어.”


수연은 순정을 만나고 있었지만 한 번도 명순에게 만나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명순은 자신의 딸인 수연이 좋은 사람 만나서 자신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고생 없이 행복하게 살길 원했다. 그런데 순정의 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다. 명순이 알면 좋은 소리 나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수연은 애써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수연을 보며 순정은 조금 속이 상했었지만 뭐라 말하진 않았다. 스스로도 떳떳하게 명순의 앞에 나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병원엔 어디 좋은 사람 없어?”

“없어.”

“그렇게 말하지만 말고 잘 찾아봐. 너도 내년에 서른이잖아. 결혼은 해야지.”

“뭐 꼭 결혼해야하는 법 있어? 그냥 엄마랑 살아도 되지.”

“주변에서 그러는데 그런 말 하는 딸이 제일 먼저 시집간다더라.”


병원에 도착한 그들은 간호원의 안내에 따라 검진을 하기 시작했다. 수연이 병원 직원이다보니 많이 기다리지 않고 명순은 편하게 검진을 받을 수 있었다.


“내시경 위랑 장 한 번에 하는 거지?”

“응. 수면내시경이잖아.”

“잘 받고 와. 자고 일어나면 끝이래.”

“알았어.”


----------


수영과 명순을 앞에 둔 의사의 표정이 좋지 않다. 굳은 표정. 수연은 저 표정이 무언지 잘 알고 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표정이다.


“뭐가 안 좋게 나왔나요?”


수연의 물음에 의사의 입이 무겁게 열린다.


“좋다고도 할 수 있고, 안 좋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그게 무슨 소리죠? 괜찮으니 쉽게 말씀해주세요.”

“다른 곳은 괜찮으시다만 위가 문제입니다. 내시경 검사를 하는 와중에 발견 된 것이 있어요.”


의사가 화면을 돌려 내시경 도중 찍은 화면들을 보여준다.


“여기 보이죠? 종양입니다.”

“종양이라면…….”

“네. 조직검사 결과 악성종양으로 판단되었습니다. 보통 암이라고 하죠.”


의사의 말이 끝나자 명순이 눈을 꼭 감는다. 태연한 척 표정을 지어보이지만 명순의 얼굴은 이미 희게 질려있었다.

수연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발밑이 사라져 아래로 꺼지는 기분. 애써 정신을 다잡으며 의사에게 물었다.


“많이 안 좋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분명 초기는 아닙니다만 말기도 아닙니다. 아직 다른 곳에 전이된 것도 아니고요. 크기가 제법 크긴 하지만 충분히 희망이 있는 상태입니다.”

“다행이네요.”

“그렇죠. 지금이라도 발견한 것이 천운입니다. 조금만 늦었어도 결과는 달라졌을 겁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입원하셔야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아요.”

“예. 그렇게 할 게요.”


수연은 아직도 눈을 감고 있는 명순을 부축해 진료실을 나섰다. 명순은 다리에 힘이 없는지 제대로 걷지 못했다.


“미안하다. 수연아.”


자책하듯 혼잣말을 하는 명순을 수연이 울먹이는 눈으로 말했다.


“엄마. 엄마가 왜 미안해.”

“미안해.”


명순은 암에 걸린 것이 무서웠지만 그보다 딸들에게 미안했다. 다행히 일찍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초기는 아닌 상태. 생각보다 치료비가 많이 들 터였다. 심지어 자신은 흔한 암보험조차 들지 못했다. 보험료를 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연을 시집보내고, 수정을 대학에 보내려면 한 푼이라도 모아야 할 판이었는데 이렇게 자신이 아프게 되니 앞이 까마득했다. 당장 내년에 수정이 대학입학인데.

이 때 누군가 다급히 다가왔다.


“수연씨.”


아직도 숨을 헐떡이는 그는 중원이었다.


“중원씨.”

“이야기 들었어요. 미안해요. 사생활인데.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동료 의사 덕분에요.”


수연은 애틋하게 바라보는 중원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저 발끝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중원은 살짝 떨어져 벽에 기대는 수연의 손을 살포시 잡아 자신에게로 이끌었다.


“다행이에요. 빨리 발견해서요. 이 정도면 충분히 완치될 수 있어요. 그러니 기운 내세요. 제가 있잖아요. 제가 최대한 도울게요.”


수연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중원의 모습을 본 명순은 적지 않게 놀랐다.


“수연아. 이 분은 누구시니?”


명순의 말소리에 놀란 중원은 얼굴을 붉혔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수연이 급히 중원을 명순에게 소개했다.


“아는 분이야. 여기 의사로 근무하시는 최중원씨.”

“아는 분?”


중원은 마음을 먹었다. 수연과의 관계에 좀 더 진척이 될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수연씨를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중원입니다.”


급작스런 중원의 소개에 수연은 놀랐다. 그렇게 그가 엄마에게 자신을 소개할 줄 몰랐던 것이다.

놀라긴 명순도 마찬가지였다. 아까만 해도 만나는 사람이 없다던 수연이 이렇게 번듯한 사람을 자신 앞에 데리고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요. 우리 수연이 잘 부탁드려요.”


놀라 희게 굳어있던 명순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할 수연에게 저런 든든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안심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명순의 표정변화를 읽은 수연이 못내 부끄러워 살짝 명순을 타박한다.


“엄마는 참. 뭐 그런 소리를 해.”


중원이 사람 좋게 웃는다.


“일단 입원 수속부터 하고 오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중원이 자리를 뜨자 명순이 수연의 팔을 툭 친다.


“넌 저렇게 좋은 사람 놔두고 왜 사귀는 사람이 없다고 했어.”


수연이 애써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저었다.


“사귀는 사람 아냐.”

“그럼 저 사람이 너 좋다고 그러는 거야?”


이 순간 순정이 자꾸 떠오르는 수연은 그저 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뭐.”

“뭘 망설이고 그래. 사귀는 사람도 없다며. 저만한 사람 없다. 투박하게 생겼어도 눈빛이 진실하더라. 너무 집이 기우는 것이 걱정이긴 하지만…….”


마음속이 복잡한 수연은 그저 화제를 돌릴 뿐이다.


“됐어.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아픈 거 나을 생각이나 해.”


----------


명순을 병실에 쉬라고 하고 수연은 잠시 나와 중원을 만났다.


“솔직히 2인실은 여력이 되지 않아요.”

“비용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럴 수는 없어요. 제가 할 수 있어요.”


고개를 젓는 수연에게 중원이 진실 된 어조로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럽니다.”

“그래도 그건 너무 폐가 되요.”

“폐라뇨. 그렇지 않습니다. 수연씨 일이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연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존심만을 세우기엔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다. 어머니의 건강이 마음에 걸렸고 병원비가 마음에 걸렸다. 원무과에서 근무하는 자신이니 얼마나 많은 비용이 앞으로 들어갈지 잘 알고 있었다. 은행 빚을 낸다면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면 동생 학비는 정말 답이 없어졌다. 투병생활이 길어지게 되면 은행 빚 만으로도 모자를 것이다. 수정은 타의에 의해 생활전선으로 떠밀려버릴 것이다. 그 재능 있는 아이가 꽃을 피워볼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말이다.

그런 것을 눈앞의 중원이 해결해 줄 것이다. 2인실의 조용한 환경이 명순의 치료에 더욱 도움이 될 터였다.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기만 할 순 없는 일이었다. 자신은 그저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만사가 해결된다.


‘나 보다 가족이 중요해. 나만 마음먹으면 돼. 엄마의 생명이 달려있어. 동생의 미래가 달려있고. 그래. 그렇게 하자. 이게 옳은 결정이야. 모두를 위해서는.’


수연은 입술을 한 번 깊게 깨물곤 숨죽여 흐느끼듯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말하는 수연은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슬픔의 눈물이다. 하지만 중원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드디어 그녀에게 닿았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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