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엄마. 몸은 좀 어때?”
수정의 걱정스런 눈빛을 명순은 담담히 받아들였다. 슬며시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쓸어준다.
“난 괜찮아. 밥은 잘 챙겨먹는 거야?”
“학교에서 점심이랑 저녁 다 나와. 야자 신청해서.”
“그럼 아침은?”
“내가 언제 아침 먹는 거 봤어? 그러니 엄마는 신경 쓰지 말고 나을 생각만 해.”
“학교는 어떻게 된 거야?”
“토요일이라 오전 수업만 했어.”
명순이 짠한 눈빛으로 수정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래. 그래 다 컸네. 우리 수정이.”
“원래 키는 언니보다 컸거든?”
툴툴거리던 수정이 명순 앞에 놓인 식판을 보며 말했다.
“병원 밥은 입에 맞아? 여기 밥 완전 맛없잖아. 더구나 위암이라…….”
“먹을 만 해. 병원 밥이라 간이 덜 되어서 그렇지 담담하니 괜찮아.”
“그래. 실컷 잡숫고 다시는 여기 밥 먹지 말자.”
“우리 딸도 점심 먹어야하지 않아?”
“언니랑 먹지 뭐. 오랜만에 나왔는데 뭐라도 사달라고 해야지.”
“그래. 잠깐 나갔나 보던데 찾아봐. 요 앞에 있을 거야.”
“알았어. 나 밥 먹고 바로 갈 거야.”
“공부 잘 하고.”
“응.”
자리에서 일어난 수정이 다시 한 번 명순을 돌아본다. 가뜩이나 자주 찾아보지 못해 마음에 걸렸는데 오늘 같은 날에도 금방 자리를 떠야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자신은 더 있고 싶었는데 명순과 수연이 자꾸 등을 떠밀었다. 아무래도 고3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애써 놀려 자신의 언니인 수연을 찾았다. 확실히 아침을 걸러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팠다.
그 때 가까이서 언니의 음성이 들렸다.
“언…….”
언니를 부르려던 수정이 멈칫한다. 수연이 웃으면서 한 남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지나가듯 본적이 있는 사람.
‘중원이라 그랬나? 그 의사선생님.’
어린 자신이 보기에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수정은 수연을 부르려다가 말았다. 지금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며칠 전 보았던 그녀의 일기장과 편지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왠지 그녀를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그냥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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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한 분식집 안에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은 바로 순정이었다.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다짐해놓고 이렇게 그녀의 병원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자신이 미웠기 때문이다.
결국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그녀를 찾아보지 못하고 돌아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다고 이렇게 밥이나 먹고 있는 나는 뭐냐.’
눈앞에 놓인 쫄면과 김밥을 바라보던 순정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김밥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그 때였다.
“아이고. 학생 자리가 지금 없는데 어떻게 하지?”
“그래요?”
분식집에 들어온 것은 바로 수정이었다. 그냥 집으로 가려다가 집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기억해낸 그녀는 그냥 눈에 보이던 분식집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점심때라 그런지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아씨. 다른데 가기도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부를 살피던 수정의 눈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어? 그 사람이다.’
호리호리한 체구. 까만 눈동자. 하얀 얼굴. 당장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김밥을 먹고 있는 사람.
‘이름이 이순정이었나?’
수연의 서랍에 있던 사진들을 통해 순정의 얼굴을 알고 있었던 그녀가 한 눈에 순정을 알아본 것이다.
‘언니 보러 왔나보네.’
자신이 알기에 그의 집은 이곳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다. 굳이 분식 먹자고 이곳까지 오지는 않았을 터. 분명 수연을 만나러 왔다가 저렇게 앉아있는 것일 테다.
수정의 눈에 호기심이란 것이 잔뜩 들어차기 시작했다.
‘저기 한 번 앉아볼까?’
순정에게 다가간 수정이 그의 앞자리에 턱하니 앉았다. 순정은 그런 그녀의 행동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봤다.
“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합석해도 되요?”
당황에 대답하지 못하던 순정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이곳은 병원 앞에 있는 몇 안 되는 저렴하면서 먹을 만한 식당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식사 때엔 사람이 가득 차 자리가 없기 일쑤였다. 주말에 이렇게 와서 밥을 먹을 정도면 문병을 왔을 터였다. 더구나 자꾸 시계를 쳐다보는 것이 시간에 쫓기는 것 같았다. 이럴 때 자신이 양해하는 것이 맞다 생각했다. 정작 수정이 자꾸 시계를 보던 이유는 그저 쑥스러웠기 때문이었지만.
순정은 다시 한 번 수정을 살폈다. 교복을 입은 모습. 그 모습에 순정은 마음이 짠해졌다. 어린 나이에 큰일을 겪는 것만 같아서였다.
‘아직 어린 것 같은데 고생이 많네.’
순정이 냅킨을 뽑아 바닥에 놓고 수저와 저분을 꺼내 그 위에 올려주었다.
갑작스런 순정의 행동에 놀란 수정을 두고 순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물컵에 물을 담아 수정에게 건넸다.
“여기 물은 셀프라서요. 목이 많이 말라 보여서.”
“감사합니다.”
실제 수정은 목이 많이 탔다. 뜨거운 여름 날씨가 그녀를 무척이나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색한 자리라 다시 일어나 물을 떠오기가 좀 그랬기에 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순정이 그걸 알아채고 챙겨준 것이었다.
“여기 음식 나왔습니다.”
수정이 시킨 순두부찌개가 나왔다. 수저를 드는 수정에게 순정이 참치김밥을 하나 올려준다.
“이것도 먹어봐요. 여긴 이게 맛있어요.”
맑게 웃는 수정의 모습에 수정이 살짝 볼을 붉혔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는 수정은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다.
‘좋은 사람이구나. 내가 봤던 편지 내용처럼.’
순정에 대한 연민과 함께 수정은 자신을 감싸던 외로움이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눈을 마주치고, 자신을 챙겨주는 것은.
이 때 순정도 나름대로 충격에 빠져있었다.
‘닮았어.’
부끄러운 듯 눈을 오른쪽 아래로 살짝 깔고 한쪽 입가를 올리는 모습. 밥을 먹을 때 꼭 수저와 저분을 반찬그릇 한 귀퉁이에 걸쳐 올려놓는 모습이 수연의 모습을 꼭 닮았기 때문이었다.
‘분위기도 닮았어.’
생긴 것은 묘하게 달랐다. 차갑지만 귀여운 면이 있는 수연과 다르게 앞에 있는 학생은 차갑고 도도해 보였다. 하지만 묘하게 분위기가 닮아 있었다. 아닌 척하면서 웃는 모습. 신경 안 쓰는 척하면서 몰래 훔쳐보는 것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 다음 귓불을 살짝 매만지는 습관까지.
낯선 여성에게서 수연의 그림자가 너무나도 짙게 묻어나오자 순정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앞에 놓인 음식이 어떻게 넘어가는 지도 모를 정도로.
“저기요.”
“네?”
수정의 부름에 순정이 멍청하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수정이 슬쩍 웃었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이었지만 문득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화번호 좀 줘 봐요.”
수정이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순정이 잠시 망설이다 자신의 번호를 찍어주었다. 그냥 지나치기엔 그녀에게서 느낀 옛사랑의 편린이 너무나 강렬했다.
“문자 보내면 꼭 답장해요.”
그렇게 돌아서는 수정의 뒷모습을 순정은 멍하니 바라봤다. 문자 보내면 꼭 답장해요. 그 한 문장. 수연이 처음 자신에게 했던 말.
멍하니 앉아있는 순정을 뒤로한 수정의 얼굴엔 묘한 표정이 생겼다 사라진다. 문자 보내면 꼭 답장해요. 수연의 일기에서 봤던 말.
뜻 모를 수정의 한 마디가 두 사람 사이에 큰 파문을 불러왔다.
- 작가의말
어떻게 하면 매력있는 글이 될 수 있을지가 고민입니다.
비슷한 장르의 글을 비교해 봤을 때 반응이 너무 작아서요.
이것도 초심을 잃어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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