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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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10.10 18:50
최근연재일 :
2013.10.2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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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1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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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9화

DUMMY

“김명순씨. 좀 어떠세요?”


회진을 온 의사의 말에 명순이 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젯밤엔 잠도 잘 잤어요. 기운도 나는 것 같고.”


의사의 표정이 밝다. 들고 있던 차트를 본 의사가 웃으며 말한다.


“그렇군요. 검사결과도 좋게 나왔네요. 확실히 차도가 있어요. 이렇게만 되면 완치가 될 것 같습니다.”


명순의 곁에 앉아있던 수연이 일어나 다시 의사에게 물었다.


“정말인가요?”

“물론이죠. 보통 환자들에게 확답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저는 확답을 할 수 있겠군요. 이대로만 가면 완치가 될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뒤로도 계속 정기적으로 살펴야하겠지만요.”


의사의 말에 수연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뭘요. 최중원 선생님이 하도 신경을 써달라고 해서 안 그래도 더 살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돌아가는 의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명순이 수연에게 말한다.


“그 최중원이라는 의사에게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하는데.”

“내가 따로 말 할 게.”

“어디 그게 도리겠니? 내가 직접 말 해야지.”


그 때 마침 중원이 병실의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말씀 들었습니다. 많이 좋아지셨다면서요?”


명순이 중원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래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정말 고마워요. 덕분이에요.”

“아닙니다. 제가 뭘 한 게 있다고요. 다 씩싹히게 이겨내신 어머님 덕분이고 옆에서 간호해준 수연씨 덕분입니다.”


수줍게 웃으며 손사래를 치는 중원이 명순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잘난 사람이었음에도 잘난 티를 안 내는 그의 모습이 좋게 보였다. 중원이라면 가세가 기우는 수연에게도 차별 없이 잘 대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의 인성을 보건데 그의 부모도 분명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웃으며 명순의 손을 꼭 잡아주던 중원이 전화기를 확인하더니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를 찾네요. 이만 일어나 봐야겠어요.”

“그래요. 바쁠 텐데 어서 가 봐요.”


중원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명순이 수연에게 살짝 눈치를 주었다. 그에 망설이던 기색을 보이던 수연이 이를 한 번 악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병실을 나서는 중원을 따라가 그를 불러 세웠다.


“저기 중원씨.”

“네. 수연씨.”

“혹시 언제 저녁 때 시간 되세요?”

“저녁에요?”

“네. 너무 고마워서요. 저녁이라도 한 번 대접해드리고 싶네요.”


수연의 말에 중원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생긴다.


“그래요? 잠시만요.”


중원이 스마트폰에 입력된 스케줄을 확인하더니 크리스마스를 앞둔 아이처럼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은 어때요?”

“좋아요. 그럼 내일 뵈어요.”

“네. 수연씨. 연락드릴게요.”


돌아서 걸어가는 중원의 뒷모습이 무척 씩씩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수연은 힘이 없어보였다. 돌아서는 그녀의 발걸음이 무겁다.



----------



“초밥은 입에 맞으셨어요?”

“네. 맛있었습니다.”

“다행이네요. 입에 안 맞을까봐 걱정했는데.”

“저는 아무거나 다 잘 먹습니다.”


한 회전 초밥집에 앉은 중원과 수연. 조금은 어색한, 약간은 훈훈한 분위기가 둘 사이를 채운다. 더운 여름이라 그런 걸까? 중원의 이마엔 땀이 가득했다. 하지만 안은 에어컨의 냉기가 가득했다.


“많이 더우신가 봐요.”

“아, 네 좀 그러네요.”


수연이 웃으며 탁자위에 놓인 냅킨을 중원에게 건넸다.


‘정말 순수한 사람이구나.’


중원이 땀을 흘리는 이유를 수연은 얼핏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주머니를 만지는 그. 주머니는 무엇이 들었는지 불룩했는데 그 모양은 누가 봐도 작은 상자 모양이었다.


“저, 저기 수연씨. 저, 저기.”


말을 더듬는 중원에게 수연이 웃으며 말했다.


“시간 아직 많이 남았는데 술 한 잔 하실래요?”

“네? 네! 가시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중원은 수연을 조용한 분위기의 한 칵테일 바로 데려갔다. 그리 과하지 않고 아늑한 분위기여서 그런지 커플들이 많이 보였다.


“분위기 좋네요. 전에도 와 보셨어요?”

“아니요. 인터넷에서.”


그냥 알고 있던 곳이라면 할 걸 될 것을 중원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 참 솔직한 사람이야.’


탁자에 놓인 촛불이 노랗게 일렁인다.


“수연씨.”


중원이 굳은 얼굴로 주머니에서 상자를 꺼냈다.


“그 동안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수연씨 어머님의 일로 마음의 여유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이럴 때 제가 수연씨에게 다가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다렸습니다.”


상자가 열린다. 그 안엔 제법 비싸 보이는 반지가 놓여있었다.


“이르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두 사람의 인연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연씨에 대한 저의 마음은 진심입니다. 곁에서 지켜본 수연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수연씨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 되어줄 자신이 있습니다. 남이 아닌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수연씨와 어머님에게 힘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수연씨 제 마음을 받아주십시오.”


어설프지만 진실 된 그의 프러포즈. 누구라도 충분히 감동 받을 수 있는 그런 그의 고백.

눈앞에 놓인 반지를 수연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말 받고 싶었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순정에 대한 생각에 수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자리에서 할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순정에게도 미안한 일이고, 중원에게도 미안한 일이었으니까.

수연은 탁자 아래 감춰진 손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그 손이 하얗게 질리고서야 손에서 힘을 풀었다.


“고마워요.”


흐리게 웃는 수연. 살짝 맺힌 눈가의 이슬. 그녀가 보이는 눈물의 의미는 그녀가 아니고서야 알 수 없을 것이다.


“받아줘서 고마워요.”


수연의 승낙에 중원은 세상을 가진 듯 기뻤다.


“제가 정말 잘 할 게요. 고마워요. 수연씨. 사랑합니다.”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던 둘은 시간이 늦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헤어지려는 수연을 중원이 붙잡았다.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대리 부르면 됩니다.”

“아니에요. 잠시 들를 곳이 있어서요.”

“그래도 시간이 늦었는데.”

“근처니까 걱정 마세요.”


수연의 표정을 본 중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더 권하는 것도 실례이기 때문이다.


“그래요. 그럼 연락해요.”

“네. 그럴게요.”


돌아서는 중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연이 이내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고양시로 가주세요.”


뒷 자석에 앉아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익숙한 길이다. 양화대교를 지나 자유로를 타는 이 길. 자주 가던 길. 이제는 자주 갈 일이 없는 길.


‘시간이 지나면 낯설어지려나?’


손에 껴진 반지를 만져봤다. 아직은 낯선 감촉. 조금은 불편한.


‘그러나 곧 익숙해지겠지.’


----------


택시에서 내린 수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완연한 여름의 공기. 밤이 되었음에도 식지 않은 덮고 습한 공기가 수연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수연은 자신의 심정을 닮은 우울한 공기가 자신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찌푸린 얼굴을 가려주니까.

무거운 공기만큼이나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 뗀다.

걷고 있는 수연은 자신이 왜 그곳에 찾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마음이 시키는 것에 따를 뿐이다. 이성은 그녀를 막고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마지막이야.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것은.’


그녀가 이끌리듯 찾아간 곳은 바로 순정의 집이었다. 낯익은, 아니 잊지 못할 그의 옥탑방. 그 문을 두드리려던 수연은 문득 자신의 손에 낯선 반지가 끼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잠시 자신의 손을 응시하던 그녀는 이윽고 손에서 반지를 빼냈다. 그리고 그 반지는 자신의 가방에 넣어두었다.


쿵쿵쿵.


“누구세요?”

“나야.”


잠시간의 정적. 그리고 무섭게 뛰쳐나오는 발걸음 소리.


쿵쿵쿵.


부서지듯 열리는 문.


“수연아…….”


수연을 바라보는 순정의 눈엔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맴돌고 있었다.

반가움. 당황. 미련. 의문. 따스함. 걱정. 사랑.


“잠깐 들어가도 돼?”


수연의 물음에 순정이 한 발 뒤로 물러선다.


“그래. 들어와.”


신발을 벗고 들어간 수연은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툭 떨구었다.

그런 수연을 가만히 바라보던 순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는 거지?”


대답 없이 순정을 바라보고 있는 수연. 그런 수연에게 다시 조심스럽게 묻는 순정.


“내가 물어보면 안 되는 일이야?”


순정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셔츠의 단추를 풀기 시작하는 수연.


“아무 말도 하지 마. 아무 것도 묻지 마.”


툭. 하나씩 떨어지는 그녀의 옷가지.


“쉿. 아무 말도 하지 마.”


기대오는 수연을 순정은 가만히 끌어안았다. 비 맞은 새처럼 떠는 수연의 가는 몸을 품에 꼭 안았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 떨림이 조금씩 잦아든다.

순정을 올려다보는 수연. 그녀의 눈동자는 무척이나 흔들리고 있었다. 순정은 그저 그런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밤새도록 한겨울 바람 속에 서있던 사람처럼 떨리는 음성으로 수연이 말했다.


“안아줘. 밤새도록.”


그렇게 시작된 둘만의 시간. 음성이 필요치 않은 그들의 대화. 여름의 밤보다 뜨거운 몸짓.


격정의 시간이 지난 후 순정의 품에 안겨서 잠을 자던 수연이 가만히 눈을 떴다. 익숙한 자세로 자신을 안고 있는 순정을 가만히 바라봤다.


‘미안해.’


수연이 조용히 순정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순정이 깨지 않게 옷을 입은 수연. 그리고는 다시 자고 있는 순정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마치 절대 잊지 않겠다는 듯이.


‘안녕.’


그렇게 수연은 어슴푸레 떠오르는 새벽의 푸른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작가의말

이설님 매번 코멘트도 달아주시고 너무 감사드립니다. 마구 기운이 나서 감기로 골골대지만 써서 올립니다. 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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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이설理雪
    작성일
    13.10.15 20:47
    No. 1

    (감정이입)아아...수연아 그건 아니야 그건 아니라고...아무리 현실이 버거워도 어떻게 돈이 먼저가......ㅠㅠㅠㅠㅠ

    오타 있습니다.(정색)
    반지기-반지가
    그들의부모- 이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무엇보다 부모를 가리키면서 부모들이라고는 안 합니다. 부모라는 말 자체가 이미 아버지, 어머니를 가리키고 있지요. 그러니 부모들 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 알려드릴게요.

    애초에 이 '들' 이라는 말은 일어 해석하다가 생겨난 포현이고 또 하나, 일어는 '들' 이라고 가리키는 언어 자체가 없습니다. 굳이 따지면 있기는 합니다. 보쿠타치, 나와 다른 일행, 즉 보쿠타치는 '우리'를 말합니다.키미타치 는 '너와 다른 일행' , 즉 '너희' 지요.

    근데 보쿠타치 키미타치 가 왜 우리들 과 너희들 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어를 배운 적 있는 사람으로서 진짜 이상하게 다가와요.

    솔직히 써야 할 곳 안 써야 할 곳 구분없이 들 이란 말 나오는데 짜증나 죽것어요, 아주.

    1 더하기 1 은 2 이지 10 이나 100 이 될 수는 없잖아요.

    아오 흥분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기 얼른 나으시구요! 다음 편은 감기 낫고 나면 집필하시길!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0 부정
    작성일
    13.10.15 21:08
    No. 2

    번역투의 영향인가 봅니다. 안 그런다고 조심하는데도 이상하게 묻어있더군요. 공교육의 폐해입니다. ㅠㅠ 영어. 용서하지 않겠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터프윈
    작성일
    13.10.26 12:09
    No. 3

    순정보다 중원이 더 불쌍해보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0 부정
    작성일
    13.10.27 01:33
    No. 4

    사랑은 모르는 게 약이죠. ㅠ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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