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걸음.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팬픽·패러디

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10.10 18:50
최근연재일 :
2013.10.24 15:13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2,681
추천수 :
260
글자수 :
99,381

작성
13.10.10 18:52
조회
1,091
추천
14
글자
8쪽

1화

DUMMY

“저거 봐. 벌써 꽃 피나봐.”


구내식당 창밖에 늘어서 있는 벚나무엔 어느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그러게. 벌써 완연한 봄이네.”

“그나저나 너 어떻게 할 거야? 최선생님이 식사 같이 하자고 한 거 말이야.”


해주의 말에 수연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요즘 한 의사가 자신에게 자꾸 접근을 해오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밥을 같이 먹자, 차를 한 잔 하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자신을 보는 눈빛이나 취하는 태도 등을 보면 둔한 사람이 봐도 관심이 있어 한다는 것을 알 정도였다.


“최선생님이 너 마음에 있는 것 같으니까 한 번 잘 해봐.”

“그런 소리하지 마. 나 남자친구 있는 거 언니도 잘 알잖아.”

“뭐. 그 인기 없는 소설가? 너한테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톡 까놓고 이야기해서 그 사람이랑 최선생님이랑 비교가 되냐? 집도 좀 사는 종합병원 전문의랑 알바생보다 돈 못 버는 가난한 소설가랑 말이야. 뭐 지금 네 남자친구 좋은 사람인 건 나도 아는데 그게 다가 아냐. 너도 내일 모레면 서른이야. 결혼 안 할 거야?”


수연은 해주의 말에 대꾸할 수 없었다. 자신이 무척이나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무례할 정도로 까 내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녀도 내심 고민이 많았다. 남자친구의 경제력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엄청난 부자를 만나 팔자 고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을 만나 고생하고 싶지도 않았다.


“너 현관으로 가난이 들어오면 창문으로 사랑이 도망간다는 말 괜히 나온 거 아니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아이라도 낳으면 어떻게 할 거야. 요즘 유치원비, 학원비가 얼만지 알기나 해? 그리고 솔직히 우리 일도 오래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육아휴직도 눈치 보이고. 잘 생각해. 나 같으면 얼씨구나 하고 잡겠다.”

“됐어. 자꾸 그런 말 하지 마. 그러면 나 다시는 언니랑 이런 이야기 안 할 거야.”


수연의 굳은 표정에 해주는 뜨끔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기 딴엔 수연을 위해 한 말이었지만 분명 그녀에겐 무례한 말임엔 분명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방정인 자신의 입을 다시 한 번 탓하면서도 마지막 말을 잊지 않는다.


“그냥 밥이나 한 번 먹어봐. 밥 먹는 다고 사귀는 건 아니잖아. 뭐 어때.”


해주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수연은 무척이나 마음이 흔들렸다. 마치 사과를 따 먹으라는 뱀의 유혹처럼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그래. 그냥 밥이나 한 번 먹는 것 정도야.’


----------


“여기에요. 수연씨.”


수연을 향해 손을 흔드는 남자. 듬직해 보이는 외모에 검게 그을린 피부 때문에 나이에 비해 조금 더 들어 보이는 외모. 조금 무뚝뚝한 표정 때문에 더 대하기 어려웠지만 그 눈빛만은 순박했다.


“안녕하세요. 최선생님.”

“에이. 무슨 밖에서도 선생님이라 그래요. 그냥 이름 불러요.”

“어떻게…….”

“밖에서는 마음 편하게 있고 싶어서 그래요. 알잖아요. 외과 스트레스 많은 거. 그러니 부탁드려요.”


투박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그의 음성은 무척이나 편안했다.


“알겠어요. 최중원씨라고 부르면 되죠?”

“네. 훨씬 듣기 좋네요.”


이 때 말쑥한 차림의 점원이 다가와 메뉴판을 건네며 말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메뉴판을 받아든 수연은 무척이나 놀랐다. 음식의 가격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이름을 봐도 잘 모르겠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그런지 레스토랑의 내부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식탁보나 식기 하나 고급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천장을 장식한 샹들리에가 눈에 부셨다.

수연이 주문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중원이 슬쩍 말을 건넨다.


“제가 추천해드릴까요?”

“예. 그래주세요.”


중원이 웃으며 자연스럽게 점원에게 주문을 했다. 그 모습에 수연은 살짝 주눅이 들었다.


“가끔 오는데 스테이크가 괜찮아요. 와인도 마음에 드실 거예요.”

“아, 예.”


주문한 음식이 나왔을 때 수연은 정신이 없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처음 접하는 코스요리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가시방석이었다.


“수연씨. 저 할 말이 있어요.”

“뭔데요?”

“저 수연씨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수연씨도 아시고 계시죠?”

“모를 수가 없었죠.”


낯빛이 살짝 어두워지는 수연의 모습에 중원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알게 모르게 병원 내에서 이런 저런 말이 도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남자인 자신이라면 모를까 여자인 수연에게 그것은 무척이나 부담되는 일일 것이다.


“부담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적이 없어서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몰랐어요.”

“아니에요.”

“수연씨. 전 수연씨가 너무 마음에 듭니다. 저는 이것이 호감을 넘어선 어떤 감정이라고 확신합니다. 당장 수연씨가 제 마음을 받아들여달라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제가 다가가는 모습 밀쳐내지만 마시고 조금만 지켜봐 주세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


중원의 말에 수연은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처음 먹어본 호화로운 식사와 정중하지만 진실 된 그의 고백이 수연의 머릿속을 온통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문득 길가에 돈까스집이 보였다.


‘저런 곳에 밖에 못 가봤는데…….’


수연은 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녀의 남자친구인 순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조로운 연결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았지만 바로 받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집에 가는 길이야?]

“응.”

[그 동료 언니랑 밥 먹었다더니. 맛있었어?]


그렇다. 수연은 해주와 밥을 먹는다고 순정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어. 처음 가보는 곳인데 괜찮더라.”

[맛있었다니 다행이네. 그런데 목소리가 안 좋네. 많이 피곤해?]


애써 숨긴다고 밝게 통화를 했는데 역시 순정은 그녀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그런 순정의 모습에 수연은 새삼 이 사람이 자신에게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 번 느꼈다.


“좀 그러네. 일이 많았어.”

[이긍. 많이 힘들었겠네. 내가 가서 어깨라도 주물러 줘야하는데.]

“아냐. 이제 집 앞이야. 들어가서 잘 거야 이제.”

[그래. 아직 밤에 쌀쌀하니까 이불 잘 덮고.]

“응. 잘 자.”


전화를 끊은 수연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온다. 순정의 목소리를 들을 때만 해도 좋아졌던 기분이 통화를 종료하자마자 가라앉았다. 다시금 그녀의 머릿속에선 순정과 먹었던 7000원짜리 돈까스와 가격을 말하기도 어려운 코스요리가 비교되었다.

그녀는 애써 머릿속에 잡념을 떨쳐내며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엄마 나 왔어.”


집안일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


“그래. 고생했어. 밥은 먹었고?”

“응. 먹고 왔지.”


어머니의 검은 머리카락 속에 흰 머리카락이 무척이나 많이 자라난 것이 보인다. 어느새 주름이 많아진 얼굴도. 홀로 자신과 동생을 키우신 어머니. 아직도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계셨다. 내년이면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도 대학에 간다. 좁고 낡은 집이 오늘따라 속 터진다.


“수정이는?”

“아직 학교에 있지. 곧 올 거야.”

“수정이는 요즘 성적 어때?”

“네 동생 아직 몰라? 걔야 언제나 알아서 잘 하지.”


수연의 동생 수정은 성적이 학교, 아니 전국석차 안에 드는 우등생이었다. 이과생이었는데 내심 의대를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성적은 차고 넘쳤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을 정도로.


‘의대가 6년 과정이었나? 학비도 무척 비싸다던데…….’


흔한 학원 한 번 보내주지 못했던 동생이었다. 수연은 어떻게든 학교는 동생이 마음에 들어 하는 곳에 보내고 싶었다. 가난이란 이름에 꿈을 좌절당하는 것은 자신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수연은 힘없이 고개를 젖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난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넘어질 것 같았다.

오늘따라 그녀는 천장의 누런 벽지가 슬펐다.


작가의말

한글로만 쓰고 있으니 의욕이 안 생기네요. 긴장 좀 하려고 연재에 올립니다. 또 하나의 글 완결을 향해 달려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걸음.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4 마지막화 +13 13.10.24 535 13 12쪽
23 23화 +4 13.10.24 445 15 10쪽
22 22화 +2 13.10.24 294 10 8쪽
21 21화 +2 13.10.23 1,227 11 11쪽
20 20화 +6 13.10.23 426 11 9쪽
19 19화 +6 13.10.22 613 10 11쪽
18 18화 +4 13.10.21 409 9 14쪽
17 17화 +2 13.10.20 379 8 10쪽
16 16화 +2 13.10.19 734 10 11쪽
15 15화 +4 13.10.18 402 12 8쪽
14 14화 +6 13.10.18 387 9 8쪽
13 13화 +2 13.10.17 308 9 8쪽
12 12화 +6 13.10.17 430 12 8쪽
11 11화 +6 13.10.16 365 14 8쪽
10 10화 +2 13.10.16 467 10 9쪽
9 9화 +4 13.10.15 882 9 10쪽
8 8화 +4 13.10.14 311 12 9쪽
7 7화 +5 13.10.14 546 10 11쪽
6 6화 +2 13.10.13 424 9 8쪽
5 5화 +4 13.10.13 402 10 10쪽
4 4화 +6 13.10.12 336 12 6쪽
3 3화 +1 13.10.11 649 10 9쪽
2 2화 +2 13.10.11 619 11 7쪽
» 1화 +5 13.10.10 1,092 14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