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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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10.10 18:50
최근연재일 :
2013.10.24 15:13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12,669
추천수 :
260
글자수 :
99,381

작성
13.10.13 16:41
조회
423
추천
9
글자
8쪽

6화

DUMMY

집에 온 수연은 손에 든 가방을 바닥에 던져버리고 침대에 몸을 날렸다. 좁은 보호자용 침대에 누워 있다 오랜만에 자신의 침대에 누우니 몸이 침대와 하나가 되는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노곤해졌다. 요즘 그녀는 어머니의 간호를 위해 병원에서 밤을 보냈다. 출근할 때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잠시 들른 것이다.

수정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는지 집에 없었다. 불도 켜지지 않은 집에 혼자 누워있으니 적막감이 돈다. 예전 같으면 무서워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옅은 불이 항상 켜있고, 누군가가 돌아다니고 있는 병원에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물론 아픈 그녀의 어머니 때문에 더 그렇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무도 없고 어두운 지금 이 순간이 그녀에게는 작은 평화와 같았다.


‘힘들다.’


수연은 오늘따라 모든 것이 버겁다고 느껴진다. 지친 몸을 애써 일으켜 가방속의 핸드폰을 꺼냈다.

패턴을 눌러 휴대폰의 바탕화면을 밝힌다. 순정과 찍은 사진이 보인다. 얼굴을 맞대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지쳐 눌려있는 자신과는 달리 사진속의 수연은 밝게 웃고 있었다. 마치 바라던 선물을 갖게 된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으로 사진속의 자신을 쓸어본다. 행복이 가득 담긴 표정. 그 표정을 수연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제는 다시 갖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그녀의 영혼을 가득 적셨기 때문이다.

그 때였다. 손이 떨린다. 진동음. 전화가 울린다. 순정의 전화였다. 하지만 수연은 받지 못했다. 차마 그의 목소리를 들을 자신이 없었다. 그녀에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준비를 할 수 없었다. 도저히. 그래서 피했다. 꽤 긴 시간동안.

한참을 울리던 전화가 다시 멈춘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의 진동은 이제 시작이다. 떨린다. 떨려온다. 멈출 수 없는 떨림이 온다. 습관처럼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눈을 꼭 감고 고개를 흔들어본다. 헝클어진 머리가 얼굴을 덮었다.


‘시간을 더 끌 순 없겠지. 피하기만 하는 건 오히려 그에게 더 못할 짓이야.’


떨리는 손가락으로 핸드폰의 액정을 건드린다. 쌓여있는 문자와 부재중 통화. 순정이 보낸 것들이었다.

핸드폰의 전화번호부를 열어 순정의 이름을 바꾼다. 이모티콘과 애칭으로 정해져있는 그의 이름을 있는 그대로 바꿨다. 이순정. 첫 변화다. 자신에게 있는 그에 대한 흔적을 지워나가는.

앨범으로 들어갔다. 행복과 사랑이 담긴 그와 그녀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다. 삭제버튼을 누른다.


- 정말 삭제하시겠습니까? -


확인버튼을 누른다.

휴대폰 액정 위로 물방울이 떨어진다.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방울져 떨어진다.

고개를 젖히고 깊게 숨을 들이 마신다. 끓어오르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느낌이다. 시큰한 코끝을 손으로 쓸어본다.

저장된 메시지들도 지운다. 달콤한 사랑고백들. 기념일 때 보낸 그의 마음들. 2바이트 뭉텅이에 그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 삭제하시겠습니까? =


확인버튼을 누른다.

가슴이 아프다. 마음이 허전하다. 마치 그의 사랑이 하수구로 쓸려나간 것 같다. 버린 것은 자신이다. 쓸려나가는 사랑이 버려지지 않겠다고 자신을 붙잡는다. 애써 밀어낸다. 밀려나지 않으려고 자신을 움켜쥔다. 그래도 밀어낸다. 사랑의 손에 손톱이 세워져 있었던가? 가슴이 마구 헤집어진 듯 쓰라리고 아프다.

침대 옆 구석에 몸을 구겨 넣는다. 밀려드는 허전함과 공허함 때문이다. 무언가 자신을 감싸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깊게 침대 틈으로 자신을 구겨 넣는다.

수연은 애써 눈물을 훔치고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이제 말할 시간이다. 준비는 끝났다.


----------


전화기가 울린다. 발신인을 본 순정은 모처럼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그는 대충 비빈 밥이 담긴 양푼을 옆에 치우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넘어 들리는 수연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


[나야.]

“알고 있지. 이제 퇴근 하는 거야?”

[아냐. 퇴근은 아까 했어.]

“그래? 난 또 연락이 없어서 바쁜 가 했지.”

[뭐하고 있었어?]

“밥 먹고 있었어.”

[이 늦은 시간에?]

“아, 나도 모르게 때를 놓쳤지 뭐야. 지금 저녁 먹고 있었어.”


순정은 그녀에 대한 걱정에 계속 휴대폰만 보느라 요즘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관념도 놓친 지 오래였다.


[그럼 밥 먹어.]

“아냐. 거의 다 먹었어.”

[밥부터 먹어.]

“싫어. 오랜만에 전화하는 건데. 네 목소리 더 듣고 싶어.”

[밥 먹고 다시 전화해. 밥부터 먹어.]

“그래? 알았어. 잠시만 기다려봐.”


전화를 끊은 순정은 허겁지겁 밥을 삼켰다. 설거지통에 양푼을 던져놓은 후 물을 마셔 목에 걸린 밥을 밀어 넘겼다.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떨리는 손으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들린다. 받지 않을까봐 순정은 초조했다.

딸각.


[여보세요?]

“나야. 밥 다 먹었어.”

[뭐 그렇게 빨리 먹었어. 천천히 먹지.]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그래. 그랬구나.]

“요즘 많이 바쁜가 봐. 연락이 잘 안 되네. 목소리도 많이 안 좋고. 요즘 무슨 일 있어?”

[아니야. 그런 거.]


수연의 목소리에 순정은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요즘 수연은 항상 이랬다. 전화도 잘 되지 않고, 문자를 보내도 답장도 거의 없었다. 통화가 되더라도 이렇게 무뚝뚝했다. 마치 남보다도 못한 사람처럼.


“그래. 그냥 기운이 없나보네. 어디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갈까? 기운 나게?”

[나 할 말 있어.]

“무슨 말이야?”

[우리 헤어지자. 나는 더 못 사귈 것 같아.]


청천벽력 같은 그녀의 한 마디. 그 한 마디가 순정의 가슴에 벼락처럼 내리 꽂혔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여보세요?]


침묵이 이어져서 그런지 수연이 순정을 재촉한다.


“듣고 있어.”

[무슨 말이라도 해봐.]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한다고 뭐가 바뀌어?”


수연의 입에서 이별이란 단어가 나온 순간 순정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갑자기 변한 그녀의 태도. 그녀는 분명 그에게 그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불안했다. 그래서 더 그녀에게 연락을 하고, 왜 답장을 하지 않느냐고 재촉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바뀌는 건 없어.]

“너 정말 많이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는 거지?”

[그래.]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할게.”


또다시 시작된 긴 침묵. 흐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순정이 말했다.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순정은 대답도 듣지 않고 핸드폰을 끊어버렸다. 그리곤 침대에 던져버렸다.

단순히 그녀의 마음이 변했다고 해서 잡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순정은 스스로 그녀를 잡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엔 자신은 너무 작고 초라한 사람이었으니까. 자신도 알고 있었다. 사랑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비싼 밥 한 번, 꽃 한 송이 주지 못한 그였기에 그녀를 잡을 수 없던 것이다.

순정은 화가 났다. 이별을 말한 그녀에게 난 화가 아니다. 그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했기에 화가 났다.


순정에게 작별을 고하는 수연. 자신에 대한 이야긴 하지 않는다. 당황하는 순정. 하지만 순정은 수연을 잡지 못했다. 요 근래 그녀가 묘하게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내심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별을 말할 것이라는 걸. 애써 부정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아직 널 사랑하는데.’


하지만 순정은 다시 생각해보라고, 내가 더 잘하겠다고, 헤어지지 말자고 말할 수 없었다. 차마 그녀를 잡을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녀에게 그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슬퍼하는 것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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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설理雪
    작성일
    13.10.14 21:49
    No. 1

    후~ 경험상 한 번 헤어지니 다시 얼굴보기까지 참 어렵던데... 그래서 저는 제 작품 속 커플, 웬만하면 이별시키지 않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0 부정
    작성일
    13.10.15 02:07
    No. 2

    저도 헤어진 옛사랑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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