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수영은 낯선 장소가 주는 긴장감이 영 불편하다. 생전 처음 와본 호텔 커피숍은 보기만 해도 부담스러웠는데 직접 들어와 앉아있으니 죽을 맛이다. 더구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자신을 더 불편하게 한다.
“전 커피 마실게요.”
커피 값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비쌌다. 한 잔에 만원이 넘는 것은 둘째 치고 봉사료와 부가세가 붙었다.
‘셀프로 갖고 오면 봉사료는 빼주려나.’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대가 말을 건다. 흔한 이야기. 집은 뭘 하는지, 하고 있는 일은 할 만한지. 나이나 학교, 취미 같은 것들.
상대는 생각보다 잘생겼다. 남자다운 외모. 그냥 공부만한 샌님 같을 줄 알았는데 기대이상이다. 제법 유쾌하게 말도 이끌어가고. 매너도 좋았다. 그런데 그 뿐이다. 분명 객관적으로도 좋은 사람이었지만 눈길이 안 간다. 따분했다.
“또 연락드릴게요.”
의미 없는 인사말을 남기고 수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데려다 준다는 것을 애써 거절했다.
“아씨. 왜 호텔에서 만나자고 해가지고.”
생각 없이 차를 끌고 나온 것이 문제였다. 차마 자신의 국산 경차로 그 호텔에 당당히 입성하기 민망했던 것이다. 조금 떨어진 다른 곳에 차를 대고 호텔까지 걸어갔다.
“멍청하니 손발이 고생이지. 그냥 택시나 버스 탈 걸. 이게 뭐야.”
툴툴거리며 주차장에서 차를 빼 나왔다. 여름이라 낮이 긴데도 어느새 해가 졌다. 허탈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수영은 이대 핸들을 돌린다.
‘이대로 가기 찜찜한데 순정이나 놀려먹어야겠다.’
순정의 집 근처에 차를 댄 수영은 순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래. 네 여보다.”
[내 여보는 따로 있다.]
“됐고! 너 지금 어디야?”
[어디긴. 네가 좋아하는 방구석이지.]
“역시. 안 바쁘면 기어 나와라.”
[뭘 만날 기어 나오래. 어딘데 그래?]
“그대 집 앞이지 어디겠어.”
[아 꼭 마음 쫓기게 바로 앞에서 전화하더라. 기다려봐.]
전화를 끊는 수영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다. 답답했던 마음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때 누군가 차문을 두드렸다.
“오. 오늘은 빨리 나왔네.”
“이게 다 네 덕분이지. 요즘 나 군대에서 비상 걸렸을 때 보다 빨리 준비한다니까.”
“그럼 나한테 고마워해라.”
“이런 걸 내가 고마워해야하냐?”
“아님 말고.”
자리를 옮긴 그들은 근처의 닭집으로 갔다. 체인점이 아닌 개인이 하는 곳이라 가격이 저렴해서 자주 찾는 곳이었다.
대뜸 맥주를 시킨 수영이 물처럼 들이킨다. 그런 수영을 물끄러미 보던 순정이 따뜻한 표정으로 말한다.
“재미없었구나?”
“뭐 선을 재미로 보나.”
퉁명스런 대답에 순정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쳇.”
수영은 그런 순정이 싫지 않았다. 언제나 한마디 말보다 미소를 보이는 그였다. 오히려 그게 더 진실해보여 그녀는 좋았다.
“따분해. 다시 보기 싫어.”
신경질적으로 닭다리를 삼키는 수영에게 순정이 무를 하나 내민다.
“천천히 먹어. 체한다.”
“체가 뭐냐. 난 29년 동안 단 한 번도 체한 적 없다. 난 나중에 암에 걸려도 소화기 계통은 안 걸릴 거야.”
“쓸데없는 소리.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냐.”
“뭐. 내 입으로 내가 입방정 좀 떤다는데.”
“입방정인 건 아네.”
“나 걱정해주는 거냐?”
“그럼 걱정 안 하겠어?”
걱정. 무언가 생각해준다는 것. 문득 그가 자신을 생각한다는 사실이 무언가 부끄러웠다.
“그래도 가끔 내 생각하는 가보지?”
“가끔은 무슨. 그래도 하루에 한 번쯤은 하지.”
“그래?”
수영은 무언가 낯간지러웠다. 그가 자신을 생각한다고 하니. 하긴 자신도 가끔 그를 떠올리지 않던가? 그런데 오늘따라 무언가 다르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이.
“푸하하하. 뭐야 그게.”
순정의 농담에 수영의 입가가 어느 때 보다 크게 벌어진다. 유쾌했다. 그와의 시간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가라앉았던 그녀의 기분이 어느 때 보다 올라갔다.
“벌써 시간 이렇게 되었네. 이제 일어나야겠다.”
“어? 벌써?”
순정의 말에 수영은 급히 시간을 확인해 봤다. 오전 한 시. 어느 새 자정을 넘었던 것이다.
“시간 진짜 빨리 가네.”
수영의 말에 순정이 피식 웃는다.
“뭘. 새삼스럽게. 우리 만나서 수다 떨다 보면 시간 이렇게 가는 거 하루 이틀인가.”
“그랬었지. 맞아. 그랬어.”
“맥주지만 몇 잔 마셨으니까 택시타고가. 요 앞에 정류장 있어.”
“어. 그래야지.”
순정이 따라 오자 수영이 왜 그러냐는 듯 묻는다.
“어디까지 가게?”
“너희 집 근처 엄청 어둡고 그렇잖아. 혼자 보내기 그래서.”
“넌 어떻게 오려고.”
“그 택시 그대로 타고 오면 되지. 가까워서 돈 얼마 안 나와.”
“그래도.”
“나 걱정하는 값보다 택시비가 더 싸거든요? 잔말 말고 따라 오세요.”
수영의 손목을 잡아끄는 순정의 행동에 수영의 얼굴이 붉어진다.
‘내가 왜 이러지?’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분. 술을 먹어서 그런 걸까? 그녀는 살짝 숨이 가쁜 것 같기도 했다.
‘정말 내가 왜 이러지?’
순정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봤던 익숙한 그였지만 오늘따라 무언가 달라보였다. 그리고 그 낯설음은 연못에 던진 돌이 낳은 작은 파문처럼 그녀의 마음에 작은 흔들림을 가져다주었다.
- 작가의말
문피아는 본인의 글을 본인이 선작할 수 있군요. 그래서 선작수 1이라도 표시되어 다행입니다. ㅠㅠㅠㅠㅠㅠ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