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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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10.10 18:50
최근연재일 :
2013.10.24 15:13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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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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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9,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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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1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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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
9쪽

3화

DUMMY

“야, 오늘 뭐하냐? 방구석에서 폐인 짓 하고 있냐?”

[폐인이라니!]

“만날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만 놀리잖아.”

[산책도 하고 운동도 가고 그러거든!]

“그거라도 안 하면 넌 내과와 외과에서 반길 거다. 금방 장례식장에서도 반길걸?”

[쳇.]

“네 집 앞이니까 기어 나와. 밥이나 먹게.”

[기다려.]


전화를 끊은 수영의 입가엔 묘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오랜만에 만남이라 그런 걸까? 평소 성격도 급하고, 자신은 늦어도 남 기다리는 건 죽어도 싫어하는 그녀였지만 지금 그를 기다리는 이 시간은 제법 나쁘지 않았다.


“오래 기다린 건 아니지?”


급하게 나온 듯 순정이 헐떡이고 있었다.


“뭐 그렇게 급히 나와?”

“너 기다리는 거 싫어하잖아.”


편한 차림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는 순정의 모습을 슬쩍 본 수영이 툴툴거렸다.


“너 모자 쓰지 말라니까. 더 어려보인다고.”

“어려보이면 좋지 왜.”

“내가 누나처럼 보이잖아.”

“난 희고, 넌 까매서 누나처럼 안 보여.”

“누가 그거 말해! 내가 더 늙어 보인다고!”

“당연하지. 관료제의 틈바구니에서 찌들어가는 너와 빛 한 점 받지 않는 방구석 폐인의 피부나이는 다르고말고.”


한마디도지지 않고 받아치는 순정의 모습에 수영은 살짝 뿔이 났다. 쑥스럼 많고 조용하던 순정이었는데, 수영과 오래 같이 하면서 그녀와 있을 때는 묘하게 능구렁이가 되었던 것이다.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지.”

“아니거든요. 제가 원래 키는 좀 더 컸거든요!”

“아이고. 요 입, 요 입이 요망한 입이렸다!”


수영이 순정의 멱살을 움켜쥔 채 입을 마구 때리자 순정이 고통에 몸부림을 친다.


“살려줘!”

“이름도 계집애 같은 게 어느 새 요 주둥이도 계집애가 되었어!”


순정이 붉게 달아오른 입술을 매만지며 수영에게 눈을 흘긴다.


“야! 안 그래도 내 이름 콤플렉스거든!”

“그러게 누가 남자 이름이 순정이래.”

“원래 순자 돌림에선 제대로 된 게 없어! 더러운 순자 돌림.”


한참을 실랑이하던 그들은 지쳤는지 조용해졌다.


“배고픈데 말싸움하니까 더 배고파졌다. 밥 먹으러 가자.”

“뭐 먹을래?”

“소주랑 같이 먹을 거?”


수영의 말에 순정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잘 마시지도 않는 술을 찾는 수영을 보며 무슨 일이 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감자탕?”

“국물 있는 거? 좋지. 가자. 고고.”


둘은 사거리 근처의 감자탕집으로 갔다. 손님이 제법 없는 묘한 가게인데 둘은 잘 찾아갔다. 진한 다시다 맛에 B급 감동을 먹은 후부터.


“감자탕 대자랑 소주 한 병 주세요.”


익숙하게 주문을 한 수영이 배를 매만진다.


“나이 먹으니까 배고픈 거 더 못 참겠어. 당이 막 떨어지는 것 같아.”

“말라서 더 그래.”

“그런데 먹어도 살 안 찐단 말이야.”

“어디 여자들이 들으면 돌 날라 올 소리를 그렇게 하냐. 먹는 것 보다 운동이 더 문제인 것 같은데?”

“운동은 귀찮고.”

“으이그.”


감자탕이 끓어오르자 수영이 잔을 내민다.


“한 잔 하자.”


잔을 부딪힌 후 술을 단숨에 털어 넣은 수영이 캬 소리를 낸다.


“이 쓴 걸 왜 먹나 몰라.”

“그 맛에 먹는 거지. 그런데 너 차 가지고 오지 않았어?”

“두고 가지 뭐. 집도 근처인데 뭐가 걱정이야.”


실제 수영의 집은 순정의 집과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을버스를 타도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걸어가기엔 좀 애매했고. 그런데 그녀가 자가용을 타는 이유는 그녀의 집 위치가 묘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양시 하면 일산으로 대표하는 신도시 이미지가 있지만 도로 하나 건너면 경운기와 비닐하우스가 있는 곳이다. 그곳이 그녀의 집이었다. 거리는 가까워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어려운 곳이라 어쩔 수 없이 경차를 하나 구입했던 것이다.


“차라리 스쿠터를 타고 다녀. 유지비가 완전 다를 텐데.”

“스쿠터는 무섭잖아. 경차가 더 안전하고 다용도로 쓸 수 있지.”

“하긴. 그도 그러네.”

“정 뭐하면 나 좀 재워주던가.”


수영의 말에 순정이 정색을 했다.


“엥? 그건 안 돼.”

“뭐 어때? 학교 다닐 땐 같이 한 방에서 자고 그런 적 있었잖아. 너랑 나 사이에 뭔 일 있을 것도 아니고.”

“그건 그런데 여자친구가 싫어할 거야.”


순정의 말에 수영은 빈정이 확 상했다.


“쳇. 이거 나도 빨리 누굴 사귀던가 해야지.”

“만나면 되지 뭐가 문제요. 공무원님이신데다 키도 훤칠하시고.”


수영은 대답 없이 소주잔 들어 술을 넘겼다. 그녀의 씁쓸한 표정에 순정도 같이 표정이 굳어졌다.


“안 그래도 선보려고.”

“선? 너 그런 거 싫어하지 않았어?”


수영은 흔한 소개팅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화 같은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인위적인 만남이 아닌 운명 같은 인연을 만나길 원했다.


“주변에 남자가 없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아르바이트와 공부에 매진하다보니 어느 새 연애 한 번 못해본 29살 노처녀가 되어 있었다. 요즘 29살이 뭐 많은 나이인가?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체감하는 중이다.


“남자가 왜 없어? 동료나 뭐 없어?”

“순 아저씨 아니면 여자들뿐이야. 또래가 없어. 이거 원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인연이고 나발이고.”

“선은 누가 주선한 건데?”

“동사무소 직원분이.”

“같은 공무원?”

“응.”

“잘 됐네. 같이 만나면 잘 산다던데.”


다시 한 번 쓴 소주를 삼킨 수영이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흔든다.


“그런가? 난 그런 거 싫은데. 내가 운명적으로 사랑할 사람 만나고 싶다고.”

“운명적인 게 뭔데?”

“넌 소설 쓴다는 놈이 운명도 몰라?”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거 아냐.”

“하긴. 그도 그러네.”


또 한 번 소주를 삼킨 수영이 말한다.


“첫눈에 반하고 이런 걸 아직도 바라는 것은 아니고. 나도 나이도 있는데 그런 환상 깨진 건 오래 되었거든. 이러이러해서 사랑해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 이런 사랑 하고 싶어.”


수영의 말에 순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보통은 어떤 장점이 있는 사람에게 끌리잖아. 그러다 그 장점이 사라지면 사랑이 시들고. 외모나 경제력 같이. 그런 거 말고 내가 싫어하는 점 이런 것이 보임에도, 이건 아니다 헤어지는 것이 맞다 싶음에도 끌릴 수밖에 없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사랑 하고 싶어.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다 싶은 그런 거.”

“뭐 하러 그렇게 힘든 길을 가려고 해. 여자는 그저 자기 사랑해주는 사람 만나는 게 좋아. 사랑 받고, 아낌 받고.”

“물론 그게 좋지. 그래도 사랑은 자기만족이잖아.”

“그렇지. 자기만족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영의 말을 곱씹는 순정에게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넌 애인이랑은 잘 되고 있냐?”

“응. 아직도 많이 사랑하지.”

“신기하단 말이야. 꽤 오래사귀지 않았어? 그런데도 전화통화 같은 거 할 때 보면 얼굴에 사랑한다는 티가 팍팍 나던데. 내 주변에 너 같은 사람 또 없더라.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


순정은 수영이 보기에도 참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맘때의 남자 같지 않고 무척이나 순순한 사람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그는 자신보다 더 소녀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래서 아쉽냐?”

“뭐 가끔은?”


사실 대학교 1학년 축제 때 순정이 수영에게 사귀자고 고백을 한 적 있었다. 하지만 그 때 수영은 순정의 마음을 거절했었다. 그 때 그녀는 다른 선배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선배는 알고 보니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도 이루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신기해. 보통 고백 실패하면 막 서먹해지고 그러잖아. 그런데 우린 이렇게 친구가 되어 있으니까.”


순정의 말에 수영이 웃는다.


“그 때 기억 안나? 그 뒤로 우리 완전 뻘쭘해져서 얼굴도 못 보고 그랬잖아.”

“아, 맞다. 그랬지? 그러다 복학하고 나서 친해졌었지. 맞아. 지금 너무 친해서 깜빡했다.”

“너 군대 가고, 난 휴학하고 어학연수 갔다 오고. 뭐 덕분에 나만 여자예비역 취급받았지.”

“맞아. 덕분에 우리 아는 사람이 서로밖에 없었잖아. 엄청 뻘쭘해 하다가 엄청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으니. 정말 사람 사는 거 어떻게 되는지 몰라.”

“그러게…….”

“그럼 선은 언제 보는데?”

“모레.”

“너무 선입견 갖지 말고 잘 봐봐. 혹시 알아? 네가 기대하던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잖아.”

“그렇겠지?”

“물론.”


웃으며 대답하는 순정에게 수영은 마주 미소를 보였다.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걱정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제법 긴 시간을 알고 지낸 그. 그와 있으면 편안하고 즐거웠다. 그리고 항상 힘이 되었다.

수영은 생각했다.


‘이래서 내가 고민이 있을 때마다 널 만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말

생각보다 4천자 쓰기가 어렵네요. 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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