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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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3.10.10 18:50
최근연재일 :
2013.10.24 15:13
연재수 :
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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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
글자수 :
99,381

작성
13.10.20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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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글자
10쪽

17화

DUMMY

“야. 애들한테 연락 받았냐?”

[응. 받았지.]

“너도 갈 거지?”

[가야지 오랜만인데.]

“그럼 나랑 같이 가자. 어차피 차 두고 갈 건데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그래. 어차피 근처인데.]

“그럼 빨리 준비하고 정류장으로 나와.”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나 옷만 입으면 되니까.]

“오케이. 이따 보자고.”


순정과의 통화를 끊은 수영의 얼굴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지난 날 순정의 집에서 수연과의 그 일을 목격한 이후로 순정에 대한 야속함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자꾸 마음을 돌리지 못하고 그를 떠올리는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한숨을 푹푹 쉬며 애꿎은 바닥을 발로 차던 수영이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미쳤지 내가. 진짜.”

“뭐가 미쳐?”


갑작스런 말소리에 놀란 수영이 소리를 꽥 질렀다.


“아 깜짝이야!”


갑작스런 수영의 비명에 순정도 놀라 소리 질렀다.


“뭐야!”


놀라 소리 질렀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순정이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가 놀란 가슴을 쓸며 수영을 구박했다.


“야. 뭔데 그렇게 소리를 질러. 내가 다 놀랐네.”

“에이씨. 그럴 일이 있어.”

“그런 일 두 번 있으면 간 떨어지겠네.”


가슴을 쓸어내리며 수영을 타박하던 순정이 물끄러미 수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순정의 시선을 의식한 수영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애써 아닌 척 하며 순정을 살짝 밀어냈다.


“뭘 그렇게 봐?”

“아니. 그냥. 요즘 너 조금 달라진 것 같아서.”

“내가?”

“응. 뭐라고 꼬집지는 못하겠는데 좀 그러네. 조금 얌전해진 것 같기도 하고.”


순정의 말에 수영은 마음이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것을 감추기 위해 수영이 오히려 순정에게 화를 냈다.


“뭐야. 그러면 원래는 어떻다는 거야!”

“지금처럼 터프하시지.”

“요, 요놈의 요망한 주둥이!”


수영이 순정의 멱살을 움켜쥐고 입술을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다.


“악! 미안! 항복! 항복이라고!”

“이 놈의 주둥이를 명란젓으로 만들기 전에는 그만 못 두지!”


한참 두들겨 맞은 순정이 입술을 비비며 말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혹시 무슨 일 있는 거면 말 해.”

“뭐. 무슨 일.”

“뭐가 되었든. 알았지?”

“알았어.”


수영은 대답을 하면서도 답답했다. 이 일 만큼은 다른 사람에게는 다 말해도 순정에겐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마침 버스가 왔다.


“야. 버스 왔다. 빨리 타자.”


순정의 손짓에 수영은 끌려가듯 버스를 탔다. 다행히 맨 뒷좌석 끝의 두 자리가 나 있어서 그곳에 앉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은 순정이 버스 내부를 슬쩍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같이 버스 타고 학교 가는 건 정말 오랜만인 거 같지 않아?”

“그러게. 그 때는 시간표도 같아서 학교 오갈 때는 거의 붙어있다 시피 했는데.”

“맞아. 그래서 과 사람들이 우리가 같이 사는 줄 알았잖아.”


순정의 말에 수영이 파안대소를 했다.


“푸하하. 맞아. 그 때 그랬지. 우리가 매일 등하교를 같이 하니까 사람들이 우리가 동거하는 줄 알았지.”

“쉬쉬하면서 소문 다 나고. 어쩐지 사람들이 우리 보는 눈빛이 좀 오묘했어.”

“그런데 우리만 몰랐잖아. 바보 같이.”

“맞아. 졸업할 때쯤엔 나는 애인도 있었는데. 우리 졸업할 때 동기들이 한 말 생각나?”

“우리 결혼은 언제 하냐고?”


순정은 그 당시의 생각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맞아. 그 때 너희 부모님이랑 내 여자 친구 표정 정말 볼만 했는데. 그날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애랑 싸우기 까지 했다니까.”


수영도 뜨악하는 표정으로 순정에게 말했다.


“야. 나도 그날 부모님한테 엄청 시달렸거든? 너는 뭐하는 사람이냐고?”


순정이 아련한 눈빛으로 말한다.


“그 때가 벌써 몇 년 전이네. 시간 정말 빨리 간다.”

“그러게 말이야.”


버스가 도착하고 순정과 수영은 약속 장소로 갔다. 학교 근처에 있는 호프집이었다. 학교에 다닐 당시 자주 모였던 곳이었다.


“이야~. 너희는 아직도 같이 다니냐?”

“뭐. 시간 지난다고 다르겠냐?”


그들을 맞이한 것은 학회장이었던 창근이었다.


“너희는 진짜 그대로네. 순정이는 하나도 안 늙었네. 수영이는 여전히 까맣고.”


창근의 말에 수영이 발끈한다.


“이 놈이 아직도!”


수영이 그 긴 팔로 창근의 머리채를 잡고 휘두르자 창근이 곡소리를 냈다.


“야! 야! 머리! 아 제발!”

“이게 누님한테 까불고 있어!”

“아 누나. 제발요. 아파요.”


고통에 자존심을 팔고 누나라 말하는 창근을 보며 아이들이 막 웃는다. 그런 창근을 보며 순정이 장난기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수영이가 빠른 생일 아니었나? 아주 동생한테 누나라고 그러고. 창근이 네 코가 아깝다.”


순정의 말에 창근의 표정이 더욱 억울하게 바뀌었다.


“윽. 내가 더러운 폭력에 굴하고 말다니.”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무척이나 흥겨웠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서로에게 거리감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사회에서 억눌려 있던 끼를 이곳에서 모두 발산하고 가겠다는 듯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히려 평소보다 짧은 시간에 사람들은 취하는 바람에 모임이 일찍 파하고 말았다.

게걸음을 걸으며 가는 이들, 이족보행을 역행해 사족으로 걷는 이들, 호주의 신비가 강림해 코알라가 된 이들을 지켜보는 순정과 수영의 눈엔 그리움이 가득했다.


“이야~. 정말 오랜만에 저 꼴 보네.”

“그러게 말이다. 저래놓고 또 집은 잘 찾아가겠지.”

“맞아. 신기해.”

“우리도 이만 가자.”


가게를 나서던 순정이 손목시계를 쳐다봤다.


“야. 아직 10시도 안 됐는데 잠깐 걷다 갈래? 이대로 가기 아쉬운데.”

“그럴까? 오랜만에 학교나 한 번 둘러보고 갈까?”

“그러자. 이 동네 마땅히 산책할 곳도 없으니까.”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학교 안은 어둡고 한산했다. 책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몇몇 학생들을 제외하곤 인적도 없었다.


“이 시간에 학교도 오랜만이네.”


수영의 말에 순정이 동의를 표했다.


“그러게. 오늘 정말 오랜만에 다시 느껴보는 감정이 많은 걸?”


이 때 수영의 눈에 야외공연장이 들어왔다.


“우리 저기 가서 잠깐 앉았다 가자.”


한쪽 스탠드에 앉은 둘은 옛 추억에 휩싸였다. 조용히 눈을 반짝이며 앉아있던 순정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나? 우리 1학년 때. 내가 바로 이 자리에서 나한테 사귀자고 고백했던 거.”

“기억나지. 그게 내가 받아본 처음이자 마지막 고백이었으니까.”


수영의 말에 순정의 얼굴에 놀람이 가득 찼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진짜?”

“그래. 그 뒤로는 휴학하고. 복학해서는 너랑 다니느라 동거한다 소문나서 아무도 접근 안 하고.”

“그랬구나. 괜히 미안하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정말 그렇게 되네. 그럼 내가 책임져야하는 건가?”


순정의 던지듯 한 말에 수영의 뺨이 붉어졌다. 잠시 당황했던 감정을 추스른 수영은 조금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래. 네가 나 책임져라.”

“그럴까? 우리 수영이 치킨 사주려면 돈 많이 벌어야겠네.”


장난하듯 말하는 순정의 태도에 수영은 살짝 마음이 상했다.


“너무 쉽게 대답하는 거 아냐?”

“내가 그랬나?”


하지만 여전히 순정의 얼굴엔 진지함이 없었다.


‘너무 친구처럼 지내서 그런가. 아니면 좀 더 진지하게 말해 볼 걸 그랬나?’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못한 수영은 그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순정을 마음속으로 탓하던 수영의 머릿속에 의문이 하나 생겼다.


“그런데 나 이거 물어봐도 되나?”

“뭔데?”

“내가 지금까지 봐온 네 성격이라면 한 번 정한 마음 쉽게 바꿀 것 같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데 그 때 너 나한테 딱 한 번만 고백하고 그 뒤로 살살 피해 다녔잖아. 왜 그런 거야? 다시 한 번 고백해볼 생각은 없었어?”

“아~. 그 때?”


순정은 지난 추억을 회상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먼 곳을 응시하듯 턱을 살짝 들었다.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마음을 고백하긴 했는데 받아들여지진 않았고. 거기서 더 표현하면 괜히 스토커처럼 보일까봐 함부로 다가가지도 못하겠더라. 게다가 넌 다른 사람 좋아하는 눈치이기도 했고.”

“뭐. 그 땐 그랬지.”

“그렇게 어영부영하다 보니 군대 가고. 이래저래 하다 보니 얼렁뚱땅 넘어가게 된 거지. 뭐랄까. 타이밍이 안 맞았지.”


그 때 갑자기 순정의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확인한 순정이 웃으며 수영에게 말했다.


“나 잠깐만. 전화 받고 올게.”


자리를 뜨는 순정의 등을 수영이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전화가 울릴 때 누구에게서 온 건지 슬쩍 본 수영이었다.


‘수정이라고 그랬나? 전에 카톡하던 그 사람인가?’


살짝 떨어진 자리에서 해맑게 웃는 순정의 얼굴을 보는 수영의 눈엔 슬픔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우린 정말 타이밍이 안 맞는 걸까? 이번엔 내가 다가가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없네. 그런데 나 어떻게 하냐. 너를 포기하려고 하는데 포기가 안 된다.’


수영은 답답함에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숨을 들이마셔 보았다.


‘나 정말 어떻게 해야 되냐. 정말…….’


수영은 그저 순정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작가의말

선작이 한 분 늘었습니다. ㅠ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설理雪
    작성일
    13.10.20 20:18
    No. 1

    수영아...아이고.... 그나저나 술을 얼마나 마시면 저리 될까요. ㅇㅁㅇ ㅋㅋㅋㅋㅋ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90 부정
    작성일
    13.10.20 20:45
    No. 2

    호주의 신비와 사족보행은 동기들에게서 늘 볼 수 있습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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