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소림신승(少林神僧) 2
“대비에 관한 것은 만공 장문인께서 하심이 순서일 것 같은데, 만공 장문인께서 먼저 말씀을 해보시지요.”
만공대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실 노납이 두 분 장문인 외에 구양 시주를 다시 은밀히 초청한 것은 적당의 행동이 너무 은비(隱秘)하여 그 대책을 상의코자 함이었소. 구양세가의 신기(神機)는 강호 제일이니, 노납은 우선 구양 시주의 고견을 경청하고자 하오.”
그의 정중한 말에 구양천수는 겸사의 말을 했다.
“소생은 아직 나이가 일천(日淺)하고, 경륜이 얕아 아는 것이 없는데 장문인께서 과찬의 말씀을 하시는 듯합니다. 하나, 물으시니 한 말씀만 드리지요.”
구양천수는 가볍게 숨을 들이키더니 낭랑한 음성으로 말을 계속했다.
“비록 지금 우리가 적의 정체를 모른다고 할지라도 여기에 무개옥합이 있으므로 적당은 반드시 우리를 찾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적을 어둠 속에서 밝은 곳으로 끌어 낼 수가 있게 될 것이니, 그러는 한편으로 강호 각파 수뇌들과 비밀리에 회동하여 다시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은 명쾌(明快)하고 조리정연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그리고 아는 것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그 이상의 방법이 있을 수가 없었다.
“무량수불... 일단은 구양 시주의 말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구양자가 말하자 만공대사가 덧붙였다.
“그러나 무개옥합을 미끼로만 사용한다면 적을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피동이 되니, 그 동안에 거기에 담긴 신비를 풀어 봄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말에 육청풍이 대뜸 구양천수를 보았다.
“그 일은 구양 가주가 가장 적임자일 것 같으니 구양 가주가 맡으시게.”
이러한 일에는 누구라도 한번쯤은 사양을 하게 되어 있었다.
한데 구양천수는 태연하고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아닌가!
“좋습니다. 기실 소생은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생이 먼저 그러한 말씀을 드리면 혹 오해를 하실까 저어해서 말씀을 드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힘있게 말을 맺었다.
“최선을 다해서 불가해의 신비를 한번 풀어 보겠습니다!”
그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그를 보는 세 사람, 노장문인들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번져 가고 있었다. 스스로의 지혜를 믿는 자신(自信)에 찬 젊은이를 보고 있는 그들의 마음은 기꺼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건방지거나 거만하지 않았으므로.
* * *
삼 일이라는 시간이 그야말로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그 동안 소림에 있어 겉보기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굳이 찾아 내자면 한 사람의 빈객(賓客)이 소림의 후원에 은밀히 머물러 있다는 것일 뿐...
서편으로 노을이 빨갛게, 그 장대한 몸체를 드리우고 있을 때, 소림사의 후원도 예외없이 저녁 때가 되고 있었다.
노을이 드리우고 있는 산사(山寺)의 저녁은 한가롭다.
소림사라고 해서 그것이 다를 리 없었다. 오히려 더욱 엄숙하고 독경 소리는 장엄했다. 하긴 이곳은 무술의 본산이기 이전에 중국 선종의 본산인 것이다.
소슬한 바람이 아직도 옷깃을 여미게 하는 그 봄의 노을 속에 소림 후원의 뜨락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송림(松林)으로 둘러싸인 객방을 등지고 서 있는 그는 바로 구양천수였다.
뒷짐을 지고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안색은 사흘 전보다 창백했고 약간 수척해 보였다. 뿐만 아니라 미간을 찡그리고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그의 미간에는 고뇌의 빛이 뚜렸했다. 사흘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지난 삼 일 간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직도 무개옥합의 비밀을 풀어 내지 못했다. 도대체가 그놈의 옥합은 열리도록 만들어져 있지를 않다! 그냥 돌덩이에 조각만 해놓은 듯하다.’
구양천수는 머리를 흔들었다.
‘열쇠는 분명히 그 조각들에 있는데, 그 십장생(十長生)의 조각들... 거기에는 분명 어떤 현기(玄氣)가 숨어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도...’
그는 잔양(殘陽) 속에서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지난 삼 일 만에 처음으로 바깥 공기를 쐬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 동안 그가 지닌 모든 학문과 지혜를 총동원해서 무개옥합의 신비와 일대격전을 벌였다 할 수 있었다. 그의 학문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도록 고금박통(古今博通)했다. 그 어떤 난제라도 그로서 풀지 못한 것이 없었다.
구양세가는 강호상에서 신기제일(神機第一)이라고 불리고 있는 만큼, 그들의 능력은 인반인들의 생각을 초월하고 있었다.
그런 구양세가의 당대 가주로 키워진 만큼, 그가 지닌 일신의 능력은 가히 천하를 뒤져도 짝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가 풀지 못하는 문제가 어디 있었으랴!
한데 그런 그가 오늘 드디어 강호의 불가해삼보라는 벽에 부딪힌 것이다.
“하긴, 그리 쉽게 풀릴 수 있다면 그것이 무림의 삼대불가해가 될 수 없었겠지...”
그는 뒷짐을 진 채 머리를 식히려는 듯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난제에 부딪힐 때 산책을 하는 것은 그의 습관이었다.
구양천수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시간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는 생각이 미친 듯 미간을 찡그렸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가? 이미 돌아올 때가 지났거늘...”
그의 중얼거림은 의미 모를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때에야 주변의 경치가 완연히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는 이미 노을이 완전히 지고 어두워져 있었다. 생각에 잠겨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던 것이다.
“이곳이 어디지?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는 안력을 돋우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창송취백(蒼松翠栢)이 우거져 있어 인적이 없는 산중의 경치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달까, 황량한 감이 들었다.
그는 방장의 귀빈이므로 당직승들도 그를 막지 않게 되어 있었기에 무의식중에 엉뚱한 곳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내가 소림사에서 벗어난 것이란 말인가? 이곳은 소림사 같지가 않은데...’
구양천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어디선가 경미한 파공음이 들려 왔다.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 소리에 호기심이 동한 구양천수는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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