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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작품등록일 :
2019.07.20 17:03
최근연재일 :
2019.10.01 17:00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27,490
추천수 :
567
글자수 :
339,072

작성
19.09.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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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64화

DUMMY

이건 또 뭐 하는 놈이지?

한눈에 반했다고?

갑자기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북부 대륙의 야만인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는 건가?

허리춤에 손을 뻗자 손도끼가 움찔거렸다.

라이언은 살짝 질린 얼굴로 소년에게 말했다.


“난 남색에 흥미 없으니 꺼져라.”

“나도 흥미 없거든!”


우르카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 그래?

그럼 됐고.

라이언은 시선을 돌려 마지막 놈을 처리할 때 던진 손도끼를 챙겼다.

예티의 푸른 눈은 초점을 잃어 허공을 방황했다.


“저기, 형씨?”

“뭐냐.”


라이언은 전과 다르게 살갑게 구는 소년을 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일단 구해줘서 고맙수다. 나는 하얀 늑대 부족의 우르카요. 형씨는?”

“···라이언.”

“흠, 예티를 홀로 처리할 정도면 이름있는 전사일 텐데.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나 봐?”


그야, 북부 대륙에는 처음 와보니 그렇지. 애송아.


“내 말 자꾸 무시할 거야?”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애송아.”

“그러니까 애송이가 아니라고!”


라이언은 삭막한 눈동자로 내려다봤다.

우르카는 오금이 저리는 걸 경험했다.

이제 막 성인식을 통과한 어린 전사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눈빛은 수많은 죽음을 담아내고 있었다.

우르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꼴사납게 주저앉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나도 이제는 어엿한 한 명의 북부 전사라고.’


우르카는 안간힘을 쓰며 버텨냈다.

그 모습에 라이언이 픽 하고 웃었다.


“강단은 좀 있군.”

“···헹. 이 정도쯤이야.”

“다리랑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는데.”

“사소한 건 넘어가시지.”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대든다.


“끝났어?”


멀리서 구경만 하던 비비앙이 하품을 하며 나타났다.

우르카는 낯선 불청객의 등장에 경계태세를 취했다.

그녀는 앞을 가로막는 예티의 시체들을 보며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시체가 양옆으로 갈라지더니 길을 만들었다.


“뭐야? 주술사야?”


우르카가 더욱 경계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고슴도치처럼 털을 곤두세우는 게 참으로 귀엽구나.”

“···아줌마는 또 뭐야? 형씨의 동료?”

“아, 아줌마?”


비비앙이 눈을 끔뻑거리더니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역시 야만인들은 겁대가리를 상실했나 보네.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숙녀에게 아줌마라니.”


그녀의 입은 싱긋 웃고 있었지만 눈은 무미건조하고 차갑게 가라앉았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북부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있지. 이상한 주술 쓰는 놈들은 다 거짓말쟁이라고.”

“···달링. 저 야만인 내 꼭두각시로 만들어도 돼?”

“쉽게 죽어줄 거 같아? 내가 죽더라도 아줌마의 얼굴에 남을 수 없는 흉터 하나쯤은 남겨주지.”

“이게 끝까지.”


둘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중간에 푸른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았다.

라이언은 팔짱을 끼고 구경하다 한마디 보탰다.


“나잇값 좀 해라.”

“그렇지만 달링! 저 녀석이 나보고 아줌마라고 했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


자기 입으로 수백 년 살았다며?

할망구라고 안 불린 게 다행이지.

비비아은 돌석상처럼 쩍하고 굳어버렸다.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한 사람처럼 가녀린 표정을 지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눈발이 더 거세지고 있었다.

추위에 강한 라이언도 장시간 노출되면 얼어 죽을 날씨였다.


“어이, 애송이.”

“그러니까 애송이 아니라고.”

“됐고. 네놈 사는 곳은 어디지?”


**


북부 대륙은 혹독하고 척박한 땅이다.

그러다 보니 북부인들은 생존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약탈은 기본이고, 서로 다른 부족끼리 기름진 영토를 두고 전쟁을 벌였다.

강한 자만이 좀 더 많은 걸 얻어내는 세상.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서 힘 있는 자가 곧 권력이고 지배자가 되었다.

북부인들은 이 진리를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강해지기를 기원한다.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운다.

혈흔이 난무하는 투쟁과 살육의 현장 속에서 그들은 점차 강해졌다.

무식한 방법이었으나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몇 가지 미신들도 생겨났다.

치열한 사투 끝에 죽인 상대의 살을 잘라내 부적처럼 지니거나, 놈의 인육을 섭취하는 풍습이 대표적 예였다.

이러한 이유들로 남부인들이 북부인들은 야만족이라고 비아냥거리지만, 그게 그들의 문화였다.

검을 맞대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고, 진심으로 붙으면 둘 중 한 명이 시체가 될 때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싸웠다.

그러다 보니 북부인들은 강한 전사를 존경했다.

그게 그들의 목표였고, 언젠가는 쓰러뜨려야 할 적이기 때문이다.


‘대단한 전사다.’


우르카는 슬쩍 따라오는 라이언을 흘끔거렸다.

그가 예티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부족 전사들은 저 많은 예티들을 홀로 상대할 수 없다.

우르카는 지금까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아왔다.

하얀 늑대 부족을 이끄는 족장만이 세상의 최고인 줄 알았다.

근데 라이언은 그 족장과 비교해봐도 꿀릴 게 없었다.


‘내가 저 자를 이길 수 있을까?’


우르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리였다.

자신은 그의 말처럼 새파란 애송이에 불과했으니까.

무심한 눈으로 손도끼를 휘두를 때마다 예티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걸로 끝.

예티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너무나 간단하게 상대해서 현실감이 없을 정도였다.

예티를 모르는 이들이 봤다면 별거 아닌 괴물들로 파악했을 것이다.

놈들은 그렇게 쉽게 죽은 놈들이 아니었다.

우르카 본인도 몇 놈을 골로 보냈지만 라이언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달링. 진짜로 야만인들이 사는 곳에 들를 거야?”


비비앙은 앞서가는 우르카의 등짝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작게 속삭였다.


“물론.”

“아까 내가 한 말은 귓등으로 들었어? 절대 상종해서는 안 될 놈들이라니까.”

“그럼 여기서 얼어 뒈질까?”

“내가 있잖아.”


그녀가 주먹으로 가슴을 통통 두드렸다.

믿겨만 달라는 듯이 말이다.


“난 한동안 북부 대륙에 머물 예정이다.”

“그게 야만인들이 사는 곳으로 가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원하는 건 죽을 자리니까.”


라이언은 먼 곳을 응시했다.

저 멀리 눈보라에 가려 흐릿하게 보이는 설산들과 풀뿌리 하나 자라나지 않아 삭막하기 그지없는 하얀 땅.

배를 타고 거친 바다를 모험하기 전에 수없이 보던 세상이다.

이곳은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당신은 참으로 한결같네. 죽고 싶어서 사는 인간이라니. 그냥 내 손에 죽는 건 어때?”


비비앙은 가늘고 하얀 손으로 라이언의 목을 잡았다.

부드럽고 차가웠다.

추위 때문인지, 원래부터 손이 차가운 건지는 라이언도 몰랐다.

그의 목은 굵직하고 두꺼워서 한 손으로 잡아도 많이 남았다.

비비앙은 손으로 목을 쓸어 넘겼다.

탁한 갈색 눈동자가 붉게 빛나는 매혹적인 눈동자와 마주쳤다.

라이언은 사나운 웃음으로 화답했다.


“날 죽일 수 있다면 말이지.”


그와 그녀는 애매한 사이였다.

동료라는 것도 허울 좋은 소리일 뿐.

언제든 부서져 사라질 살얼음판과도 같은 관계였다.

적의를 보이는 순간 라이언은 금방이라도 머리를 쪼개 줄 심산이었다.

그렇지 않은 건, 마녀가 덤벼들지 않으니까.

같이 다니다 보니 정이라도 생긴 걸까.

어쩌면 그럴 수도.

라이언은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뭐야? 왜 웃어? 내가 장난하는 거로 보여?”


지금도 그렇다.

위협적인 어투였지만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손길은 소중한 보물을 만지듯 조심스러웠다.


“그랬다면 입부터 중얼거렸겠지.”

“무영창도 가능하거든?”

“그럼 내 손이 먼저 움직였겠지.”

“치. 이제는 한 마디도 안 지려고 그러네.”


라이언은 비비앙이 적으로 돌아선다고 해도 별 상관이 없었다.

동료와 적은 종이 한 장 차이니까.

바이킹 형제들 사이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귀족의 구슬림에 넘어가 귀족이 된 자들도 있었고, 형제를 팔아먹는 놈들도 있었다.

탐욕에 눈이 멀어 벌어진 결과였다.

그러나 라이언은 그들의 의사를 모두 존중했다.

각자의 삶에 간섭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대가리를 쪼개줬다.

그게 본인들의 의사였든, 타인의 의사였든 신경 쓰지 않고 말이다.


“야만인들이 죽자고 덤벼들면?”

“그때는.”


라이언은 담담하게 허리춤에 찬 손도끼를 건드렸다.

손톱과 날붙이가 부딪히며 틱-하는 짧은 소음이 퍼졌다.


“나도 바라던 바지.”


라이언은 사납게 웃었다.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전사가 있다면 기꺼이 죽어줄 것이다.

앞장서서 가던 우르카가 발걸음을 멈췄다.

라이언과 비비앙도 대화를 멈추고 멈춰 선 야만인 소년을 보았다.


“다 왔수다. 저기가 바로 하얀 늑대 부족의 마을이지. 원래 외부인은 들이지 않지만··· 내 목숨을 구해줬는데 외면하는 건 전사의 도리가 아니지.”


라이언은 눈보라 너머로 보이는 마을을 응시했다.

마을이라고 하기보단 하나의 부락처럼 보였다.

그렇게 커 보이지는 않았다.

멀리서 한눈에 다 담을 정도로 작은 부락이었다.


“좀 소란스러운걸?”


비비앙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우르카는 무사히 성인식을 마쳤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었다.


“주술사 아줌마. 그게 무슨 소리야?”

“저기를 보렴. 버르장머리 없는 야만인 꼬마야.”


우르카는 손끝을 따라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더 멀리 내다보기 위해 좁혔던 눈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저 녀석이 왜 여기 있어!”


우르카는 창을 쥐어 잡고 황급히 마을 쪽으로 달려나갔다.

발이 바닥에 푹푹 빠져 몇 번 넘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부락 외곽에서 길쭉한 생명체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생긴 것만 봐서는 지렁이를 닮았다.

전체적인 외관은 설산의 겉면처럼 파란색을 띠었고, 규칙적으로 난 주름들은 흐느적거렸다.

몸을 출렁거릴 때마다 작은 점들이 요란하게 움직였다.

라이언의 시력은 작은 점들이 사람들이라는 걸 알려줬다.

늑대 가죽으로 된 옷을 입은 야만인들이 큰 지렁이를 상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비비앙이 말했다.


“웜이네. 그것도 아이스 웜.”


놈은 추운 지역의 땅밑에서 서식하는 몬스터로 배가 고프면 땅 위로 올라와 먹이를 찾는다.

먹이라면 당연히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였다.

눈과 귀가 없는 대신 코는 수십 킬로미터까지 맡을 수 있고, 입안에 난 수많은 이빨들은 적을 단숨에 갈아버린다.

겉은 거칠고 딱딱해서 강철 같은 피부를 자랑했다.

라이언은 아이스 웜의 꼬리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야만인들을 지켜봤다.

그들은 입에서 피를 토하고 몸을 비틀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라이언은 야만인들에게서 어렴풋이 형제의 냄새를 맡았다.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군.”


그는 지금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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