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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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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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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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496

작성
12.03.16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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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5.

DUMMY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욕실의 문을 열어젖힌다. 분명 불을 켜고 나서 문을 연 것 같은데 불이 꺼져 있다. 아직 잠에 취해 있나 보다. 눈꺼풀 위를 문지르며 스위치를 켠다.

안으로 들어가려다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친다.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던 잠귀신이 한순간에 꿈나라로 달아다 버린다. 눈앞 욕실 안에서는 키티가 거울을 들여다보며 면도를 하고 있다. 그의 벗은 몸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다.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네가 이랬잖아.”

지난 꿈속에서 키티를 후려쳤던 기억이 있긴 한데…….

거울 저편으로 그의 얼굴을 본다.

“그러니까 제가 이랬다고요?”

“그럼 너 말고 누가 이랬는데?”

침을 삼킨다. 목구멍이 따끔거린다.

“얼마나 다치셨어요?”

걱정되어서라기보다 내가 정말로 강한지 확인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가 세면대에 면도기를 내려놓고 돌아본다.

“네 대.”

“네?”

“갈비뼈 네 대 나갔다고.”

센 건지 약한 건지 모르겠다. 나갔다는 게 부러졌단 말일까, 금이 갔단 말일까.

키티가 돌아서서 다가온다.

“꺼져.”

주먹을 쥐고 들여다본다. 붕대를 감고 있는 그를 본다.

“문 닫고 꺼져.”

그가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는다. 재빨리 문을 닫고 내 방으로 간다. 남이 볼일 보는데 지켜보는 취미 같은 건 없다.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검색창에 갈비뼈 네 대라고 입력하다 지워버린다.

알아서 뭐하겠단 말인가. 그래, 내가 키티를 저렇게 만들었다 치자. 그게 정말 내가 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잖아. 꿈에서 아니 -더는 꿈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곰이었을 때, 키티는 무력했다. 나를 보며 입을 한껏 벌리고 기성을 질러대던 하얀 고양이가 떠오른다. 적어도 내가 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려면 그때의 힘을 절반이라도 쓸 수 있고 나서야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생각할 것도 없다. 이런 힘 따위 필요 없다. 그냥…… 나는…… 꿈을 꾸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손바닥을 보고 손등을 본다. 매끈하다. 털이 북슬북슬했던 짐승의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제야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 우습다. 왜 하필 곰일까. 키티는 왜 고양이일까. 내가 곰일 때 보았던 동물들, 그들도 모두 나 같은 사람들이었을까?


거실로 나간다. 소파 위에 키티가 누워 있다.

“저기 어제 그 지하에 있을 때 누가 전화해서 미미를 찾던데요.”

“누가?”

“모르겠어요. 미미를 찾더니 끊어버리던데요.”

“남자?”

“네.”

“그걸 왜 이제 말해.”

어깨를 으쓱한다. 키티는 일어나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겉으로 보면 어딘가 부러진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주 멀쩡하다.

“나야. 어제 너 찾는 전화 왔었다던데? 어. 이놈이 그래. 몰라. 알아서 해. 나는 부상병이야. 정 급하면 여기 이 새끼 데려다가 쓰던지. 그래, 알았어.”

키티가 전화를 끊고 나를 본다.

“깨어났어?”

“네?”

“곰.”

“아뇨, 아직.”

“뭐 하고 있어?”

“원훈아, 원훈아.”

중얼거려본다. 대답은 없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고양이도 있고 여우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왜 저는 곰이죠?”

“소한테 넌 왜소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하는데?”

“모르죠.”

“씨발, 소한테서 태어났으니까 소지. 유전이야, 유전.”

“아, 그럼 제 부모님도?”

“몰라, 그렇겠지.”

“저기 우리 같은 사람은 그, 늑대 인간 뭐 그런 건가요?”

“늑대 인간?”

“네. 늑대 인간이나 뭐 구미호 같은 거.”

키티가 끄덕인다.

“비슷해.”

“병 같은 거예요?”

“너 어디 아픈 데 있어?”

“아니요. 그럼, 무슨 병, 정신병이야?”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바이러스 같은…….”

“바이러스, 컴퓨터바이러스?”

“아니요, 그 뭐지, 세균 같은 거요.”

“몰라, 너 대학 나왔다며. 그럼 네가 알겠지. 왜 나한테 물어보고 지랄이야.”

머리를 긁는다.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아요?”

“아니, 별로.”

“전에 그 용가리는 용이에요?”

“어.”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몰라, 나는 몰라. 안 보이잖아. 용이니까 용이겠지. 궁금하면 네가 알아보던지.”

더 물어볼 말이 없다. 일어나 내 방으로 걸어간다.

“배고프면 시켜먹든지 사 먹든지 해. 나 부상당했으니까.”

뒤에서 들려오는 키티의 목소리에 돌아본다.

“네.”


동물인간. 곰 인간. 인터넷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나와 같은 인간들은 컴퓨터를 할 줄 모른다거나 의도적으로 이 사실을 공표하지 않는 거겠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대충이나마 짐작을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른 뭔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더 뛰어난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숨기는 것이 이득이란 것을 알았을 것이다. 더 뛰어난 것을 가졌다면 시기와 질투를 받았을 것이고, 목숨의 위협도 받았을 것이다. 뛰어나지 않은 것을 가졌다면, 병신이란 소리를 들으며 멸시와 모욕을 받을 것이다. 그것이 한 달에 한 번씩 짐승이 되는 것이라면 -정신만 그렇게 되는 것이든, 육체까지 그렇게 되는 것이든- 어떻게든 숨기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늑대 인간이나 구미호 이야기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못했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입이 간지러웠던 누군가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가 번져나가며 변형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간에 결국 늑대 인간은 괴물이 아닌가. 나도 키티도 모두 괴물이다.

곰을 검색해 본다. 다시 불곰을 검색해 본다. 고양이를 검색해 보고, 키티를 검색해 본다. 흰 고양이 사진 중 하나를 바탕화면으로 지정한다. 언젠가는 키티에게 보여주고 싶다.

별 뜻 없이 마우스 휠을 아래위로 돌리다 멍하니 천장을 본다.

유전이라. 내 아버지가 곰? 어머니가? 모르겠다. 전혀 알지 못했다. 일부러 숨겼는지도. 언젠가 때가 되면 말씀해 주시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영영 오지 않을 테지만.


게임에 접속한다.

- 클로 형, 하이. 요 며칠 뭐하셨어요?

안부를 물어온다.

요 며칠? 이틀 전만 해도 접속하지 않았던가.

게임 속의 달력을 본다. 오늘의 날짜를 본다. 미간을 좁히고 다시 본다. 급하게 인터넷을 켜서 음력 달력을 본다. 십오 일이 보름이니……. 맙소사, 오 일이나 지나 있다. 이틀 전이라고 생각했던 날로부터 오 일이 지나 있다. 거실로 달려나간다.

“제가 사흘 동안 잤어요?”

키티가 귀찮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어, 그쯤.”

“거기서?”

“어.”

“일부러 그러셨어요?”

“뭘?”

“저 열받게 만든 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러니까 보름날 막 턱 잡아당기고 그러셨잖아요”

“내가 안 했어.”

“알죠.”

정적.

“그래, 일부러 그랬어.”

“왜요?”

“그럼 그쪽으로 올 거 아냐. 그때 잡으려고. 마취총으로.”

“아, 마취총을 어디서…….”

“미미한테 말하면 구해다 줘.”

“그럼 처음부터 쏘면 되는데, 왜?”

“혹시 모르잖아, 깨어날지도. 그것도 그렇고 그냥 싸워보고 싶었어.”

할 말이 없다. 그냥 싸워보고 싶었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얻어맞은 건 저쪽인데.

“왜 곰이나 호랑이 같은 놈들이 다 죽었는지 알겠더라. 씨발 사기야.”

“다 죽어요?”

“어, 꿈꾸면 보인다며. 길 가다 커다란 놈들 봤어? 호랑이나 곰 같은 놈들.”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내가 본 것이라고는 소나 돼지 정도가 크다고 할 수 있는 동물이었다.

“못 본 거 같네요.”

“다 죽었으니까 못 보지.”

“어쩌다가 죽었어요?”

“다른 놈들이 죽였어.”

“왜요?”

“말했잖아, 사기라고. 일대일로 싸우면 이길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안 죽이고 놔두겠냐? 나라도 죽이겠다.”

정말로 죽일 것 같은 냉혹한 표정이다.

“왜 전 안 죽이셨어요?”

“키워서 써먹으려고.”

“써먹어요, 어딜?”

“여기저기.”

“여기저기라면…….”

“몰라 인마, 말 시키지 마. 티비 소리 하나도 안 들리잖아.”

돌아서서 TV를 본다. 드넓은 초원에서 치타 한 마리가 새끼 가젤을 추격하는 장면이 보인다.

“우리 같은 사람 중에 치타도 있어요?”

“깜둥이들.”

“네?”

“깜둥이들 중에 있다고.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없어.”

“아, 사자도 그럼?”

“이 씨발, 닥치고 꺼져 새끼야.”

발밑으로 리모컨이 날아온다. 닥치고 꺼져준다.


의자에 기대앉아 모니터를 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낯섦이 전해져온다. 천천히 채팅 창을 올려 지나간 말들을 본다.

클로형. 클로야. 원훈이라는 내 이름보다 클로라는 이 캐릭터의 이름이 더 내 이름같이 느껴진다면 우스운 일일까? 우습지도 않은 것이 지난 삼 년하고도 수개월 동안 나는 클로였다. 주민등록증에만, 다달이 날아오는 각종 고지서에서만 원훈이라는 이름이 있었고, 그 외에는 클로였다.

“클로야, 클로야.”

웃음이 나온다. 내 입으로 직접 클로라고 말하니 정말 미쳐버린 것 같다.

“클로야, 클로야.”

대답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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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82 파인더
    작성일
    12.03.16 14:50
    No. 1

    혼돈이 느껴지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스사가미프
    작성일
    12.03.16 22:50
    No. 2

    음, 산만하다는 말씀이신 듯하네요. 조금있다 올리게될 글까지는 이 산만함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두 편 뒤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에 진입할 생각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5.30 20:05
    No. 3

    크.. 클로? 설마 곰 이름이 클로는 아니겠죠? 원훈이가 언제 곰을 깨울 지 궁금해서 죽겠어요...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다고 하니까 다른 나라에는 뭐가 있을 지 궁금하네요. 설마 드래곤같은 것도 있을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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