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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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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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02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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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2.

DUMMY

하얀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다. 외까풀의 가느다란 눈에, 호리호리한 몸과 길쭉길쭉한 팔다리. 마른 듯 보이는 몸에 비해 목은 엄청나게 굵고, 목 위에 있는 손바닥만 한 머리통은 참치캔 위에 얹힌 테니스공처럼 보인다. 서른은 넘어 보이는 얼굴에 까맣게 탄 피부에서는 위압감이 느껴진다.

나는 멍하니 남자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이름이 뭐냐고.”

남자가 가느다란 눈을 더 가늘게 뜨며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살짝 건드린다. 남자의 손이 닿는 순간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고양이나 쥐가 나타날 줄 알았더니, 난데없이 악어가 나타나 버렸다.

“너 어젯밤에 그놈 맞지?”

어젯밤 그놈? 침을 삼킨다. 뻑뻑한 목구멍은 침조차도 매끄럽게 넘기지 못한다.

“씨발, 너 이름이 뭐냐니까.”

남자의 얼굴이 굳는다. 아니 굳은 것은 나일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하는데.

남자가 한발 다가온다. 난 한발 물러난다. 그가 다시 한발 다가오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정면으로 오른손을 내민다.

“가, 가까이 오지 마!”

잽싸게 주머니로 손을 넣어 휴대폰을 꺼낸다.

“뭐하는 거야?”

“가까이 오지 마.”

난 다시 소리치며 112를 누르고 통화버튼에 손을 올린 채 번호가 찍힌 화면을 남자가 볼 수 있게 뒤집는다.

“신고할 거야.”

남자의 굳어 있는 얼굴이 씰룩거린다.

“신고해.”

그가 나를 보며 여전히 얼굴을 씰룩거린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텐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확 눌러버릴까.

“신고해 보라고, 자식아. 그냥 죽여버리고 나가면 그만이니까. 너 어젯밤에 그놈 맞지?”

어젯밤 그놈이라, 그런 것 같긴 한데, 네, 제가 어젯밤의 그놈입니다,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가 손을 뻗어 휴대폰을 쥐고 있는 내 손목을 잡고 비튼다.

엄청난 힘이 손목뼈를 산산조각낼 것만 같다. 조각난 뼈들이 살갗을 뚫고 튀어나오면 엄청 아프겠지.

잡고 있는 휴대폰을 떨어뜨린다. 그가 허리를 숙여 휴대폰을 집어든다.

“저…….”

나는 말을 꺼내려다 만다.

“뭐, 말해.”

그가 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저기 혹시.”

난 다시 말하려다 입을 다문다.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험하게 살아온 인간도 아니고, 이런 인간을 앞에 두고 맨투맨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간담도 없으니.

“말하라니까.”

그가 짜증을 낸다. 나 역시 유창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내가 짜증 나긴 마찬가지다.

“야, 이거 비밀번호 뭐야?”

잠시 고민한다. 곱게 말할 것이냐, 얻어맞고 말할 것이냐. 결론이 정해져 있는 고민이 늘 그렇듯 오래가지 못한다. 아직 그에게 얻어맞진 않았지만, 그는 언제라도 주먹을 휘두를 만한 사람으로 보인다.

“일일팔구.”

어떻게 내 목구멍에서 그렇게 거칠거칠한 소리가 나온 건지. 아주 불쾌하다는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소리가 새어 나간다.

“일이팔구.”

그가 중얼거리며 버튼을 누른다. 뭔가 잘못됐는지 다시 버튼을 누른다.

“아니잖아. 자꾸 틀렸다고 하는데.”

“일일팔구, 맞는데.”

그가 다시 버튼을 누른다.

“아니잖아.”

그가 버럭 고함을 지른다. 그의 손에 있는 핸드폰의 끝을 잡고 내 쪽으로 잡아당긴다. 손수 눌러줘야겠다. 그의 오른쪽 눈썹이 꿈틀하더니 핸드폰이 내 손으로 넘어온다.

일일팔구. 순서대로 누른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화면이 바뀐다. 그에게 휴대폰을 내민다. 그가 휴대폰을 받아들고 버튼을 누른다. 머리를 소리 나게 벅벅 긁더니 나를 본다.

“전화번호부, 열어봐.”

열어준다.

“엄마, 아빠, 상주, 영혁, 기호, 스파, 마우.”

그가 전화번호 목록에 적힌 몇 없는 이름들을 줄줄 읽는다.

“이름 뭐냐니까?”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가 인상을 쓴다.

“네?”

“이름 뭐냐고, 네 이름!”

말해도 괜찮을까. 아니 내 이름이 뭐라고. 말해 버려. 괜찮으니까.

“원훈.”

그가 내 뒤통수를 때린다. 강력하다. 눈물이 핑 돈다.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그를 바라본다. 그의 눈을 바라보긴 적지 않게 부담스러우니 코를 본다. 그가 휴대폰을 내민다.

“문자 열어.”

휴대폰을 받아 문자함을 열어준다. 그가 문자를 그대로 읽는다.

“형 지금 뭐하세요. 스파가 보낸 거고. 네가 형이야?”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다음 문자를 읽는다.

“클로님 오늘은 언제 오세요? 마우가 보냈네. 이놈은 너보고 형이라고 안 하네. 클로님?”

그가 한숨을 쉬며 문자를 하나하나 읽는다.

“스파고 마우고 씨발 좆나게 이름도 이상하네. 너 뭐하는 놈이야. 클로? 너 원훈이라며.”

“아니 그게 아니고 게임에서.”

“게임? 막 박수 치면서 하는 그런 거?”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컴퓨터 게임요.”

“아, 오락. 오락에서 뭐?”

한숨이 나온다. 그렇다고 답답한 티를 내면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속으로 삼킬 뿐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게임을 오락이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빌어먹을.

그때 인터폰이 울린다. 그가 입술 가운데 검지를 올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인터폰으로 다가가 수화기를 든다. 인터폰에 붙어있는 화면에서 벨을 누른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 저건 또 누구지?

그가 나에게 손짓한다. 다가간다. 나에게 수화기를 떠넘긴다. 수화기를 받아들고 화면을 본다.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있다.

누구세요, 라고 해야 할까 여보세요, 라고 해야 할까.

다시 벨이 울린다. 그가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펴고 볼 옆에 대며 입을 벙긋거린다.

“네, 여보세요.”

“김양호 씨, 택배 왔습니다.”

그를 본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물음을 실어. 그가 인터폰의 버튼을 누른다. 곧 화면 속의 남자가 사라진다.

“들어오세요.”

나는 수화기에 대고 중얼거린다. 그가 현관으로 나를 끌고 간다.

“여기, 서 있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그가 벽을 타고 올라가더니 천장에 달라붙는다. 입을 떡 벌리고 그를 본다. 그가 정면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다. 앞을 보란 말이렷다.

잠시 후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다 부서진 문인데, 그냥 열고 들어오면 안 되나.

다시 두드린다. 택배기사겠지. 문을 민다. 밀리지 않아 한번 걷어찬다. 문이 열린다.

“김양호 씨, 본인이십니까?”

택배기사가 다짜고짜 물어온다.

“아니, 본인은 아니고, 잠시 나가셨는데.”

“어디 멀리 가셨습니까?”

“아니, 그건 잘 모르겠는데. 그냥 저한테 주시면, 제가 전해 드릴게요.”

두 손을 내민다.

“그게 여기 보시면 꼭 본인에게 전달하라고 적혀 있습니다만.”

택배기사가 들고 있는 커다란 종이 상자를 내밀어 위에 붙어 있는 라벨의 글을 보여준다. 글을 읽으려 머리를 앞으로 내민다. 동시에 가느다란 줄이 목을 감아온다. 반사적으로 줄과 목 사이에 오른손을 끼워 넣는다. 줄은 금세 쪼그라들더니 손가락과 목을 밀착시킨다. 택배기사가 줄을 당긴다. 버티려 했지만 내 몸을 맥없이 앞으로 고꾸라진다. 오른쪽 팔꿈치가 땅에 쓸린다.

“너, 뭐야?”

택배기사로 짐작되는 목소리가 내 뒤통수에 대고 말한다.

젠장. 이놈이나 저놈이나. 내가 뭐 그리 궁금하다고. 뭐냐고 묻는데 내가 뭐라고 대답한단 말인가. 백순데요 할까. 아니면. 아니 대답을 안다고 해도 턱밑에 오른손을 끼워 넣고 맨바닥에 엎드려 있는 내가 어떻게 대답한단 말인가.

자유로운 왼손으로 땅을 받치고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 한다. 하지만 뭔가 내 등을 꾹 누른다. 뭔가는 필시 택배기사의 발이리라. 땅에 붙은 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가쁜 숨을 몰아쉰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왼쪽 눈에만 눈물이 맺혀 시야가 비정상적으로 흐려진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머리를 뒤로 잡아당긴다. 자연적으로 납작 엎드린 채 고개만 꼿꼿이 치켜든, 먹이를 눈앞에 둔 뱀과 같은 자세가 된다. 손가락이 끊어질 것만 같다.

“너 누구야, 어디서 나온 놈이야.”

그리 길지 않은 시차를 두고 다른 두 사람에게 이렇게 추궁을 당하다니. 요즘과는 전혀 동떨어진 말이긴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던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정체는 밝히지도 않은 채 상대를 겁박하며 이름과 주소를 들으려 하는 불한당들이 활개치고 다니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서서히 줄이 풀린다. 오른손에 힘을 줘 줄을 앞으로 밀어내며 왼손으로 당긴다. 왼쪽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뒤통수에 강렬한 충격을 느낀다. 두 팔꿈치가 동시에 바닥에 부딪힌다. 지독한 통증을 견디다 못해 몸부림을 친다. 고통을 음미할 시간도 제대로 주지 않고 다시 줄이 조여든다. 먼젓번과 같이 꽉 끼인 오른손으로 줄을 밀어내며 왼손으로 줄을 밖으로 잡아당긴다. 그렇게 얼마나 버텼을까. 뒤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더니, 내 목을 잡아당기고 있던 줄에서 힘이 빠진다. 자연스럽게 내 팔꿈치들은 대리석바닥을 깨부술 기세로 강타한다.

강력한 엘보우 공격. 어떠냐, 바닥 놈아.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마를 바닥에 문지르며 신음을 흘린다. 털썩 소리가 나며 뭔가 옆으로 떨어진다.

“야, 일어나.”

택배기사의 목소리가 아니다. 긴장이 풀리자 팔꿈치가 더 아프다. 무릎을 오므리고, 꿇어앉아 팔꿈치를 배로 감싼다.

“일어나라고.”

더 고통을 누리고 싶었지만 무섭다. 벌떡 일어난다. 돌아선다.

발치에는 목이 기이하게 비틀린 택배기사가 변태 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 엎드려 있다.

남자가 먼지라도 털어내듯 손을 흔들며 싱긋 웃는다.

“원훈이라고 했지?”

비록 지금은 웃고 있지만, 언제까지 저 웃음이 얼굴에 머물러 있을지 모른다. 대답해야 한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저기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거 같은데…….”

그의 숱 없는 눈썹이 움직인다. 내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저기 그러니까 저는…….”

열과 성을 다해 대답하려 한다. 그런데. 무슨 오해를 했다고 말할까. 모르겠다. 그가 내 얼굴 앞에 손바닥을 펼친다.

입을 다문다.

“씨발.”

그가 중얼거린다.

“저기 그러니까 저는…….”

그가 날카롭게 나를 본다. 나는 다시 입을 다문다.

“씨발, 미미는 왜 전화를 안 해.”

그가 중얼거린다.

“네?”

사람 이름인 거 같은데.

“미미요?”

눈앞에 불이 번쩍한다. 아프다기보다 멍하다.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 입을 열지 않기로 한다. 그가 주머니로 손을 넣어 휴대폰을 꺼낸다. 내 휴대폰이다. 그가 휴대폰을 보더니 등 뒤로 휙 던져버린다. 다 먹은 음료수 캔을 버리듯 아주 자연스럽게.

청량한 소리를 내며 휴대폰이 바닥을 구른다. 본체에서 탈출한 배터리가 두어 바퀴 더 구르다 멈춰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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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3.02 17:16
    No. 1

    미미가 그 고양이인 건가요?
    도대체 택배기사 아저씨의 정체는 뭐고...
    정체불명의 거구의 괴한(?)은 동물로 치자면 곰...?
    궁금증만 늘어가요!! 매번 하는 소리지만서도!!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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