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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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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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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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글자수 :
207,496

작성
12.02.29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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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2.

DUMMY

꿈이다.

이번 꿈속에서도 나는 툭 튀어나온 뭉툭한 코와 거친 털을 가진 짐승이다.

이곳은 잘 아는 곳이다. 바로 내가 사는 곳이다. 짐승은 지금 집 앞 놀이터에 있다.

반대편에 아무도 없는 시소 끝에 앉아 두 손으로 조그만 손잡이를 꼭 쥐고 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짓쳐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일어선다.

곧 어디론가 가서 누군가를 죽이겠지. 깨어나고 싶다. 희망 사항일 뿐이다. 난 절대 깨어나지 못한다.

짐승은 나면서도 내가 아니다. (나라면 내 몸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아니라면 짐승의 시야를 공유할 이유가 없다.)

내가 아니 짐승이 코를 들어 한동안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놀이터 밖으로 달려나간다.

제발 목격자라도 없으면 좋으련만. 잠이 들기 전에 변장이라도 해 놓을 것을 그랬단 생각이 든다. 아니, 잠이 들긴 했었던가? 기억에 없다.

희미한 냄새를 따라 달린다.

이번에는 어떤 짐승일까. 쥐, 돼지, 개. 지난 여섯 번의 꿈에서 내 손에 죽었던 희생물들의 이름이 적힌 룰렛 판이 세차게 돌아가고 있다.

음울한 주황색 가로등 불빛이 선이 되어 나를 스쳐 지나간다.

냄새는 점점 짙어진다. 높다란 담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강렬한 냄새는 담 너머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대충 봐도 삼 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담장을 가볍게 타고 넘는다.

정원이다. 반대편에서 달려온 도베르만이 요란하게 짖어대며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든다. 팔을 휘둘러 머리통을 후려친다. 고개가 꺾인 개는 피를 뿜으며 날아가 버린다. 내 안에서 크릉대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온다.

나와 -내가 지금 느끼는 긴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듯 짐승은 여유롭게 두 발로 우뚝 서서 냄새를 들이마신다. 사냥감의 냄새 속에 이질적인 냄새가 섞여 있다. 짐승은 이 냄새의 주인을 떠올리려 한다. 분명 기억 속에 있는 냄새이긴 한데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냄새를 맡는다. 사냥감의 냄새뿐이다.

냄새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다. 손잡이를 비틀며 잡아당긴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며 손잡이와 문짝 일부분이 같이 뜯겨 나온다. 그 사이로 손을 넣어 문을 연다.

안으로 들어간다. 몇 번이고 와 봤던 것처럼 거침없이, 조금도 두리번거리지 않고 거실을 지나쳐 방문 앞에 선다. 으르렁거리며 문을 연다. 방안의 풍경을 둘러본다.

생각과 다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생각과 다르다. 짐승은 당황하고 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을 본다.

왜 당황하고 있는지 이유라도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방안으로 한 발짝 들어서자, 등 뒤에서 예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다시 풍겨온다. 뒤돌아본다. 아무것도 없다. 들어오면서 봤던 거실의 모습 그대로다. 다른 것은 없다.

짐승은 불안한가 보다. 아무리 그래도 나만큼 불안하진 않을 테지만.

거실로 나가서 테라스로 향하는 유리문을 바라본다. 어슴푸레한 달빛을 받아 말라붙은 정원이 보인다. 바람에 흔들리는 앙상한 가지들의 그로테스크한 실루엣이 보인다.

뒤돌아선다. 다시 방으로 돌아가 침대로 다가간다. 한가운데가 솟아오른 침대보를 그대로 내리친다. 손에서 느껴지는 허무한 감각. 침대보를 뒤집는다. 아무것도 없다. 아니 베개 몇 개가 사람의 형상으로 놓여 있을 뿐이다.

이것이었나. 짐승이 당황한 이유는 이것이었나 보다.

침대 위에서 풍기는 사냥감의 체취는 코를 마비시킬 정도다. 거친 손길로 베개들을 밀쳐낸다. 매트리스가 빨아들이다 못해 도로 토해낸 것 같이 고여 있는 피.

피가 스며들지 못한 침대의 머리맡을 손으로 만진다. 온기가 느껴진다.

놈은 어디로 갔을까.

커튼이 쳐져 있는 창문으로 다가간다. 커튼을 걷고 긴 발톱으로 창문을 연다. 방범창의 창살이 위아래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리로 나갔단 말인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쥐새끼라면. 개새끼라면. 돼지라면 무리겠지만.

시야 한 편에서 희뿌연 뭔가의 움직임이 잡힌다. 그곳을 노려본다. 아무것도 없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숨을 몰아쉬며 거실로 걸어간다.

그때 조그만 숨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렸다.

돌아선다. 둘러본다. 옷장이 보인다. 침대가 보인다. 욕실로 향하는 문이 보인다.

걸어가 문을 후려친다. 나무문 한가운데가 움푹 파인다. 두 번 더 후려치자 내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아가리를 벌린다. 그리로 들어간다.

애초에 들어올 것도 없었다. 좁디좁은 욕실은 숨소리의 주인을 숨길 만큼 은밀한 장소 따윈 없다.

되돌아 나간다. 옷장 손잡이에 손을 끼운다. 발톱이 옷장을 긁고 지나간다. 미세한 숨소리가 흘러나온다.

이곳이었구나. 그래. 여기 있었구나.

천천히 잡아당긴다.

상의 여러 벌이 빽빽이 걸려있고, 그 아래 텅 빈 공간에 웅크리고 있는 놈을 본다. 놈이 느리게 고개를 든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놈의 눈에 서린 극도의 공포를 본다. 무섭겠지.

쥐가 시끄럽게 울어대기 시작한다.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올린다. 한 번이면 충분하다. 한 방에 죽이고 집으로 가버리자. 나는 짐승을 설득하려 한다.

그 순간 바로 뒤편에서 예의 그 신경 쓰이는 냄새가 강렬하게 풍겨온다. 뒤돌아본다. 허연 덩어리가 눈앞을 빠르게 지나간다. 놈을 쫓아 고개를 돌린다. 덩어리는 창문 아래 벽을 짚고 다시 날아오른다.

난 놈을 보았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그랬다. 이 냄새는 바로 고양이의 냄새였다.

고양이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든다.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고양이와 어머니. 그리고…….

고양이가 눈앞을 스쳐 지나가며 앞발로 뺨을 훑는다. 이 고양이는 그때의 고양이가 아니다. 그때의 고양이는 결코 나를 해치지 않았다.

이리저리 정신 사납게 날뛰는 고양이를 본다. 가소롭다. 저 짧은 다리로, 그 끝에 달린 연약한 발톱으로 어떻게 나를 상처입힐 수 있을까. 기를 쓰고 나에게 달려드는 고양이의 노력이 애처롭다.

고양이의 움직임을 예측해 왼팔을 가볍게 휘두른다. 기다란 손톱 끝이 고양이의 등을 파고든다.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힌 고양이가 자세를 바로잡으며 구슬픈 울음을 토해낸다.

놈에게 다가간다. 천천히. 놈은 나를 보며 눈을 빛내고 있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 다시 덤빌 테냐. 아니면 도망이라도 갈 테냐.

으르렁거림이 새어나온다.

그때 옷장에 틀어박혀 있던 쥐가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 나간다. 그제야 깨닫는다. 고양이가 노리던 것이 이것이었구나.

쥐의 뒤를 쫓아 달려간다. 내 목표는 고양이 따위가 아니다. 쥐다. 저 쥐를 쳐죽이는 것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놈은 빠르게 열린 현관 밖으로 뛰쳐나간다. 나도 그 뒤를 따른다. 고양이가 등에 올라타 발톱으로 마구 긁어대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그보다 빨리 쥐를 잡아야 한다. 죽여야 한다.

흔적이 없다. 쥐의 모습이, 냄새가 사라져버렸다.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등 뒤에 올라타 있던 고양이가 훌쩍 뛰어내린다. 상관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고양이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금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오로지 쥐를 위한 것이다.

두 팔로 땅을 짚는다. 머리를 앞으로 쭉 내밀고 냄새를 빨아들인다. 없다. 사방천지에 빌어먹을 놈의 고양이냄새와 뒤쪽 집에서 흘러나오는 쥐새끼의 오래된 냄새뿐이다. 도망쳐 나간 쥐의 생생한 냄새는 맡을 수가 없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고양이라도 잡아야겠다. 고양이를 찾아 고개를 돌린다. 멀찍이 서서 나를 보고 있는 놈을 발견한다. 놈은 분노와 의문과 흥미가 뒤섞인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미쳐버릴 것 같다. 참을 수가 없다. 놈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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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3.02 17:13
    No. 1

    응? 어째서 고양이가 쥐를 사냥하지 않죠?
    고양이는 쥐로 보이는 사람의 애완동물인가요?
    괴상한 표정이라는 문구를 보니까 이 상황과 관련된 사람이라고도 생각돼요.
    글을 정말 생생하게 쓰시는 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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