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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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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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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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2.03.12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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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4.

DUMMY

이름을 중얼거리기 시작한 지도 십일이 넘었다.

내 안의 곰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잠을 못 자게 해야 한다는데, 괜히 귀찮게 했다가 화내면 어쩌나 싶기도 하지만, 뭔가 해보긴 해야 할 것 아닌가.

얼빠진 놈처럼 가만히 앉아서 그것도 십일도 넘게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으면 별생각이 다 든다. 속았다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설마 이런 걸로 속이겠나 싶기도 하고, 이게 진짜 의미 있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이딴 짓 다 때려치우고 그냥 한 달마다 한 번씩 짐승 하나씩 때려죽여 버리면 안 되나 싶기도 하고, 내가 꿈을 꾸는 중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이 꿈을 빠져나가야 하나 한숨도 쉬어보고. 그러다 다시 내 이름을 중얼거리고.

문이 벌컥 열린다.

“나와, 가자.”

“어디로?”

“본부.”

“본부요?”

본부라는 말에 덜컥 겁부터 난다. 여우, 고양이, 두더지, 용 말고 또 뭐가 나를 환란과 핍박 속에 밀어 넣을지.

“아, 씨발, 야구를 안 하니까 볼 게 없네.”

무슨 두서 없는 소린가 싶어 키티를 본다. 꽤 심심했나 보다.

“겨울에는 야구 말고 다른 거 하잖아요. 농구나 배구 같은 거.”

컴퓨터를 끄고 옷장으로 간다.

“축구도 하고.”

스웨터에 머리를 끼워 넣고 팔도 끼워 넣는다.

“야구를 안 하잖아.”

청바지에 다리를 끼워 넣는다.

“어느 팀 좋아하세요?”

“자이언츠.”

“꼴데?”

“이 새끼가.”

그가 주먹을 치켜든다. 뒤로 물러서며 입으려던 점퍼로 앞을 막는다.

“넌 어디야.”

“저야 서울에서 태어났으니 두…….”

“너도 앞으로 자이언츠다.”

“네.”

그가 돌아선다. 점퍼를 입고 그를 따라나선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띵 소리를 내며 열린다. 안으로 들어간다. 키티가 지하 1층을 누른다. 난 1층을 누른다.

“너 차 없냐?”

“네.”

“차가 왜 없어.”

“그냥 쓸데가 없어서. 저기 키, 아니 형은 왜 차가 없어요?”

“면허증이 없어서.”

그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요? 따면 되잖아요.”

“못 따.”

“그거 문제도 별로 어렵지 않던데.”

“못 딴다니까.”

그가 성질을 낸다. 입을 다물고 바닥을 본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경비실을 지나쳐 도로로 나간다.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다.

“춥다.”

그가 중얼거리며 기지개를 켠다.

추운 거 같으면 옷을 두껍게 입던지. 얇은 트레이닝복 한 장만 걸치고 있으니 추울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내 입은 다른 말을 지껄인다.

“그러네요. 우산 가지고 올까요?”

“됐어. 그냥 가.”

빈 차 표시가 되어 있는 택시를 세운다.

“보내.”

“네?”

“보내라고.”

택시 기사에게 사과하고 보낸다.

“왜 보내라고…….”

“가까워. 걸어가도 금방이야.”

그가 성큼성큼 걸어간다.

가깝다면서 차가 있는지는 왜 물어봤단 말인가.

그의 뒤를 따라 걷는다.


걷기 시작한 지 이십 분도 지나지 않았다. 키티는 멈춰 서더니 낡은 삼 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본다. 그를 따라 나도 그 건물을 본다. 누런 타일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건물은 지어진 지 사십 년은 넘어 보인다. 비는 새지 않을지, 무너지지는 않을지 조금 걱정된다. 키티가 헛기침을 하더니 건물로 들어간다. 그를 따라간다. 곰팡내가 물씬 풍기는 지하, 그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검은색 철문에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는 빨간색 글이 쓰여 있다. 키티가 문 손잡이를 잡아당긴다. 문은 꿈적도 하지 않는다. 그가 문을 쿵쿵 두드린다. 아무 반응이 없다. 다시 두드린다.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도 없나 보네요.”

그가 끄덕인다.

“올라가자.”

그가 계단을 터벅터벅 올라간다. 나도 그를 따라간다. 졸졸 따라만 다니다가 키티를 잃어버리면 집도 못 찾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키티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건물로 간다. 일 층에 오락실이 있다. 그는 곧장 걸어가 카운터에서 동전을 바꾼 후 테트리스를 한다. 그의 뒤에 서서 화면을 바라본다. 잘한다. 나타난 퍼즐을 확인도 하지 않고 막 내려보내는 것 같은데도, 쌓인 줄은 계속해서 깎여 나간다. 다음 라운드로 넘어간다. 그가 표정을 풀며 나를 본다.

“넌 안 하냐?”

“그냥 뭐.”

“동전 없어?”

다음 라운드가 시작된다. 그의 얼굴이 굳는다. 이전 라운드처럼 쉽게 넘어간다.

“잘하시네요.”

그가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주머니로 손을 넣더니 동전 몇 개를 준다.

“뭐 좀 해.”

“이건 이렇게 잘하시면서, 왜 컴퓨터 게임은 안 하세요? 컴퓨터도 이거 있는데.”

“회원 가입해야 하잖아.”

다음 라운드가 시작된다. 그의 얼굴이 다시 굳는다.

“가입하면 되죠.”

“못해.”

줄이 깎여가는 효과음이 계속해서 들려온다.

“왜 못해요, 키보드를 못 누르세요?”

“이 새끼가 돌았나.”

그의 눈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다.

“주민등록번호.”

“네?”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왜요, 혹시 출생신고를 안 하신 거예요?”

“돌았냐? 나 고등학교 나왔어.”

“그럼…….”

“사망 신고를 해서.”

“네?”

“사망 신고했다고.”

할 말이 없다.

“그럼 다른 주민등록번호라도.”

“내게 아니잖아.”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내가 다른 사람의 계정으로 게임을 하지 않는 거랑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눈앞에 있는 삐에로가 정신 나간 놈처럼 춤을 추고 있다. 요란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전화해 보세요.”

“누구한테?”

“미미 씨나 뭐 다른 사람한테.”

“왜? 그야 아직 안 왔으니.”

“오겠지, 뭐.”

“네, 그럼 전 다른 거 좀 할게요.”

걸어가 대전 액션 게임에 동전을 넣는다. 몇 대 얻어터진다. 몇 대 때리고 다시 몇 대 얻어터진다.

YOU LOSE.

“뭐냐, 왜 벌써 끝나?”

뒤돌아본다. 키티가 나를 한심하다는 듯 보고 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는다.

“그냥 뭐 오랜만에 하는 거라, 다하셨어요?”

“껐어. 지겨워서.”

지겹다더니 날 밀어내고 내가 하던 게임기에 동전을 넣는다. 잘한다. 절로 잘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키티가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 후에도 한 시간가량 게임기 앞을 전전한다. 보지 못했던 게임의 엔딩 장면은 덤이다.

어디선가 휴대폰 벨 소리가 들린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본다. 휴대폰은 전원이 꺼져 있다. 키티를 본다.

“전화 온 거 아니에요?”

“몰라.”

벨 소리는 계속 들린다.

“전화 온 거 맞는 거 같은데요.”

키티가 성질을 내며 휴대폰을 꺼내본다. 그러더니 귀에 가져다 대며 일어선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 스틱을 잡는다. 그가 돌아오더니 게임기의 전원을 꺼버리고 밖으로 나간다. 그를 따라나간다.

“어, 왔어. 아까 가보니까 없던데? 어? 뭐라고? 아, 맞다. 갈게.”

키티가 나를 돌아본다.

“야, 가자.”

그가 걸어간다. 뒤를 따른다. 키티가 가는 방향은 아까 들렀던 옆 건물의 지하가 아니라 반대 방향이다.

“어? 저쪽이 아니…….”

키티가 노려본다. 입을 다문다. 그는 계속 걸어간다. 묵묵히 그 뒤를 따른다. 십 분쯤 걷다가 그가 한 건물로 들어간다. 이번에도 역시 컴컴한 지하로 내려간다. 역시나 문에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적혀 있다. 그가 문을 두드린다.

“암호.”

굵은 목소리가 짤막한 단어를 내뱉는다.

“문 열어.”

아무 말이 없다.

키티가 다시 문을 두드린다.

“암호.”

“문 열어.”

두드리고.

“암호.”

“씨발.”

문이 열린다. 삼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단단해 보이는 남자가 멀뚱히 서 있다.

“오늘은 좀 빠르네.”

“미친 새끼.”

키티가 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간다.

“이놈이 곰이야?”

키티가 멈춰 선다. 나도 따라 멈춰 선다.

“어.”

“미쳤다고 들었는데.”

“어.”

“아직도?”

“어.”

“그런데 왜 데려왔어?”

“그냥, 족제비 좀 만나려고.”

“미미는?”

남자가 고개를 돌리며 안을 가리킨다. 키티가 걸어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간다. 암갈색 소파 여덟 개 외에는 가구라 할 만한 게 사무용 책상 하나와 커다란 옷걸이 하나밖에 없는 쓸쓸한 공간. 열 명 남짓의 남녀가 소파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다가 우리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다. 아는 얼굴은 옆의 키티와 책상 너머에 앉아 있는 미미뿐이다. 백정이나 용가리는 보이지 않는다. 걸어가는 키티의 등을 두드린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우리 같은 사람이에요?”

키티가 돌아본다.

“우리 같은 사람?”

“그러니까 그 뭐라 해야 하지…….”

“맞아. 네 말대로 우리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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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3.12 19:32
    No. 1

    역시 오늘도 재밌습니다!!
    근데, 오타난 것 같아요.

    "못 따. 그 문제도..
    라는 부분, 주인공이랑 키티랑 말이 분리가 안 된 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스사가미프
    작성일
    12.03.12 22:44
    No. 2

    아...실수를 했군요. 감사합니다. 따옴표도 안붙이고 줄도 안바꾸고 막쓰다가 끝에 따옴표를 붙이다보니 실수해버렸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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