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연재수 :
51 회
조회수 :
24,608
추천수 :
215
글자수 :
207,496

작성
12.02.24 00:20
조회
3,339
추천
13
글자
6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0.

DUMMY

일을 마치고 피곤한 걸음을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맞은편에서 운동복을 입은 건장한 남자 세 명이, 잘해야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소녀의 뒤를 쫓아,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좌우 폭이 넓지 않은 길인데다 반대방향에서 네 명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을 보고 자연스레 담벼락으로 물러섰지만, 그중 한 명과 발이 뒤엉켜 넘어지고 말았다.

원망하는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던 나는 곧장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에게서 그런 섬뜩한 기분을 느끼긴 처음이었다. 마치 어릴 적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사나운 개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를 피해 억지로 시선을 돌린 나는 경악했다. 내 뒤 멀찌감치에서 따라오던 할머니가 소녀를 지나치는 순간 난데없이 주먹을 뻗는 것이었다. 자연히 그 주먹은 소녀를 쫓던 남자의 가슴을 때렸고, 주먹을 맞은 남자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버렸다.

그 남자가 쓰러짐과 동시에 도망치던 소녀가 훌쩍 날아올라 자신을 따라붙는 다른 남자의 옆머리를 걷어찼다. 비틀거리며 손을 휘젓는 그의 머리를 소녀가 한 번 더 걷어차자 남자는 담벼락을 무너뜨리며 사라져버렸다.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소녀와 할머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표정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두 번, 세 번 이어지자 공포가 치밀어올랐다.

나는 앉은 채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다 뭔가에 부딪혔다. 돌아보니 나와 뒤엉켜 쓰러졌던 남자는 이미 일어나있었고, 나는 그의 정강이를 등으로 밀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나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소녀와 할머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들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으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더니, 천천히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을 까딱였다.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떠올리려는 찰나 내 등은 지지대를 잃고 뒤로 넘어가 버렸고, 커다란 보름달이 눈앞에 나타났다. 곧바로 달을 가로지르는 소녀의 그림자가 지나가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소녀의 모습도, 남자의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렸다. 할머니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일어설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녀는 꼼짝달싹 못 하는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훌쩍 날아올랐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숨을 몰아쉬던 나는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한 발짝쯤 떨어진 곳에서 말을 걸어보았지만, 남자의 대답은 없었다. 내게 그를 건드려 볼 용기 따윈 없었다.

휴대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걸었다. (장소는 잘 설명했는지,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잠시 후 찾아온 경찰과 구급대원들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잘 설명 했던 것 같다.)

구급차를 기다리며 무너진 담장으로 다가갔다. 담 너머에는 핏물을 깔고 엎드린 남자가 있었는데, 그 모습이 로드킬을 당한 고양이처럼 처량하게 보였다. (하략)


-어느 블로거가 쓴 글 중에서-



그들은 신이었다.

환웅을 찾아가 인간이 되게 해달라고 말했던 곰과 호랑이가 등장하는 단군신화부터 시작해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미노타우로스와 고르고, 인도신화의 하누만과 나가, 중국신화의 도철과 여와 등. 그들의 이야기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미워하고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죽이려 쫓아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에게 문자가 생겨나고 과학이 발전되어감에 따라 그들과 사람이 어울려 지내던 신화의 시대는 종말을 맞았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로는 그들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그들의 존재는 부정되었다. 부정하려 해도 존재한다면, 그 존재를 인위적으로라도 없애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니.

서양에는 카톨릭 이단심문관들의 이야기가 있고, 동양에는 -서양과 같은 하나의 신념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집단은 없었지만- 그들을 퇴치하는 도사나 술사, 승려, 무당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은 미신(迷信)이 되고 미신(未神)이 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토끼를 쫓으면 굴속으로 숨어버린다. 숨어버렸다고 해서 토끼가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굴속으로 숨어든 토끼는 다른 출구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목격되었다.

그들은 더는 신이 아니었다.

늑대인간, 구미호, 흡혈귀, 빅풋 등. 그들은 요괴가 되었다. 괴물이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했다.


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언젠가 불쑥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우린 그들을 뭐라고 부를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을 사람이라고 부르진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면수심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6. +2 12.03.19 319 4 10쪽
2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5. +2 12.03.17 358 4 8쪽
1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5. +3 12.03.16 277 4 9쪽
1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5. +2 12.03.15 318 5 9쪽
1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5. +4 12.03.14 349 5 9쪽
1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4. +2 12.03.13 357 5 8쪽
1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4. +2 12.03.12 426 4 9쪽
1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4. +1 12.03.10 372 5 8쪽
1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4. +4 12.03.09 405 4 8쪽
1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3. +1 12.03.08 427 3 8쪽
11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3. +1 12.03.07 451 4 11쪽
10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3. +4 12.03.06 512 3 11쪽
9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3. +1 12.03.05 503 5 12쪽
8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2. +1 12.03.03 502 4 9쪽
7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2. +1 12.03.02 557 3 11쪽
6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2. +1 12.03.01 603 5 8쪽
5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2. +1 12.02.29 773 5 8쪽
4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 +1 12.02.28 961 6 10쪽
3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 +2 12.02.27 1,237 8 11쪽
2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 +1 12.02.25 2,312 8 7쪽
»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0. +5 12.02.24 3,340 13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