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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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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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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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496

작성
12.03.1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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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4.

DUMMY

“생각보다 많네요.”

“아니.”

“네?”

키티가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 소파에 털썩 앉는다. 나는 그 옆으로 다가가 멀뚱히 선다.

“다른 데는 더 많아.”

“다른데요?”

그가 다리를 꼰다.

“어, 다른데.”

이런 모임이 여러 군데가 있고, 이곳은 소규모란 말일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키티같은 녀석이 수십이 더 있어도 이상하지 않단 소리……가 되나?

“다들 여기서 뭐 하는 거죠?”

“그냥 뭐 오늘이 보름이고 하니까 일도 받으러 오고, 그냥 놀러 온 놈들도 있고.”

아, 오늘이 보름이구나. 빌어먹을 꿈을 꾸는 날이구나. 그런데 무슨 일을 받는다는 거지? 누구한테?

생각을 이어가려는 찰나 흰 머리가 무성한 덩치가 작은 노인이 다가오더니 내 턱을 손으로 잡고 좌우로 돌려가며 관찰한다.

“이놈이 곰이라고?”

“어, 곰.”

키티가 당황하는 나를 보며 대답한다.

“곰인데 왜 이래 부실하게 생겼나?”

“몰라.”

턱이 잡힌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스타라도 된 기분이다. 노인의 손을 뿌리쳐야 할지, 이대로 계속 구경거리가 되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슬그머니 고개를 뒤로 빼며 노인의 손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그 손은 언제 떨어진 적 있었냐고 되묻는 듯 번개처럼 따라붙어 내 턱을 받쳐 든다. 다시 고개가 젖혀진다. 키티가 내 허벅지를 툭 친다.

“뭐해? 잡아먹어.”

“네?”

“족제비한테 곰이 뭐하는 짓이야. 그냥 잡아먹어 버려. 잡아먹는다고 여기서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어.”

눈을 내리깔고 노인을 바라본다.

“눈깔도 몇 달 동안 푹 말린 동태눈깔이고.”

잡아먹으라고? 어떻게?

“빨리 먹어. 안 먹으면 네가 먹힌다.”

키티가 재촉한다. 노인은 흥미로운 장난감이라도 손에 넣은 아이의 표정이다. 벌컥 화가 치솟는다. 손을 들어 올려 노인의 손을 치우려 한다. 하지만 그의 손은 내 턱에 고정된 듯 꿈쩍도 하지 않는다. 빌어먹을 상황이다. 두 손으로 노인의 팔을 잡고 뒤로 두 걸음 물러난다. 그의 손이 내 손을 뿌리치고 턱을 따라온다. 난 더 뒷걸음질친다.

“하지 마세…….”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내 턱은 다시 노인의 손에 잡힌다. 노인의 대답은 없다.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나. 알지도 못하는 곳에 끌려와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으로 키티를 본다. 그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미미가 있는 곳으로 간다. 난 버림받았다.

정말 미쳐버리겠다. 안 그래도 낯선 이들에게 둘러싸여 정신없는데, 이건 그냥 정신 차리지 말고 이리저리 치이란 소리다. 내 꼴이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건지 모르겠다.

있는 힘을 다해 노인의 손을 뿌리치고 빠르게 들어왔던 문으로 걸어간다. 문지기가 나를 본다.

“나가려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문을 열어준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간다. 이딴 곳 두 번 다시 찾아오기 싫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라갈 때 위에서 내려오는 경쾌한 발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본다. 백정이 내려오고 있다.

“안녕?”

안녕은 무슨. 너도 미친 건 마찬가지다.

대꾸없이 지나친다.

“야, 어디가?”

엿 먹어라. 씨발, 모두 다 엿 먹어라.


진눈깨비를 뿌려대던 하늘은 어느새 맑게 개어있다. 싸늘한 공기를 가르며 빠르게 걸어간다.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계속해서 떨린다. 보나 마나 키티나 미미일 것이다. 상관없다.

미친 것들. 내 안에 사는 곰아. 저 씨발 새끼들 다 쓸어버려라. 엉뚱한 것들 죽이지 말고, 제발 저 빌어먹을 것들 다 쓸어버려라.

몸이 떨린다.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과 라면을 한가득 쓸어담고 집으로 간다. 사온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곧장 침대에 눕는다.

그 영감과 키티를 죽여버렸으면 좋겠다. 제발.

바램과는 달리 잠들지 못한다. 정신이 더 말똥말똥해진다. 현관으로 나가 비밀번호를 바꾼다. 현관 벨을 꺼 버린다. 전화기의 코드를 뽑는다. 분을 삭일 수가 없어 한참을 서성인다. 오늘 밤만은 꼭 곰을 내 뜻대로 조종하고 싶다.

“원훈아. 원훈아.”

이름을 중얼거린다. 대답은 없다.

언제나 그랬다. 내가 원하는 것들은 결코 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손에 있던 것들조차도 내가 진정으로 원하면 사라졌다. 곰도 이대로 사라져버릴까? 안 된다. 그놈들을 작살내기 전에는 사라져선 안 된다.

이름을 중얼거리며 침대에 모로 눕는다. 눈을 감고도 계속 중얼거린다. 잠이 들 때까지.


눈앞이 뿌옇다. 엷은 막이라도 끼인 것 같다.

거실로 나간다. 심장 고동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나는 지금 곰이다. 알고 있다.

멀리 떨어진 부엌에서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창 밖의 경적소리도 또렷하게 들린다. 발코니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보름달이 떠 있다. 보름달을 향해 손을 뻗는다. 달과 내 팔 사이를 막고 있던 창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깨진다. 깨진 창문으로 바람이 흘러들어온다.

그래, 난 그 미친 것들을 죽이러 가야 한다. 내가 느꼈던 그 무력감, 굴욕들을 되갚아줘야 한다. 그 대가는 죽음으로.

곧장 현관으로 가 밖으로 나간다. 대부분이 사람이고, 아주 가끔 쥐나 돼지, 개 따위가 보인다. 모두 상관없다. 나는 족제비 한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잡으러 간다. 잡아서 쳐죽이러 간다.

바람에서 비릿한 냄새가 난다. 이 냄새를 따라가고 싶지만, 가지 않는다.

어느덧 키티와 처음 들렀던 지하실이 있는 건물을 지난다. 오락실을 지나고 그곳이 있는 건물 앞에 선다. 몇몇이 어슬렁거리고 있긴 하지만 짐승은 없다. 소리를 죽이고 지하로 내려간다. 문을 두드린다. 알아듣지 못할 날카로운 짐승의 소리가 난다. 으르렁거리는 것 같다.

있는 힘껏 문을 친다. 굉음과 함께 철문 한가운데가 움푹 파인다. 다시 후려치고 온몸으로 들이받는다. 짐승들의 술렁거림이 새어 나온다. 몇 번이고 문을 때리자 철판이 너덜너덜해진다. 저녁에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문은 두꺼운 철판을 몇 겹으로 덧대 만든 듯 여전히 앞을 가로막고 있다.

겁쟁이들. 가소로운 것들.

웃음이 나온다. 계속해서 문을 후려친다.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 언젠가는 열릴 것이다. 열리고 나면 파티가 시작되겠지.

냄새가 난다. 뭔가가 다가오고 있다. 날듯이 계단을 뛰어 올라가 본다. 냄새는 여전하지만,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시 냄새를 맡아본다. 이 냄새는 고양이의 냄새다. 키티의 냄새다.

귀를 기울인다. 주변의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의 말소리, 짐승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팔을 휘두른다. 피를 뿌리며 하얀 물체가 뒤로 날아간다. 키티다. 빠르게 그가 떨어진 거리로 달려간다.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내리찍는다. 그가 머리를 살짝 꺾는다. 비켜나간 팔은 보도블록을 반으로 쪼갠다. 뭔가 내 등을 후려친다. 뒤돌아본다. 개 한 마리가 내 등을 두드리고 있다.

이 개새끼는 뭐란 말인가.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오른팔을 개의 목 위에 걸치고, 왼팔을 턱 아래로 밀어 넣는다. 손을 맞잡고 꺾는다. 낑낑대는 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래, 덤벼라. 다 죽여주마, 새끼들아.

주위를 둘러본다. 고양이는 저기 있고, 족제비는 어딨단 말인가. 족제비 새끼는 어디에…….

등 뒤를 뭔가 파고드나 싶더니 온몸의 힘이 빠진다. 시커먼 아스팔트가 다가온다. 눈을 감았다 뜬다. 묵직한 뭔가가 머리를 후려친다. 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 일어나려 손으로 바닥을 짚어보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눈앞이 뿌옇게 변한다. 눈을 뜨던 그때처럼.


작가의말

더 길게 쓰려다 그냥 줄여버렸습니다. 이야기가 늘어지는 것 같아서요.
예전에 읽었던 러브크래프트의 단편들을 며칠 전에 다시 읽어봤습니다.
라는 글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인간만이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지구의 마지막 영장이라거나 두 발로 걷는 생물체라는 생각은 그릇된 것이다.'

제가 이 이야기로 들려드리고 싶은 것을 한 문장으로 압축해놓은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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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3.13 18:19
    No. 1

    으헉!? 처음으로 사람죽이는 것보다 복수하는 것을 선택했군요...!!
    근데 설마 족제비한테 당한 건...? 묵직한 거랬으니까 아니겠죠? 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0 belovers
    작성일
    12.04.10 00:08
    No. 2

    잘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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