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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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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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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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496

작성
12.02.28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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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1.

DUMMY

경찰일 것이다. 경찰이 아니라면 누가 날 부르겠는가.

목격자가 몽타주라도 그려준 걸까. 그 그림에서 나와 닮은 점이라도 찾아낸 걸까. 아니면 현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수상한 사람을 닥치는 대로 심문하는 걸까.

나 자신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로 느리게 뒤돌아본다. 검은색 구두. 검은색 바지. 천천히 고개를 든다.

핏기 하나 없이 누렇게 뜬 얼굴, 뒤통수를 살짝이라도 한 대 치면 빠져버릴 듯 돌출된 눈, 살짝 벌어진 입술 안쪽으로 보이는 반쯤 부러진 앞니. 사십 대 후반은 족히 되어 보이는 깡마른 남자가 흐릿한 연기 너머로 보인다. 연기를 보고서야 알싸한 담배냄새가 내 콧속을 찔러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두려움이 한발 먼저 나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잘 정돈된 옷차림과 병색이 완연한 얼굴의 언밸런스함에 안도와 더불어 한숨이 찾아온다.

다행스럽게도 날 부른 사람은 경찰이 아니다.

“이봐, 당신 말이야.”

사레가 들려 콜록거린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다음에 등장할 단어를 떠올리며 이를 악문다.

“네?”

뒤돌아선다. 남자를 마주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아니 그보다 튀어나온 눈이 당장에라도 나를 향해 튀어나올 것만 같다.

코를 잠시 씰룩거리던 그는 자신의 턱을 만진다.

“피.”

피? 내 등에 피가, 피가 묻어 있나? 그런 걸까? 어젯밤 꿈의 흔적들이 남아 있나? 그럴 리가 없다. 난 옷을 갈아입었다.

“네?”

그를 바라보며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다. 물론 그는 이 표정을 어떻게 해석할지 모르지만.

“여기 턱에 아까운 피가 흐르고 있는데…….”

“네?”

피라니.

손을 들어 턱을 훑고 손바닥을 본다. 손바닥에 시뻘건 피가 묻어 있다. 신음을 흘리며 휘청거린다. 구역질이 나온다. 그가 재빨리 내 팔꿈치를 잡아챈다. 다시 손바닥을 본다, 피는 그다지 많지 않다.

무심결에 모퉁이에서 얼굴을 긁었다가 흘러나온 피인가 보다.

그는 잠시 멈칫거리더니 뒷주머니에서 검은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나에게 내민다.

“이걸로 좀 닦지.”

나는 손등으로 턱을 문지른 뒤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의 손수건을 사양한다. 손등에 묻어나온 피는 거의 없다.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가 분명하다. 불이 꺼진 나이트클럽의 간판이 보인다. 저 간판은 진실을 말해줄 수 있을까. 돼지는, 내가 짐승이었다면 돼지도 사람이었던 걸까.

여전히 날 부축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저기,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알고 있다. 하지만 묻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타인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이 내 환상이 아님을, 꿈속이 아니라는 것을.

“살인 사건.”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그래, 이것이 정상이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살인 현장 근처에서도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정상이다. 나는 비정상적으로 행동했다. 누군가 이런 내 모습을 눈여겨봤다면 분명히 수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눈앞의 남자를 바라본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표정이다. 고개를 돌려 따분한 표정의 경찰들을 바라본다. 그들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나이트클럽 입구를 막고 있는 폴리스라인만을 지킬 뿐이다. 행인들을 본다. 두어 명이 소란에 관심이 있는지 이쪽을 기웃거린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실례했습니다.”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오려 한다. 하지만 남자는 내 팔꿈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괜찮아?”

괜찮냐니, 뭐가? 난 괜찮지 않다. 지금이 상황이 절대 괜찮지 않다. 웃기지 않은 농담처럼 꿈속의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데, 그게 보통 일도 아니고, 누군가를 물어 죽였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을까.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난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정신없이 걷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내가 어떻게 사람을. 평범한 살인 사건처럼 칼 같은 것을 쓴 것도 아니고…….

아니, 잠깐.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있다. 책이었는지, 티비였는지. 누군가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보았던 범인이 실제 범인이었다는 이야기. 그런 기억이 있다. 당황한 머릿속에서 짧은 순간 지어낸 건지는 몰라도,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내가 꿨던 그 꿈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범행현장을 지켜본 거라고. 하지만 꿈속의 범인은 짐승이었는데. 도심 한복판에 커다란 짐승이 날뛰었다면 작지 않은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게다가 목격자들은 짐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180 정도의 키에 장발, 덥수룩한 수염. 집에서 나오기 전의 내 특징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닌가.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이건 장난이다. 누군가의 악질적인 장난이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젠장.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간다. 곧장 주방으로 가 텅 빈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다. 차가운 기운이 식도를 지나 온몸으로 스며든다. 배에서 작게 꾸루룩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먹었잖아.

뭘?

새벽에.

응?

돼지피를.

아, 그랬구나. 먹었구나.

급하게 싱크대로 상체를 숙인다. 헛구역질한다. 혹시라도 내가 토한다면, 토해낸 흔적에서 핏덩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아침에 이미 토해버렸는데. 그때 피를 보았던가? 모르겠다. 가슴 한가운데가 답답해져 온다.

수도꼭지를 돌리고 쏟아지는 물에 손을 담그고 입을 씻는다. 눈물이 맺혀 흐릿한 눈을 들어 시계를 본다.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게 두서없는 생각에 빠져든다.


정신을 차리니 사방에 어둠이 깔렸다. 더듬거리며 벽으로 다가가 전등의 스위치를 켜고 시계를 본다. 시곗바늘은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다. 근 두 시간 동안 내가 해낸 생각이라곤 별거 없다. 이미 예전에 했던 생각들의 되새김이었다. 내가 그 살인 사건의 범인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서서 갈팡질팡하는 나로 썬 애초에 답을 낼 수 없는 상황이다.

힘겹게 일어선다. 뻣뻣하게 굳은 다리가 삐거덕거린다. 벽을 짚으며 방으로 간다.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옷을 벗은 후 욕실로 들어간다. 뜨거운 물로 대충 샤워를 하고 나와 반바지와 러닝셔츠를 입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화면 우측 하단의 시계는 일곱 시 사십 분을 말하고 있다. 곧장 인터넷을 켜고 살인 사건을 검색한다. 그리고 뉴스 탭을 누른다. 수십 개의 기사가 떠오른다. 물론 중복되는 사건이 태반이지만. 낮에 봤던 기사를 찾아 클릭한다. 세 개의 댓글이 달려 있다.

-ㄷㄷㄷ. 이쪽동네원래이런가요?

-일요일 새벽이면 사람도 제법 있었을건데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대륙스케일이네. 짱깨가 한거 아님?

댓글을 무시하고 스크롤을 내린다. 연관기사의 링크가 있다. 연관기사의 링크를 따라 들어간다. 이 사건의 범인을 검거했다는 기사다. 범인은 살해당한 사람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기사가 작성된 시간을 본다. 두어 시간 전이다.

눈을 감는다. 꿈속의 장면들이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차례차례 지나간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짐승. 나와 닮은 점은 없지만, 저 짐승이 나란 걸 안다. 그런데 범인 검거라고, 어떻게? 눈을 뜬다. 내가 아니었던 건가.

바탕화면에서 마우스 포인터를 의미 없이 휘젓는다. 그리고 게임에 접속한다.


-ㅎㅇㅎㅇ.

-형 오늘은 좀 늦었네요.

- 클로형. 오늘은 던전가세요?

-크로 왔냐?

접속하자마자 채팅 창에 연두색 글이 주르륵 뜬다. 연두색은 길드 말의 색이다. 나 같은 쓰레기도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채팅 창을 열어 하이, 라고 입력한다. 그리고 던전은 안감, 이라고 적는다.

-형 그러지 말고 던전이나 가죠? 다들 형 기다리고 있는데.

-안가.


게임을 시작한 지 사 년쯤 되었다. 그녀가 떠나가기 일 년 전부터 시작했으니.

게임이 재밌다고 느꼈다. 게임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좋았다. 그리고 현실에서 받았던 상처를, 고통을 잠시나마 망각하게 해주었다. 아마도 마지막 부분이 내가 게임에 몰두하게 된 가장 큰 이유겠지. 그래서 난 게임을 계속했다.

누군가 게임에 빠진 날 한심하다고 했다. 나도 내가 한심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왜 너만 그러냐고, 세상에서 너만 상처받고, 너만 힘드냐고 물어왔다.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난 원래 이런 놈이었나 봐, 라는 말밖에는. 일은 안 하냐.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는 물음이 연거푸 날아오고 난 언젠가부터 친구들에게서 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답하기 지쳐 버렸는지도, 변명을 찾기가 힘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낙오자다. 구제불능의 쓰레기다. 게임 폐인이다.

한창 게임을 하다 시계를 본다. 새벽 한시다. 게임을 종료하고 인터넷으로 들어가 연쇄 살인이라고 검색한다. 검색창에 뜬 블로그 중 한군데를 들어가 본다. 테드 번디, 유영철, 싸이코패스. 내가 알고 싶은 정보는 없다. 잠시 생각하다 연쇄 살인 뒤에 짐승이란 단어를 덧붙인다. 모니터는 이번에도 이전과 비슷한 검색결과를 뱉어낸다. 이전의 검색어 뒤에 꿈이라는 단어를 써넣는다. 모니터는 여전히 비슷한 검색결과를 보여준다.

범인이 잡혔다고 했다. 내가 한 짓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 맥이 빠진다. 망상에 빠져 나 자신을 관계도 없는 사건의 범인으로 만들어 버렸던 내가 더없이 원망스럽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상실감을 느끼는 나는 또 뭐란 말인가.

화장실을 다녀와 달력 어제 날짜에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리고 다시 게임에 들어간다. 이미 흑백으로 반전되어있는 모니터 중앙에 가까운 무덤으로 이동하시겠습니까? 라는 메세지 창이 떠 있다.


다시는 꿈을 꾸지 않았으면 한다. 두 번 다시는. 그게 행복한 꿈이든 불행한 꿈이든 상관없이.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3.02 17:11
    No. 1

    뭐죠? 주인공이 범인이 아닌 건가요?
    아니면, 범인과 의식이 동화되었다거나?
    살인현장에서 만난 사람이 은폐해 준 건가요?
    이거 보면 볼 수록 궁금증이 늘어가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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