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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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연재수 :
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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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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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07,496

작성
12.03.10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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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4.

DUMMY

눈을 뜬다. 몸을 일으켜 세우고 시계를 본다. 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키티만 없다면, 평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그를 떠올리니 한숨부터 나온다. 아아.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경찰에 불법 주거 침입으로 신고한다 해도, 도망갔다가 돌아와서 피의 보복을 할 것만 같다.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고, 내가 어디 경찰 아닌 다른 곳에 도움을 요청할 만큼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키티가 자발적으로 나가기를 기다리는 것뿐인 듯하다.

목이 마르다. 참아보기로 한다. 혹시라도 물을 마시러 가다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키티를 보게 된다면, 이제 막 시작된 하루를 망쳐버릴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걸까.

컴퓨터의 전원을 켠다. 이젠 오줌까지 마렵다. 이것도 참아보기로 한다.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자니 시커먼 화면 너머로 내 얼굴이 보인다. 베개와 머리의 무게에 눌려 옆통수에 딱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 자세히 보면 입가에 침 자국도 있을 것 같다. 어찌나 찌질하고 불쌍해 보이는지 동전이라도 하나 던져주고 싶어진다.


기호식품: 형 오셨네요. 형수님 와 계세요.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웬 이상한 글이 뜬다.

바운스클로: 형수님?

그 단어의 의미를 떠올리느라 잠시 눈을 깜빡인다.

칼춤백정: 자기 왔어?

입이 벌어지고 절로 욕이 튀어나온다.

바운스클로: 내가 왜 자기냐.

칼춤백정: 어머 벌써 잊은 거야?

바운스클로: 뭘?

나도 이쪽 서버로 옮길까? 라고 했던 백정의 말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옮기다니 실행력이 굉장한 여자다. 그건 둘째치고 이 서버로 옮기는 것과 내가 백정의 자기가 되는 게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심히 불쾌하다. 바로 칼춤백정을 길드에서 내쫓는다.

성기사스파크: ???

바운스클로: 저 여자 누가 길드 초대해줌?

기호식품: 제가 했는데요.

바운스클로: 앞으로 길드 초대는 나만 할게. 다른 사람은 하지 마.

기호식품 : 형 너무 냉정하신 듯.

성기사스파크: 뭐 하룻밤 만에 버리시고 그런 겁니까.

바운스클로: 무슨 소리야.

성기사스파크: 아까 그 형수가 말하던데. 형님이 나체로 확 덮쳤다고.

바운스클로: 그 여자만 있었던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있었는데.

기호식품: ...

바운스클로: 그 점은 뭐냐?

성기사스파크: 다른 사람도 있는데 덮친 거예요?

기호식품: 우와 우리 형 어른 다 됐네.

바운스클로: 씨발, 그런 게 아니라니까. 손가락 하나 건드린 적 없어.

성기사스파크: 와 쩐다. 손가락도 안 건드리고???

바운스클로: 몰라. 말하기도 귀찮다.


대화하는 와중에도 칼춤백정이 항의하는 귓속말을 자꾸 보낸다. 칼춤백정을 차단한다.

엉망이다. 이들과 엮이고부터 나 자신부터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들도 정상적인 행동하는 꼴을 볼 수가 없다. 그 집단들 모두 뭔가 심각하게 결핍된 사람들처럼 보인다. 아니, 정확하게는 하나씩 더 가졌다고 해야 하나. 고양이, 여우, 두더지, 용. 빌어먹을.

방문이 벌컥 열린다. 키티가 안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나는 그의 얼굴을 죄지은 사람처럼 물끄러미 본다. 겁부터 난다. 아무래도 보통 일이 아니다.

“뭐해?”

“네?”

“뭐하냐고.”

“그냥 게임 하는데.”

키티가 뒤로 다가온다.

“이게 네가 말한 게임이야?”

“네.”

채팅 창을 아래로 감추고 의미 없이 캐릭터를 이리저리 이동시킨다. 키티는 한참 동안 뒤에 서 있더니 말없이 거실로 나간다. 엉거주춤 서서 방문을 닫는다. 한숨이 나온다.

내 하루는 망쳐졌다. 아니, 키티를 보기 전부터 망쳐져 있었다.

머리를 감싸 쥐며 인상을 쓴다. 다시 문이 벌컥 열린다. 화들짝 놀라며 키티를 본다.

“야, 푸우.”

“씨발.”

“씨발?”

“아뇨.”

“여우 이름 알아봐.”

“네.”

키티는 또 방문을 열어놓고 떠난다.


내 안에 뭔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사실은 받아들였다. 그것이 짐승이라는 것도, 곰이라는 것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황당한 사실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꿈이 현실로 밝혀진 마당에 더 황당할 건 또 뭐가 있을까.

일어선다. 거실로 나간다. 소파 위에 키티가 드러누워 감자 칩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다.

“저,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뭔데?”

“그 미친 게 나아진다고 치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죠?”

“뭐가 어떻게 돼. 그냥 있는 거지.”

“그러니까 꿈은 더 안 꾸는 거죠?”

“꿈? 아, 어, 꿈은 안 꿔.”

“그럼 다른 거 뭐 달라지는 건 없어요? 머릿속에서 말을 걸어온다거나 그런 거.”

“그건 뭐 보름이 가까워지면 심장이 쿵쿵 뛰고, 냄새도 진해지고, 소리도 잘 들리고, 밤에도 잘 보이고, 뭘 죽이고 싶기도 하고.”

죽여? 그렇다면 꿈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내 눈에서 뭔가를 본 듯 키티가 계속 이야기했다.

“너 죽이고 싶다고 다른 놈들 막 죽여? 너 같은 미친놈처럼 막 안 죽여.”

고개를 끄덕인다. 맞는 말이다. 나도 막 죽이기 싫다. 통제할 수 있었으면 한다.

“보름이면 한 달에 한 번이죠?”

“그럼 한 달에 서른 번쯤 되겠냐?”

“왜 보름에만 꿈을 꾸는 거죠?”

“너 겨울이 왜 추운지 알아?”

“그거야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뭐…….”

키티가 쏘아보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문다.

“너 대학 나왔냐?”

“졸업은 아직 못했는데…….”

“엘리트네.”

“요새는 대학 아무나 다 가던데.”

그가 노려본다. 아무래도 잘못 말했나 보다.

“겨울이 추운 거랑 비슷해.”

“네.”

“보름에 그렇게 되는 거, 이유야 있겠지. 나는 몰라.”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친 걸 없애려면.”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혹시 곰이나 고양이 같은 게, 이중인격 뭐 그런 건가요?”

“이중인격? 뭐 네 안에 다른 거 산다, 그거야?”

“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나 헐크 같은 거.”

“이중인격은 어떻게 고치는데?”

“글쎄요. 정신과를 가던지 그러지 않을까요?”

“가봐.”

“네?”

“정신병원 가보라고. 고쳐 줄지도 모르잖아.”

말을 마친 키티는 TV로 시선을 돌리며 히죽히죽 웃는다. 아무래도 그건 아닌가 보다.

울컥 부아가 치민다. 이중인격을 떠올렸던 내가 짜증 나고, 키티에게 대답을 기대했던 나에게 화가 난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르고 나는 키티 옆에 주저앉는다.

“아 짜증 나네.”

“야.”

“정말 짜증 나네.”

“새끼야.”

“미쳐버리겠네.”

“내가 어떻게 알아. 씨발 미쳐본 적도 없는 내가 어떻게 아냐고.”

“아 돌아버리겠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불똥이 튄다. 뒤통수가 아프다. 신음을 흘리며 눈을 뜬다.

“지랄하려거든 네 방에서 해. 왜 여기서 하고 지랄이야.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리잖아.”

벌떡 일어나 키티를 쏘아보고는 내 방으로 들어간다. 컴퓨터가 보인다. 다가가 마우스를 흔들어 스크린세이버를 없애고 게임에 접속한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캐릭터를 선택한다. 다시 문이 벌컥 열리고 키티가 머리를 들이민다.

“야.”

“왜요?”

“미친 거 고치는 방법 생각났다.”

“뭔데요?”

“불러봐”

“불러요?”

“그래, 불러봐.”

“뭘 불러요, 어떻게요?”

“너 이름 뭐라고 했어? 무슨 훈이었던 거 같은데.”

“원훈요.”

“그래, 불러봐. 원훈아, 원훈아.”

“진짜로 하는 말이에요?”

“싫으면 말고. 꿈꾸잖아. 너 잘 때 그놈이 일어나는 거잖아. 그러니까 자꾸 부르면 못 자고 깨 있다가, 너 잘 때 같이 잘 거 아냐.”

그를 본다. 농담하는 건지, 진실을 말하는 건지, 구별되질 않는다. 내가 심리학이나 사회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대인관계를 많이 해본 적도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키티는 또다시 문을 열어놓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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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3.11 17:13
    No. 1

    ...응? 방법이 희한한데요? 그 꿈 속의 곰 이름이 원훈이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근데 은근히 먹힐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이래저래 치이는데 재밌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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