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수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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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사가미프
작품등록일 :
2012.05.30 23:59
최근연재일 :
2012.05.3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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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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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2.03.0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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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면수심자(人面獸心者)-scene 3.

DUMMY

바지와 팬티가 한꺼번에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입고 있는 티셔츠도 걷혀 올라가 머리를 감싼다. 돌아버리겠다. 몸속에 있는 열기가 모조리 얼굴로 몰려들어 당장에라도 터져버릴 것 같다.

뭔가 목덜미를 찌른다. 손가락 같다. 손가락은 찌른 곳에서부터 아래쪽으로 천천히 내려온다. 간지럽다. 몸을 비틀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키티의 힘은 엄청나다.

이런 안 되는데. 조금 더 내려가면…….

손가락이 꼬리뼈에서 멈춘다.

잘 생각했어, 중학생.

꼬리뼈를 쿡쿡 찌른다. 불쾌하다. 얼굴을 찡그린다. 미미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더 불쾌하다. 꼬리뼈를 찌르는 느낌이 사라지더니 이젠 양쪽 옆구리를 좌우로 꾹 누른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엉덩이를 좌우로 들썩거린다.

“씁.”

키티가 위협한다. 마음속으로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입을 열었다간 더 무슨 짓을 당할지 모르겠다.

손가락이 손바닥으로 변해 등줄기를 타고 올라온다. 환장할 노릇이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문다. 간지럽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다. 찢어질 것같이 아프다. 입술은 먼저 찢어져 비릿한 피 맛이 난다.

빌어먹을, 이들이 다 떠나면 성추행범으로 신고해 버리리라. 경찰이죠? 성추행 신고하려 하는데요. 범인은 키티랑 중학생이거든요? 어느 미친놈 하나가 업무방해를 한다 생각하리라. 거기다가 우리나라는 남자가 성추행당했다는 사실에 관대하지 않은 나라다. 얼마나 병신같으면 남자 새끼가 당했겠어, 라며 비웃을 테지.

중학생이 나긋나긋한 손길로 등 한가운데를 꾹꾹 누른다. 머리를 깔고 앉은 키티의 엉덩이 무게가 느껴진다. 괴롭다. 제발 좀. 키티의 무릎이 누르고 있는 어깻죽지가 찢어질 듯 아프다. 바닥과 밀착된 이마도 아프다.

“저기 안 움직일 테니까 키티 씨 좀 나와주세요.”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가 웅웅거린다. 내용을 알고 있는 내 귀에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에겐 더 하겠지. 아니나다를까.

“뭐?”

키티가 되묻는다.

“좀 나오시라고요. 안 움직일 테니까.”

악을 쓴다. 머리 위에선 아무 반응이 없다.

목소리에 물기를 가득 싣는다.

“저 힘들어요. 죽겠어요.”

“죽겠다잖아, 그냥 비켜줘.”

안마사 흉내를 내고 있는 중학생의 목소리가 들린다.

중학생, 넌 착한 놈이었구나. 내가 사람을 잘못 봤어.

키티가 비켜난다. 만세라도 한바탕 불러제끼고 싶을 정도로 행복하다. 독재자의 압제와 억압에서 벗어난 민중의 기쁨이 이 정도였을까.

종아리를 깔고 앉아 있던 중학생이 슬금슬금 올라와 허리 위에 앉아 날개 뼈를 문지른다. 이를 악물고 움직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떻게 찾은 자유인데 다시 뺏길 순 없다. 하지만 너무 간지럽다.

어린놈의 자식이 손가락에 깃털을 달았나.

“언제부터였어?”

중학생이 묻는다.

“심하냐?”

키티의 목소리도 들린다.

“심한 정도가 아니야.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네. 피투성이야. 이러니 미치지.”

“못 고치냐? 안되면 버리고.”

중학생이 내 허리에서 일어난다.

“고치는 걸로 치면 저기 위로 가 보는 게 더 빠르겠지. 함부로 손대면 아빠한테 죽어. 곰 형 일어나 봐.”

재빨리 몸을 일으킨다. 바로 앞에 키티의 얼굴이 조그만 얼굴이 보인다. 몇 번을 봐도 섬뜩하다. 뒤돌아본다. 발치에 앉아 있는 중학생이 보이고 그 뒤에 팔짱을 끼고 있는 무슨 백정이라고 했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아주 흥미로운 눈으로. 그러고 보니 난 또 벌거벗고 있다. 혼자서 나체쇼라도 한 꼴이다. 서둘러 옷을 주워입는다.

“형, 언제부터였어?”

중학생이 물어온다. 중학생에게 문초를 당한다.

“뭐가, 꿈?”

“꿈인가, 아무튼 언제부터?”

“여섯 번쯤.”

“여섯 번이 전부야, 그전에는 없었고?”

“그런 것 같은데.”

“보름마다, 빠진 적은 없었고?”

뭔가 아는 눈치다. 설령 모르더라도 손해 볼 것도 없고.

“모르겠는데.”

보름마다? 보름이었던가? 모르겠다. 음력 달력을 세는 것도 아니고 하늘을 본 기억도 없다.

“여섯 달이고. 형 몇 살이야?”

“스물여덟.”

“확실해?”

“어, 아마도.”

아, 며칠 전이 신정이었으니 스물아홉인가. 모르겠다. 올해가 몇 년이더라.

“이상하네, 뭐지.”

중학생이 갑자기 고뇌하는 얼굴로 바뀌며 침묵에 빠져든다. 머리를 긁으며 고개를 돌리다 날 보고 있는 백정과 눈이 마주친다. 몹시 부담스럽다. 그 눈을 피한다. 소파에 드러누운 채 한쪽 눈만 뜨고 있는 미미, 내 앞에 드러누워 TV를 보고 있는 키티, 잔뜩 어질러진 과자들. 정신을 쏙 빼버릴 것 같은 광경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한숨 소리를 듣고 키티가 고개를 돌린다.

“뭐?”

“아니요.”

“너 엄마 아빠는?”

“돌아가셨는데요.”

“그럼 너 혼자 살아?”

“네. 그런데…….”

“같이 살면 되겠네.”

어이가 없다. 말도 안 된다. 씨발, 진짜 말도 안 된다.

“네?”

“방도 몇 개 있잖아.”

“아니, 그래도…….”

이건 절대 물러설 수 없다. 여기서 물러선다면……. 할 말이 없다.

“또 눌러줘?”

정말 미치겠다. 내가 제정신이었다고 해도 오늘 밤이 지나면 미쳐 있을 것 같다.

키티의 시선을 피하며 걸어가 미미의 발치에 앉는다. 미미가 발가락으로 등을 쿡 찌른다.

“시켜.”

“네?”

“청소라든지, 빨래나 밥 같은 거.”

청소는 청소기가 해주고, 빨래는 세탁기가 해준다. 밥은 밥솥이 해준다. 그런데 뭘 시키란 말인가. 그건 그거고 내가 왜 키티에게 시켜야 하나. 설마 같이 살란 말인가? 지랄도 정도껏 해야 예쁘다고 하지. 이것들은 정도도 모르는 것들인가.

미미를 바라본다.

“키티 씨는 집 없어요?”

“있어.”

“있는데 왜?”

“모르지. 여기가 마음에 들었겠지.”

황당하다. 기가 막힌다.

“그럼 오늘부터 나 여기 산다.”

키티가 통보해온다. 화가 난다. 지금 당장 꿈속의 짐승이 튀어나와 싹 쓸어 버렸으면 좋겠다. 피로 칠갑을 하건 머리통을 잡아 뽑건 상관없다. 여기 있는 모두가 비정상이다. 그나마 저기 중학생만이 정상에 가까울까. 아니 안마사 흉내를 내는 꼬맹이도 정상은 아니다. 백정에, 미미에, 키티에. 몽땅 환상의 또라이들이다. 콱 죽여버렸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헐크가 아니다. 분노한다고 변신하고, 그럴 리가 없잖아.

정적 끝에 굳게 마음을 먹고 입을 연다.

“저를 죽이셔도 상관없는데…….”

벨이 울린다.

“왔다!”

키티가 소리친다. 미미도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다.

이번에는 또 누가 왔단 말인가. 더 남은 게 있다는 소린가. 지금이 현실도 감당이 안 되는데 더 뭐가 남았단 말인가.

백정이 행복에 겨운 듯 큭큭거린다. 중학생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이 빠져 있다. 악몽이다.

키티가 현관으로 나간다. 곧 누군가 들어온다.

“야, 돈.”

키티가 소리친다. 미미와 백정이 나를 본다.

“돈!”

일어나 현관으로 간다. 맙소사 현관 주위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음식들이 깔렸다. 탕수육, 짜장면, 짬뽕, 만두, 우동, 볶음밥……. 입이 벌어진다.

키티가 나를 위아래로 훑는다.

“돈은?”

한숨 쉬며 배달원을 본다. 씩씩대며 날 보는 배달원. 힘들었나 보다.

“얼맙니까?”

“칠만…….”

“카드도 됩니까?”

된단다. 참 좋은 세상이다. 빌어먹을, 첨단 자본주의는 날이 갈수록 더더욱 뾰족해져만 간다. 언젠가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마저 돈으로 꿰뚫어버릴 기세다. 이미 뚫어버렸나?

내 방으로 들어간다. 지갑에서 카드를 꺼낸다. 한숨을 쉬고 현관으로 간다. 어느새 음식은 사라지고 배달원만 현관을 지키고 있다.

“여기.”

배달원은 떠난다. 거실로 간다. 모두 그릇을 하나씩 꿰차고 있다. 정신이 나가 있는 것 같던 중학생도 마찬가지다. 낮은 테이블 위의 탕수육과 만두 쟁반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테이블로 다가가 나무젓가락을 든다.

“잠깐.”

키티가 우물거린다. 무시하고 탕수육을 하나 집어 소스에 찍어 입에 넣는다. 달다.

“이 씨발.”

키티가 소리 지른다. 다시 젓가락을 뻗는다. 다른 젓가락이 들어와서 내 젓가락의 진로를 막아선다. 고개를 들어본다. 젓가락의 주인은 미미다.

“넌 안 시켰잖아.”

미미가 스산한 목소리를 짜낸다.

“네?”

“안 시켰으면 먹을 자격이 없지.”

“그래도…….”

“어허.”

“돈은 제가 냈는데.”

“누군 돈 없어?”

아니 돈이 있는데 왜 날 보고 내라 했단 말인가. 참 해괴한 일이다.

“너도 먹고 싶으면 시켜.”

침을 삼키며 주위를 본다. 묵묵히 먹고만 있는 중학생, 날 힐끔거리며 먹는 키티, 어느새 우동을 다 먹고 탕수육마저 들이키는 미미, 짜장을 입가에 덕지덕지 묻힌 채 날 보는 백정.

“좀 줘?”

그래, 백정 너만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하지만 그건 못 먹겠다. 더럽다. 아니꼽고 치사하다. 고개를 젓는다.

미친. 내가 미친 건지, 떼강도 연놈들이 미친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분하긴 한데 분풀이할 사람은 없고 아무래도 울화병에 걸려 죽을 것 같다.

“저기.”

“어?”

“응?”

키티와 미미가 동시에 대답한다.

“다 드시면 나가세요.”

“싫어.”

“왜?”

“혼자 있고 싶으니까, 나가세요.”

“싫어.”

“키티가 싫다잖아.”

“아, 그냥 나가세요.”

“네가 오라고 했잖아.”

“네, 그러니까 제가 나가라고 하죠.”

“싫어.”

“나가세요.”

“싫어.”

보고 있던 백정이 끼어든다.

“나도?”

“너도.”

중학생도 끼어든다.

“나도?”

“너도.”

눈을 감는다. 지금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이것들이 날 가지고 노는 건가. 아니, 남의 집에 왔으면 눈치껏 알아서 나갈 것이지 주인이 꼭 가라고 해야 하나?

“그럼 난 갈게. 다음에 봐.”

힘없는 백정의 목소리. 목소리만 들으면 내가 가해자라도 된 것 같다. 슬며시 눈을 뜬다.

“같이 가, 누나.”

중학생도 일어난다.

“태워다 줄게, 가자.”

미미도 일어난다. 셋은 처리했다. 이제 키티만 남았다.

“다 가게? 조심해서 가.”

역시 키티는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배신당해도 좋으니까 제발 좀 꺼져버려.

셋이 현관으로 간다. 그들에게서 눈을 돌려 키티를 본다. 키티도 나를 본다. 눈이 마주친다.

“뭐 해 넌 안 가?”

절로 주먹이 쥐어진다.

“그쪽은 안 가세요?”

“내가 왜?”

“다들 가는데.”

“나 여기서 산다고 했잖아.”

“안 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나보고 나가라 이거야? 날 쫓아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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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Personacon Gellita
    작성일
    12.03.07 18:48
    No. 1

    ...진짜 주인공 불쌍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추행이래 ㅋㅋㅋㅋㅋㅋㅋ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 알 수가 없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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