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사 사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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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4.04.0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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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사 사중정 -2(6).

DUMMY

사흘 후, 정파무림맹.

맹주를 비롯한 원로들과 각주급 이상의 간부들이 대거 모인 자리. 무거운 침묵이 장내를 뒤덮었다.

단상의 높은 자리에 앉은 맹주 영호승은 평소 좋아하던 국화차가 다 식을 때까지 입도 대지 않았다. 그만큼 좀전의 보고가 충격적이었고 골머리를 썩였다.

맹주의 맞은 편, 피 칠갑을 한 채 심한 부상을 입은 허윤이 고개를 떨구며 다시 용서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크흑.”

“크흠...”

평소 허윤을 고깝게 여기던 승일각주 남궁세찬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게 내가 뭐라 했소. 병력을 더 데려가라 하지 않았소! 자신만만하더니 그꼴이 대체 뭐란 말이오!”

봇물은 한꺼번에 터졌다. 명문세가 출신들을 주축으로 한 간부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허윤의 실패를 기다렸다는 듯이 독설을 내뱉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당신이 공을 세우겠다는 욕심 때문에 아까운 젊은 인재들을 잃었소! 무엇으로 책임을 질 것이오!”

“맹주님,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동료들이 다 죽었는데 무슨 낯짝으로 뻔뻔하게 혼자 살아온단 말입니까!”

쾅.

반대편에서 잠자코 듣던 은하신검 모용청이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고 나섰다.

“그만들 하시오. 그동안 비성각주가 큰 공을 세울 때는 한마디 언급도 없던 분들이 한번의 실수를 두고 이리 사냥개처럼 달려든단 말이오!”

“뭐, 뭣이요? 사냥개? 지금 말 다했소?”

“내가 보기엔 딱 그 꼴이라 그리 말했소. 지금은 서로 물어뜯을 때가 아니라 차후 대책을 논하는 게 맞지 않소?”

남궁세찬이 대갈을 터뜨렸다.

“창룡각주! 지금 의형제라고 감싸주는 게요?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해야 할 것이오.”

“닥치시오! 내가 모를 줄 아는가! 비성각주가 오대세가 출신이 아니고 평소 당신들의 부당한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떤 대우를 받아왔는지!”

“이... 그, 그건.”

남궁세찬이 반박하지 못하고 구석에 몰리자 원로회가 모인 자리에서 흰 수염을 가슴까지 기른 노인이 나섰다.

“이놈! 네놈이 맹주의 신임을 얻고 차기 맹주로 거론되더니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어디서 그런 근거 없는 소릴 함부로 하느냐!”

“남궁 선배, 제 말이 틀렸습니까? 명문 정파의 제자라는 자들이 자신들끼리 파벌을 만들어 무명의 제자들을 배척하는 것은 후기지수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란 말입니다.”

“파벌이라니! 뜻이 맞는 자들끼리 모이는 걸 어찌 파벌이라 부를 수 있느냐!”

“군소방파의 제자들은 다른 뜻으로 입맹했단 말씀입니까? 그들이야말로 아무 조건 없이 사파척결이라는 뜻 만으로 모인 자들입니다. 남궁 선배는 진정 아무 차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 이익.”

남궁상학의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모용청 때문에 최근 가문의 입지가 좁아져 자존심이 상한 터였다.

구파일방의 수좌라면 당연히 소림사고 오대세가의 수좌는 당연하듯 남궁세가가 차지했었다. 그것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래 왔고 남궁가의 창궁무애검법은 정파 삼대검법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그런데 언제나 한 수 아래로 내려다봤던 모용세가에서 중원을 통틀어도 총 10명이 안 되는 화경의 고수가 탄생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것도 불혹을 갓 지난 젊은 나이에.

그뿐만이 아니었다. 은하신검 모용청은 공명정대하고 의협심이 강해 젊은 무사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텁고 존경받았다. 차기 무림맹주는 당연하다 여겼고 무극천황을 상대할 유일한 영웅으로 부상하는 중이었다.

주판을 두들겨도 무조건 손해였다.

‘저놈이랑 한 판 붙을 수도 없고... 그냥 물러나자니 다른 영감들 앞에서 괜한 망신을 당한 꼴인데...’

남궁상학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쓴 침만 삼켰다. 누군가 나서주길 바라고 있는데, 마침 맹주와 눈이 마주쳤다.

맹주는 한숨을 한 번 쉬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내공을 실은 일갈에 장내가 흔들렸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장내가 조용해지자 맹주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지금은 잘잘못을 논하기보다 앞으로의 대책을 세우는 게 맞지 않겠소? 남궁 장로님은 그만 화를 거두고 창룡각주도 이만 물러서게.”

“크흠, 내 맹주가 그리 부탁을 하니....”

남궁상학이 헛기침을 하며 한 발 물러섰다.

모용청은 아직 못마땅했지만, 맹주까지 나선 마당에 더 고집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취해 보였다.

“창룡각주 모용청이 혈기가 앞서 남궁상학 장로님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십시오.”

“됐네. 자네 부친과도 잘 아는 사이니 오늘은 이만 물러나지.”

“감사합니다.”

상황이 정리되자 맹주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있는 허윤에게 물었다.

“비성각주, 자네가 말해보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겐가.”

“예, 판가표국을 찾아간 저는 정파무림맹의 이름을 대고 표국주와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그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밀이 새어나갈 것을 대비해 주위를 모두 물리고 단 둘만이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허윤은 없는 사실을 실감 나게 이야기했다. 때때로 비통한 표정과 신음을 섞어가며 꾸며냈고 그의 말솜씨에 사람들은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계속하시게.”

“표국주는 정파무림맹에서 찾고 있는 물건이 있다고 전하자 선뜻 협조했고 표물을 보관한 창고를 개방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니 상황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으윽.”

허윤은 핏물을 삼키는 척 연기한 후 계속 말했다.

“바깥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놈들은 노인과 아이까지 가리지 않고 살육했고 호협대와 표국의 보표들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대체 누군가?”

“그것까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짐작 가는 곳이야 한군데 있긴 하지만.”

“사도련이겠지.”

맹주의 짐작에 모두가 수긍했다. 물증이 없다 해도 감히 정파무림맹을 상대로 이런 짓을 벌일 곳은 사도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허윤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최소한 절정 이상의 고수가 섞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대적하느라 부하들이 죽어가는 걸 막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크흑.”

“그게 어찌 자네 잘못이겠는가. 아마도 사도련에서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니 어쩔 수가 없었을 걸세. 그보다 물건은 어찌 되었는가.”

“물건은....”

“그 물건이란 게 대체 뭐요?”

잠자코 듣던 원로회의 맹호도 팽현수가 나섰다.

평소 과묵하고 조용하지만, 눈이 뒤집히면 물불을 안 가리는 성격인 그의 표정에 은은한 노기가 서렸다.

“맹주, 대체 물건의 정체가 뭐기에 사도련에서 정파무림맹의 중심부까지 침투한단 말이오!”

“팽 선배, 그것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외부에 새어나가면 곤란하다는 것만 알아주십시오.”

맹주의 말이 팽현수를 더욱 분노케 했다.

“대체 비성각의 어린놈은 알아도 되고 우리는 안 되는 이유가 뭐란 말이오! 지금 원로회가 늙었다고 무시하는 거요? 아니면 우리 중에 외부로 발설할 자가 있다고 의심하는 거요?”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맹의 존폐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 이번 일로 맹에 문제가 생기면 절대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오.”

“송구합니다.”

맹주 영호승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이제 물러날 때가 된 것인가.’

맹주직에 오른지 20년, 겉으로 보기엔 정파무림맹을 잘 이끌어 온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본인은 힘이 부침을 느껴왔다.

정파무림맹의 구성원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군소방파의 제자들은 양보보단 자존심을 택했다. 서로 융화되지 못한 그들은 끝없는 갈등이 계속됐고 사도련과의 전쟁에 온 힘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에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힘이 소모됐다.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전부터 느꼈던 문제다. 차기 맹주는 모두의 인정을 받고 누구나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신도 절정의 벽을 깨고 사문인 화산파의 지원을 받아 맹주가 됐지만, 압도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무공에 전념하느라 실전투입이 적었고 세운 공이 적기 때문에 원로회와 젊은 무인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

은하신검 모용청. 아직은 조금 부족하고 혈기가 앞서 정치를 할 줄 모르지만 그라면 가능성이 있다. 거기에 좋은 군사가 곁에서 잘 도와준다면 자신이 이루지 못한 정파무림맹의 개혁도 이룰 수 있으리라.

맹주는 한층 어두워진 낯빛으로 잠시 모용청을 바라보다 다시 허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계속하게.”

“예, 물건을 획득한 놈들은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으려는 듯 일제히 빠져나갔습니다. 어떻게든 쫓으려 했지만 부상이 깊어... 죄송합니다.”

“그런데 여자애 한 명을 데려왔다고 하던데?”

“판가표국의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잠들어 있어서 내막은 알지 못하지만, 가족들이 전부 죽은 걸 알고 충격을 받아 쓰러졌습니다.”

“잘했네. 자네는 물러나서 부상부터 치료하게.”

“알겠습니다.”

깊게 읍을 한 허윤이 절뚝거리며 일어나 대전을 빠져나왔다.

한적한 공터까지 힘들게 걸어간 그는 주변이 조용한 것을 확인하고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맑았다. 구름이 움직이는 모습은 여유롭지만 절대 막히는 법이 없다. 그것이 현재 자신이 꾸미는 일 같아 더욱 만족스러웠다.

‘반드시 기다린다. 내게 올 때까지.’

옅은 미소로 하늘을 잠시 쳐다본 그가 다시 절뚝거리며 힘겹게 거처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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