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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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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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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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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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1)

DUMMY

월영시 남쪽 구역에 ‘비극의 끝’이라 불리는 특별한 구금소가 있었다.


거주지가 밀접한 북쪽과 달리 남쪽의 경우 군사물자, 식료품 등을 보관하는 창고만 있어 인적이 드물기도 했고, 구금소라고는 하나 실제로 사용된 적은 딱 한번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구금소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물론 그 사례의 주인공이 대륙의 공적, 벨리안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역사적인 장소가 될법도 했지만, 처형 이후, 관리주체인 사제들마저 존재를 망각할 정도로 구금소는 방치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금, 벨리안느가 묵었던 바로 그 방에 그녀를 붙잡고 처형했던 벨로나 세라트너가 감금되어 있었고, 그 모순적인 상황과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잊혀졌던 구금소는 다시금 조명 받는 듯 했다.


페니탈은 그 역사적인 장소에 있으면서, 어떻게 이 비좁은 곳에서 대륙의 공적을 취조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원래 2층짜리 창고를 개조한터라 지하 1층의 특수 감옥, 지상층의 경비 및 보안 시설 이외 취조자들은 2층에서 밖에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다 벨로나 취조를 위해 마법통제부, 정보부, 통관부의 각 장관들이 모여 있는 상황만으로도 페니탈의 심신이 지칠 때로 지치는데 대륙의 공적 때는 더했으리라.


그 때 당시, 아무것도 몰랐던 신입 사제였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한편으로 지금 상황도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페니탈이었다.


이미 2인 1개조로 2번씩 번갈아 가며, 취조를 했음에도 벨로나는 오직 마법 억제제 재료와 관련해서 바르나프에게 반강제적인 부탁을 했다고만 진술 할 뿐, 그 외 모든 사항에 대해서는 함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진척 없이 하루가 마무리 될 무렵, 예정에 없던 행정부 장관, 베를 티난테 사제가 구금소 방문을 요청했고,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베를 사제의 등장으로 페니탈의 어색하고 불편한 휴식은 마침내 끝날 수 있었다.


“아직도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가?”


“그게.. 다른 혐의는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데, 마법억제제 재료를 반입했다는 사실외 다른 말은 일체 하지 않으니···”


“허허.. 고위 사제 결정일이 당장 내일인데 전혀 알아낸 바가 없다니! 대체 어쩌자고..”


“면목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명색의 월영군 최고 단장인데 고문을 할 수 도 없고···”


“그 사실이 새어나갔다간 월영군이 발칵 뒤집어 지겠지··· 트리스트 사제, 혹시 정부부쪽에서는 별도로 알아낸 사실은 있소?”


어찌보면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행정부의 수장이기 때문인지, 베를 사제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각 장관들에게 질문을 퍼부었고, 트리스트 정보부 국장 또한 그의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 별도로 들어온 정보는 없소. 허나, 여기서 추가적으로 정보를 얻어봤자 부수적인 사항이지 않소? 고위 사제 회의의 결정에 필요한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이미 알고 있다니?”


“그거야 벨로나 세라트너가 마법 가용자라는 사실이지. 뭐... 직접 보시면 알겠지만, 그녀의 마력 수준이 참 애매해서 결정을 내리는데 변수가 될 수도 있겠군. 베를 사제도 그래서 직접 온 것 아니요.”


“······”


날카로운 지적에 베를 장관은 더 이상 말을 붙이지 못했고, 그렇게 대화는 단절 되었다. 다행이도 어색한 침묵이 길어지기 전, 사제들은 지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 작은 검문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경비를 서고 있는 야별사 병사2명은 고위 사제의 방문임에도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는 고위 서제 서명장의 서명과 각 사제가 들고 있는 면장간의 서명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고, 그 뒤 사제들은 베를 사제를 선두로 어두컴컴한 지하실로 들어설 수 있었다.


“대륙의 공적 심문 이후, 오랜만에 오는군.”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던 중 베를 사제가 그렇게 말을 꺼냈다.


“여담이지만 이 구금실을 만드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었지. 그녀의 마력을 봉쇄 시키는 마법진을 만드는데 도시 연합에게서 최고급 마방석을 공수해오고, 일리오스 수석 마법사들까지 건국 최초로 맞이해야 했으니 ··· 3국의 공조를 이뤄낸다고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었는지.”


“사제님이 아니었으면, 대륙의 공적을 처형하는 것도 불가능 했지요. 분명 그녀를 가둘 곳을 찾는 사이 또다시 도망쳤을 테니까요.”


마법통제부 페릴로 쿠텐 사제의 맞장구를 담담하게 듣고 있던 페니탈과 달리 그 중에는 할말은 해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랬다면 벨로나가 다시 한번 붙잡지 않았겠나. 하긴, 그때 공적이 처형된 것이 다행이긴 하군. 지금 다시 잡으러 가기에는 벨로나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아 보이니까.”


트리스트의 말을 끝으로 지하실에 도착한 사제들은 코너를 돌아 이어지는 좁은 복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복도 끝에는 두 명의 야별사들이 지키는 강철로 된 문이 자리하고 있었고, 문은 어떠한 마력도 흐르지 못하도록 그 강철판 위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새겨져 있는 상태였다.


사실 정문만 드러나서 그렇지 그 구금실 전체가 정문과 동일하게 마법진이 각인된 강철로 이뤄져 있었고, 그뿐만 아니라 방 가운데는 마방석으로 만들어진 별도 제어구가 있었다.


마력을 지닌 자라면 숨이 막힐 정도의 공간이었고, 아닌 자라도 어두컴컴하고 쇠의 기운과 냄새가 가득해 기분이 절로 나빠지는 그곳에 벨로나 세라트너가 있는 것이었다.


////////////////


벨로나는 거대한 돌덩이에 묶여있는 자신의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하나의 퍼즐 조각마냥 마방석에 대자로 ‘박혀’ 있었고, 자신과 마방석이 맞닿아 있는 부분에서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어, 그곳에서 마력 빼앗는 푸른빛이 나오고 있을 뿐, 그 외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게 어둠속에서 밤인지 낮인지 알지 못한 채 매달려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두렵지는 않았다.

자신이 우려했던 일들 중 가장 최악의 일이 일어났지만, 그 일 이외의 걱정들과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즉, 전쟁터에서 죽든 사형당해 죽던, 죽음이라는 결론은 똑같은 셈이었다.


그러나 벨로나는 그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형들의 칼날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들에게 자신의 목숨이 빼앗기는 것이 너무나도 분하고 억울했다. 차라리 홀로 인형 군단을 맞서라는 명이라도 떨어진다면, 기꺼이 받아드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만큼 자신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인형뿐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벨로나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이렇게 저렇게 몸을 빼내기 위해서 노력을 다 해봤었다. 하지만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속박에 이내 힘을 아끼자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였고, 대신 자신이 들어왔던 정문 방향을 향해 온 신경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그렇기에 벨로나는 저 먼치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를 단 번에 들을 수 있었다. 불규칙적인 다수의 발소리와 옷자락이 펄럭거리는 소리로 사제들임을 단번에 알아차렸고, 곧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어두운 마법 불을 공중에 띄운 사제들이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제들의 마법 불은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꺼져버렸고, 그렇게 벨로나는 다시 어둠속에 잠기고 말았다.


“정말로 그렇군.”


“예. 정말로 세심히 감지하지 않으면 탐지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그렇지요? 마법 억제제 없이도 감지하기 힘들 정돈데 억제제를 복용 했다면 사전에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 한 겁니다.”


“아무튼 이처럼 애매한 기준이라 내일 회의에서도 큰 논쟁이 될 듯 합니다.”


“논쟁이 될 것도 뭐있소. 마법 가용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데.”


“하긴.. 그렇긴 하지요.”


“일단 다시 올라가도록 할까요? 여기 있으니 음울한 것이 기력까지 빨리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 말과 함께 발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어? 안가십니까?”

떠나가는 발소리 중 하나가 멈추며 그렇게 말했다.


“잠시 못다한 심문을 마저 끝내고 싶은데.”


어둠속 어디선가 들려온 낮고 굵은 목소리...


그 목소리를 알아 차린 벨로나는 자칫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체포 되기 직전 숲속에서 대화를 나눈 사제가 어둠속 어딘가에 있는 것이었다.


“2인 1조가 원칙이긴 한데···”


“그럼 병부사에서 남겠습니다.”


벨로나가 이 사실을 이들에게 알려줘야하나 고민을 하던 찰나에 문이 열리고, 사제들 중 일부가 빠져나갔다. 문이 열리면서 잠시나마 들어온 빛으로 남기로 한 두 사람의 실루엣을 파악한 그녀는 정황상 병부사 사람과 정황상 숲속에 조우했던 사제만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다시금 문이 닫히고 어둠이 가득차자, 벨로나는 두 사람의 마지막 잔상이 남아있는 어둠을 향해 죽일듯이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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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3장 - 효시(嚆矢)_5화_전조_(2) +2 20.06.04 69 4 12쪽
33 3장 - 효시(嚆矢)_5화_전조_(1) 20.06.03 65 3 12쪽
32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2) 20.06.02 60 3 7쪽
»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1) 20.06.02 65 3 9쪽
30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3.끝) +2 20.06.01 63 3 9쪽
29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2) 20.06.01 64 3 11쪽
28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1) +2 20.05.31 67 4 8쪽
27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2) +1 20.05.29 73 4 12쪽
26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1) 20.05.29 75 4 7쪽
25 3장 - 효시(嚆矢)_1화_무언 마법사의 조우 20.05.28 79 4 10쪽
2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끝) 20.05.28 84 3 11쪽
23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4) +1 20.05.25 90 5 10쪽
2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3) 20.05.25 88 4 9쪽
2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2) +2 20.05.22 91 6 7쪽
20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1) 20.05.22 99 5 8쪽
19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2) 20.05.21 111 5 10쪽
18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1) +1 20.05.21 106 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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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4화_월몰 기도식 20.05.18 123 6 9쪽
1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2) 20.05.16 134 5 10쪽
13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 20.05.15 178 8 9쪽
1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2화_흠결 20.05.15 178 6 7쪽
1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1화_만인의 죄인 20.05.14 28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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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장 - 악몽(8) 20.05.13 261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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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장 - 악몽(6) 20.05.12 301 7 7쪽
6 1장 - 악몽(5) +2 20.05.12 403 1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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