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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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동반자. 단, 월첨검이 아닌 부엌칼만 쥐게 할 수 있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카니엘은 문득 자신이 어쩌다 이런 생각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것이었다. 분명 아침부터 쓸데 없는 소리를 해댄 에스트가 원인이라고 단정을 짓은 카니엘은 그를 저주하며 자신도 서둘러 소초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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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 단위로 움직이는 수색대의 특성상, 소대를 이끄는 이십인장의 성향에 따라 그 분위기는 천차만별이었는데, 시거드 이십인장이 이끄는 8소대의 경우 좋은 의미로서의 가족 같은 분위기가 특징인듯 했다.
“야야! 루퍼트! 너, 절인 고기 한근 군장에서 뺀거 같더라?”
“에이.. 그걸 왜 들고 옵니까. 짭기만 한데. 이십인장님 이제 건강도 생각하셔야죠.”
“이씨, 그럼 과일이라도 싸오던가! 야, 안되겠다, 네가 설거지해라. 충성심이 부족하네. 그리고 막내야! 바닥을 동내 똥개 꼬리 흔들듯이 쓸면 뭐가 쓸리겠냐! 좀더 팍팍!"
이동 속도가 늦어진 원인이 군장에 싸온 식량 무게 때문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더할 나위 없는 저녁을 끝낸 뒤, 시거드 이십인장과 그 부하들은 와자지껄 하면서도 신속하게 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탁자 끝 앉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던 카니엘은 어쩌다 시거드와 시선이 겹쳤고, 그러자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거, 부인솔자 양반. 고생 많았수다.”
시거드가 바로 옆 의자에 앉더니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커다란 주전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아닙니다. 당분간 여기서 지낼 여러분들께서 더 고생이죠.”
“못 믿음직스러워 보여도 우리 8소대가 이곳 임무에는 밝거든. 그러니 너무 걱정마시고 내일 단장님과 무사히 들어가시오.”
그 말과 함께 주전자에 든 내용물을 컵에 따라 카니엘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
“소초장님도 무사히 작전을 완수하시길..”
컵에 담긴 뿌옇고 점성 있는 액체를 받아든 카니엘은 그것을 마셔야할지 고민 할 때, 시거드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듣자하니 어린 나이인데도 차기 이십인장이라 하던데.. 그 만큼 실력도 있을뿐더러 인형한테 받아 낼 것도 많다고 하더군?”
“아.. 예...”
“흐음.. 그렇다면 당신도 나의 가족이요. 앞으로 무슨일 있으면 주저없이 연락하시오. 그리고 우리 같이 벨로나 누님을 잘 모셔서 인형 말살이라는 대업을 이뤄보도록 합시다.”
졸지에 벨로나와 시거드를 가족으로 맞이한 카니엘은 이제 분위기상 정체모를 액체를 마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간단한 건배와 함께 그 정체모를 액체를 한모음 들이켰고, 쌉쓰름하면서 마지막에 살짝 톡쏘는 특이한 맛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핫. 내 옛 고향 전통 음료, 크므스라 하는데 어떠오?”
“나쁘지 않은거 같습니다만...그런데 이거..술 아닙니까?”
“어허. 전통 음료라니까.”
“··· 벨로나 단장님께서 아시면 가만히 안 있을 것 같은데..”
“아, 그거라면 문제 없소. 허락을 받았으니.”
하지만 벨로나 단장은 소초에 도착 한 뒤, 방으로 들어가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언제 허락을 받으셨다는 거죠?”
“그거야... 이제 받는거지. 그것도 부인솔자 양반이.”
“네?”
“많이 안들고 왔어. 소초원 각자 한병 정도? 하루에 한 모금씩 저녁 후 입가심으로 먹으면 끝나는 양이야.”
“단장님이 반입을 허가 해줄리가 없습니다.”
“어허! 내기 하겠소? 당신 말대로 허락을 안하신다면 내가 동생이 되고 당신을 형님이라 부르도록 하지. 그리고 만약 단장님께서 허락을 하신다면... 불침번 첫 근무 1시간! 어떠오?”
그렇게 실랑이가 벌어지자 두 사람의 대화는 모든 소초원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군장 무게를 늘려가며 힘겹게 들고온 ‘음료’가 자칫 바닥에 버려질 판이니 그 노력의 결과가 이 대화에 달려있는 셈이었다.
“··· 좋습니다.”
유치하지만 8소대 인원들 앞에서 1소대 차기 이십인장의 기백을 보여주기로 한 카니엘이었다. 더군다나 벨로나 단장이 허락해줄리 만무했기 때문에 모양 사납게 뺄 이유도 전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누가 뭐라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둘을 따라 소초원들 또한 구경났다는 듯이 1층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거드 소초장 및 8소초원들은 1층 복도 앞에 멈춰선 채 움직일 생각을 안했고, 카니엘은 그런 그들을 내버려 둔채 독대는 익숙하다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그녀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카니엘은 자신이 벨로나의 집무실 밖에서 그녀와 만난적이 한번도 없다는 것을 간과했다. 그랬기 때문에 문이 열리고 나타난 벨로나의 모습에 적지 않게 당황해야만 했다.
방금 전 샤워를 끝냈는지 그녀는 머리칼을 수건으로 말리는 도중인 채로 그를 맞이했고, 평소 핏기 없는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훨씬 부드럽고 생기있어 보이는 상태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카니엘을 당황케 한 것은 난생 처음보는 그녀의 사복 차림이었다. 최소 월영군 예복에서 갑옷을 입은 모습만을 기본으로 봤던터라 카라없는 민소매 셔츠와 짧은 바지 차림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살결은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단장님.. 저.. 8 소초 소대장이 건의사항이 있다고하여... 저희가 떠나기 전에 허락 맡을게 있다고 합니다.”
“설마 또 크므스 인가요?”
눈을 마주치지 못한채 더듬거린 말 뒤로 벨로나가 그렇게 되묻자 카니엘은 뭔가 쎄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벨로나는 카니엘 어깨 너머의 8소대 인원을 노려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날 근무자를 제외한 인원들에게만 마시는 것을 허락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한잔 이상은 당연히 안되고 만약에 그것을 어기고 전투에 지장이 갈 정도로 마신다면 내 손에···”
“단장님 손에 기꺼이 죽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몇 번이고 들었던 말이었는지 8소대 인원들이 입을 모아 외쳤고, 그 모습을 본카니엘은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외 하실 말씀 또 있으신가요?”
충격에 빠져 멀뚱히 서있는 카니엘에게 벨로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보았지만 당연히 할말이 있을리 없었다. 때문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편히 쉬시는데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십시요.”
그렇게 방문을 닫은 뒤, 카니엘은 자신의 군장을 챙기기 위해 무거운 발걸음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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