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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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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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8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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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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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2)

DUMMY

소초 꼭대기의 간이 망루.

시야 확보를 위해 주변 침엽수보다 높아야 했던터라 높이는 꽤 높았고, 망루 꼭대기까지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만 했다. 그렇게 외딴 섬처럼 떨어진 망루는 누구의 방해도 없이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과 잔잔히 흔들리는 숲을 즐길 수 있었고, 저 멀리 세상의 것 같지 않은 진월대까지 보여 적막하면서도 몽환적인 장소가 되었다.

게다가 날씨 또한 춥지 않아, 이렇게 불침번을 서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카니엘이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보아하니, 시거드 소초장이 머리를 쓴 것 같더군요. 그런 내막을 알았다면 좀더 생각을 하고 말했을 텐데.”


인기척에 망루 밑을 본 카니엘은 벨로나 단장이 서있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경례를 올렸다. 벨로나는 경례를 받은 뒤 곧바로 사다리를 타고 망루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카니엘은 살짝 긴장하면서도 손을 뻗어 그녀가 올라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감사합니다, 카니엘.”


도움을 받아 망루 위로 올라온 그녀는 자연스레 카니엘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어둠에 잠긴 숲과 그 위로 소금처럼 뿌려진 별을 잠시 동안 바라보며 몇 번 숨을 골랐다.


“혹시 제가 그런 결정을 해서 실망하셨습니까?”


“.. 아닙니다. 단지 제가 생각했던 단장님의 모습과 달라 살짝 당황한 것뿐입니다.”


“귀하에겐 제가 고지식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가 보군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살짝 미소를 짓어 보였고, 그 예상치 못한 웃음에 카니엘은 어떤 긍정의 말이나 부정도 하지 못할 정도로 당황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정작 시거든 소초장은 한모금도 마시지 않을 겁니다. 저랑 귀하만큼이나 인형에게서 받을게 많은 사람이니까요.”


추가 설명이 이어질 거라 생각한 카니엘은 그녀의 다음말을 기다렸고, 예상대로 벨로나는 진월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등을 보인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본디 도시 연합의 조그만한 시골 마을 출생으로 양이나 말을 관리하며 지냈던 자입니다. 하지만 인형들의 건국 전쟁 때, 그의 고향이 전투에 휘말려 그의 가족, 친지 모두가 사망하고 고향마저 불타 없어지자, 월연방국으로 망명을 했지요.


망명 이후에는 곧바로 복수를 위해 월영군에 입대를 했고, 저와도2번의 전투를 함께 치루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마치 중요한 의식인 마냥 크므스를 한 궤짝씩 마시곤 했었는데 그에 비하면 지금은 양호한 편이지요. 마시는 이유도 다르고.”


“마시는 이유라니요?”


“예전에는 죽은 고향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만, 지금은 가족과 다름없는 병사들의 안녕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물론 그외 유흥을 위한 의도도 다분해 보이긴 합니다만.”


시거든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벨로나가 크므스 반입을 용인 해준 것이 단순한 변덕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카니엘이었다. 분명 과거에는 인형에 대한 시거드의 복수심을, 지금은 휘하 부하를 아끼는 마음을 이해하면서, 그의 결정을 존중해줬던 것이었다.

다시금 벨로나의 그런 성격을 이해한 카니엘은 그렇기에 그녀와 함께하는 이번 작전에 대해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이번 작전과 관련하여 제가 단장님을 오해했나봅니다.”


“오해.. 라니요?”


“명령을 하달 받았을 때, 솔직히 처음에는 단장님께서 각인진 부작용을 철저히 감시하기 위해 저를 데려 간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리고 소초에 도착하기 전, 방랑자를 직접 처리하는 모습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했구요.”


“,,, 충분히 오해 살만한 행동이었군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이죠?”

기대가 묻어있는 카니엘의 물음에 벨로나는 성실히 답하기로 했다.


“방랑자를 직접 처리한 것은 혹시 모를 전투를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두가 신체 향상을 2번이나 한 상태였으니, 방랑자 처리 후 만약 전투가 발생한다면 곧바로 신체 향상 한계점에 도달하겠지요.”


일반적으로 신체 향상은 3번을 한계점으로 두었고, 그 이상이 될 경우 신체향상 과다 부작용으로 죽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결국 누군가 나서야 한다면 신체향상 없이도 간단히 인형을 제거해야 할 수 있는 사람이야 했고, 그래서 제가 나섰던 것입니다.”


벨로나가 말을 이어가다 갑자기 몸을 틀어 카니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첫번째 질문하셨던 당신을 부인솔자로 임명한 이유는···”


무장한 모습도 아니었고, 월영군 군복을 입지도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카니엘은 그저 자기 또래의 여인이 별빛을 받으며 하루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친근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당신에게 약속을 했기 때문이지요. 각인진 문제를 도와드리겠다고.”

살짝 머쓱했는지 벨로나는 그 말을 끝낸 뒤 다시 진월대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각인진 문제를 해결 해줄 사제를 찾은 것은 아니지만 믿을 만한 사람에게 도시 연합의 마법사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도시 연합말입니까? 하지만···”

뜻밖의 소식에 깜짝놀라 되묻다 문득 무슨 이야기 중이었는지 기억한 카니엘이었다.


“아! 그래서..”


월영시 동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8소초. 조금만 더 북쪽으로 이동하면 도시 연합과 월영시 간의 교역로까지 갈 수 있었고, 또한 여기까지가 사제의 마력감지 한계 지점이였다. 따라서 임무를 이유로 월영시를 나온 뒤, 교역로에서 도시 연합측 사람을 만나더라도 큰 위험 없이 다시 월영시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 도시연합측 마법사를 만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이번 임무를 함께할 필요는 없긴 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주변의 큰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 당신의 임무 수행이 당연한 것이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부인솔자로서 벨로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렇게 에스트가 떠들석하게 굴었으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테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그 또한 시들시들해질 것이었고, 그런 방심속에서 기회는 생겨 날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복잡한 계획을 구상한 것은 당신과 제가 마법사를 함께 만난다는 전제를 깔았기 때문입니다. 피지 못할 사정으로 귀하 혼자서 마법사를 만나야 한다면, 월영시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단독 임무를 내리든, 휴가를 승인하든지 하겠습니다.”


“······”


분명 벨로나는 카니엘 홀로 도시연합측 사람을 만나는 것이 꺼려졌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마지막까지 책임을 지고 싶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생각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외부와 내통한다는 누명을 쓸 수도 있는 상황이었고, 그런 위험을 무릎 쓰면서까지 자신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카니엘이었다.


“그래도 미리 말씀도 드릴 걸 그랬습니다. 아직 아무런 해결 방안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제 생각만 앞섰으니, 그 점 사과 드립니다.”


카니엘은 벨로나의 말에 극구 부인하며 되려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몰랐다. 목숨을 바치겠다는 상투적인 표현 이외 조금더 마음속의 말을 전달하고 싶었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비슷한 호의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벨로나와 굉장히 가까운 사람에게···


“...무혼 반란 이후, 제가 군 보육원에 들어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람이 몇번이고 찾아온적이 있습니다.”


카니엘의 말이 시작되자 벨로나는 흠칫 놀라며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 형과 친했다고 말한 그 분은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던 저에게 간단한 안부부터 필요한 물품까지 챙겨주셨고, 덕분에 월영군에 입대하여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큰 불편함이 없었지요.”


두 사람의 이어진 상흔. 그럼에도 서로의 입장 차이 등의 이유로 단 한번도 그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별빛과 숲 그리고 바람만이 전부인 망루 위에서 두사람은 계급과 나이, 주변의 시선에서 모두 벗어나 상흔을 지닌 살아남은 자로서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 당시 그 분이 왜 그토록 저를 챙겨주는지 이해를 못했습니다. 분명 무슨 의도가 있거나 그 만큼 저 또한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단장님의 모습을 보니까 이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분명 시세느 형은 자신의 누나를 닮아, 그저 힘 닿는 대로 저를 도와 준 것 뿐이겠지요. 단장님! 이번일도 그렇고 그리고.. 예전에 동생분께서 베푼 은정에도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잠시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 것처럼 보였던 이유는 때마침 불어온 겨울 바람 때문이었을까.


“정말... 정말로 오랜만에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동생의 이름을 들어보네요. 전 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당신의 그 고마운 말.. 제 가슴에 잘 간직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속 감정을 한번도 담아보지 못해 눈물마저 말라버렸다는 여왕의 얼굴에, 기쁨 찬 웃음이 별빛 아래에서 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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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2) +1 20.05.29 73 4 12쪽
26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1) 20.05.29 74 4 7쪽
25 3장 - 효시(嚆矢)_1화_무언 마법사의 조우 20.05.28 79 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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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2) +2 20.05.22 91 6 7쪽
20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1) 20.05.22 99 5 8쪽
»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2) 20.05.21 111 5 10쪽
18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1) +1 20.05.21 105 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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