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상흔의 잔향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무협

철의대화
작품등록일 :
2020.05.11 10:15
최근연재일 :
2023.02.28 15:54
연재수 :
182 회
조회수 :
18,296
추천수 :
478
글자수 :
747,868

작성
20.05.12 23:39
조회
300
추천
7
글자
7쪽

1장 - 악몽(6)

DUMMY

//////////////////////////////////////////////////////////////////////


슬슬 그 보고서의 끝을 매듭지어 줄 사람이 방문하리라 생각하던 벨로나는 때마침 집무실 건너 복도에서 군화 소리와 병기류의 금속소리가 다가오는 것을 인지했다.


잠시 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기다리던 인물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수색 독립대대 야묘급, 카니엘 시닉스. 인형 처분 보고의 건으로 방문했습니다.”


//////////////////////////////////////////////////////////////////////


카니엘은 집무실이 너무 넓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들어왔던 문 맞은편에 위치한 큰 창문과, 넓은 책상, 그리고 의자를 제외 하고, 기타 장식이나 가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넓은 공간이 결코 휑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달빛을 등진 채 바른 자세로 앉아 있는 벨로나 세라트너 월영군 총 단장의 위압감 때문이었다.


“보고 받겠습니다.”


카니엘은 유독 집무실에 들어오는 달빛이 더 밝게 빛나는 느낌을 받으며, 그녀의 말에 이어 보고를 시작했다.


“앨룬 32년 2월 29일 12시 20분. 월영군 사령부 외부에서 이상 마법 감지. 그로부터 5분 뒤인 12시 25분, 독립 수색대에 떨어진 도주로 차단 명령에 따라 분대장 및 본인 포함 3명은 32번 진지에서 대기하였습니다.

그 후 약 1시간 뒤, 거수자를 발견하였으나, 적이 아닌 아군 순찰자로 오인하였고, 그에 따른 적의 기습으로 야트만 분대장은 현장에서 사망. 이후 차임자 권한으로 적 발견 조명탄 발포 명령 뒤, 본인은 인형을 추격 뒤 전투 끝에 처분하였습니다.”


월영시로 들어오는 동안 그리고 진월대에 도착해서도 상당 시간 에스트의 첨삭을 받아가며 작성한 보고서를 읽어 내려간 카니엘은 그 뒤에 찾아온 침묵에 입술이 바짝 타는 것을 느꼈다.


“인형과의 전투 내용이 상당히 압축된 것 같습니다만?”


무미건조한 말과 함께 벨로나는 책상 위에 있던 보고서를 집어 들고서는 쭉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파견 되었던 군의관 미엔 엘리느의 소견서 입니다. ‘처분된 무혼 인형의 직접적인 파기 원인은 오른쪽 가슴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깊은 긴 절상에 의한 것으로 판단 됨. 그 외 양쪽 슬개골의 으스러짐, 왼쪽 손목의 절단에 가까운 부상, 왼쪽 늑골 골절 및 관통상이 관찰 됨.’”


카니엘이 입힌 적나라한 전투 내역을 읽은 뒤, 벨로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


“이어서 독립 수색대 대장 예프닐의 보고서 내용입니다. ‘비록 수색대대는 작전 투입 인원의 현장 판단이 가장 최우선 되나, 동 건의 목표물이 전투 불능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점, 또한 처분자의 지난 행적을 고려했을 때, 동 처분의 건에 대한 분명한 소명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 됨.’”


반박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카니엘은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었다. 특히 자신도 처음부터 인형을 처분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실제로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데 성공한 뒤에도 처분했던터라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현장에서 말했다시피, 인형과의 12번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당신은 분명 뛰어난 병사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이십인장으로 임명을 하려는 것이고, 이러한 저의 결정을 위해 이번 건에 대한 소명이 필요한 점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승진에 치명적인 사유가 아니라면 크게 문제 삼지 않겠다는 단장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그와 반비례해서 카니엘의 입은 무거워 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대로 악몽, 환각을 견디지 못해 인형을 처분했다 할 경우, 이십인장은 커녕 수색대 대원의 자질을 의심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여지껏처럼 상황을 무모하면서 임명을 거절하는 방법도 생각했지만, 언제까지나 버틸 수 없을 것이었고 더군다나 이곳에 오기 전에 그녀가 했던 말도 있었다.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 말의 진의가 함께 궁금해진 카니엘은 무거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단장님, 오늘 저는 처음 작전에 참여한 에르뮈 신병을 내팽겨친 채 적을 쫓아갔습니다. 분명 주변에 또 다른 인형이 있었다면 에르뮈 또한 죽었겠지요... 최악인 것은 그렇게 신병을 버려두고도 위로의 한 마디나 얼굴 한번 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저는 남을 위해 검을 쥐기보단 저를 위해 검을 쥐는 사람이니까요.”


시선을 내리깐 채, 달의 여신께 고해를 하는 듯한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그래서인지 제 주변 평가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그 평가를 신경 쓴적도 없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십인장이 되어서도 어떤 이유로든 이번과 같이 제 자신을 위해 검을 휘두르게 되면, 제 평판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단장님께 누가 될까 우려스럽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요?”


부하의 뜬금없는 말에 벨로나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바람에 카니엘은 온 몸이 긴장되어 살짝 힘이 들어갔고,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식은땀까지 살짝 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본격적인 이야기에 단장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기에 입을 열었다.


“저에 대한 유쾌하지 않은 소문중에 단장님께서 저를 편애 한다는 소문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이유 때문에 이십인장에 임명되는게 부담스럽다는 말입니까?”


“다른 사람의 시선도 시선이지만..죄송스럽지만 솔직히 저 스스로도 그게 사실이 아닐까하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하군요.”


“다른 이들은 인형 처분자가 미쳐 날뛰어도 큰 탈이 없다는 점이 불만으로 그렇게 추측하겠지만.. 저는 단장님의 상흔과 저의 상흔이 이어져 있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저와 귀하의 상흔?”


뚜벅뚜벅 다가오던 벨로나는 카니엘 바로 앞에 멈춰섰고, 카니엘 또한 그런 그녀를 주시했다.

어둠속에서 바라본 그녀의 모습은 하얀 눈밭에서 봤을 때와 사뭇 색달랐다.

신장은 수색대로 체격이 있는 카니엘의 턱까지 올 정도로 여자치곤 살짝 큰 편이었고, 뚜렷한 이목구비 때문에 생긴 짙은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워 평소보다 더욱 차갑게 보였다.

그런 분위기에 카니엘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깊고 푸른 바다 한켠을 담고 있는 듯하여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저와 저의 형, 그리고 단장님의 동생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카니엘의 말에 그런 그녀의 눈빛이 물결이 파동치듯이 흔들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깊은 상흔의 잔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4장 - 개벽(開闢)_1화_ 선고 (1) 20.06.05 68 4 10쪽
34 3장 - 효시(嚆矢)_5화_전조_(2) +2 20.06.04 68 4 12쪽
33 3장 - 효시(嚆矢)_5화_전조_(1) 20.06.03 64 3 12쪽
32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2) 20.06.02 60 3 7쪽
31 3장 - 효시(嚆矢)_4화_구금소 (1) 20.06.02 64 3 9쪽
30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3.끝) +2 20.06.01 62 3 9쪽
29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2) 20.06.01 63 3 11쪽
28 3장 - 효시(嚆矢)_3화_만인의 적이 지나가는 길(1) +2 20.05.31 67 4 8쪽
27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2) +1 20.05.29 73 4 12쪽
26 3장 - 효시(嚆矢)_2화_하늘층 회의(1) 20.05.29 74 4 7쪽
25 3장 - 효시(嚆矢)_1화_무언 마법사의 조우 20.05.28 79 4 10쪽
2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끝) 20.05.28 83 3 11쪽
23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4) +1 20.05.25 89 5 10쪽
2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3) 20.05.25 88 4 9쪽
2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2) +2 20.05.22 91 6 7쪽
20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8화_일체일념(1) 20.05.22 99 5 8쪽
19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2) 20.05.21 111 5 10쪽
18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7화_ 별빛과 망루(1) +1 20.05.21 105 7 7쪽
17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6화_ 거점 투입 20.05.19 116 5 11쪽
16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5화_담소 (談笑) +1 20.05.18 133 6 10쪽
15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4화_월몰 기도식 20.05.18 123 6 9쪽
14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2) 20.05.16 133 5 10쪽
13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3화_스승과 제자 20.05.15 178 8 9쪽
12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2화_흠결 20.05.15 178 6 7쪽
11 2장 - 일체일념(一體一念) _1화_만인의 죄인 20.05.14 283 7 12쪽
10 1장 - 악몽(9) 20.05.14 249 6 12쪽
9 1장 - 악몽(8) 20.05.13 261 6 11쪽
8 1장 - 악몽(7) 20.05.13 291 7 8쪽
» 1장 - 악몽(6) 20.05.12 301 7 7쪽
6 1장 - 악몽(5) +2 20.05.12 403 1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